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슬러 호머 <여름밤>
이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가끔은 미술관에서 그림 안에 조용히 머물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헌데 보고싶은 그림을 조용히 볼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한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月
머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어제는 체기가 있었는데 오늘은 머리가 아프다. 토요일부터 지끈거리더니 왼쪽 편두통이 심해졌다. 빨리 취침모드로 들어가야 겠다. 퇴근길에 이렇게 가다가는 꼰대가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며칠 전에도 문득 찾아왔었다. '말'로만 모든 상황을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움직이지 않고 '말'로만 구성된 나를 발견했을 때, '아차' 싶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한순간 쉽게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예민해져야할 것같다. '말'로만 모든 것을 하는 꼰대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동일한 사람이고 싶고, '말'보다 항상 '행'이 먼저인 사람이고 싶다. 어제는 동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연애를 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딱 어제까지!" 고생했으니 수고했다고 스담스담해주는 이가 있으면 좋으련만. 결정적으로 점잖빼지않고 어딘가에 마구 칭얼거리고 싶었다. 그럴때는 가끔 동생들한테 막 까불어대곤 한다. 그럼 동생들은 참으로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받아주는 동생들이 있어 다행이다. 나도 까불면 '한까불이' 하는데. 이 까불이 본능을 마구 펼치고 싶은데 못 펼치면 근질근질해진다. ㅎ
+ 지난주에는 영화를 한 편도 못봤다. 이번주는 영화 열심히 봐야지. 글도 바지런히 써야지. :)
(20130114)
日
동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힘들었던 작업을 깔끔하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친구를 불러 편안한 옷차림으로 동네술집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딱1명 동네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참 바쁘다. 1년에 3번 이상 보면 많이 보는 것이다. 오랜만에 전화를 했는데 역시 받지 않았다. 동네에 자주 머무는 동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동네 친구 있는 사람들이 가끔 그렇게 부럽더라.
(20130113)
[후기] 보령화력 성추행사건 해결을 위한 기자회견
http://www.womenlink.or.kr/nxprg/board.php?ao=view&bbs_id=main_news&doc_num=1437
(20130110)
火
총회 직전인 민우회는 회의가 많다. 오전에 회의 한 건을 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또 회의 한 건을 하고 나니 퇴근 시간이되었다. 그러다보니 낮 시간에 하지 못한 일을 늦은밤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구성되는 일과 중 단 30분이라도 숨통을 틀 수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 시간이 일기쓰는 시간인 것 같다.
아침에 폴이 출근하자마자 책장 정리를 하다 발견했다며 CD 한 장을 건넸다. 여성트리오 '소풍가는 날'의 첫 번째 앨범인 <꽃 피는 나무의 여행>이었다. 내가 폴에게 좋은 노래라고 한 번 들어보라며 전했던 CD였다. 폴이 전한 CD 자켓을 보면서 문득 옛 추억이 떠올랐다. '소풍가는 날'을 처음 알게된 때는 시간을 거슬러 2004년 또는 2005년의 여성의 날이었다. 여성의 날 문화제 때 '소풍가는 날'이 학교에 찾아와 공연을 했었다. 운동권 노래패에서 노래하던 그녀들이 모여 '여성'트리오를 구성하고 직접 곡을 쓰고 노래한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다부지고, 부드럽고, 따뜻한 그녀들의 분위기가 좋았다. 목소리도 그렇고. '소풍가는 날'을 내가 그리 좋아하니 그때 내가 좋아했던 언니가 그녀들의 첫 번째 CD가 나왔다며 선물을 주었다. 그 후 한참 지난 뒤 폴에게서 다시 그 CD를 건네받았을 때 지난 시간들이 예고없이 와락 안겨왔다. 정문 앞 학생식당 옆 초록의 나무그늘과 3월 교정의 싱그러움과 운정관 지하 강당을 가득 매웠던 사람들과 노랑과 빨강 초록 파랑의 조명과 그 조명을 은은히 덮던 희뿌연 연기와 휑하지만 열기가 가득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소풍가는 날'의 그녀들과 그 노래결에 흥얼이던 동무들. 참 아름다웠던 시간들, 모든 것이 뜨거웠던 시간들이 떠올라 눈가에 물이 올랐다. 집에 돌아와 '소풍가는 날'의 <꽃피는 나무 여행>, <계절과 계절 사이>, <이런 생각>을 반복해서 들었다. 얼마전 '소풍가는 날'의 신현정씨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트윗을 통해 그 소식이 전해졌다. 오랜만에 그녀들을 만났는데, 이제 여성'트리오' '소풍가는 날'을 무대에서 만날 수 없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어디선가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은 이들이 그렇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나의 지난 시간에게, 그때의 그녀들에게 조용히 안부를 묻는 밤이다.
