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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95건
2013. 3. 24. 22:57



2013. 3. 11. 23:41


꿈을 꾸었다. 꿈은 어느 평론가와의 대화에 관한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 영화잡지를 읽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평론가들은 왜 그렇게 할 말이 많은 것일까였다. 영화를 그저 느낀대로 마음에 담아두면 되는 것 아닌가, 굳이 영화를 본 것을 언어화해야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어려운 글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을 읽고 있으면 화가 나서 그 화를 다독이면서 글을 읽곤했다. 펜까지 들고, 줄을 쳐 가면서.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글들은 항상 있었다. 지난 밤 꿈 속의 나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떤 평론가에게 화를 냈다. 아니 그렇게 해석하면 뭐해요? 아무리 당신이 그렇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해도 감독은 이렇게 말할 뿐일거에요. "아무 의미없다. 그저 떠오르는대로, 생각나는대로 찍었을 뿐이다. 우연히 만들어진 장면이다." 그러니까 우선은 당신의 감정이 일렁이는 대로 느껴야 해요. 영화를 째려보며, 비판하려 들지말고 일단은 느껴야 해요. 깨고나서 생각해보니 꿈 속에서 내가 한 말은 어느 평론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기어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영화를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감상한 적이 너무 먼 옛날이다. 슬프다. 하지만 김혜리 기자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그녀를 애정한다. 씨네21 895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관한 글이 마음에 들어서 노트에 옮겨 적었다.

(20130311)



집으로 돌아와 몸에 걸치고 있던 것들을 벗어 하나 둘 수납장 위에 올려다 놓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새가 예뻐서 사진으로 담았다. 기분좋은 가게에서 1,000원 주고 산 니트와 몇 년 전 여성의 날 행사 때 친구가 활동하는 단체 부스에서 만들었던 은행나무 열매 목걸이와 작년 퀴어퍼레이드에서 장만한 팔찌와 문정현 신부님이 축성해주신 묵주와 마르쉐 장터에서 지인이 선물해준 덧버선과 항상 내 왼쪽 손목에 머무는 내가 내게 선물한 손목시계까지 물건들의 사연과 조합이 예뻐서 사진으로 담았다. 

(20130308)

2013. 3. 9. 23:52

감기로 골골거리다가(지인 고래씨 또한 감기로 고생중이다. 고래씨를 아는 분들은 고래씨에게 안부를! 아프면 소문 내야한다는 고래씨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바람!ㅎ)  일때문에 잠시 외출을 했다. 봄이 왔다. 사람들은 가벼웠고 다채로웠다.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치맛자락이 흔들렸다. 검은색과 회색을 걷어낸 사람들의 옷차림에선 민트색도 보이고, 노란색도 보이고, 붉은색도 보이고. 즐거운 풍경이었다. 봄이 왔다. 보드라운 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이유없이 흔들리게 만든다. 오랜만의 경희대 캠퍼스는 봄때문에 울렁거리고 있었다. 3월 개강은 2학기 개강과 달리 설렘 지수가 더욱 높았다. 지루한 겨울 이후, 봄으로 가득찬 캠퍼스는 말그대로 생동이었다. 봄 햇살 아래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신나고 설렐수가 없었다. 짧은 외출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봄이 왔다. 작년 봄에 가지 못한 봄날의 동해 바다를 보러가고 싶다. 바다는 동해 바다가 진짜 바다같다. 제주 바다 보다 더.

(20130309) 


어젯밤 꿈이 이상했다. 녹사평역에는 두 명의 노숙 여인이 있다. 예순이 넘은듯한 두 여인 중 한 명은 키가 크고, 한 명은 키가 작다. 키가 큰 여인은 종종 담배를 피고, 키가 작은 여인은 노란색 망토를 두르고 있다. 어젯밤 꿈에 키가 작은 여인이 나왔다. 도심 빌딩 2층에 절이 있었다. 도심의 빌딩은 회색빛이다. 하지만 빌딩 2층은 단청 빛깔로 어지러웠다. 나는 2층에 있는 절에 들어가려고 했다.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키가 작은 여인이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들어가려고 했고,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말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당신이 들어가고 싶다면 들어 가세요. 하지만 들어가지 마세요." 그렇게 들어가겠다는 나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되 들어가지말라는 그녀는 꿈속에서 실랑이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정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보였다. 그래서 들어가지 않았다. 만약에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들어갔다면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새벽, 꿈에서 깨어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했다. 몸이 추웠다. 열이 났다. 땀을 흘렸다. 결국 감기에 걸렸다. 아침에 일어나 꿈 이야기를 임여사님에게 했다. 임여사님은 내가 그 여인의 말을 듣지 않고 빌딩 안 절으로 들어 갔다면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죽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쏘쿨하게 하는 임여사님이 갑이다. 나의 이상한 꿈을 임여사님의 쏘쿨한 해석을 듣고 개꿈으로 판단했다. 그래도 한 여인이 나를 살렸다. 오늘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회원팀에서 회원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떤 내용으로 문자를 보내면 좋을지 회원팀 활동가들이 머리를 굴리며 문구를 만들고 있었다. 80바이트 안에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잘 담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녀들이 이뻤다. "솔솔 불어오는 봄 바람처럼 당신의 일상에 연대의 바람이? 여성주의 바람이? 평등? 아니야, 식상해. 이상해." 막 그러고 있을 때 먼지가 툭 던졌다.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당신의 일상에 연애의 바람이!" 사무실에서 빵 터졌다. 먼지야, 바로 그거야. ㅋ 


결국 회원분들에게 전해진 문자는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 함께 기억하고, 축하하며 당신의 일상에도 바람이 일기를. @}->-"


(20130308)



105주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노동자들은 요구한다.


- 20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 성별임금격차 OECD 수준으로 줄여라!

-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라!

- 재능교육, 88CC 장기투쟁사업장 문제를 당장해결하라!

(20130307)


봄이다. 아침에 도봉에 강의가 있어서 다녀왔다. 도봉은 참 멀다. 도봉에 다녀오면 일본의 어느 소도시를 다녀온 것 같다. 집성촌같은 느낌도 든다. 오픈되지 않은 인상이다. 그 안에서 자립과 생산과 공유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도봉은 재미있는 지역이다. 강의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1시간 40분 가량 소요되었다. 망원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오는 길, 봄이 느껴졌다. 내 이름이 바람이라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 오후였다. 민우회 활동을 처음 시작하던 당시 별칭이 없었던 나는 별칭을 지어야 했다. 영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라고 할까, 바람이라고 할까 고민을 하다가 바람이라고 별칭을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바람이 그렇게 좋았다. 바람이 얼마나 좋았으면 바람에게 '바람아가씨'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혼자 길을 걸을 때 종종 "바람아가씨!"라고 불러보곤 했었다. 그리고 '바람아가씨'에게 편지도 썼었다. 그저 바람이 좋아 바람이라고 별칭을 지은 것이다. 오늘은 문득 바람을 무어라 정의해야하는 것일까, 싶었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무형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람을 느낀다. 때로는 바람을 보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워 길을 걷다 폴짝 뛰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쫙 펴고 공기 사이로 팔을 휙 가로질러 보았다. 존재하지 않는 바람이 순간 느껴졌다.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비집고 빠져 나간다. 이런 사실 자체가 또 너무 신기해서 다다다 달려 보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람이라고 언어화하는 사람들의 능력에 탄복하였다. 내가 바람이라는 것이 재밌었다. 동시에 내가 바람이라는 것이 낯설어졌다. 이 이름이 나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라고 불리어져도 괜찮은 것일까?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내 이름 바람이 어색하다. 


