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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해당되는 글 10건
2012. 12. 2. 21:40

작년에 세화의 집에서 머물면서 올레3코스를 걸으려고 했다. 예정했던 날 비가 내려 결국 그 길은 걷지 못하고 5코스를 걸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있는 3코스, 김영갑 갤러리에 가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올레3코스는 중산간을 지나는 길이다.  숙소에서 길의 시작점까지 대략 2시간이 걸렸다.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마을 곳곳에 정차하고 사람을 태우고 내리다보니 시간이 꽤 걸린다. 제주 할망들이 버스를 타고 내린다. 제주 할망은 머릿수건을 많이들 맨다. 그 모습이 인상깊었다.

 

 

 

 

 

 

+ 가을이면 오름을 보랏빛으로 물들인다는 작은꽃들이 이녀석들인가보다. 겨울오름에 아직 가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온평포구에서 시작해서 김영갑갤러리까지 내내 중산간 마을을 지났다. 중간에 오름도 하나 있었다. 중산간 마을에서는 귤농사를 짓고 있었다. 곳곳이 귤밭이었다. 귤나무에는 노오란 귤이 가지를 축 늘어트릴 정도로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길을 걷다 귤 하나를 주워 먹었다. 나무에 매달린 귤대신 땅에 떨어진 귤 하나를 주워 먹었다. 길 위에서 먹는 귤맛은 보통때 먹는 귤맛과 달랐다. 맛있게 귤을 먹고 오름을 하나 넘었다. 물통처럼 움푹 패어 통오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가을이면 패랭이, 개쑥부쟁이, 꽃향유로 보랏빛으로 변한다고 한다. 오름을 오르면서 아직 가을의 여운을 부여잡고 있는 보라빛 작은 꽃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총20km가 넘는 3코스는 사람도 별로 없는 아주 조용한 길이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문득 내가 이렇게 길을 걷는 것이 옳은 행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이 공간은 일상의 공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일상의 공간에 타인이 '불쑥'들어온다면 그것이 과연 반가울까, 싶었다. 도시에서 온 이들이 지친 마음과 묵은 감정과 누더기가 된 슬픔을 싸들고 와서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가겠다고 한다면? 미움과 슬픔, 분노 등과 같이 가볍지 않은 감정들로 공기가 무겁게 채워진다면 그곳에 있는 이들은 과연 반가울까 싶었다. 타인인 우리는 무슨 자격으로 제주에 와서 그토록 무책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싶었다. 그래서 울다가도 눈물이 뚝 그쳐졌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명령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다달았다. 난 왜 이토록 이 공간에 오고 싶어했던 것일까? 그저 그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그는 끊임없이 그가 있는 곳으로 내게 손짓을 했다. 내 이름을 불렀다. 마침 갤러리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바람>展이 열리고 있었다. 그와 내가 통한 것일까. 그가 필름에서 찾은 바람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는 바람 또한 잡아 그의 사진 속에 담아두었다. 그의 사진과 글을 찬찬히 둘러보다 눈물이 나와 혼났다.

 

 

 

 