(20130108)
月
2013년 새해 첫번째 굿모닝위민링크는 여성건강팀에서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사무실 뒷산 성미산에 올라가 서로의 새해다짐을 나누는 것이었다. 새해에 처음 맞는 월요일 아침 초코과자와 보온병에 유자차, 둥굴레차, 커피 등 종류별로 뜨거운 차를 담고 산에 올랐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좁은 사무실이 아닌 트인 공간에서 사람들을 보니 모두가 즐거웠다. 날이 풀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않았다면 두고두고 원성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ㅋ 벤치에 스무명이 상근활동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자의 새해 계획을 이야기했다. 기억나는 누군가들의 다짐을 잠시 언급해보면, 좋은 일 생길 때 마다 저금통에 500원 넣기, 맥주 500cc 두 잔 이상 마시지 않기, 임보라 목사님이 새로 터 잡은 교회 열심히 다니기, 텔레비전 보는 시간 줄이기, 일어날 시간에 일어나기, 잠잘 시간에 자기, 여가 시간엔 최대한 여가를 즐기기, 계획없이 살기, 충동적으로 쇼핑하지 않기, 꾸준히 운동하기, 아침에 일어나 영어공부하기, 일기쓰기, 효도하기, 주말에 밥 잘 챙겨먹기, 일가정 양립 포기하기, 등근육 만들기 포기하기 등 그 사람의 성향과 특징에 걸맞는 새해 계획들이 나왔다. 계획이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을 닮아서 재미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월요일 아침의 일상을 맞이하였다. 이것이 제대로 잘 지켜질지는 잘 모르지만 소박한 다짐의 공유는 서로의 삶에 작은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이렇게 2013년의 첫번째 월요일을 시작하는 이들이 나는 참 좋았다. :) 오랜만에 성미산에 올랐다. 동네 작은 뒷산이지만 성미산은 자연이었다. 그렇게 자연을 찾으니 발은 시려워도 아침이 가득해졌다. 그 후 일정이 빡세서 곤란했지만 오전풍경은 귀여운 하루였다.
(20130107)
이다님의 그림 : NEW YEAR
그녀의 말에 적극 공감이 간다.
사람은 "자, 그래. 새롭게 시작하자!"라고 다시 힘을 낼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른 날과 같은 날들이지만 그래도 새롭게, 다시 한번 자신의 결심을 세우고 희망을 품어보는 그런 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가 간다. 예전엔 이해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그래서 기록해보는 새해 다짐.
1. 마음 아픈 짓은 하지 않는다.
2. 육고기를 씹지 않는다.
: 연말동안 몸의 기운이 너무 없어서 식탁 위에 오르는 육고기를 씹어 먹었다. 다시 에너지를 비축했으니 풀의 향연으로 돌아가야 겠다. 역시 육고기를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 그리고 먹지 않는 이유를 마음 속에 명확하게 각인해야 겠다.
3. 나를 위해 먹고 살 행위를 직접한다.
: 도시락 반찬을 전날 챙기고 자야겠다. 엄마에게 도시락을 싸달라고 이야기하기도 민망하다.
4. 미리 준비하는 삶을 살자.
- 출근 시간보다 사무실에 미리 도착한다.
: 9시 30분에 딱 맞춰 사무실에 들어서거나 9시 35분-40분에 사무실에 주로 도착한다. 그러다보니 하루가 시작부터 너무 급하다. 출근 시간보다 20분 정도 미리 사무실에 도착해서 차도 마시고, 신문도 보며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다짐3과 다짐4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집에는 밤 10시 전에 도착해야 할 것이다.