바람(명사) :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



요즘 성미산 마을은 오래된 주택을 부수고 그 부지에 빌라를 짓는 것이 유행이다. 마당이 있는 오래된 집 세채가 지난 해 부서졌다. 그리고 오늘, 사무실 앞 오래된 주택이 부서졌다. 사무실 앞 오래된 주택엔 제법 오래된 목련나무가 있었다. 매해 목련 나무를 보며 아, 올 봄에도 하얀 꽃봉오리가 터지고 뚝뚝 떨어지겠지? 그럼 그때 나도 같이 울겠구나. 목련과 함께 봄을 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올해도 그렇게 나는 목련 봉오리가 벌어지는 것 만큼 봄을 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 목련 나무가 베어졌다. 아마도 주택이 만들어지던 날 함께 심어졌던 목련 나무가 주택이 무너지던 날 베어졌다. 어제까지 있던 목련이 베어졌다.  봄을 타는데 있어 단단히 한 몫을 했던 그 목련나무가 오늘 베어졌다.  나무가 베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주인집 아이가 자라온 모습을, 담벼락 아래에 앉아 유한한 시간을 무한히 사유하는 노인의 모습을, 마을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우두커니 지켜보며, 때로는 누군가의 비밀을 품고 있던 나무가 베어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건물 잔재에 부서져 있던 목련꽃 봉오리가 애처로웠다. 아름다운 것이 사라지는 것은 슬프다. 너무너무 슬프다. 망하고 있다.

(20130306) 


집으로 돌아와 변태처럼 나의 시들을 읽었다. 잠을 자지 못해 머리가 어지럽고 두팔이 후들거린다. 감기가 오는 것인지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아프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모 대학교의 대학원 교과 과정을 살펴보았다. 서울에서 화개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지인은 모 대학교 대학원 ****학 과정을 지원해보라고 했다. "나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모 대학교 대학원 교수진을 보며, 그 안의 두사람때문에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고, 재미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다.'라는 단언을 하지 말아야겠다. 고민을 해보자. 공부를 잘 마무리하고 먼훗날 언젠가는 모잡지사의 ***** 공모를 해보고 싶다. 진지하게 어느날을 꿈꿔본다.

(20130305)


야근을 하고 사무실 동무와 함께 근처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했다. 활동과 관련된 고민을 나누고, "우리 이건 이렇게 해보자." 소소하고 호기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의 찌질함도 내보이며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독립' 이야기를 하다가 동무는 내가 독립하면 세탁기 혹은 냉장고 구입을 다른 이들을 조직하여 전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너무 큰 선물이라 사양했다. 대신 전자레인지를 사달라고 했다. ^-^; 동무의 마음 씀씀이에 부자가 된 것같았다. 즐거운 밤이다. 아, 이 즐거운 밤 연애를 한다면 더욱 즐거울텐데. (연애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왜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거지?) 그것이 조금 아쉬운 밤이다. 하지만 지금이 좋다. 동무는 지금 이 상황이 나쁘지 않다면 이 상황을 최대한 즐기라고 했다. 백 번 맞는 말이다. 그리고 오늘 좋은 공간을 하나 알게 되었다. 서대문역에 있는 '레드북스'라는 사회과학 서점이다. 새책과 헌책을 파는 책방이며 동시에 차를 마실 수 있는 다방이다. 낡은 건물 곳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아 살아있는 듯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차(茶) 값도 정말 착하다. 서대문에 가면, 종로에서 영화를 보고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그곳에 종종 방문해야겠다.

(20130304)

2013. 3. 5. 01:31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접하면 나도 반짝이는 것 같아 즐겁다. 민우회에서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여성주의 영감을 얻게 된 당신의 책 38페이지를 함께 읽는 액션 위크를 기획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책장의 책들을 펼쳐본다. 여성주의 영감을 얻게 된 나의 책 38페이지엔 어떤 글이 쓰여 있을까? 페미니즘 서적을 펼쳤다가, 독립에 관한 에세이를 펼쳤다가, 만화책을 펼쳤다가, 진은영 시인의 시집 <훔쳐가는 노래>를 펼쳤다. 그녀의  시집 38페이지에는 좋아하는 시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가 있다. 천천히 시를 읽으며 생각했다. 生은 어쩌면 神이 전하는 유일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진은영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무익했다

그래서 너는 생각했다 무엇에도 무익하다는 말이

과일 속에 박힌 뼈처럼, 혹은 흰 별처럼

빛났기 때문에


그것은 달콤한 회오리를 몰고 온 복숭아 같구나

그것은 분홍으로 순간을 정지시키는 홍수처럼

단맛의 맹수처럼 이빨처럼

여자뿐 아니라 남자의 가슴에도 달린 것처럼

기묘하고 집요하고 당황스럽고 참 이상하구나

인유가 심한 시 같구나


그렇지만 너는 많이 달렸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농부가 가지에서 모두 떼어버리는 과일들처럼......


여기까지 시작되다가

이 시는 멈춰버렸구나


투명한 삼각자 모서리처럼 눈매가 날카로운

관료에게 제출해야 할 숫자의 논문을 쓰고

"아무도 스무살이 이토록 무의미하다는 걸 내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라고 써보낸 어린 친구에게 짧은 편지를 쓰고

나보다 잘 쓰면서

우연히 나를 만나면 선배님 시를 정말 좋아했어요,라고 대접해주는 예절 바른 작가들에게,

빈말이지만, 빈말로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는 것은 성경에도 나와 있는 일이니까,

빈말이 아니더라도 '좋아해요'와 '좋아했어요'의 시제가 의미하는 바를 엄밀히 구분할 줄 아는

나는 고학력의 소유자니까,

여전히 고마워하면서, 여전히 서로 고마워들 하면서, 그동안 쓴 시들이 소풍날 깡통넥타와 같다는거

어릴 적 소뭉 가서 먹다 잊은 복숭아 깡통넥타를

나는 아매 열매 맺지 못할 복숭아나무 가지 사이에 끼워 놓았나보다, 바람이 불고 깡통 구멍이 녹슬어가고 파리인지 벌인지 모를 것이 한밤에도 붕붕거리고,

그것은 너와 나의 어린 시절이 작고 부드러운 입술을 대어보았던 곳, 그 진실한 가짜 맛

그러다가 나는 문득 시작해놓은 시가 있으며


어떤 이야기가,

어떤 인생이,

어떤 시작이

아름답게 시작되는 것은 무엇일까

쓰러진 흰 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2013. 3. 1. 22:57



남쪽 나라에는 봄이 성큼 왔다. 화개장터와 쌍계사 중간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민우회 지부 대표 선생님들과 함께 워크샵을 다녀왔다. 조용히 햇빛에 등을 내어놓으면 나른하고 따스워져 다정했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봄이 오고 있었다. 남쪽에서부터. 벚꽃이 피는 계절에 섬진강 근방을 다시 한 번 오고 싶다. 모든 길들에 벚나무가 촘촘히 심어져 있었다. 화개에서 하동으로 1시간 남짓 시골버스를 타고 달렸다. 넉넉하고 포근한 땅과 산의 모양새가 마음을 너르게 만들었다. 기분이 좋아 절로 웃음이 나오는 시간이었다. 화개에서 1박, 사천 할매댁에서 1박, 2월의 배웅과 3월의 마중을 남쪽에서 하였다. 

