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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5. 01:19



집에 가는 길에 그냥 혼자 좋아서 배시시 웃으며 밤길을 걸었다. 생각하면 기분좋은 사람들. 2013년 한 해 이들과 함께 힘 조절 잘 하면서 지치지 않고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


2012. 6. 4. 23:24

 

[바람이의 '바람'식단-3]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운영되는 희망식당 ‘하루’가 상도동 1호점에 이어 상수동 2호점을 5월에 오픈하였다. 나은의 제안으로 점심시간 사무실 동무들과 함께 상수동 희망식당 ‘하루’에 다녀왔다. 희망식당 2호점을 다녀온 사람들이 트윗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서 익숙한 풍경에 ‘여기가 내가 아는 그곳이 맞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공간은 분명 내가 아는 그곳이 맞는데 이름이 다르다. 그땐 분명 ‘한식당 달고나’였는데 지금은 ‘모던한식당 춘삼월’이라고 한다. 꺄우뚱하면서 직접 와보니 내가 알던 그곳이 맞았고, 식당의 이름이 바뀌었다. 공간의 이름이 바뀌어 있으니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간은 끊임없이 재의미화 되는 것이라고 슴슴하니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_-;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정오가 조금 넘어 도착한 6월의 첫 번째 월요일 희망식당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30여분 정도 기다려야한다는 말에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식당 안에는 익숙한 얼굴의 인열씨가 앉아있다. 하이얀 들꽃을 닮은 인열씨를 만나니 괜히 기분이 좋다. 대기표를 받고 여름바람이 살랑이는 벤치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린다. 30여분 넘게 기다렸다가 식당 테이블에 앉는다. 오늘 희망식당 ‘하루’는 근처에 있는 ‘오요리’와 함께 상을 차리고 있었다. ‘오요리’는 이주여성과 청년으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매주 월요일 쉬는 ‘오요리’의 사람들이 희망식당 ‘하루’에 모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요리’가 함께 상을 차리는 날이기에 오늘의 메뉴는 이름도 낯선 나시고랭, 냉짬뽕, 마파두부덮밥이었다. 낯선 이름의 요리 나시고랭을 주문하고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 먹을 것을 기다린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한참을 또 기다렸지만 그 기다림이 즐거웠다. 함께 간 동무는 마파두부덮밥을 주문했다. 마파두부덮밥의 두부는 두부장사하는 꽃맘언니가 후원한 두부라고 생각하니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학교 다닐 때 함께 활동했던 씩씩한 꽃맘언니가 두부장사와 연을 맺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언니의 삶을 전해 듣는다. 보들보들 꼬소한 두부 맛에 언니의 꽃 마음이 느껴진다.

 

  

 

 

 

@희망식당 '하루' 입장을 기다리면서, 희망식당 안에서 찰칵 with 눈사람이랑 용가리랑 나은이랑♡

 

 

밥을 맛있게 먹고 식당을 나오면서 춘삼월의 주인장이 궁금해졌다. 춘삼월의 주인장은 어떤 사람이기에 식당운영을 하루 접고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것일까? 춘삼월이라는 ‘공간’이 있기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주방에서 요리를 할 수 있고, 그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여 상을 차리고, 멀리 제주도․강원도 등지에서 제철 식재료를 후원하고, 오천원에 푸짐한 한 끼 식사를 한 사람들은 밥심에 하루를 다시 다짐하고…‘공간’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수많은 상상력과 다양한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공간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아무것도 없는 빈 곳, 空間이라고 나온다. ‘공간’을 통해 사람은 성장하고,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창조성을 깨우고,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그렇게 ‘공간’엔 의미가 담긴다. 무언가를 채워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공간은, 空間인가 보다. 이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절로 만들어 가는 ‘공간’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참말 훌륭한 일인 것이다. 희망식당 ‘하루’가 열리는 ‘춘삼월’처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마구 박수를 쳐주고 싶다. ‘공간’을 공유하는 이를 떠오르니 생각나는 한 사람이 또 있다. 가평의 펭. 자신의 ‘공간’을 게스트하우스 ‘꾸다’로 운영하는 펭은 홀로 여행하는 여성들이 마음 편히 머물고 갈 수 있는,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잠시 ‘쉼’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고 있다. 펭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꾸다’ 또한 의미를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의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함께 채워가고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쾌적하게 잠 자라고 면시트를 기증하는 이들이 있고, 함께 읽고 나누자고 책과 만화책을 보내는 이들도 있고, 쓰지 않는 자전거를 기꺼이 선물하는 이들도 있다. 의미를 만들고, 사람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 ‘꾸다’에서 머물었던 5월의 하루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침대 머리맡 스탠드를 켜고 일기를 썼던 그 순간,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마냥 행복했었다.