- 회의, 만남, 무엇이든 미리 준비를 하자.
5. 하루를 잘 갈무리하자. 오늘 하루는 어떠했는지 짧은 일기를 쓰자. 메모,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자.
6. 철학책을 읽고, 시집을 차근차근히 읽자.
7. 2주 유급휴가를 사용할 것이고, 2013년에 발생하는 연차유급휴가를 전부 사용할 것이다.
8. 마지막으로 2013년 3월에는 '독립' 할 것이다.
[여성계 시국선언기자회견]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절규를 외면하지 말라!
2013년을 맞이한 한국사회는 잇따른 노동자들의 비보에 슬픔에 빠져있다. 먹고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살고자 노력했던 노동자들의 죽음이기에 더욱 절망스럽다. 죽어간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그리고 철탑과 굴다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살고자 했다.
그러나 가진 자들은 노동자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158억이라는 거액의 손배가압류에 폭력을 당해야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쌍용자동차 노동자, 유성기업 노동자 모두가 살고자 철탑과 굴다리 위로 올라갔다. 재능의 여성노동자도 88CC 경기보조원 여성노동자 모두 살고자 5년째 투쟁 중이다. 이 외에도 30여 곳의 사업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투쟁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강조하며 민생과 대통합을 이야기했다. 또한 대선 후보시절에 쌍차 국정조사를 통한 문제해결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죽어간 노동자들에 대해 언급조차 없다. 재벌총수들을 만나 티타임을 가지며 정리해고를 자제해 달라 요청했을 뿐이다. 한나라당 환노위 간사 김성태 의원은 노동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희망을 가지라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 시절에 불법파견 법원 강제 방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불법파견업체 폐쇄조치는 파견법 19조에 명시되어있음에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시절 현재 불법파견이 인정된 업체조차 폐쇄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불법파견의 원청 책임자인 정몽구 회장 소환조사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심지어 불법파견 청문회와 국정조사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박근혜 당선자는 후보시절 ‘사내 하도급 근로자 보호등에 관한 법률(안)’은 불법파견제도를 합법화하는 내용임에도 이 법률안을 유지하는 것을 자신의 공약으로 삼았다. 희망을 갖기엔 당선자의 지금까지 행보가 너무나 절망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여성이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고 공언했다.
여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대다수이며 그조차 시간제 일자리이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여성노동자, 노동자로 인정조차 못 받는 여성 노동자의 문제에 대한 대답은 없다. 오히려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최악의 대답만 돌아왔다. 특수고용노동자는 여성들이 대다수이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자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선 후보 시절 새누리당사 앞에 농성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우리 여성계는 여성 대통령에게 현 시국 상황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다. 박근혜 당선자는 상시적인 정리해고와 노동조합 탄압,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살고자 했지만 죽어간 노동자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하나, 박근혜 당선자는 잇따른 노동자들의 죽음에 유감을 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라!
하나, 박근혜 당선자는 정리해고와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라!
하나, 박근혜 당선자는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국정조사를 당장 실시하라!
하나, 박근혜 당선자는 손배가압류 철회와 노조탄압 해결에 적극 나서라!
하나, 박근혜 당선자는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
2013.01.03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여성연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노총 여성본부,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이하 가나다 순)
★ 기자회견 후기 : http://www.womenlink.or.kr/nxprg/board.php?ao=view&bbs_id=main_news&doc_num=1436
새해를 맞이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 이제 하루 지났는데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싶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나누어 쓰고, 야근을 하고, 야근 후 동무들과 맥주 한 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틈이 없는 팍팍한 하루를 돌아보며 '이게 맞나?' 질문을 한다. 아닌 것 같은데. 아닌 것 같은데. 맥주 마시고 안주를 쳐묵쳐묵했더니 배만 부르다. 방에 앉아 있어도 춥다. 오늘은 왜이렇게 추운걸까. 내일은 더 춥다던데. 이놈의 나라는 점점 더 추워진다. 정말 이렇게 가다가는 영하 20도, 30도 막 치고 나가겠다. 정말 지구가 걱정된다. 오늘은 두 번의 말 실수를 하고 혼자 자책하고, 서로 성장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묻고 답변은 미루고, 새해에 계획했던 것 중 두 개는 하루도 안되서 무너지고. 내일 종일 있을 회의는 걱정되고. 에이씨.
