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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95건
2015. 6. 24. 01:25


어제 오늘 몸이 힘들다. 회복되는 듯했는데 지난밤 바깥에 오래있었던 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감기가 올 것 같은 기분이다.

어제는 소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듯하지만 무심한 면이 있다는 선배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납득(?)하고 싶지 않아 그 말에 골똘하게 된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라는 근본적 질문과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까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너무 깊게는 가지말자.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관계의 역동을 읽고 개입이 필요할 때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
= 단순히 감정만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상태로 가지않기 위해 개입하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감각을 어떻게 장착하고 작동할 수 있을 것인지 훈련이 필요하다. 조직생활의 다음단계가 왔다.

(20150623)

민우회 회원 소모임 <그림일기 2기> 활동이 시작되었다. 물건 정밀묘사하기 시간. 난 어떤 사물을 보고 그렸을 때 나오는 내 그림체가 좋다. 그런데 인물을 그릴 때에는 이 그림체가 좀처럼 마음에 들지않는다.

(20150622)
2015. 6. 21. 21:24

사무실 근처에 작은 커피집 문을 열었다. 커피집 이름은 <그렇게 커피가 되어간다>이다. 커피집 작은 입간판에는 "커피됩니다. 다른 음료는 곧 되어가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쓰여있었다. 과정을 두고 커피집이 되어가겠다는 그 마음이 좋았다. 관계도 그렇다. 단박에 가까워지거나, 인연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 중에 있다. 서오릉과 모처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그렇게 **이 되어간다.

04_가족행각<비범한가족 : 엉망진창시스터즈>

엉망진창 시스터즈 중창단
주라 성인식 날엔 빨간장미
시타 생일엔 상다리 부러지는 잔치상
빔프로젝트 빌려서 밤새 영화데이
여성단체 MT에 빌붙어 가족휴가

다같이 유언장쓰기
제야의 종소치는 순간 함께 있기
동생이 언니에게 새배하기
서로에게 칭찬과 덕담세례

우리의 마음에 비해 더 큰 노력들
약간은 오바스러운 이벤트

우리에게 당연한 건 없어
하루하루 소중히 쌓아 나갈뿐

+ 앨범에 있는 글이 좋아 담아왔다. 인터뷰 글을 누군가가 노래 가사처럼 정리를 했다. 인연은 노력을 통해서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배운다.

(20150621)
2015. 6. 20. 13:43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비가 내려서 좋다.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비가 계속 내리면 좋겠다. 오늘은 영화도 부쩍 보고 싶고, 안듣는 음악도 많이 듣고 싶은 날이다. 서점에 가서 만화책도 사고, 보고싶은 그 책도 업어오고 싶다. (블로그가 있으니 혼자 떠들며 놀기 좋다.ㅎ)
2015. 6. 17. 23:36

5시 30분 강의를 마치자마자 바로 집으로 향했다. 너구리라면을 끓이고 납작만두를 구워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잠시 인터넷 뉴스를 봤다. JYP의 새로운 걸그룹을 뽑기 위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mnet에서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16명의 연습생이 대거 출연하여 개인 미션도 하고, 팀 미션을 하면서 시청자 투표와 평가를 통해서 최종 멤버를 뽑는 시스템이다. 그간 이러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떼(?)로 연습생이 출연한적은 없었던 것같다. 16명의 연습생 중에서 7명만이 최종 멤버가 된다. 16명을 대거 출연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들은 참 쉽게 소비되고, 박진영은 이 프로그램에 연습생들을 출연시키며 맡은 바 소임을 다 했다는 자화자찬을 하면서 편하게 돈 벌구나 싶었다. 탈락한 연습생들이 선택받지 못한 이유를 결국 스스로에게 돌릴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별로였다. 그러면서 박진영이 더더욱 싫어졌다. 그러다가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를 밀고, 걸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겨울옷을 집어넣고 여름옷을 옷장에 풀었다. 오랜만에 집안일 여러가지를 해내니 기분이 홀가분했다. 특히 걸레질을 해서 발걸음이 보송보송해졌다. (그나저나 오늘 강의는 별로였다. 까먹기전에 강의 평가서를작성해야 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강의를 하고 다니는지 듣고싶다.)