+ 김영갑 갤러리 뒷마당에 작은 무인카페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차 한잔 마시며 갤러리에서 느낀 감정의 여운을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김영갑 갤러리에도 보라빛 작은 꽃들로 뒷마당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가 항상 유토피아적 삶을 꿈꾸듯 제주인들은 수천년 동안 상상 속의 섬 이어도를 꿈꾸어 왔다. 제주를 지켜온 이 땅의 토박이들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상적 삶에 절약, 성실, 절제, 인내, 양보가 보태져야 함을 행동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다 하더라도 나(제주)다움을 지키지 못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제주인들처럼 먼저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이어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육신의 움직임이 둔해질수록 활동 반경이 좁아져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손의 움직임이 약해져 책장을 넘기거나 글을 쓸 수도 없다. 의자에 앉아 있기도 힘에 부친 날은 사람들과 만날 수도 없다. 혀가 꼬여서 어눌해진 발음 때문에 전화통화도 어렵다. 혼자 지내는 하루는 느리고, 지루하다. 일상은 단순하고, 탄력이 없다. 방안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다. 눈을 뜨면 천장과 벽만 보인다. 장애를 가진 내 육신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지평선과 수평선이 보인다. 중산간 외딴집에서의 하루는 길었다. 찾는 이 없이 혼자 지내는 하루는 지루하고 더디 흘렀다.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으면 심심하고 지루팼다. 불평불만으로 가득찼던 그 시절이 지금은 그립다. 온종일 침대에서 지내야 하는 지금은, 카메라를 메고 들녘을 쏘아 다니던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는다. 앞을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수직 절벽이고, 뒤를 뒤돌아본다고 흘러간 세월을 어찌할 것인가. 좌우를 살펴도 방법이 없다. 민간요법에 매달려 보았지만 나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하늘이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하늘의 영향을 받는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살지 못한다. 이젠 하늘만을 믿어야 한다.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시련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설레임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어제 하루가 고통스러웠듯, 오늘의 시련이 내일로 이어짐을 알기에 새날이 시작되어도 절망하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따뜻한 봄을 만날 수 있다. 추위가 강할수록 따사로움은 돋보인다. 풀과 나무가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나무는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 풍성한 열매를 기뻐하지도 우쭐대지도 않는다. 열매는 사람, 곤충, 새들의 몫이다. 아낌없이 모두 나누어주고, 나무는 다시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음을 알았을 대, 주저 없이 자신을 자연에 내맡겼다.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나는 그렇게 하늘만을 믿고 나에게 허락된 하루를 감사하며 신명을 다해 오늘을 즐긴다. 온종일 깊은 생각에 잠겨 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만이 가진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나를 들여다볼 뿐 무엇을 보려고, 느끼려고,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들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보고 싶으면 보고, 느끼고 싶으면 느끼고, 개닫고 싶으면 깨달으면 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어 좋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이제는 흘러가는 대로 지켜볼 뿐이다. 나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동안 보고 느끼고, 깨달았던 것들을 통해 자연의 질서, 생명의 순환원리, 대자연의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편안하고 즐겁다. 두 눈으로 보았고, 두 귀로 들었고, 두 손으로 만져보고, 두 개의 콧구멍을 맡아 보고, 온몸으로 느껴보았기에 확신했던 것들이 진짜배기가 아니라 허드레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20년 동안 오름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도 모르면서 두 개, 세 개 욕심을 부렸다. 중산간 오름 모두를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하겠다는 주급함에 허둥대었다. 침대에 누워 지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같은 과오를 범했을 것이다.


 

김영갑 글 중에서

 

20년 동안 제주에서 지내면서 종일 오름을 바라보며 오름을 찍어왔던 그가, 오름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니 그 태도에 한없이 숙연해진다.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제주의 사람과 제주의 바람과 제주의 중산간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그의 치열함에 말을 잃게 된다. 갤러리 무인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셨다.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올레길 위에서 서른 걸음 걷다가 한모금 마시고, 또 서른 걸음 걷다 한모금 마셨다. 커피가 정말 맛있어서 그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져서 또 눈물이 날 것같았다.

 

 

 

 

 

갤러리까지의 거리는 총 12.1km였다. 앞으로 8km는 더 걸어야 했고, 시간은 3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 올레길을 다 걸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딱히 밥을 사먹을 곳이 없어 아침에 산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래도 배가 고파 귤을 몇 개 더 주워 먹기로 했다. 귤밭 초입에 떨어진 귤이 별로 없었다. 귤을 찾다가 초입에 몇 개의 귤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반가히 달려갔다. '하나 먹고 나중에 걷다 목 마르면 더 먹을 수 있게 두개 주워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처음 집어 든 귤은 말짱하니 이뻤다. 주변에 몇 개가 더 있어서 집어 들었더니 땅에 박혀 있는 부분이 모두 곪아 있었다. 결국 귤을 한개밖에 먹지 못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것이 아닌 것에 욕심부리지 않고, 열매가 맺기까지 물을 주고, 가꾸고, 보살핀 이의 노고를 쉽게 취하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귤밭이 내게 가르침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하나에 '감사히 먹겠습니다.' 말하고 달고 맛있게 먹었다.