그래도 민우회 새해 인사 쇼케이스를 보고 괜히 좋아한다. 쇼케이스에 담긴 시(詩) 구절이 좋고, 사진이 좋다. 감각있는 새해 인사 쇼케이스다. 그리고 동무들과 술 한 잔하며 정보 하나를 얻었다. '냉장고 200L 이상은 자동으로 성애를 제거해주는 기능이 있다.' 알찬 생활 정보를 얻은 하루이니 그냥 쳐 자야겠다. 그나저나 소녀시대 새로 나온 곡들과 뮤직비디오와 영상 등을 봐야하는데 영 땡기지 않는다. 왜 그런걸까? ㅠ 과격해지고 싶은 밤이다. 컁!
비극
최승자
죽고 싶음의 절정에서
죽지 못한다, 혹은
죽지 않는다.
드라마가 되지 않고
비극이 되지 않고
클라이막스가 되지 않는다.
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견뎌내야 할 비극이다.
시시하고 미미하고 지지하고 데데한 비극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물을 건너갈 수밖에 없다.
맞은편에서 병신 같은 죽음이 날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올 연말은 다른 때와 달리 조용하게 보내려는 것이 콘셉트이다. 일단 텔레비젼을 켜지 않을 것이고, 트위터 등 SNS도 하지 않고 내방에 조용히 틀어박혀 앉아 새해를 보내려고 한다. 새해를 맞이할 준비물은 맥주 한 병과 청양고추가 많이 들어간 매운 오뎅이다.
낮에 종로에 다녀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종로에 있었다. 2012년 마지막 날 종로는 어수선했다. 원래는 늦은 밤까지 혼자 거리도 걷고, 차도 한 잔 마시고 노닥거리려고 했으나 쓸쓸해서 더는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이부장님의 컴퓨터를 손 봐주고, 만화 책 한 권을 읽고, 맥주를 들고 방에 들어왔다. 오늘밤은 강아솔씨의 노래를 들으며 보내려고 한다.
새해에는 철학책을 읽고, 시집을 항상 가까이 하고, 일상을 꾸준히 기록하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리고 '닥치면 되겠지.'라는 나의 몸에 밴 습관을 어떻게든 좀 거슬러보려고 한다. 활동에 있어서는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쓸것이다. 2012년을 정산해보려고 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한다. 정산해서 무엇하나 싶고. 흘러가는 '흐름'에 오늘도 내일도 맡겨보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을 그저 즐기는 내가 되보려고 한다.
이 공간을 오고가는 분들도 2012년 잘 배웅하고, 새해 잘 맞이하셔요. 내년엔 얼굴도 자주 뵈어요. :) 그리고 더욱 건강하길! ㅎ
강원도 홍천 수타사에 다녀왔다. 지인이 겨울 여행을 제안했다. 올 초, 겨울에도 지인과 함께 전주에 있는 귀신사에 다녀왔다. 지인이 주로 제안하는 여행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박한 산사이다. 지인의 안목을 믿기에 이번 여행도 기쁜 마음으로 동행하였다. 내게 종종 이런 여행을 제안해주는 지인이 참 고맙다. 이 자리를 빌어 한 마디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헤헤."
수타사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십 분 가량 달려, 홍천터미널에서 다시 한 번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있는 곳이다. 겨울 산사의 매력은 인적이 드물다는 것이다. 하얗게 눈이 내린 길에는 오고가는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없다.
수타사 입구에 도착해서 꽤 큰 계곡을 끼고 뽀드득, 뽀드득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꽁꽁 언 수면 위로 하얀 눈이 쌓이고 그 눈길 위로 어떤 동물의 발자국이 보인다. 수타사 입구에서 수타사까지는 약 400m의 거리, 바로 수타사로 가지 않고 수타사는 조금 아껴두었다가 약수봉으로 오르는 산길을 먼저 들어선다. 눈이 내린 산길, 눈 아래에는 가을 낙옆이 폭신하게 쌓여있다. 낙엽 위 눈, 발걸음이 더욱 포근해진다.