 

(20150617) 

2015. 6. 13. 11:32

3-4년전에 방문했던 한의원을 며칠전에 다녀왔다. 맥을 짚고 선생님이 말하기를 몸에 열이 가득 차 있는 상태라고 했다. 보통 몸에 열이 차면 자동적으로 몸의 기관들이 열을 식히기 위해 활동을 한다고 한다. 그 기관이 바로 폐와 방광. 하지만 지금 내 폐와 방광은 그 기능을 거의 하고 있지 않는다고 한다. 말라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몸의 불이 꺼지지 않고, 열이 계속 차 있다보니 심장에 무리가 가는 상태라고 한다.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왜 폐와 방광이 그 기능을 하지않는가? 의사들이 항상하는 말은 스트레스다. 다른 말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때문에 몸이 아프다."는 말은 좀 듣기 싫다. 여튼 한약을 지었다. 그때처럼 약이 똥이 되지않기 위해서 먹지말라는 것을 먹지 않으며, 술을 허하지 않으며 몸을 살피려고 한다. 이번에는 약과 한의원 방문을 병행하려고 한다. 오늘 한의원 가야하는데...결국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다짐해놓은 그 날은 꼭가리라. 병원 방문 시에는 상태를 기록해두려고 한다. 지난번에도 기록해두었더니 몸 상태를 알겠다. 지금 몸상태는 그때와 같은 상태다. 그래서 이제는 제대로 살펴야한다. 그렇지않으면 몸이 더 망가진다.

 

+ 지금 가장 좋지 않은 곳 : 폐, 방광, 심장

+ 참고로 좋지 않은 곳 : 위와 간

 

(20150613)

 

2015. 5. 20. 21:59



인생을 망치지는 말자. 그렇게 수없이 되뇌어 본다. 딱 그런 심정이 드는 날이었지만 그러지 말자고 다독여 본다. 그래서 찾아온 곳. 3개월 이상 로그인하지 않아 계정은 휴면계정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을 잃었던 사람이 단어를 더듬어 가며 다시 말을 시작한다는 심정이 든다. 인생을 망치지는 말자.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을 뿐, 망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인생을 망치지는 말자.


(20150520)

2014. 12. 18. 22:07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금새 청개구리 심보가 올라온다. 글을 쓰기가 싫어졌다.

(20141218)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개인 블로그에만 게시하는 웹자보. 나는 개인적으로 이 홍보물이 마음에 든다.

(20141212)

 

2014. 8. 26. 00:27

1. 자전거 라이딩 3일째 되는 날이다. 공포심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연신내에서 응암까지 찻길에 자전거 도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인도에 있는 자전거 도로가 아니라 찻길에 있는 자전거 도로는 공간이 확보되어 한결 수월하였다. 응암에서 구산까지의 자전거 도로 표식은 명확했다. 그러나 구산에서 연신내까지 자전거 도로 표식은 희미했다. 은평구청에 자전거 도로 표식에 대한 정비를 건의해야겠다. 동네에서 이것저것 하다보니 동네에 할 말이 많아진다. 


2. 자료를 읽고 용가리와 토론을 했다. 주고 받는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토론회 발제문 윤곽이 잡혔다. 다른 의견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 재밌었다. '그래, 이렇게 활동해야지.'  


3. 저녁을 먹으면서 재정사업 총괄 회의를 했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고맙다. 그런데 오늘은 쓸쓸함의 색깔이 더 짙었다. 다들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리를 파하고 일어섰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괜히 폴, 용가리, 모구가 생각났다. 

(20140828) 


어제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다. 아직 바른 자세를 찾지못해서 손목이 아프고, 불쑥불쑥 진입하는 사람들이 힘들고, 자동차가 무섭지만 무사히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라이딩 내내 느끼는 공포심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열심히 타야겠다 싶었다. 불광천을 달리는 동안 행복했다. 바람을 가르는 기분이 좋았다. 불광천변에 자라난 갈대숲에서 풀냄새가 나고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자전거를 타고 퇴근했다. 밤에 달려보니 낮보다 밤이 더 위험했다. 반드시 전조등과 후미등을 달고 야간라이딩을 해야하고, 교통신호는 꼭 지켜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20140827)