 

 

 

 

 

@게스트 하우스 '꾸다'에서 머물면서_'꾸다'의 거실 풍경과 스탠드가 있는 2층 침대. 2층 침대의 스탠드는 센스 작렬!

 

 

우리 사무실 동무 중 한 동무는 자신이 집을 비우면 다른 동무에게 기꺼이 집을 내어준다. 그 모습이 처음엔 낯설고 신기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훌륭하다. 연애를 하던 시절 ‘공간’이 필요했다. 돈을 주고 몇 시간 머물다 가는 담배냄새가 배인 ‘공간’ 보다는 그곳에 사는 이의 취향이 깃든, 집 냄새가 나는 안정적인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었다. 공간을 찾아 헤매던 그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공간’이 불안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공간을 내어 주는 나의 동무가 참말 멋진 것이다. 여하튼 나는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무한한 경배를 보낸다.

 

 

그리고 나의 ‘공간’을 갖고 싶다. 나의 취향과 냄새가 깃든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다. ‘공간’에 대한 작은 상상 하나를 한다. 내게 작은 ‘공간’이 허락된다면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 식당 제목은 ‘내 멋대로 식당’, 제철 식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초간단 한 그릇을 내어 놓는 ‘공간’. ‘내 멋대로 식당’의 주식재료는 양배추, 버섯, 두부, 파프리카, 오이, 굴소스 등. 기본 식재료를 통해 작은 변주를 만들어 내는 ‘내 멋대로 식당’은 주인장이 먹고 싶은 것이 주 메뉴가 될 것이고, 하루 최대 일곱 그릇까지만 내 놓을 것이다. 나중에 독립하면 ‘내 멋대로 식당’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내 멋대로 식당’은 일주일에 한 번 손님이 있을 때 오픈하고 ‘내 멋대로 식당’의 밥값은 샴푸, 비누, 휴지와 같은 생필품과 맥주정도가 될 듯하다.

 

 

 

 

+ '내 멋대로 식당'에서 주로 내 놓을 법한 음식들 버섯굴소스 덮밥과 두부를 곁들인 양배추 샐러드

 

바람(민우회 활동가)

아마 이번 일상다반사가 마지막 연재인 걸로 알고 있다. 재미있었던 글쓰기였다. 촘 아쉽구마잉!

2012. 5. 21. 00:24

 

 

 

[바람이의 '바람'식단-2]

 

 

연애가 끝났다. 2주가 지났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주중에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벅적거림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다. ‘아, 나의 연애가 끝났다.’라는 것을 출퇴근길 홀로 있을 때 잠시 실감한다. 2주 동안 틈틈이 술 마시는 자리를 빠지지 않고 찾아다녔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나의 신상을 보고 했다. “나 헤어졌어.”라는 말을 시작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화들짝 놀라는 이들도 있고, 라디오 뉴스를 듣는 듯 무덤덤한 이들도 있다. 반응이야 어떠한들 이별이라는 것을 직면하고 있는 내게 사람들은 마음을 전한다. 내 곁에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마도 그녀들이 내 곁에 없다면…생각만 해도 서걱거린다.

 

여하튼 주중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주말엔 거의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 혼자뿐이다. 주말엔 산으로 들로 외출하는 엄마, 아빠. 주말강의를 나가는 동생1, 주말 학원에 다니는 동생2.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면 연애가 끝났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일요일 아침, 동물농장을 보다가 방치되어 뼈만 앙상히 남은 개들을 보고 울었다. 개들이 안스러워 울다가 나중에는 ‘내가 왜 울고 있나?’ 생각하며 텔레비전 속 개들과 상관없이 울었다. 동물농장을 다 보고 흐트러져 있는 집을 둘러본다. 나의 임여사는 어릴 때부터 ‘본인 부재중엔 집을 깔끔히 치워 놓아야 한다.’라는 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훈계와 짜증, 성질로 우리를 단련시켜왔다. 거기에 습관이 밴 우리는 임여사 귀가 전에 집을 반드시 치워 놓는다. 평온한 나의 시간을 위하여. 그 습관이 오늘도 발동한다. 소파 위 쿠션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마른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밀고,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분리수거 물품을 다시 한 번 분리하고…분리수거를 하다가 또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 오전 시간을 그렇게 가사노동을 하면서 보냈다. 몸을 움직이고 틈틈이 눈물을 흘리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일단은 깔끔하게 씻고 뭔가를 먹고 싶어서 샤워를 했다. 개운하다. 