야산엔 아무도 없었다. 지인과 나 그렇게 둘. 새소리가 조용히 들렸고, 경쾌하게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있다. 문득 길을 걷던 지인이 묻는다. "바람, 내가 사람으로 보여요? 사람이 아닐지도 유령일지도 몰라요." 지인의 그 농담이 재밌다. 시시한 농담에 흐흐흐 웃는다. 산 속엔 안개 냄새가, 눈 냄새가 가득하다. 나무 위에 소복히 쌓인 눈에 혀를 살짝 가져댄다. 시원하다. 눈에서 나무 맛이 난다. '아, 나무맛이란게 이런 맛이겠구나.' 싶다.
산길에 씨네21 송년호와 신년호를 엉덩이에 나란히 깔고 앉아 따끈한 차 한 잔 마시며, 맛밤도 먹고, 훈제계란도 까먹고, 귤도 하나 까먹고, 달달한 영양갱도 먹는다. 지인의 간식 고르는 솜씨가 최고다. 그리고 다시 길을 걷는다. 오랜만에 자연 안에 나를 둔다. 자연이 가지는 힘은 위대하다. 기형도 시인은 그의 시작 메모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나또한 믿는다.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수타사를 품고 있는 공작산에는 소나무가 많다. 초록의 소나무 잎마다 하얀 눈이 쌓인 것이 아니라 산을 오르고 내리는 안개때문에 하얗게 '물'이 물들어 있다. 짙은 녹색이 아닌 에메럴드 빛을 하고 있는 솔잎이 신기해 몇 번을 올려다 본다. 여전히도 산길은 고요하고, 산새 소리만 가득하고, 저멀리 마을의 소리가 유령처럼 들린다.
거북이처럼, 혹은 달팽이처럼 산길을 오르면서 지인과 모임을 하나 만들어보자고 작당을 한다. 모임 이름은 민우회 유령소모임 '느림보산악회' 산악회의 원칙은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아주 느리게 걷기때문에 길 위에 있는 들풀, 나무의 생김새 하나하나 눈에 오롯히 담을 수 있다. 또 아주 느리게 걷기때문에 끊임없이 수다를 떨며 산길을 올라도 절대 숨이 차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아주 느리게 걷기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되지 않는다. 이런 원칙을 중심으로 '느림보산악회'를 운영해보기로 한다. 지인은 '느림보산악회' 프로그래머이고, 나는 '느림보산악회' 집행위원장이다. 프로그래머는 산행 일정과 산행지를 정하고 나는 사람을 조직하기로 한다. 새해 1월에 서울 근교 산행을 시작으로 봄에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로 한다.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가 제멋대로 '느림보산악회' 멤바를 본인 동의도 구하지 않고 구성해본다. 누구는 이래서 좋고, 또 누구는 저래서 좋고 깔깔깔 재미지다.
아마 약수봉 근처에 거의 다달아서 산행을 멈춘다.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저 멀리 지인과 내가 걸었던 길을 내려다보며 겨울산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지인이 가곡 한곡을 부른다.
기약없이 떠나가신
그대를 그리며
먼 산위에 흰 구름만 말없이 바라본다
아, 돌아오라
아, 못오시나
오늘도 해는 서산에 걸려 노을만 붉게 타네
귀뚜라미 우는 밤에
언덕을 오르면
초생달도 구름 속에 얼굴을 가리운다
아, 돌아오라
아, 못오시나
이밤도 나는 그대를 찾아
어둔 길 달려 가네
(그리움 조두남 작곡, 고진숙 시)
멋진 곡에 멋진 목소리에 답가를 해야하는데 가사를 아는 노래가 없고, 노래솜씨도 영 꽝이여서 답가를 부르지 못한다. 나도 멋진 가곡 한곡 외워 언젠가 산에서 답가를 정성스레 불러봐야겠다. 노랫말이 애련하다. 노래 한곡을 끝으로 산길을 내려온다. 눈길에 미끄러지지않기 위해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산길을 걸을때마다 다짐하게 되는 것이 있다. '오만해지지말자. 자연 그 존재에 경외심을 가지자. 그 존재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다.'