이번주에 지난주를 돌아본다. 지난주는 참 많이 바빴다.  월요일에 강의가 있었다. 화요일에 오후 내내 백화점 모니터링을 했다. 수요일에 광주에 다녀왔다. 목요일에 상반기 평가회의를 하고, 새벽 2시까지 팀회식을 했다. 금요일에 야근을 했다. 토요일에 오전 8시까지 태릉입구에서 자전거를 받아(자출족이 되어보려고, 중고사이트에서 중고 자전거 한 대를 장만했다.) 연신내에 파킹하고, 옷을 갈아입고 경기도 의왕시 선배 결혼식에 참석했다. 긴긴 성당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장에 가서 생맥주 한잔을 마시고, 홍대에서 언니네 10주년 기념 공연을 관람했다.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밤산책을 조금하고 집에 돌아오니 10시가 넘었다. 그때부터 폭풍잠을 잤다. 일요일,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잤다. 점심을 먹고 잤다. 저녁을 먹고 잤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종일 자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번주이다. 혜화에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이는 맛있는 커피집을 소개했다. 커피맛을 아는 그녀는 아무곳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카페사흘>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혜화동 국민생활관 앞에 있는 한옥의 작은 커피집 <림스커피>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직접 내려준 아이스 커피는 맛있었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정리가 된 이의 인터뷰는 재미있고, 나눌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홀짝홀짝 커피를 마셨지만 다 마시고 후회가 밀려왔다. 소화가 되지 않았다. 속이 더부룩 했다. 카페인으로 인해 잠이 들지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늘 확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커피 체질이 아니다. 좋은 커피를 마실 때 이러한 현상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난 카누미니 스타일인가보다. 


+ 그리고 저녁 6시 이후 커피는 금지다. 


+ 그리고 시즌이 왔다. 여러분, 올해도 민우회는 재정마련을 위한 후원행사를 한답니다. 올해는 7년만에 후원주점을 한답니다. 여러분 티켓 사세요, 티켓 사세요! 티켓 사주세요!


(20140825)

2014. 8. 16. 22:48

요즘 낙이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전파사 새끼 고양이들을 아침저녁으로 알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집근처 전파사 고양이 파사가 7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세상에 태어난지 1달 반 조금 지났다. 방문할 때 마다 주로 취침 중이지만 이녀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 녀석들이 눈앞에 삼삼거린다. 

(20140819)  



 

성폭력상담원양성교육을 다녀왔다. 오늘의 강의가 아마도 올해 성폭력상담원교육 마무리 강의인 것 같다. 2014년 8곳의 단체에서 강의를 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과거에 비해 축적된 경험이 조금씩 베어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번의 큰 고난을 겪었다. 스스로가 미웠고, 부끄러웠다. 그것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 그리고 오늘 강의 분위기에 따라 진행의 기복이 있는 나를 확인하였다. 2014년 마무리 강의를 마치며 강의안 업데이트 작업과 그동안 활용했던 사례의 정돈과 강의 PPT의 재정비(디자인과 스토리 구성과 순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작업을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강의를 나가는 민우회 활동가들과 함께 하고 싶다. 어떻게 자리를 마련하면 좋을지 논의해봐야겠다.


+ 강의하는 내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내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피드백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 내것이 된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경험을 씹고 소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여잡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0140818)


잠자기 전 일기를 쓰고, 아침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썼다. 잠들기 전, 깨어난 후 무언가를 썼다는 것에 깊은 충만함이 느껴졌다. 짧더라도 매일 기록하는 내가 될 수 있기를. 