 

‘뭘 먹으면 좋을까?’ 혼자 있으면 뭔가를 챙겨먹는다는 것이 상당히 귀찮아진다. 대충 있는 찬에 식은 밥을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게 된다. 오늘도 라면의 나쁜 맛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 부엌 싱크대에 떡하니 라면 3봉지가 놓여 있다. ‘저것을 그냥 끓여 먹을까?’ 생각하다 홀로 라면을 끓여 먹다 청승을 떨듯하여 라면 먹기는 포기한다. 꼬깜의 글을 보면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잘 챙겨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행위인지를 알았다. 나를 위해 시간을 들여 재료를 다듬고, 끓이고, 볶고, 음식이 다 되기까지 기다리는 그녀의 행위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음식을 한다는 것은 오바스럽게 표현하면 감동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래, 나를 위해 나도 뭔가를 만들어 먹어보자. 나를 위해 조리과정에 정성을 쏟고, 예쁘게 담아 먹자.”

 

 

 

 

그래서 연애가 끝난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일요일엔 조용한 임여사의 부엌에 들어가 열무국수를 만들었다. 다시마, 멸치, 북어, 양파를 넣고 국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면을 삶았고, 계란도 하나 삶았다.(계란삶기는 어렵다. 다 된줄 알고 탁 깼는데 노른자가 주르륵. 바로 후루룩 마셔버렸다.ㅠ) 다시 국물의 거품을 걷어내고, 면은 차가운 물에 행구고 채에 담아 물기를 뺀다. 차갑게 식힌 다시국물 네 국자에 열무김치 국물 두 국자를 섞어 열무국수 국물을 완성하고, 그릇에 국수를 놓고 국물을 붓고, 아삭한 열무김치를 올려놓으니 시원한 점심 한 끼가 된다.

 

 

 

 

두 번째 맞이하는 일요일 오늘, 임여사의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냉장고를 뒤적거리면서 무언가가 채워져 있는 임여사의 냉장고가 새삼스레 고마웠다. 오늘 점심은 브런치(?) 스타일로! 동생1이 쪄 놓은 단호박이 있다. 단호박에 치즈를 올려서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팽이버섯을 볶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계란후라이는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굽고 계란이 익는 동안 토마토를 깨끗이 씻어 자른다. 너른 접시에 음식들을 가지런히 담는다. 만족스러운 모양새다.

 

“잘 먹겠습니다.”

 

한 숟가락 뜨는 순간 항상 텔레비전에서는 <옥탑방 왕세자>를 한다. 유천이를 보며 내가 만든 무언가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고 삼키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래 이렇게 시간이 간다. 이렇게 나를 위해 매주 무언가를 하나씩 만들어 먹다보면 지금보다는 분명 나아질 것이다. 좋은 사람이었던 그 사람은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좋은 사람인 나도 역시 더 나은 사람을 만나 연애라는 것을 다시 할 것이다. 그런데 밥을 먹다, ‘언젠가 나는 또 관계의 종료를 반복해야겠지.’라고 생각하니 깝깝해진다. “에이 몰라! 너무 갔다! 일단 밥이나 먹자!”

 

바람(민우회 활동가)

 

+ 관계가 종료되었다는 것, 서로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혼자 밥을 먹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힘이 든다. 한동안의 기억이 내 안에 아직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슬프다.

2012. 5. 13. 11:06

[바람이의 '바람' 식단]


*4월 30일 민우트러블에 실은 글을 가져다 이곳에 다시 담다. 

 

 

결정적 계기는 없었다. 어느 날 문득 ‘고기를 안 먹고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다짐이 딱 일 년 전 요맘때 봄이었다. 당시 고기를 한 번 먹지 말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도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당시의 일기장을 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몸이 고기를 힘들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양상추를 과자처럼 아삭아삭 싶어 먹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고기를 안 먹으면 주거의 독립은 불가능하더라도 식단의 독립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당시 마음을 먹고 실천한 것이 고기 없는 월요일, 되돌아보면 고기 없는 월요일은 잘 지켜 온 것 같다.