(20130227-20130301)



+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예고편을 보다가 해원과 이 선생의 대화 씬에서 깜짝 놀랐다. 고민이 닮아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아가나보다. 여하튼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곧 개봉한다. 기대된다. 극장에 가서 경건히 봐야지. ㅎ

+ 씨네21 배우 정은채의 인터뷰 글을 읽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질투가 느껴졌다. 질투의 실체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

+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남자 배우는 주인공으로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여자 배우는 주인공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다. 홍상수 감독을 좋아하지만 이 부분은 솔직히 마음에 안든다.

+ 맥주 마시고 싶다.


얼마전에는 내가 살다 간 흔적을 세상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존재에 대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 사람들은 아이를 만드는 것일까? 그래서 결혼하는 걸까?' 영화 엔딩크레딧에 쓰여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며, '저 사람은 저렇게 흔적을 남겼네.'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내가 살다간 흔적을 세상에 남길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지인에게 말 했더니 지인은 논문을 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며칠은 '정말 공부를 해볼까?'라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일단은 살아봐야겠다. 살면서 계속 글을 써봐야겠다. 살다보면, 글을 쓰다보면 어떻게든 존재의 흔적을 남길 수 있겠지. 

(20130226)



왜 상집 회의만하고 나면 모든 의지력이 상실되는 것일까?

(20130225)

2013. 2. 24. 13:57


조조영화를 보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보았다. 조울증으로 분노 조절이 어려운 팻은 법원의 명령으로 8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아내 니키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받았다. 떠나간 니키가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그는 부단히도 애를 쓴다. 애 쓰는 팻의 곁에는 가족이 있다. 그리고 티파니가 있다. 팻은 니키에게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티파니의 제안을 수락한다. 함께 댄스 대회에 나가는 것을 전제로 티파니는 팻의 편지를 니키에게 전해주기로 약속한다. 영화를 보면서 "티파니는 왜 팻을 도와주는 것일까?" 의아했다. 그런데 전혀 멋있지 않는 두 사람의 댄스 장면을 보면서 알겠더라. 어떤 이유가 있기때문에 티파니가 팻을 도운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고 있기때문에 도왔다는 것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불안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불안과 분노는 누군가만이 특별히 전유하는 감정이 아니다. 팻과 티파니 외에도 영화 속에는 그 불안과 분노를 품고 있는 이들이 나온다. 그것은 모두가 사유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영화는 꾸준히 말한다. 불안과 분노를 육두문자를 빌어 거침없이 발설하는 팻과 티파니가 매력적이었다. 영어를 잘 들을 수 있다면 시원하게 그 육두문자의 세례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언어의 장벽이 안타까웠다. 일상에서 감정과 분노의 조절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감정과 분노를 잘 발설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잘 화내고 분노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과제이다. 달라서 재미있는 로맨틱코미디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었다.


+ 제니퍼 로렌스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배우이다. 삐적마르지 않은 그녀의 몸은 멋있다. 

+ 매니큐어 색깔도 이쁘더라. 시커먼 매니큐어를 사려고 했는데 회색 매니큐어로 낙찰! ㅋ 나도 슴옥희 도전해보련다. ㅎ

+ 김혜리 칼럼 : 제니퍼 로렌스, 생존자의 섹시함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6&cid=928052&iid=21490449&oid=428&aid=0000000005&ptype=021

(20130224)


집을 구할 때 '나만의' 기준을 두고 방을 보라는 지인들의 조언을 들었다. 그런 조언을 염두하고 '나만의' 기준을 정리해보았다. 반지하보다는 옥탑을. 옥탑은 누구나가 쉽게 옥탑을 드나들 수 있는 구조보다는 옥탑의 출입을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조리하는 공간과 방이 분리될 수 있는 공간을. 마지막으로 창문과 대문의 방범시설이 잘 갖춰진 곳을 찾는것이 나의 바람이다. 이런 기준이 충족되는 집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조바심 가지지말고, 집중해서, 긍정의 마음으로 발품을 열심히 팔도록 하자. 

(20130224)


오랜만에 동생과 오랜 수다를 나누었다. 수다의 주제는 임여사님과 이부장님의 뒷담화와 두분에 대한 걱정과 서로의 요즘과 나의 독립 등이었다.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각자의 고민에 대한 서로의 지혜를 나누면서 문득 여자 동생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내 동생은 지혜로운 아이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보지 못한 것들, 내가 봐야할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동생은 나의 독립을 적극 지지하며, 독립하면 최대한 임여사님과 이부장님에게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했다. 나의 경제 수준에서, 나의 철학과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최선을 다해 '잘' 살면 나의 삶에 대해 두분도 뿌듯해할 것이라며 나에게 힘을 전해주었다. 동생은 가난하더라도 삶을 '잘' 가꾸는 것이 가능하다면서 내 몸을 잘 챙기면서, 구질구질하지 않게, 나만의 삶의 방식을 건강하게 만들어 가라고 했다. 동생의 말은 생각하면할수록 감동적이다. ㅎ 

   (20130223)    



노트북으로만 듣던 음악을 공연장에서 들으니 사람들이 공연장을 가는 이유를, 음악가들이 카페보다는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노래하고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운드가 좋았다. 베이스 소리가 '간지'나는 소리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함께 동행한 이가 "가스펠 분위기가 난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동의되었다. '그릇'이 가지는 특유의 건강함이 있다. 그 건강함이 가스펠의 무언가와 닮았다. 여하튼 밴드 '그릇'의 공연을 잘 다녀온 것인지, 아닌지 딜레마에 빠졌다. '가스펠'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쉬이 떨쳐지지 않는다. ; 밴드 '그릇'의 장점과 단점을 확인하는 공연이었다. 그래도 음악이 좋아서 밴드를 하고, 좋아서 하는 음악을 좋아해 주어 고맙다는 그들의 마음을 믿고 다음 음반을 기대해본다. 일단 공연 후기를 짧게 정리하면 공연보다는 음반이 좋다. 


+ 그리하여도 공연이 있을 때 가끔 공연장 가어야지. 밴드'그릇'만의 특유의 귀여움이 있다. ㅋ

+ 공연장에서 나눠주었던 홍차가 정말 맛있었다. 그 홍차의 이름을 알고 싶다. 텀블러에 배인 홍차향에 킁킁 황홀해했다.

+ 사진출처 : http://cafe.naver.com/bandbowl 

(20130222)


어제는 아팠다. 

출근을 못했다.

노인이 나오는 영화에 관한 글을 썼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은 피곤했다.

뒷목이 뻐근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정책과제를 보았다.

뒷골이 땡겨왔다.

앞날이 깝깝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공연을 다녀왔다.

기타를 배우고싶다.

홍차를 마셨다.

홍차는 맛있다.

두눈이 빨갛다.

나는 피로하다.

피로물질아 내게서 멀어져라.

맥주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불면의 밤은 매일 찾아온다.

잠을 푹 자고 싶다.

결국 주말이 왔다.

그리고 주말은 가겠지.

3월이 온다.