 

해변가 돌무지 길에 다다르니 4시가 넘었다. 6시가 되면 어둑어둑해질텐데. 발걸음을 재촉하고 싶었지만 돌무지 길은 걷기가 쉽지 않았다. 까딱하면 넘어질지모르는 그 돌무지 길을 걸으면서 수백, 수천, 수억, 영겁의 시간을 아무 말 없이 버티고 견뎌왔을 그 검은 돌 앞에서 오만을 부리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밟고 후다닥 재빠르게 그 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버리고 무한히 겸손해질 것을  되뇌이었다. 험난한 돌무지 길을 무탈히 통과하였다. 그리고 5시가 넘은 시간, 숲길이 나왔다. 해지기 직전이라 아무도 없는 숲 안에서 더더욱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숲을 믿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내 존재를 증명해주는 이는 오로지 이 숲뿐이다. 숲을 믿고 가자.'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를 신뢰하면서. 특히 인간은 자연을 경외하며. 그렇게 서로를 믿고, 보살피며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닷가 어느 무당집도 그런 흔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그 신뢰의 약속도 깨지고 말았다. 공포로 시작한 숲길에서 평온을 찾다 숲길을 벗어날 즈음 다시 두려움을 느꼈다.

 

 

 

 

여러모로 둘째날은 '자연'의 존재를 많이 생각한 날이었다. 그 존재는 분명 존재하는 것인데 너무나도 쉽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그 신뢰의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표선해비치해변에서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해변의 고운 모래에 잔물결에 발을 담갔다. 종일 담았두었던 공포와 외로움, 두려움, 피로가 조용하게 씻긴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3코스가 끝나는 표선해비치해변에서 우연히 작년에 머물렀던 세화의 집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날 기억하고 있었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인연이 되면 또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짧은 만남을 겪으며 만날 인연은 이렇게 만나는구나 싶었다. 왠지 세화의 집 어머니와는 곧 또 만날 것같은 예감이 든다.    

(20121130)

2012. 12. 2. 17:36

혼자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야지만 '독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휴가를 내고, 일단 비행기표부터 끊었다. 어디에 머물고 어떤 경로를 이동할지 미리 알아두고 정리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시간을 내어 제주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이 내 손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독립'을 향해 가는 첫발을 내딛었다, 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아침 7시 1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났다. 출발시간을 너무 이르게 잡은 것은 아닌가 잠시 후회했다. 하지만 나는 떠난다. 그것에 의미를 두자. 어찌어찌하여 비행기 이륙시간이 늦어지고 비행기에 탑승한 채 30분동안 활주로 위에 있었다. '딩. 딩' 두번 벨이 울리고 곧 이륙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륙 직전의 순간, 나는 그 순간이 가슴 설렌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배낭을 가볍게 만들고 길을 나선다. 첫날은 올레 8코스를 걷기로 했다. 지난 밤 잡념들로 함 숨도 자지 못한터라 상당히 몽롱한 상태였지만 올레길 위에 내가 있고, 눈 앞에 바다가 보이고, 서울이 아닌 제주에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 째지게 좋았다. 그래서 혼자 배실배실 웃었다. '혼자'하는 여행은 처음이다. 교통카드 한 장 손에 들고 서울 근교를 혼자 돌아다니긴했지만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혼자 곳곳을 걷는 경험은 내게 생경한 것이었다. 약간의 두려움과 기특함과 설레임으로 그렇게 나는 첫째날을 맞이하였다. 