(20140817)  



집에는 식탁이 없었다. 부엌에 있는 간이 식탁은 식재료를 쌓아두거나 출근 시간이 다른 가족들이 잠시 정차해서 간단히 밥을 먹는 곳이었다. 밥때만 상을 펴서 밥을 먹었다. 그렇게 '밥상' 생활을 하다가 엄마는 큰 마음을 먹고 식탁을 장만했다. 집도 좁은데 굳이 식탁을 둬야할까 싶었다. 하지만 식탁을 들이던 날 다른 장면이 연출되었다. 식탁을 두니 머물공간이 생긴 것이다. 각자의 공간에 따로이 있던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앉았다. 밥때가 아닌데도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식탁이라는 가구가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독립을 하고 방에 간이 테이블을 두었다. 간이 테이블에서 간혹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 잔을 기울기는 했지만 그 공간이 일상의 공간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두번째 집으로 옮기면서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4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을 장만하기로 하였다. 직접 조립하고, 옥상에서 니스칠도 하였다. (거의 모든 과정을 하우스메이트가 하긴 하였다.) 넉넉한 크기의 4인용 식탁에서 아침밥을 먹고, 일기를 쓰고, 생활비 정산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그림도 그린다. 그리고 오늘 오랜동안 못보았던 친구들과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두런두런 둘러앉아 동네에서 재미있게 놀 궁리를 하였다. 경계없는 상상력에 내내 즐거웠다. 상을 차리고,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니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20140816)

2014. 6. 6. 22:56
<함께 가는 여성> 원고 준비를 하며 여러 글을 찾고 읽다가...
(20140607)

누구로 기억할 것인가, 누구와 기억할 것인가

시타 ●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1.
엄마가 오래 아프시다. “하나님, 나 20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라는 그의 기도는 늘어난 평균수명에 비추어 욕심이랄 수 없건만, 어려운 질병이 그의 몸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구체적인 증상으로 목격할 때면 인간의 삶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러나 엄마는 어느 저녁 심상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이르신다. “나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설거지 연습도 좀 하고, 그 좋아하는 옥수수 삶는 법도 익혀둬야지.” ‘나 죽은 다음’ 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저 마음은 어떤 것일까 헤아리다 보면, 나는 어쩔 줄 모르다가 이내 다른 생각을 해버린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끝까지 잘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실까. 무엇이 그를 고독하지 않게 해 주고 있을까.