(20130222)



누구나가 다 볼 수 있는 오픈 된 공간에 일기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잠시 생각했다. 내가 낱낱이 드러나는 것 같은 불편함이 있지만 나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30대를 맞이하고 있는 여성들의 오늘 이야기, 누군가와는 분명 공감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최대한 기록한다는 것은 필요한 작업이다. 민우회 활동가들과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맥주를 마시며 주고 받은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그 중 하나가 '엄마 어디가?'라는 이야기였다. 요즘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에 아이디어를 얻어 따뜻한 봄날 활동가들이 엄마와 함께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부모에게 있어 민우회 활동가는 외계인같은 존재다. 돈도 많이 못 벌고, 사회적 지위도 없고, 결혼도 안하는 하자투성이(?)의 딸을 둔 엄마들이 모여 '내 딸이 외계인이 아니구나. 내 딸과 같은 딸들이 가까이에 있구나'라고 엄마가 확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엄마 어디가'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엄마 어디가? 봄 산행 편' 기획팀은 폴, 꼬깜, 바람, 멍군이다. 분명 어색하겠지만 딸과 엄마가 서로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엄마 어디가? 봄 산행 편'이 무리없이 잘 진행되면 '엄마 어디가? 1박 2일 가을 여행 편'도 기획해볼 참이다. 그때는 참석의 범주도 엄마와 딸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매, 여자친구로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1차 기획은 활동가와 활동가를 자식으로 둔 엄마들의 임파워링 목적으로 실행해볼 참이다. ㅎ 걱정되지만 두근거린다. "꼭 실행해야지. 옥히? 폴, 꼬깜, 멍군" :)

(20130220)  


무엇이든 밀리면 하기 싫어지고, 하기 싫어지면 '원래' 하고자했던 것을 '결국'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동안 쓰지 못한 일기를 써야지 압박만 느끼다가 오늘의 일기부터 쓰기로 한다. 그렇게 '일단' 시작한 일 중의 하나가 가계부 쓰기. 가계부에 수입을 기록하지못했지만, 그간의 지출을 기록하지못했지만 어제의 지출 기록부터 시작으로 가계부 작성 모드에 들어갔다.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독립을 위해선 계획적 소비의 연습이 필요하다. 

요즘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종종 말하니 임여사께서 내 눈치를 살핀다. 임여사님은 살살, 살갑게대하면 내가 그 달콤함에 현혹되어 '집나가기'를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손님이 오면 항상 내 방은 손님방이 되었다. 나는 방을 내어주고 거실에서 잤다. 임여사님은 나의 의사를 묻지 않고, 동생 방은 내어줄 생각도 하지 않고 항상 내 방을 내어 주었다. 사촌동생이 대학 입학때문에 올라왔다. 출근 전 임여사님은 "**이가 오는데 네 방에 재워도 되나?"라고 물었다. 건조하게 답했다. "엄마 집인데 엄마 마음대로 해." 과거엔 항상 내 방만 내어주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무덤덤했다. 임여사님의 집에서 나와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독립의지'는 임여사님의 집에서 내 방을 사수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연스레 흐릿하게 만들었다. 퇴근 후 돌아와 보니 임여사님은 동생 방을 사촌 동생에게 내어 주었다. 임여사님과 함께 살며, 내 방이 아닌 동생 방을 내어 준 것은 최초의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독립'을 앞두고 임여사님과 나의 미묘한 신경전이 이런 식으로 발현되고 있다. 다음주 중에 휴가를 내어 임여사님과 바깥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볼 참이다. 동생의 조언을 새겨 들어, 차분하고 진지하게 나의 의지를 임여사님에게 전달해봐야 겠다. 싸우지말아야할텐데.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깥에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20130219)

2013. 2. 18. 00:10

이소희 탐구생활 part 1. 


하루는 나에 대해 알기 위해 에니어그램 책을 보았다. 일전에 에니어그램 유형 검사를 하였을 때 나는 9번이었다. 오랜 시간 나를 알아온 친구는 내가 2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책을 펼쳤고 점검을 해보았다. 점검 결과 나는 2번 유형이기보다는 9번 유형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편이 쓰리고 괴로웠다. 알고 싶지 않았던 나를 확인하였고, 일종의 과제를 정리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종종 무기력했다. 그리고 포기가 빨랐다. 나의 의사나 선호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제쳐두고 타인의 계획, 선택, 원하던 것을 주로 따랐다. 관계의 범주에서 배제되는 것이 두려웠다. 고립되고 단절되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고립과 단절을 두려워하면서도 또 홀로 있는 시간을 언제나 동경했다. 항상 모순적 상황에 있었다. 동화를 원하지만 외떨어진 존재이고 싶어한다. 이런 모순적 심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나를 유형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유형 지도'를 통해 나라는 인간에 대해 알고 싶다. 정말 내가 원하는 상황은 뭘까? 요즘은 '독립적 존재'로서 나를 확인하고 싶다. '독립적 존재'라고 하면 정서적인 면에서, 관계적인면에서, 경제적인면에서 두루두루를 말하는 것이다. 책을 보다가 적극 동의되는 지점들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 자신의 순종적이고 무기력한 면에 대해 우울해 한다. 강한 불안과 욕구는 대개 변화 없고, 단조로운 감정에 덮여 버린다. 혹은 분노를 드러냄으로서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고 사회적인 고립의 감정을 악화시킨다.

 

: 고립되고 단절되는 것을 나는 두려워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래서 항상 난 스스로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나의 성향이나 색깔이 드러나면 그것으로 인해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어린 시절부터 있었다. 나를 잘 드러내지 않았기에 가까운 사람 가족이나 애인에게만 주로 내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서 가족과 애인 앞에선 까불기도 많이 까불고, 하고 싶은 말도 하고(가족에게는 잘 하지 않았지. 주로 애인에게 모든 것들을 말했었다.), 감정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주로 '분노'를 애인에게 표출했다. 이제 와 생각을 해보면 이것이 상대를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서로 잘 지내고 있는) 첫 번째 X는 연애를 끝내던 당시 내 존재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너무나 우울했다. 그 우울한 감정을 그대로 X에게 전달했다. 어떤 여과도 없이. 두 번째 연애도 끝을 생각해보았다. 그때도 난 건강하지 못했다. 내 상태가 건강하지 못할 때 나는 돌파구를 내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나의 경향이 관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관계를 맺는 동안 서로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나의 의존 경향을 떨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심리적, 육체적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 상대방이 자신에게 융합되어 오기를 바란다. 상대방의 결점을 보지 않는다. 나의 삶보다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상대방이 자기정체성의 중심이 된다. 자신의 정체성이나 진정한 의미의 독립성을 개발하지 못한다.


: 이 구절들을 읽으면서 아팠다. 연애 관계 속에서 내가 보였기때문이다. 첫 번째 연애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 모든 것을 내가 아닌 그를 기준으로 결정하였고, 그의 무언가를 위해 나의 무언가를 희생하였다. 학교 다닐 때 내 과제는 못했도 그의 과제를 대신해줄 정도였으니. 정말 상대방이 자기정체성이 되어 버렸었다. 연애가 끝나고 너무나 허무했다. 3년이라는 연애기간 동안 내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두 번째 연애를 할 때 애를 썼다. 하지만 애를 쓰고자 하는 의지와 행위는 항상 비례하지 않는다. 두 번째 연애를 생각해보면 내가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둔 채 상대가 나에게 맞추기를 끊임없이 강요했다. 상대는 내가 원하는 바에 부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는데, 나는 대답만 할 뿐 노력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나에게 융합되기만을 바란 것이다. 모순이다. 상대에겐 끊임없이 요구하고 강요하지만, 나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지 못하고, 상대에게 의존한다. 보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이런 존재에 대해 책에서는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있었다.




1) 나의 의사, 내가 선호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밝힌다.

No라고 말하고 싶을 때, Yes라고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쳐 두고 남들의 계획, 선택, 원하는 것을 했던 때를 기억해보자. 이때 나의 느낌은 어떠했는가? 불만은 없었나? 왜 포기를 했나?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 제주도 사건을 기억해야한다. 나는 당시 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나는 분명 계획이 있었다. 셋째날 나는 올레 10코스를 걷는 것이 계획이었다. 하지만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언니의 제안에 뜬금없이 12코스를 걸었고 나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걷는 내내 후회했다. 왜 나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는 그 언니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 앞으로 알고 지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잠깐 보고 말 사람인데 그들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각인해야 한다. 선택의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 나는 내 삶을 사는 사람이다.