 

길을 걸으면서 억새밭을 보았다. 괜시리 눈물이 흘렀다. 왜 이렇게 억새만 보면 눈물이 나는지. 관계가 종료되고 7개월이 지났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시간이 갔다. 일부러 더 씩씩하게 지냈고, 최대한 활동에 열중했으며,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를 보면서 왜 눈물이 나는지 곰곰히 생각했다. 관계 종료 후 나는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던 것일까? 종료된 관계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슬퍼할 시간을 내게 맘껏 주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런 시간을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나는 억새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리고 헤어진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두번의 연애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끝났다. 나는 연애에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느껴야 하는 고독과 외로움, 슬픔은 내가 오롯이 안고 가야하는 것이다. 상대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책임하게 타인에게 그 감정을 전가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면 독립적인 내가 되어 건강한 관계를 만들고 싶다. 조금 더 의연하게 관계를 맺고 싶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보며 내게 말했다. "애썼다. 그 시간들. 이제는 괜찮다. 그리고 나는 더 나아질 것이다." 바람이 흐르는 눈물을 쓰윽 닦아준다.

 

 

+ 베릿내오름에서 내려다 본 베릿내다. 베릿내는 천제연의 깊은 골짜기에 부터 흐르는 물길이 하늘의 은하수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별빛이 비추는 개울이라는 뜻에서 베릿내라고 한다. 이름짓는 마음씨가 참 이쁘다. :)

 

 

+ 중문해수욕장 풍경. 언제부턴가 이 해안가는 누군가의 '프라이빗 라운지'가 되어버렸다.

 

송이슈퍼에서 약천사를 지나고 베릿내오름을 오르고 내려오니 중문관광단지가 나온다. 2010년사무실 동무들과 함께 하얏트 호텔 뒷마당에서부터 대평마을까지 올레8코스를 걸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 8코스를 다시 걷기로했다. 기이한 모양의 절벽을 보며 감탄했었다. 기억대로라면 하얏트호텔에서 해병대길을 지나 논짓물로 길이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하얏트호텔 마당에 푯말이 적혀있다. 안전여부로 해병대길이 잠정적으로 폐쇄되었다. 8코스는 중문 관광단지를 끼고 있다. 롯데호텔, 신라호텔, 하얏트호텔 등 유명한 호텔들이 있다. 중문해수욕장을 걸으면서 어느 호텔에서 세운 푯말을 보았다. '프라이빗 비치 라운지' 해변의 일부가 개인 소유의 것이라고 적혀있다. 8코스를 걸으면서 2년 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올레표식은 의도적으로 제거되어 있었고, 잠정폐쇄 된 해병대 길 대신 새로 난 올레길은 차가 다니는 길과 다름없었다. 사유화된 해변과 길은 지나가는 올레꾼을 반기지 않았다. 돈이 되지 않는 올레꾼들을 내쫓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 역력히 보였다.

 

 

+ 대왕수천예례생태공원. 한국땅에서 '생태'란?

 

새로 난 올레길을 걸으며 '내가 이 길을 왜 걷고 있는거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호텔 사이로 난 도로를 지나니 얼마전에 조성된듯한 생태공원이 나온다. 공원의 이름은 '대왕수천예례생태공원'이다. '생태'의 사전적 뜻은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이다. 그런데 한국땅에서 통용되는 '생태'의 의미는 아무래도 재정립 된 것같다. 한국에서 재정립 된 생태의 뜻은 '있는 모습 그대로 잘 있는 자연을 일부러 한 번 갈아엎고 인공 천(川)을 만들고 나약한 과실수를 드문드문 심고, 체험학습장을 만들고 안내푯말을 세우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라는 캐치프래이즈 아래 만들어진 생태공원과 '대왕수천예례생태공원'은 상당히 닮아있었다. 이곳도 가히 이명박스러운 감수성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 논짓물 풍경, 논짓물 풍경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보니 저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한라산도 언젠가 꼭 등반을 할 것이다.