2.
고정희 시인이 4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성운동가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삼십대가 된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내가 활동하고 있던 단체였던 언니네트워크가 2005년 제3회 ‘고정희 상(賞)’을 수상하면서다. 고정희 상? 고정희가 누구길래 ‘고정희 상’까지 있지? 했던 나는, 그가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이었고, <여성해방 출사표>(동광출판사, 1990)라는 시집을 비롯한 많은 시집을 발표했으며, <여성신문>의 초대 주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제서야, 이십 대에 어떤 페미니스트 선배에게 들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고정희 시인이 지리산 등반 중 실족하여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민족주의 시인으로서 추모하려는 남자 문인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문화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스트들이 그를 ‘페미니스트 시인’으로 불러내고 기억하기 위해 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별다른 감흥 없이 곧 잊었던 그 일화가 몇 년 만에 다시 떠오르면서, 나는 내가 변했음을 알았다. 무수한 시인들 중 한 명이었던 고정희 시인이, 갑자기 특별한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고정희를 특별한 시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3.
그리고 그 해, 2005년, 여성학과 동료들과 소식을 나누는 온라인 까페에서 “안드레아 드워킨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을 읽게 되었다. 안드레아 드워킨은 그 전까지 나에게 책이나 논문에서 등장하는 이름이었을 뿐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역시 너무나 생경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1946년 생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가디언> 지에 실린 어느 페미니스트의 기고글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비방당한” 페미니스트.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라는 유명한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화된) 문구 외에는 드워킨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 드워킨의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58세의 죽음이 ‘너무 이르다’고 느끼는 나이가 된 나는,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생각했다. 한국에서 그 삶의 고단함에 대해 상상하는 삼십 대의 페미니스트가 있다는 것을, 드워킨의 영혼은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4.
2009년. 최명숙 선생님의 장례 소식을 들었다. ‘여성장’이라고 했다. 몇 벌 없던 검은 색 옷을 찾아 입고 추도식에 갔던 기억이 난다. 무슨무슨 단체 장, 무슨무슨 대표들이 그를 ‘명숙이’나 ‘명숙 언니’라고 부르며 추도사를 했다. 이십 대 후반에 몇 번 함께 회의를 했던 기억밖에 없었던 나는, 바람결에 그의 직함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나가는 지인에게 그의 투병 소식을 들었고, 온라인에서 그의 추도식 소식을 들었다. 그 시간들 동안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프게 느껴졌다. 나는 또, 추도식에 가서야 그가 20년간 민우회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부터 나는, 단체에서 오래 일한 활동가들은 그가 누구이건 일단 존경받을 만 하다는 입장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그를 기억하는 페미니스트들이 9월마다 모인다는 소식을 들었다.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함께 기억하는 동안, 최명숙 선생님의 삶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겠지. 내가 그를 기억하는 만큼 그가 나에게 스며드는 것처럼. 나는 그를 ‘선배’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5.
‘선배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이십 대가 생각난다. 20대 중반, 페미니스트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에게는 욕할 선배들 뿐이었고, 나는 몇 년에 걸쳐 대상을 바꿔가며 많은 선배들을 비판했다. 나는 그들이 나의 선배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싶어 했고, 그것이 내가 했던 많은 비판들 뒤에 숨겨진 감정의 핵심이었다. 민족민주운동과 ‘따로 또 같이’를 선포했지만 여전히 감정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선배들을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하다고 욕했고, 반성폭력 운동보다 호주제 폐지에 매진하는 선배들을 결혼제도 안에 있는 ‘아줌마’들이라고 폄하했다. 그 때의 비판들이 다 무효하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그들의 삶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었다. 내가 물려받은 것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하지만 ‘선배가 없다’는 그 때의 고아심(孤兒心)은 한편으로 내가 선배를 찾거나 기억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노트북 모니터에 띄워 놓은 ‘여성주의 계보’라는 문구를 보며, 선배를 욕할 수 있다는 것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선배를 욕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인 이유는 물론, 일단 선배가 있어야 욕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배를 욕하면서, 선배를 넘어서려 애쓰면서, 은연중에 그의 후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선배를 욕하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는 사람들과 동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여성학자 정희진은 화가 이중섭이 나혜석과 비슷한 말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의 죽음은 나혜석처럼 ‘시대를 앞서간 자의 당연한 말로’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의 치열한 예술혼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대해 질문하면서, “나는 나혜석의 삶이 행복했다고 본다”고 썼다. 가부장제가 기록한 나혜석의 죽음에 나혜석의 삶을 되돌려준 정희진의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나의 어떤 불안이 구원받았다고 느꼈다. 여성주의 계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어 기억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적 존재로서의 한 여성을 ‘누구로’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여성을 ‘누구와 함께’ 기억할 것인가 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기억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여럿일 때, 그것은 이야기가 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그 기억과 현재의 자신을 연관시킬 때, 그것은 계보가 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면서 공동으로 다른 미래를 열고자 할 때, 그것은 역사가 된다. 우주의 먼지처럼 짧고 유한한 삶들이 얽히고 이어져 이루는 어떤 ‘의미’ ― 바로 여성주의의 역사 말이다.




컴백홈!

(20140606)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왔다. 계단에는 망가진 전자 피아노가 새워져 있다. 옥상에는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화분 몇개와 장독대, 빨래걸이가 있다. 이사를 하다가 장독이 깨졌나보다. 뻘건 고추장을 토하며 속을 벌린 장독이 연립주택 입구에 널부러져 있다. 그 위로 쓰레기가 쌓인다. 낡은 옷장과 책장이 버려져 있다.


 옆집 대문에 붙여져 있는 치킨집, 마트 광고지를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의 고요함이 싫었다. 사람이 드는구나. 빈집에 온기가 채워지겠구나.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하다. 곳곳에 쌓여있는 짐들을 보며 짜증이 올랐다. '왜 짐들을 공동의 공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쌓아두는 것인가.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해두는가?' 결혼하지 않은 서른 넘은 여자가 살고, 노인이 홀로 살고, 이북사투리를 쓰는 중년부부가 사는 연립주택에 또 가난한 사람이 들었다. 널부러져 있는 짐과 쓰레기들이 "가난하기때문에 품위는 몰라도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 신경질이 난다.

(20140606)





아이들이 자란다. 작고 연약하지만 온 힘을 다하더니 결국 딱 하나씩의 열매를 맺었다. 다시 한번 또 온 에너지를 열매를 향해 끌어 옮긴다. 열매가 점점 또 자란다.

(2014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