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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2. 22:40
* <작은책> 2013년 2월호 활동가 일기 꼭지에 원고를 하나 썼다. 이제 정말 동네방네 다 소문을 내서 이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한다. 나는 이제 더이상 양치기 소년이 될 수 없다. 

3월엔 나도 싱그럽게 독립할거야


이소희․바람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민우회 활동가로 살아온 시간이 7년째 되어 가고 노동팀 활동가로 활동한 지도 4년째 되어 간다. 시간은 흘렀고 지금 나는 이곳에 있다. 매일 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또 잘 흘러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안에 ‘독립’의 씨앗을 심어 준 민우회에, 내가 만난 ‘여성주의’에 새삼스레 고맙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밥과 국이 있다. 마실 물이 딱 한 컵 남아있어도 다시 주전자에는 뜨끈한 보리차가 어느새 끓여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고 나설 옷이 옷장에 잘 개여 있고, 특별한 가사노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깔끔하게 유지된다. 치약이 떨어져도, 화장실 휴지를 다 써도, 화장실에는 새 치약과 휴지가 나도 모르게 놓여 있다. 100만원이라는 빠듯한 월급을 받고 있지만 저축도 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잠시 갈등하지만 먹고 싶은 것을 사먹고, 가끔 영화를 보러 극장에도 간다. 자잘한 소비를 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고, 하고 싶은 것들을 소소하게 누리며 산다. 이러한 평안과 안녕이 가능한 이유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가사노동에, 아버지의 경제력에 기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안과 안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독립하고 싶어!”라는 말을 주문처럼 하고 다녔다. 방 한 칸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보증금이 모이니 작년에는 “내년에는 독립할거야!”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는 최대한 빌붙을 수 있을 때까지 빌붙는 것이 득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잘 생각했다며 나의 말에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이처럼 ‘독립’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하루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데 나는 왜 굳이 독립하려는 걸까? 부모님 집에서 거주하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안락함을 왜 포기하려고 하는가? 


얼마 전 주거공간을 직거래하는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은평구에 있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 하는 집들을 주로 보았다. 지상의 집들은 5평에서 6평 정도의 사이즈였고, 부엌시설은 열악했고, 취향을 알 수 없는 벽지에, 30분 이상 있으면 답답증을 유발하는 원룸이 대부분이었다. 부엌과 방이 분리된 공간이 있는 곳은 지하(반지하) 또는 공중(옥탑)의 집들뿐이었다. 


‘아, 내가 주거할 수 있는 공간의 현실은 이러하구나. 집 나가면 앞으로 치약이며, 휴지며, 샴푸며, 먹을거리며 모두 내 가계부에서 지출되겠구나. 매달 월세가 일정하게 30만원씩 나가고, 전기세․수도세․가스비 등 기본적인 세금 등이 꼬박꼬박 10만원씩 지출되겠지? 그리고 별도의 생활비를 치러야 한다. 저축은 가능할까? 계속해서 지하 또는 공중의 집에서 살아야겠지?’ 순간 갑갑함과 구질구질함이 서럽게 밀려왔다. 그래도 마음 한편엔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꾸역꾸역 비집고 올라왔다. 서른이 넘으니 부모와 자식은 분리되어야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명확해진다. 책상과 책장, 침대와 옷장이 있는 부모님 집의 내 방은 편안하지만 불안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울고 싶어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몰래 울어야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나를 끝없이 아래로 끌어당겨도 함께 살고 있는 이들과의 예의를 위해 웃어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부모님 또한 결혼하지 않는 딸이 걱정되고, 답답해 화병에 이를 지경에 까지 왔다. 서로의 정서적 평화를 위해서 이제는 분리가 필요한 것이다. 엄마에게 독립 이야기를 꺼냈더니 엄마는 엄청난 분노를 표했다.


“나이 서른 넘어 집 나가서 우짤라카노? 집에 조용히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 이 집에서 나갈끼면 결혼해서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뭐가 부족해서 나갈라카노! 나갈끼면 니 몸뚱이만 갖고 나가라! 아무것도 갖고 나가지 마라!” 엄마는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얼굴이 붉어졌고 겨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틈틈이 욕설을 뱉으며 강하게 나의 독립을 반대했다. 엄마는 집이 서울에 있는데, 그렇다고 직장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남자도 아닌 여자애가, 나이도 적지 않은 딸이 집을 나간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괘심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집을 나가버리면 평생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게 될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분노와 불안으로 뒤범벅이 된 엄마에게 이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속으로 읊조린다. ‘엄마, 나도 불안해. 그런데 결혼한다고 해서 모든 불안감이 사라지진 않을 거야. 너무 걱정 마. 어떻게든 살아질 거야.’  


집을 나가려고 하니 모든 것이 장벽이다. 나의 경제적 여건도, 성별도, 나이도, 지위도, 부모와의 갈등 등 쉬운 것이 하나 없다. 하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확인하면 할수록 나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열망은 더욱 강해진다. 나의 취향과 냄새가 깃든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다. 내 생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또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부모에게 빚지며 살아온 삶, 이제 '자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하고 싶다. 쌀 한 가마니에 얼마하고, 애호박 한 개, 대파 한 단은 얼마인지 생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의 가격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거래들은 어떻게 성립되는지 알고 싶다. 빚지지 않고 유지되는 삶은 없다고 어느 소설가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빚을 지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빚지며 이뤄진 생의 섭리를 늘 각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월급 100만원으로 '물리적인' 의미에서 빚지지 않고 내 생계를 꾸려보고 싶다. 그것이 가능한지도 궁금하다. 일종의 실험을 감행하고 싶다. 그리고 홀로인 존재로서 겪게 되는 고독과 맛봐야하는 쓸쓸함의 시간을 온 몸으로 통과하고 싶다. 이러한 것들을 언제까지 비껴나갈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이제, 정면으로 뚫고 가야하는 때가 온 것이다. 어떻게든 '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터득하고 싶고, 끊임없이 겪게 되는 고독과 외로움에도 익숙해지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방탕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마구 자유롭고 싶다.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산나물 반찬 하나, 구운 김, 간장 한 종지, 뭉텅뭉텅 두부가 그득한 된장찌개, 김치 한 보시기 내어 놓고 소중한 사람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이러한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올해 다분히 애써야겠다. 말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을 행해야겠다. 그리고 나에게 당부를 한다. ‘소희야, 가슴 속에 낭만을 품 때, 환상에 빠지진 말자. 현실은 환상과 대비되는 무엇이기에 그 현실을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여할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자.’ 봄이 시작되는 3월, ‘독립’이라는 새로운 시작이 쭈글스럽고 소박하게, 한편으론 싱그럽게 나와 함께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