 

생태공원을 지나니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논짓물이 보인다. 다행이도 논짓물 풍경은 그대로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대평마을이 곧 나왔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밥한끼를 먹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대평마을은 제주도에 올 때마다 빠짐없이 꼭 방문한다. 올 여름과 또 마을 풍경이 달라졌다. 고요하고 여유로웠던 대평마을이 점점 자본의 손길에 다듬어지고 있다. 물고기카페 주인장이 "여기도 많이 변했죠."라고 한 말에 절대 공감한다. 제발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올레8코스가 아쉽고, 속상하다.  

(20121129)

2012. 3. 22. 17:15

 


구럼비 살리기 촛불집회가 서울에서도 매일 밤 진행되고 있어요.
오늘 저녁 7시 청계광장에서는 구럼비 살리기 여성단체 촛불 집회가 있어요.
민우회 활동가들이 촛불집회 나가기 전에 만든 피켓들이어요.
이 마음마음 모아서 구럼비 발파 지금 당장 중단되길 빌어봅니다.
2011. 10. 23. 13:58

승희나무님에게.

나무님은 가을이 깊어지는 일요일 오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빨래를 개고 청소기를 밀고 전 책상에 앉았어요. 청소를 하다보면 오전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내일이면 다시 월요일, 또 주말을 기다리면서 한주를 보내겠지요?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제게 '의미'로 남는 날들이기를 바래봅니다.


제주에서의 일곱째 날은 18코스를 걸었어요. 내내 서귀포시에 있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처럼 제주시에서 아침을 맞이하였답니다. 공항근처에 숙소를 잡았어요. 공항근처에 숙소를 잡았다는 것은 이제 돌아갈 시간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오늘의 여정이 내 앞에 있으니 신발끈 단단히 묶고 길을 나서봅니다. 18코스는 다양한 매력이 담겨있는 길이었어요. 동문시장에서 시작해서 여객터미널, 사라봉입구까지는 말그대로 도심 올레였어요. 제주의 번화가, 제주의 도시길을 걸으면서 서울 어느곳을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계속 이런길이 펼쳐진다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길을 다 걷기전에는 하나의 이미지로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올레길이겠지요. 사라봉은 제주시민들이 운동삼아 산책하는 작은 오름이었어요. 오름위에 올라서니 또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어요. 푸르고 푸른 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바다위 붉은 등대, 파랑과 빨강의 대조는 강렬했어요. 사라봉과 별도봉을 지나 당시 4.3사건으로 마을 전체가 불타버려 이제는 터만 남아 있는 곤을봉 마을터에서 당시 시간 속에서 울부짖었을 사람들,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시간을 단순히 4.3사건만으로 알고 그 어떤 사정도 모르는 내가 한공간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막막해하다가 지나온 시간을 알고 기억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곤을봉 마을터를 지나 화북포구, 벌낭포구를 지나자 삼양검은모래해변이 나왔어요. 검은모래해변, 백사장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검은모래해변이라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이름 그대로 검은빛이 감도는 모래들, 왜 검은 모래일까? 현무암이 잘게 다져진 해변이라 검은색일까 추측에 추측을 거듭해보며 해변가를 걸었어요. 가을, 지나가버린 여름의 기분을 재연하려는 외국인들은 수영복을 입고 조심스레 바당속으로 걸어가고 아이들은 해변에서 모래 놀이를 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바당풍경이 눈앞에 있었어요. 다시 원당봉이라는 작은 오름을 오르면 그 안에 절터가 있고 제주의 유일한 불탑인 원당사지 오층석탑이 있었어요.