: 연애할 때도 나는 그랬다. 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종로에서 전 애인이 종로에서 일할 때 였다. 주로 종로에서 만났다. 일이 끝나고 내가 종로로 갔다.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았다면 약속 장소가 종로가 아닌 다른 곳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몰랐다. 그래서 종로로 갔다. 종로로 가면서 불만을 가졌다. 종로가 싫지 않았지만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대안은 없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거기에서 오는 불만은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왜곡되었다. 그래서 상대를 공격했다. 그것은 나도 상대도 스트레스가 되었다.


: 고민 중 하나가 '나의 관계들은 왜 피상적일 수 밖에 없는가?'이다. 내가 원하는 바, 내가 욕망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관계 또한 피상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정의를 내리다보면 내가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인지, 내가 어떤 사람들과 궁합이 잘 맞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보면 관계에 있어서도 깊이가 생길 것이다.


2)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그렇기때문에 내가 먼저 말하자! "나는 가치가 있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겸손함을 알아보고 자신에게 와줄 것을 희망한다. 그러나 기회는 나를 스쳐가고 사람들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흥미롭게 하는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번주에 할 일은 무엇인가? 올해에 할 일은 무엇인가?




▷ 나는 이상하게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 세계를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다른 곳을 이상화한다. 이것은 민우회 활동을 나의 일상과 끊임없이 분리하려고 하는 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는 민우회 활동에 집중하지만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주말에는 활동의 셔터를 내리려고 한다. 책에서는 이런 경향성에 대해 9번 유형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게으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 깊이 영향받고 싶어하지 않는 영적인 게으름이다. 영적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이것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틈틈이 쓴 시들이 모여 100편이 되면 시집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영화를 토대로 우리의 오늘을 해석하는 글을 쓰고 싶다.


▷ 영적 게으름의 연장선에서 스스로나 다른 사람, 혹은 세상과 관계를 맺는데 에너지를 투여하지 않는다. 우선은 다른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나와의 관계에 있어 에너지를 쏟아보자. 


▷ 자의식의 상실과 무감각함 : 자신이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산만하고 부산하지만 그 행위들은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중요한 문제를 처리하는 일은 미루고 있다.


: 컴퓨터를 하는 나를 보면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다. 트위터와 타인들의 블로그 방문 등등 그 안에서 나는 무언가를 생산하기 보다는 시간을 소비하고만 있을 뿐이다.


▷ 내면의 은신처로 들어가기 : 내면의 은신처 안에 머물지 않고 진짜 세상에 더 다가까이 다가갈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 관계 속에서 상대를 이상화하기 : 상대를 이상화하는 9번은 강하고 공격적인 사람에게 끌린다. 아무래도 나는 8번 유형의 사람들을 이상화하고, 3번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3번 유형의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그 유형을 열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열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질투도 결합되어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대를 이상화할 때 그 사람의 어떤 자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이런 자질이 당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본질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래 내가 이상화하는 사람들의 기질을 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3번 유형의 사람이 내 활동의 가이드가 될 수 있도록 해보자. 3번 유형의 그녀와 같이 활동하면서 그녀의 장점들을 옆에서 많이 보고 배우자. 그녀가 나의 진정한 가이드 일 수 있다. 그녀는 나의 긍정적인 자질들을 더 많이 찾아 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녀를 통해 나는 나의 내면을 자극할 수 있다. 


▷ 공식에 의해 살기, 삶의 철학에 의해 살기 : 9번 유형의 사람들은 공식, 삶의 철학에 갇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공식과 삶의 철학(명언)은 노력을 요구하지 않고, 수동적 삶의 태도를 합리화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한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삶의 철학은 '진심으로 살자.'였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명제만 있을 뿐, 이것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제대로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눈에 집중하는 것만이 '진심'의 전부가 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떻게가 중요하다.


▷ 우유부단함이 있기때문에 삶에 완전히 뛰어들기 위해서는 다른 유형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아침잠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직면해야 하는 일을 가급적 최대한 늦게 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타인이 이런 상황에 대해 한마디하면, 움직일 것을 강요하면 강한 반감을 가진다. 타인이 떠미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누군가가 개입하고 한마디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면 '알아서' 상황을 직면하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것을 미루려고 한다. 자의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아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을 싫어하니 대책없는 캐릭터다. 아이구야. ㅠ


▷ 9번 유형의 사람들은 숨겨져 있는 많은 분노를 가지고 있다. 9번이 자신 안의 분노를 제대로 인식하면 내면의 나태함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중요한 말 인 것 같은데 내 안의 분노를 어떻게 봐야할지, 내 안의 분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 나의 에너지를 스스로가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 보고, 분노의 느낌을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나의 에너지를 억압했던 방법을 생각해보면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타인이 좋아하면 난 그것을 쉽게 놓아버렸다. 그것은 먹는 것에서부터, 사람, 꿈 등 대부분이 그러했다. 내 생의 중요한 것들을 타인이 똑같이 좋아하면 악을 쓰고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포기했다. 난 왜 그리도 쉽게 '포기'했을까? 갈등이 싫었고, 경쟁의 구도가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아이스크림을 동생들과 같이 먹어도 많이 먹기 위해 빨리 먹어야 하는 것이 피로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여로모로 신경쓰는 것이 흥미 없었다. 그래서 갈등과 경쟁의 구도가 내게 오면 나는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보다는 '포기'를 택했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자연스레 바뀌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의 선택지에서 배제된,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중 하나가 '계란'과 '치즈' 에피소드가 있다. 내 동생들은 '계란'과 '치즈'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계란'과 '치즈'를 먹지 않았다. 싫어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 한동안은 거의 이십대 중반까지 나는 이것들을 잘 먹지 않았다. 쫄면에 들어간 계란을, 떡볶이에 들어간 삶은 달걀을 난 대부분 양보했었다. 나는 내가 이것들을 싫어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들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계란'과 '치즈'는 상당히 맛있다. 요즘에는 '계란'과 '치즈'를 잘 먹는다. 

포기하면서 잃게된 것 중 하나가 그림이다. 똑같이 그림을 좋아했던 동생과 나. 동생이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그림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a를 좋아했기에 a를 좋아하면서도 억지로 좋아하는 마음을 접은 적도 있다. 되돌아보니 참 바보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잃지않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들어야 한다. 


▷ 9번이 6번으로 향해가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오랫동안 감춰놓은 불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감정의 분출은 일시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가져오지만 그 혜택이 오래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9번은 자신의 불행의 뿌리를 보려하지 않는다. 이들이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려고 하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반항적이게 된다. 9번이 화를 분출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그를 알고 있던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한다. 


: 지난 연애가 계속 떠오른다. 미안한 감정이 올라온다. 미안하다. 건강하지 못한 나의 상태를, 나의 근본적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상대에게 그 불안의 감정을 다 토로해버렸으니.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관계가 끝났다. 앞으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한다면 나는 나의 문제를 제대로 보고 파악해야한다. 엉뚱한 방식으로 감정을 분출하지 않을 수 있도록...




▷ 건강한 3번 유형으로부터 조언을 들어라.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라.

▷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인식하는 법을 배워라.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라.

▷ 분노를 느낄 때 상대방에게 이야기해도 괜찮다. 분노가 어떻게 느껴지는가? 몸의 어떤 부분에서 강하게 느껴지는가? 분노를 하나의 감각으로 여기고 그 분노에 익숙해지면 그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 평균적인 9번은 대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좋은 면을 보지만, 건강한 9번은 자신의 내면에서도 좋은 면을 발견한다.