무사히 길을 내려와 수타사에 방문한다.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산사에는 겨울날 오고가는 이들을 위해 나무향과 생강향이 그윽한 뜨근한 마가목차와 쫄깃하고 단 약과가 준비되어 있다. 수타사에 계시는 분들의 살뜰함에 감동받으며 감사히 차와 약과를 먹는다. 그렇게 여행이 마무리되어 간다. 산사 근처 식당에서 만두국과 감자전에 동동주 한잔을 마시고 나오니 눈이 반짝반짝 이쁘게도 내린다. 고요하게도 내린다. 빈집인듯한 집의 처마 아래에서 내리는 눈을 조용히 바라보며 버스를 기다린다. 홍천 산사 사람들의 발이 되는 시골버스는 온기를 품고 어둠이 내려앉은 시골길을 달린다. 버스에 몸을 싣고 노곤함에 꾸벅꾸벅 존다. 그렇게 2012년의 마지막 여행이 될 듯한, 강원도 홍천 수타사에 다녀왔다.
프레임 속으로 불쑥-사람이 들어오는 사진들이 나는 재미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정말 컸다.
(20121223)
12월 14일 금요일 오늘, 비가 참 '비답게' 내립니다. 참 이쁘게도 내립니다. 'Original Rain'이 있다면 오늘 비를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21214)
고래씨에 관한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떠오른 이가 에드워드 호퍼였다. 왜 에드워드 호퍼가 떠올랐던 것일까? 고래씨와 나는 블로그를 통해 가까워졌다. 처음 드라마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접하고, 블로그에 그의 그림에 대한 짧은 글을 적었다. 그때 고래씨는 “에드워드 호퍼의 팬”이라고 댓글을 남겼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여인들을 보면 고래씨가 생각난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고, 고독을 직면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여인들과 고래씨는 닮았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매력적이다. 그래서 인터뷰어가 되어 ‘외로움’을 아는 고래씨가 나의 첫 번째 인터뷰이가 되어주기를 부탁했다.
고래, 불가침의 청정구역을 만들다!
고래씨는 기타를 친다. 고래씨는 항상 책을 읽는다. 고래씨는 여행을 즐긴다. 고래씨는 자전거를 탄다. 한 때 고래씨의 작은 방에는 세 대의 자전거가 있었다. 고래씨는 서예를 배웠고, 전각을 한다. 고래씨는 사진을 찍는다. 요즘 고래씨는 MP3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독일어를 배운다. 고래씨는 취미가 많다. 고래씨의 별명은 ‘취미고래’다.
@ 고래씨 블로그
얼마전 고래씨의 새친구가 된 녀석
요즘 고래씨는 음악 듣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홍대 공연장에서)
"취미가 백만 가지에요.(웃음) 내 삶을 설명하는 핵심 유지하는 키워드이기도 한데 취미생활을 하는 순간은 자본주의적 삶과 가장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에너지를 받아 낮 동안의 자본주의 삶을 견디는 것 같아요. 취미는 단지 취미가 아니라 내 삶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원천이죠."
다양한 취미생활을 섭렵하다보면 그 취미가 정말 좋아 ‘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 법도하다. 다양한 취미 중 '업'으로 삼고 싶은 무언가가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취미가 먹고 사는 일로 전환하면, 모든 것이 자본주의로 구성된 삶 속에서 나만의 ‘청정구역’을 잃게 되는 것이기에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아싸리 분리하며 살자!’라고 단단히 마음 고쳐먹는다고 한다. 이처럼 고래씨에게 취미는 단순히 흉내 내고 훑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아니라 나를 살게 하는 원천이다. 고래씨는 '청정구역'을 지키기 위해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확보하고, 어떤 것도 범접하지 못하게 마음의 애를 쓴다.