올레 18코스의 묘미는 아마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옛 제주에서는 제사가 있으면 혈연가족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함께 이동하여 제사도 지내고 제사밥도 나눠먹었다고 해요. 삼양사람들이 신촌 마을 제사밥을 먹기 위해 오갔던 길을 지역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복원한 신촌옛길을 지나면 신촌 사람들의 손길이 역력히 느껴지는 넓은 농로가 나와요. 뜨거운 볕이 내려 앉은 검은 밭에는 초록의 싱싱한 것들이 스프링쿨러에서 나오는 물을 맞으며 생기를 마음껏 뽐내고 한적한 그 길을 걸으며 그 위에 내가 있다는 충만함에 절로 웃음이 나왔어요. 몸은 고됐지만 마음은 풍요로와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요. 농로를 걷다 어느새 다시 바당이 눈앞에 드러나 환히 인사를 하고 바당길을 걷다보면 작고 아담한 포구가 있는 마을이 나오고, 신촌포구가 있던 마을은 소박하고 정갈한 마을이었어요. 샘이 솟는 빨래터엔 아낙이 나와 손빨래를 하고, 바당이 보이는 길목엔 쪼로록 의자들이 놓여있고, 작은 집의 마당엔 여기저기에서 주워다 놓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아마 바람도 햇살도 게으름을 피우는 어느날 그곳에서 사람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게으른 수다를 나누겠지요? 신촌마을의 정겨움에 나도 그 마을 사람들이 되고 싶다고 잠시 생각을 해봤어요. 그렇게 신촌마을을 지나면 포구를 안고 있는 또다른 마을이 나오고 마을마다 제각각 마을만의 무언가가 느껴졌어요.

몇개의 마을을 지나니 어느새 동생과 나는 18코스를 다 걷고 또다른 길의 시작점 위에 있더라고요. 그간 걸었던 길 중에서 가장 길었던 산지천에서 조천까지의 길은 길이가 긴 만큼 그 안에 다양한 매력을 안고 있었어요. 그날은 다리가 힘들어 길의 끝이 나오니 참 반가왔어요. 이제 다 왔구나. 근방 고등학생 아이들이 가득한 통학버스화 된 시내버스에 몸을 싣고 아이들의 북적거림 안에서 졸음을 껴안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날이었어요. 

나무님, 아아 이제 올레길 여정은 끝이 났어요. 내일은 비행기가 뜨기전까지 동생이랑 나름의 올레길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제주시내 곳곳을 그냥 걸어보려고 합니다. 제주, 제주는 괜시리 여인들의 섬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내게 어딘가에 장기간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시 이곳을 찾고 싶어요. 긴긴 시간 속에 나를 두며 그때는 가다 멈추고 그곳이 마음에 들면 몇날며칠 그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당을 바라보고 바람을 느끼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머물고 싶어요. 그 길위에 있을 나를 상상하며 다시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하고싶은 것이 없고, 목적이 없었던 삶속에 다시 이곳 제주를 찾고 싶고, 찾겠다는 바람과 목적이 생겼어요.

나무님, 나무님 덕에 길을 설 수 있는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었고, 나무님 덕에 길의 매력을 담뿍 느끼고 돌아왔어요. 고마와요. 이제 이 편지를 붙일 수 있겠어요. 서울에서 곧 얼굴 볼 날을 기다려봅니다. 건강히, 평안히 지내세요. 나무님에게도 제주의 기운을 전합니다. 나무님이 제게 전해주었던 것처럼.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시월 사일 제주에서의 마지막 편지,
바람이 보내어요.   
2011. 10. 23. 13:20

승희나무님에게.

바람이에요. 한동안 편지가 뜸했지요? 제주에서의 시간을 하나하나 기록해서 나무님에게 우편을 보내는 것이 나의 바램인데 시간이 꽤 많이 늦어지고 있어요. 제주에 다녀온지도 2주가 지났어요. 시간은 어쩜 그리도 무섭게 흘러가는지. 제주에 다녀와서 사무실에 복귀한 후 어느정도의 활력과 의욕이 제 안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동안 내가 지내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그 세상과 그 어떤 접촉도 하지 않은 채 단절되어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이 짧지만 엄청난 힘으로 다가오게 되더라고요.