▷ 나는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 가급적 약속을 줄이고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자. 내 존재에 대해 에너지를 투여할 수 있도록 하자. 활동과 관련된 공부도 틈틈이 꼼꼼히 해보자. '자기개발'에 거부감을 가지지 말자. 일단은 내 존재에 대한 에너지를 쏟는 방법 중 하나로 아티스트웨이를 시작해보자. 


2013. 2. 10. 22:13


핸드폰 메모장을 정리했다.


1.

윤여정씨가 DJ를 하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잠을 청하려고 누운 깊은 밤, 창문 틈 사이로 타인의 목소리가 유령처럼 들려온다. 어느 배우의 음색과 닮았다. 어쩌면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내가 아는 그 배우이일지도 모른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몸을 뒤척이다 윤여정씨가 심야 라디오 DJ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윤여정씨가 담배 한 대 태우며, 그녀의 얼굴과 몸을 꼭 닮은 목소리로 재즈를 틀어 주면 혹 트로트를 틀어 주면 위로가 될 것 같다.

(20120906)

2. 

선암사

송광사

조계산

순천만 갈대숲

(20120906)

3.

"제주도는 아름다운 풍경만큼 슬픈섬이다. 인간적 느낌보다는 자연적 느낌, 자연의 드라마를 말하고 싶었다. 주변의 풀도. 자연도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만들면서 엄마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카메라를 낮은 위치에 두었다. 연극을 하다보니 영화 속에서 아무래도 연극적인 요소가 담겼을 것이다. 제주의 자연을 연극이 담아낼 수 없을 것같아서 영화를 택하게 되었다."


영화 <이어도>, 오멸 감독 GV 中

(20120908)

4.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포루그 파로흐자드    

(20120910)

5.

"우리가 강요에 못이겨 했던 이야기를 역사는 기억해야 한다."


<이야기해주세요> 공연장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말 中

(20120912)

6.

이름을 가진 어떤 존재를 사랑하고 싶다.

(20120927)

7.

머리로 시를 쓰고 그것을 글로 옮겨 적지 않으면 그것은 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잡념이 될 뿐.

(20121002)

8.

영화 <장군과 황새>의 실비아 솔디니 감독은 그의 영화에서 카메오로 등장했다. 이에 대해 관객이 질문을 하였다. 그는 "영화는 죽음이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이다. 필름엔 시간이 흘러가는 흔적이 담긴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 나를 두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오로 등장하였고 나는 나의 영화마다 카메오로 나온다. 영화를 통해 내가 거친 시간의 흔적을 볼 수 있다."라고 답하였다.


부산국제 영화제 <장군과 황새> GV 中

(20121006)

9. 

석파정

흥선대원군 별장

5호선 광화문역 2번, 3번 출구에서 1020번, 1711번, 7016번, 7018번 버스 탑승

(20121028)

10.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20121108)

11.

"연애는 잘해주고 챙겨주는 것이래. 그것이 사랑이랑 같이 가면 좋을텐데."


초 겨울 밤 술 한 잔 기울이며, 친구의 말 中

(20121123)

12.

겨울, 아스팔트 길바닥에 떨어져 있을 한 짝의 장갑을 생각하면 쓸쓸하다.

(20121227)

13.

내가 바깥으로 표출하는 모든 것에 영혼을 담자. 내 목소리에, 내 눈빛에, 내 손길에 영혼을 담자. 그리고 내 영혼에 영혼을 담자.

(20121228)

14.

날이 많이 풀렸다. 내복을 벗었다. 그래도 춥지 않다. 봄이 느껴져서 기뻤다. 이런 일상의 자질구레한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이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

(20130119)

15.

카프카

소송

변신

심판자

(20130120)

16.

모닝글로리 원목독서대 (natural wood)

(20130130)

17.

글 쓰는 내가 현실의 나와 동일한 인물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그 순간에 진심일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그 글이 나일 수 있기를.

(20130203)


민우회 정책위원 중 한 선생님은 명절 때마다 사무실 활동가들에게 와인을 선물로 보내주신다. 활동가 5명이 각 1병씩 총 5병의 와인을 들고 민우회 회원이 하는 카페에서 명절 전야제를 하였다. 바깥의 차가운 겨울 공기와 대조적으로 따뜻하고 환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와인 한 잔을 홀짝홀짝 마시니 크리스마스 밤을 보내는 것 같았다.

(20130208)


친구에게 단편 영화 시나리오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첫 대사에는 신선하다며 반응을 보이더니 바로 다음에 뱉은 대사부터는 진부하다며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시나리오를 다시 고민해봐야겠다. 그래도 뭔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계속 치밀어 오른다. 친구에게 짬 내어 영화를 만들자고 문자를 보냈더니 반응이 시큰둥하다. ㅠ 2010년 겨울에 만들었던 영화 <회춘>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요망단 사람들이 2011년에 만든 영화 <빨래와 떡볶이>도 다시 보았다. 자화자찬이지만 참 즐거운 영화들이다. 겨울이 가기 전에 아주 짧은 단편 영화 한편 만들고 싶다. 이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을 해보자. 반응이 시큰둥한 친구만 콜한다면 80%로는 채우고 가는 것인데. 이 친구를 어떻게 설득하나? 시나리오를 잘 써서 정식으로 제안해봐야겠다. 장비를 대여할 수 있는 곳도 확인해야 겠다. 이 영화는 배우도 중요한 영화인데. 누굴 섭외하지? 내가 그냥 확 해버려? 허허. -_-;
(20130207)

화요일 아침, 굿모닝 위민링크에서 먼지가 교육장에 음악을 크게 플레이해 두었다. 듣는 순간 나의 감성과 딱 들어 맞는 곡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제목도 내 심정과 닮았다. "how?" 누군가를 만나면 묻고 싶은 말. 좋다. 집에 오자마자 검색하고 play. 보물 하나를 오늘 발견했다. :) 홍대에서 기타하나 들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pupa라는 일본 혼성 그룹이란다. 이들도 일본 어느 도심의 작은 카페에 모여 홍대의 그들처럼 소박하게 노래 부르고 즐길듯하다.(검색해보니 작은 인디밴드는 아닌 것 같다.) 오랜만에 홍대 여름에 다녀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노을이는 엄청난 돼지가 되어 있었고, (하지만 미모는 여전한 미묘이다.) 맥주는 여전히 최고의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눈내리는 밤, 한적한 여름의 겨울 밤은 고요했다. 눈이 내리니 좋았다. 맥주 한 잔 마시며 눈 내리는 창밖 멍하니 바라보기, 이것이 바로 겨울의 묘미이다. 


(20120205)


8시 40분 조조로 영화 <베를린>을 봤다. 월요일 아침 극장은 조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산이었다. 방학을 맞이한 중학생들이 단체로 극장을 찾았다. 50명은 넘는 듯 했다. 광고 시간에 그들이 만든 소음은 극장 사운드를 다 잡아 먹을 기세였다. 그래도 영화 시작 이후부터는 엄청난 몰입도를 보였다. 류승완 감독 성공한건가? 그런데 나는 솔직히 조금 지루했다. 120분 상영시간 중 나는 정진수(한석규)가 표종성(하정우)을 풀어주면서, "먼지처럼 살라."는 류의 정진수 내레이션에 표종성이 죽을 힘을 다해 도망가는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다.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살짝 작동했다. 그러면서 하정우의 노화를 잠시 걱정했다. 건강해야해요. 정우씨!