취미 이야기를 하다 고래씨에게 “요즘엔 무슨 책 읽어요?”라고 물었다. 고래씨는 퇴계 이황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고 답하였다. 고래씨의 독서 스펙트럼이 넓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퇴계 이황이라니 살짝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고래씨는 이황의 글이나 사상을 보면 경건하고 맑은 느낌이 들어 중세수도사를 만나는 것 같다고 하였다. 고래씨는 이황이 죽기 전에 머리맡에 있는 난을 가리키며 “저 난에 물을 주어라.”라는 마지막 유언을 접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찡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황의 사상엔 종교적인 것이 있어요. 종교는 초월적 가치를 향해 우리를 정화시켜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는데 있어 초월적인 삶을 전제하는 삶과 그렇지 않는 삶은 달라요. 초월적인 삶을 전제하는 삶이 우리 삶을 성찰하게 만들어요. 그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매몰되어 살게 될 것 같아요. 산 너머의 초월적 가치를 전제하고 그 가치에 비추어서 삶을 성찰해나가고 싶어요. 한국철학서를 읽다가 퇴계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어요. 내 삶을 해명하는 도구로 철학이 좋은 도구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키워드를 제공해줘요. 철학책을 읽다보면 나의 삶을 비춰가며 읽어요.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어떤 감정과 순간에 대해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주는 거죠. 그때 즐겁고 좋아요."
고래, 도시망명자를 선언하다!
고래씨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올라왔다. 경상북도 안동이 고향인 고래씨는 도시에 오면 여자가 담배 피는 것에 대해 엄청난 죄악인 마냥 바라보는 시선이 그곳보다는 드물 것이라는 기대로 도시, 서울을 택했다. 겨울날 서울로 망명한 고래씨는 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땅히 의지할 이도 없어 당시 추운 만주 벌판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하였다. 고래씨는 외대 앞에서 하숙하는 친구 방에서 같이 머물기도 하고, 친척 집에서도 살기도 하고 다양한 방과 룸메이트, 하우스메이트를 거치면서 지금은 소박한 풍경이 가득한 동네에서 ‘혼자’ 살고 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도시망명생활을 시작한 고래씨에게 망명자로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물었다. 고래씨는 누군가와 함께 살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것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 이것을 공식화하고 풀어야하는 것을 잘 못해서 속으로 끙끙 앓는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래씨는 혼자 사는 사람의 외로움에 대해 말했다.
"누구나에게 똑같이 30만큼의 어려움이 닥치면 가족이랑 같이 있을 때 느끼는 어려움의 체감은 25정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혼자 살면 그 30을 다 느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때로는 누군가가 내 곁에 배경처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 때도 있어요.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느낄 때 그 외로움과 쓸쓸함의 비를 다 맞아야 하는 거에요. 그럴 땐 시간에 기댈 수밖에 없더라고요. 애쓰지 않아요. 극복해야지 애쓰는 것은 의미가 없더라고요. 이 시간도 다 지나가겠거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견디는 수밖에 없는 거지요. 혼자 사는 사람은 외로움의 감정에 대해 더 깊이 밑으로 내려갔다온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보니 이런 경험이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타인이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감정이 뭔지 알 것 같고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 고래씨 블로그
여름날 가평 계곡에 발 담그고 신선놀음을 하며 고래씨가 찍은 사진
가을 산, 고래씨는 자연 안에 있으면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고래씨는 외로운 날에는 자연을 찾는다고 한다. 정말 우울했던 어느 날 고래씨는 소백산 한 자락 어딘가에 앉아 펑펑 울고 나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 걸까? 고래씨는 산을 종종 찾는다. 그리고 유독 소백산을 좋아한다. 고래씨가 외로움에 대해 말하자 고래씨에게 두려움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외로움과 두려움은 다른듯하지만 닮은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겁대가리가 없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알 것 같은데 독립심이 강하고 앞 뒤 안 가리고 일을 저지른 편이라 두려움은 적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경제적 두려움은 있어요.” 고래씨는 나이 마흔이 되고 나니까 직장생활을 무탈하게 잘 할 수 있을까? 문득 사장이 그만 두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하지만 고래씨는 특유의 낙관으로 살다보면 또 어떻게 되겠지, 살아갈 방법이 생기겠지, 스스로를 믿으며 그때 되면 또 연대할 친구들도 생길 것이라며 허허 웃는다.
고래, 비혼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논하다.