 

하지만 틈틈이 고기가 땡기는 날에는 치킨에 맥주를 먹었고, 김밥에 들어 있는 햄은 고기가 아니다 생각하고 먹었고, 카레에 들어 있는 고기는 골라내기 어렵다며 그냥 먹었고, 고기 국물은 고기 건더기가 없으니 먹어도 된다 하고 틈틈이 고기를 섭취하였다. 그러니 일 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은 단순히 큰 고기 덩어리를 씹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도 처음엔 내 먹을 거리를 일요일에 장 봐다가 직접 다듬고 손질해서 식단의 독립을 꽤하려고 했지만 턱없이 비싼 야채 가격에, (한 번은 샐러리를 사려고 슈퍼에 갔는데 샐러리 한 다발에 6,000원 정도 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놨다 망설이다가 결국 2개에 1,400원 하는 오이를 샀다.) 항상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귀차니즘에, 슈퍼에서 파는 연두부랑 한 번 구입하면 통째로 채칼로 썰어 놓은 양배추를 챙겨오는 것이 다였다.

 

원칙도 없고, 애씀도 없는 고기 안 먹기 캠페인 올해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고기의 맛만큼이나 들에 나는 초록 것들의 맛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봄 미나리의 아삭함과 향긋한 향, 단호박의 달달하고 담백한 맛, 양상추의 싱그러움, 상추/배추의 친근한 맛, 양파의 은근히 단 맛, 눈을 호사롭게 하는 파프리카, 달달 볶아 먹으면 맛있는 애호박 등. 줄줄이 그 맛을 생각하면 즐겁지 않은 것이 없다.

 

봄이면 초록의 맛들이 더욱 풍요로워 지는 것 같다. 봄이 오면 영애씨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초록의 들판을 가르키며 “소희야 저게저게 온천지 다 먹을 거데이!”“라고 말한다. 어제는 영애씨가 가평에 있는 친구 집에 다녀왔다. 늦은 밤 집에 들어와 내려놓은 박스 안에는 쑥, 돌미나리, 돈나물, 쪽파, 취나물, 달래, 방아, 두릅이 담겨 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묻자, 가평 산 천지를 돌아 댕기면서 햇빛을 등에 얹고 직접 캐온 나물들이라고 한다. 두릅은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을 생각하니 입안에 초록의 기운이 쏴아 하고 퍼지고, 돈나물은 아삭아삭 씹는 맛이 재미지고, 달래는 된장찌개에 넣어 자글자글 끓여 먹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먹거리를 지천 어디에서든지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리고 산천 무수한 초록의 것들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영애씨의 지혜가 부러웠다. 모처럼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 아침, 영애씨가 마루에 신문을 깔고 친구의 텃밭에서 뽑아 온 쪽파를 다듬는다. 그리고 영애씨가 말한다 “소희야 이거 혼자 따듬을란께 머리에서 쥐가 날라칸다. 이거 언제 다 따듬노.” 귀찮았다. 모른 척 하고 싶었다. 헌데 영애씨 머리에 쥐가 난다니 마주 앉아서 흙이 묻어 있는 쪽파를 다듬는다.(사진 속 쪽파의 양은 일부분일 뿐 프레임 밖 쪽파들은 엄청났다.ㅠ)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랜만의 대화다. 이야기의 주제는 열 개 중 여섯 개가 결혼을 요구하는 압박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나머지 네 개의 이야기는 봄날의 쪽파를 다듬었던 순간을 곱게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었다. 삼십대의 딸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의 삼십대는 어땠어?” 영애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애씨와 함께 다듬은 쪽파는 한 가득 파김치가 되어 상위에 놓여 있다. 맛이 아주 좋다.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지고 가서 동무들이랑 맛나게 먹을 생각하니 또 좋다. 에헤라디야! 봄이구나! 에헤라디야! 풀떼기가 좋구나!
 
 바람(민우회 활동가)

2012. 4. 20. 23:50

 

 

 

 

점심시간에 사무실 동무들이랑 상수동 당인리 발전소 꽃놀이를 갔다. 당인리 벚나무 아래에 돗자리 펴고 앉아 김밥이랑 떡볶이랑 튀김이랑 순대랑 오뎅 먹으며 봄꽃이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가길 잘 했다. 지난 밤 과음으로 잠시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꽃이랑 사람들이랑 함께 있던 시간을 사진 속에 박아두고 꺼내보니 좋다. 사진을 만든이는 참 놀라운 이다. 시간을 이렇게 담아두는 방법을 찾아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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