씨네 21 주성철 기자는 영화 속 련정희(전지현) 캐릭터에 대해 '련정희는 지금껏 그의 영화에서 봤던 가장 멋진 여자다.'라고 서술하고 있었다. 련정희가 가장 멋진 여자였다면 그간의 류승범 감독 영화에서의 여자 캐릭터는 어떻게 그려졌던 것이지? 의문이 들었다. 그간에 선보인 캐릭터와 다른 연기를 행한 배우 전지현에 대한 신선함은 있었으나, 련정희라는 캐릭터는 '그저' 영화 안에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쉬운 캐릭터였다. 총을 들고 있어도 왜 쏘질 못하니. 단 한 방 쐈다. 그것도 제대로 상대를 응시하지도 못하고 손을 뒤로 뻗어 어설프게. 주성철 기자의 표현을 통해 류승완 감독 영화 속 여자 캐릭터를 지레 짐작해본다. 련정희가 가장 멋진 여자라. 흠. 

그래도 외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허리우드형(?) 첩보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쉬리>를 봤을 때의 흥분까지는 아니었다. 극장에서 <쉬리>를 보았을 때가 1998년이었고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영화를 보고 흥분감에 젖어 새벽까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오늘 극장을 찾은 중학생들은 당시의 나와 같은 느낌이었을까? 

그리고 표종성과 동명수(류승범)가 총을 들고 (하지만 사용하지 않고) 생몸으로 싸우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영화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격투신의 리얼리티'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예상과 다른 장면 연출이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웨인파와 베인파가 생몸으로 싸우는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생몸으로 싸우기가 요즘의 트렌드인가. 관객은 이런 장면에서 무엇을 느낄까?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피식 웃음이 삐져 나온다.

(20130204)



2013. 2. 2. 22:40
* <작은책> 2013년 2월호 활동가 일기 꼭지에 원고를 하나 썼다. 이제 정말 동네방네 다 소문을 내서 이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한다. 나는 이제 더이상 양치기 소년이 될 수 없다. 

3월엔 나도 싱그럽게 독립할거야


이소희․바람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민우회 활동가로 살아온 시간이 7년째 되어 가고 노동팀 활동가로 활동한 지도 4년째 되어 간다. 시간은 흘렀고 지금 나는 이곳에 있다. 매일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또 잘 흘러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안에 ‘독립’의 씨앗을 심어 준 민우회에, 내가 만난 ‘여성주의’에 새삼스레 고맙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밥과 국이 있다. 마실 물이 딱 한 컵 남아있어도 다시 주전자에는 뜨끈한 보리차가 어느새 끓여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고 나설 옷이 옷장에 잘 개여 있고, 특별한 가사노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깔끔하게 유지된다. 치약이 떨어져도, 화장실 휴지를 다 써도, 화장실에는 새 치약과 휴지가 나도 모르게 놓여 있다. 100만원이라는 빠듯한 월급을 받고 있지만 저축도 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잠시 갈등하지만 먹고 싶은 것을 사먹고, 가끔 영화를 보러 극장에도 간다. 자잘한 소비를 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고, 하고 싶은 것들을 소소하게 누리며 산다. 이러한 평안과 안녕이 가능한 이유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가사노동에, 아버지의 경제력에 기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안과 안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독립하고 싶어!”라는 말을 주문처럼 하고 다녔다. 방 한 칸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보증금이 모이니 작년에는 “내년에는 독립할거야!”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는 최대한 빌붙을 수 있을 때까지 빌붙는 것이 득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잘 생각했다며 나의 말에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이처럼 ‘독립’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하루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데 나는 왜 굳이 독립하려는 걸까? 부모님 집에서 거주하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안락함을 왜 포기하려고 하는가? 


얼마 전 주거공간을 직거래하는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은평구에 있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 하는 집들을 주로 보았다. 지상의 집들은 5평에서 6평 정도의 사이즈였고, 부엌시설은 열악했고, 취향을 알 수 없는 벽지에, 30분 이상 있으면 답답증을 유발하는 원룸이 대부분이었다. 부엌과 방이 분리된 공간이 있는 곳은 지하(반지하) 또는 공중(옥탑)의 집들뿐이었다. 


‘아, 내가 주거할 수 있는 공간의 현실은 이러하구나. 집 나가면 앞으로 치약이며, 휴지며, 샴푸며, 먹을거리며 모두 내 가계부에서 지출되겠구나. 매달 월세가 일정하게 30만원씩 나가고, 전기세․수도세․가스비 등 기본적인 세금 등이 꼬박꼬박 10만원씩 지출되겠지? 그리고 별도의 생활비를 치러야 한다. 저축은 가능할까? 계속해서 지하 또는 공중의 집에서 살아야겠지?’ 순간 갑갑함과 구질구질함이 서럽게 밀려왔다. 그래도 마음 한편엔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꾸역꾸역 비집고 올라왔다. 서른이 넘으니 부모와 자식은 분리되어야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명확해진다. 책상과 책장, 침대와 옷장이 있는 부모님 집의 내 방은 편안하지만 불안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울고 싶어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몰래 울어야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나를 끝없이 아래로 끌어당겨도 함께 살고 있는 이들과의 예의를 위해 웃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부모님 또한 결혼하지 않는 딸이 걱정되고, 답답해 화병에 이를 지경에 까지 왔다. 서로의 정서적 평화를 위해서 이제는 분리가 필요한 것이다. 엄마에게 독립 이야기를 꺼냈더니 엄마는 엄청난 분노를 표했다.


“나이 서른 넘어 집 나가서 우짤라카노? 집에 조용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 이 집에서 나갈끼면 결혼해서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뭐가 부족해서 나갈라카노! 나갈끼면 니 몸뚱이만 갖고 나가라! 아무것도 갖고 나가지 마라!” 엄마는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얼굴이 붉어졌고 겨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틈틈이 욕설을 뱉으며 강하게 나의 독립을 반대했다. 엄마는 집이 서울에 있는데, 그렇다고 직장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남자도 아닌 여자애가, 나이도 적지 않은 딸이 집을 나간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괘심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집을 나가버리면 평생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게 될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분노와 불안으로 뒤범벅이 된 엄마에게 이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속으로 읊조린다. ‘엄마, 나도 불안해. 그런데 결혼한다고 해서 모든 불안감이 사라지진 않을 거야. 너무 걱정 마. 어떻게든 살아질 거야.’  