독립을 준비하고 있는 내게 혼자 사는 사람의 일상이 궁금할 때가 많다. 32년 동안 원가족과 살아왔기에 원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원가족을 떠났을 때 느껴지는 막연한 무서움이 있는 것이다. 혼자서 잘 살 수 있을까? 그 무서움 때문에 잠시 결혼을 상상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비혼으로 살기 위해서 당장이라도 ‘비혼공동체’라고 명명되는 커뮤니티를 찾아가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관계에 대한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고래씨는 삶의 방향을 선택했다. 고래씨는 비혼을 택했다. 고래씨는 여유로웠고, 당당했다. 고래씨와 비혼의 삶을 살기 위한 태도 몇 가지를 함께 논했다.
"아플 때 서로 소문내자가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태도에요. 그 말의 의미는 연대이죠. 혼자 살던 누구와 동거하던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연대! 연대를 위한 동지를 만들어야 해요. 돌아보면 우리 곁에 동지는 많을 거예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는 사람들, 공감대를 가지는 사람들을 나이 들수록 더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여성단체 커뮤니티를 만나면서 관계의 바운더리가 더 확장되고,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눈에 안보였거든요. 숨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멀리 있지 않았더라고요. 바로 곁에 있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에 여성주의 매체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여자동지들이 그 안에는 많았는데 실제로는 곁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내 곁에 있었구나. 느끼면서 동지들은 충분히 규합하고도 남을 것 같았어요. 오히려 우리가 셀렉트 해야 하지 않을까요?(호탕하게 웃음)"
비혼의 삶을 위해서 ‘연대’가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고래씨는 ‘연애’에 관한 태도도 넌지시 말했다. 연애를 하되 그 연애 안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으면 삶이 한층 더 풍부해지겠지만 꼭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삶이 즐겁고 충만해야지 더 나은 관계가 가능할 것이라며 연애에 의연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올해 고래씨는 큰 사건을 하나 겪었다. 큰 사건을 겪고 나니까 집 살 생각, 차 살 생각을 딱 접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결정하니 다른 것으로 삶을 채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차 산 다음에, 집 평수를 조금씩 더 늘린 다음에, 이런 식으로 행복을 유예하기보다는 지금 즐기고 싶어요. 삶을 유지하기 위한 대비는 최소한으로 하고,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히지 않고 살고 싶어요. 집포기 자동차포기하다보니까 즐겁게 놀 수 있는 거리가 많아요. 포기하니까 보이더라고요.”
@ 고래씨 블로그
도시망명자 고래씨의 공간, 고래씨의 공간은 고래씨를 닮았다. 정갈하고 여유롭다.
도시망명자 고래씨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씩 독일어 공부를 한다. 언젠가 아니 정확히 5년 뒤에 고래씨는 망명지를 서울에서 독일로 이동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홀로 독일 땅을 밟은, 지독한 외로움이 고스란히 베여 있는 전혜린의 수필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이 떠올랐다. 고래씨도 그녀처럼 다시 한 번 지독한 외로움의 시간을 통과하겠구나. 외로움을 안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끊임없이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고래씨가 그랬다.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들여다보면 ‘타인은 또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가 보인다고. 외로움이 내 스스로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였다고 인터뷰 말미에 고래씨는 말하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 또한 기꺼이 외로움의 비를 홀딱 맞을 용기를 얻는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진행한 앙코르<인터뷰>전문실습강좌를 들었습니다. 인터뷰어가 되어 인터뷰이를 선정하고 사람을 만났습니다. 첫 번째 저의 인터뷰이는 고래씨가 흔쾌히 수락해주었습니다. 알고지낸 이라 인터뷰가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그래도 고래씨와 함께 한 1시간 30분 가량의 시간은 두 개의 세계가 만나 끊임없이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오묘한 순간이었습니다. 긴장이 존재하고,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집중하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삼십대의 시간을 통과한, 통과하고 있는 도시 망명자들을 또 만나러 가고자 합니다. '인터뷰공간_약속다방'의 연재가 드문드문 비정기적으로 진행될 것 같지만 그래도 많은 지지와 관심부탁드립니다.
첫 번째 연재를 시작하며 2012년 12월 9일 바람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