집을 나가려고 하니 모든 것이 장벽이다. 나의 경제적 여건도, 성별도, 나이도, 지위도, 부모와의 갈등 등 쉬운 것이 하나 없다. 하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면 할수록 나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열망은 더욱 강해진다. 나의 취향과 냄새가 깃든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다. 내 생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또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부모에게 빚지며 살아온 삶, 이제 '자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하고 싶다. 쌀 한 가마니에 얼마하고, 애호박 한 개, 대파 한 단은 얼마인지 생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의 가격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거래들은 어떻게 성립되는지 알고 싶다. 빚지지 않고 유지되는 삶은 없다고 어느 소설가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빚을 지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빚지며 이뤄진 생의 섭리를 늘 각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월급 100만원으로 '물리적인' 의미에서 빚지지 않고 내 생계를 꾸려보고 싶다. 그것이 가능한지도 궁금하다. 일종의 실험을 감행하고 싶다. 그리고 홀로인 존재로서 겪게 되는 고독과 맛봐야하는 쓸쓸함의 시간을 온 몸으로 통과하고 싶다. 이러한 것들을 언제까지 비껴나갈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이제, 정면으로 뚫고 가야하는 때가 온 것이다. 어떻게든 '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터득하고 싶고, 끊임없이 겪게 되는 고독과 외로움에도 익숙해지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방탕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마구 자유롭고 싶다.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산나물 반찬 하나, 구운 김, 간장 한 종지, 뭉텅뭉텅 두부가 그득한 된장찌개, 김치 한 보시기 내어 놓고 소중한 사람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이러한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올해 다분히 애써야겠다. 말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을 행해야겠다. 그리고 나에게 당부를 한다. ‘소희야, 가슴 속에 낭만을 품 때, 환상에 빠지진 말자. 현실은 환상과 대비되는 무엇이기에 그 현실을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여할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자.’ 봄이 시작되는 3월, ‘독립’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쭈글스럽고 소박하게, 한편으론 싱그럽게 나와 함께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3. 1. 28. 14:19

이 넓은 세상 천지에 당신의 마음의 소원을 총족시켜 줄만한 처녀가 한 사람도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결단코 한번 찾아 보셔요. 틀림없이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당신이 요즈음 스스로 그러한 옹졸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고 벌서부터 당신을 위해서나 우리들을 위해서 걱정을 하고 있답니다.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한 번 해보셔요! 여행을 하면 기분전환이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럴겁니다! 구해보셔요.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자를 발견하여 돌아오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다함께 참다운 우정의 큰 환희를 맛보도록 해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中

(20130127)


세 번의 고백. 얼굴 보고 고백했지만 부채감으로 존재하는 고백. 
(20130126)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과연 옳은 방식일까. "오늘은 뭘했고, 또 뭘했고, 다시 뭘했고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혹은 나빴다."라는 식의 기록은 개학 직전에 쓴 밀린 일기를 닮았다. 매일 기록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작업이지만 어떻게 기록하는가도 중요한 것이다. 요 근래 나의 기록에 대해 '어떻게 기록한 글인가?'라고 물었을 때, '마치 물기가 없는 시들어 가는 화분같아요.'라고 답하면 적절할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무기력의 우물 속에 갇혀버릴 것 같아 일단 쓴다. 

사람은 아주 작은 순간에 외로움을 느낀다. 오늘 그 작은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외로웠다. 그 작은 순간을 여기에 기록하기엔 뭔가 쪼잔스러워 그만둔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걸까? 타인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가끔 타인이 나를 어려워(?)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관계가 피상적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오늘은 그 이유가 타인에게 있기보다는 내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런 이야기를 얼마 전 지인과도 한 번 나눴다. 그때 지인은 화살을 내게 먼저 돌리기보다는, 내곁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맞아, 그래왔었어.'라고 끄덕인다. 하지만 여전히도 화살은 내게로 온다. 오늘의 외로웠던 작은 순간도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 달리 생각해본다. '아니야.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도 있지만, 은근히 사람을 외롭게(?)하는 구석이 있어.'라고. 그래, 그것도 맞아.

여튼 오늘의 일기 결론은 2013년을 '이소희탐구생활'의 한 해로 상정해야겠다. 땅.땅.땅. (비약이 많은 일기이군. 허.)
(20130125)   

우울할 때는 일에 집중을 하면 된다. 아무생각하지 않고 총회에 틀 짧은 영상만 만들었다.
(20130124)

1.
꿈을 꿨다. 골동품가게에서 실반지 하나를 샀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낀 실반지가 예뻤다. 만족스러워 양손을 쫙 펼쳐보았다. 그런데 왼손 엄지손가락에도 반지가 하나 있었다. 오래전에 끼고 있던 은가락지였다. 은가락지는 색이 바랬고 예전의 것과는 다른 모양이었고 낡았다. 왼손 은가락지를 보며 내가 언제 이것을 끼었지? 의아해하며 양손 엄지손가락에 끼어 있는 두 개의 반지 중 하나는 빼야한다고 생각했다.

2. 그리고 또 꿈을 꿨다. 이사를 했다. 낡은 집이라 벌레가 있을 것이고, 천장에는 쥐가 드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안에서 쥐를 볼 것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않았다. 작은방에 홀로 누워 있었다. 장농 밑으로 쥐 한 마리가 지나갔다. 놀랐다. 하지만 애써 침착하려고 했다. '그래 한마리쯤이야. 바쁜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집안으로 들어왔겠지.' 그런데 한 마리가 지나가고 얼마되지 않아 그 뒤로 수십, 수백마리의 쥐가 열을 지어 잽싸게 앞서 간 쥐의 행보를 따르고 있었다. 난 그저 놀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 꼼작도 못하고 그 행렬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20130123) 

블로그도 트위터도 재미없다. 무기력의 시간이 찾아왔다. 빨강머리 앤의 아침의 매력론도 이 시기에는 먹히지않는다. 요근래 출근길, 퇴근길 혼자 있는 시간에 반복해서 하게 되는 질문은 "왜 사는걸까?"이다. 살아가는 이유, 존재의 이유를 묻지만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왜 사는 거지..." 고리타분한 프레임에 억지로 내 삶을 가둬 살고 싶진않다. 그 프레임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와 지지를 얻고 싶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프레임에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다. 고리타분한 프레임에 벗어나 산다는 것은 불안을 동반하기때문이다. 그 불안은 나뿐만아니라 내 부모도 느낀다. 이부장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일종의 중매전화였다. 이부장님은 나를 불러 **년생의 **캐피탈에 다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키 1**cm의 남자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을 잡아둘테니 무조건 시간을 비우고 만나보라고 한다. 따분하다. 존재에 대한 소개가 참으로 매력없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염려마시라며 말하고 단호히 거절했다. 이부장님의 답답한 마음은 알겠지만 이런식으로 불숙-들어오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강렬한 짜증과 저항감이 퍽-하고 올라온다. 우울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흐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말았다. 여튼 요즘의 나는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20130123)

내 몸은 참으로 신통하다. 내몸은 몸을 보살펴야한다는 메시지를 작은 고통으로 호소한다. 열흘정도 명치부분이 답답하고 바늘로 콕콕 찌르는듯한 통증과 뭔가를 먹으면 아프다는 느낌이 지속되었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병원에 다녀왔다. 의사선생님은 위염 증상같다고 하였고 3일분의 약을 지어주었다. 그는 내가 설사나 구토를 동반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극단의 무서운 생각은 하지말라며 마음의 안정을 먼저 전했다. 그는 약을 먹으며 추이를 살피다가 내시경을 하더라도 그 이후에 해보자고 했다. 몸은, 몸의 정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내게 틈틈이 전한다. 커피탓일까? 매일 커피를 마신 것이 위에 무리를 준 것은 아닐까 의심해본다. 일단은 커피와 술, 자극적인 음식은 한동안 안녕. 
(20130122)



단추를 달았다. 헐거웠던, 떨어져있던 7개의 단추를 달았다. 헐거웠던 단추의 실을 가위로 싹둑 자르고 바늘에 실을 꿰어 야무지게 단추를 달고, 단추가 없던 자리에 얼추 비슷한 모양의 단추를 찾아 단단하게 단추를 달았다. 단추를 달고 나니 달아난 마음이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괜시리 생겼다. 단추를 달고 나니 하지못했던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운 것 같아 개운했다. 내일은 새롭게 단추 재정비를 한 아이보리색 코트를 입고 나서야 겠다. :) 그런데 단추 7개를 다는데 대략 2시간이 걸렸다. -_-; 역시 난 손이 느리다.


오늘은 비가 내려 좋았지만 그래서 살짝 슬펐다. 

(2013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