나무님 오늘은 제주에서의 여섯번째 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5일을 연속으로 걷다보니까 이날은 좀 쉬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날 밤 잠들기 전 동생이랑 내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어요. 하지만 이게 웬걸 또 바지런히 걷지 않으면 언제 이렇게 걸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 아침에 눈뜨자마자 길을 나설 채비를 했어요. 대평민박집 아주머니께서 김밥과 샌드위치도 맹글어 주시고, 든든한 끼니도 있겠다 길을 나섰지요. 원래 여행계획으로는 우도, 1코스, 3코스, 6코스, 7코스, 10코스를 걷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1, 6, 7코스만 계획되로 걷고 전혀다른 길들을 걷게 되더라고요. 예상치못한 코스 중의 하나가 9코스였어요. 올레 책자를 들여다보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숲길을 걸을 수 있다는 말에 덥석 9코스를 선택하였어요. 구간도 다른 길보다 짧고, 숙소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향을 미쳤어요.


대평슈퍼민박이 있는 대평마을 작은 포구가 있는 이쁜 마을이에요. 작년에도 머물렀는데 그 기억이 좋아 올해도 찾게 되었어요. 작년엔 마늘밭의 알싸한 향이 가득했었는데. 마을에서 바로보이는 박수기정 위를 오르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었답니다. 작년 민우회에서 같이 활동하는 여경과 함께 박수기정으로 오르는 길을 절반정도 걸었었는데. 옛날 옛적 고려시대 박수기정 위 너른 들판에서 키우던 말들을 원나라로 싣고가기 위해 말들을 대평포구까지 끌고 내려왔어야 했는데 그 작은 숲길이 바로 그때 말들이 다니던 그 길이라고 하더라고요. 몰질이라고 불리우는 말길.


그렇게 숲길을 한참 올랐을까요? 정말 너른 들판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어요. 왼쪽에는 대평마을과 포구가 보이고 너른 바당이 쫘악 펼쳐져 있었고, 오른 쪽엔 한밭소낭길이 펼쳐져 있었어요. '아, 이길을 걷기를 참 잘했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숲길로 시작해서 내내 숲길을 걷던 길. 다른 올레길과 달리 이 길은 등산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기정위에 올라 저 멀리 보이는 화력발전소와 산방산, 눈으로 보이기엔 그 거리가 멀지 않아 아주 금방 당도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제 머릿속에서는 이곳에서 저곳까지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길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웬걸, 길은 산을 오르고, 내리고, 산을 두르고, 깊이 들어가고, 나오고를 몇번 반복하게 되더라고요. 길을 가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울음소리에 반응하고, 새소리에 잠시 귀 기울이고 나무내음 가득한 길을 걷다 작은 동굴도 하나 발견하고 저 멀리 마을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운동회를 치르는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리고 나무로 가득한 숲엔 소리가 모여 모여서 바람결에 흘러가고 있더라고요.


한동안 그렇게 산길을 걷다가 꽤 큰 계곡을 만났어요. 바다로 흘러가는 계곡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올레길을 걸으면서 바로 옆에 깊은 계곡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계곡을 걷는 길은 아마도 따로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올레길을 걷다보면 내가 그 길위에서 보고 느끼는 것 외에 또다른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확신에 다음을 약속하게 되더라고요. 다음에 다시 오게된다면 이 계곡을 찾아와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계곡이 바다와 만나는 즈음 황개천이 나오고 화순화력발전소가 나오고 화순해변까지는 평평한 길을 걷는 길이었어요. 동생이랑 9코스는 짧은 길이니 만만하게 보고 민박집아주머니가 싸주신 김밥만 손에 달랑들고 가볍게 나섰다가 물이 마시고 싶어 혼이 났었답니다. 가다보면 물을 사먹을 수 있는 곳이 있겠지 생각했는데 코스가 거의 끝날때까지 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답니다. 정말 올레길의 필수품은 물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답니다. ^-^;

9코스는 정말 금방이더라고요. 3시간이 딱 걸리더라고요. 몸이 걷기형 인간으로 단련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허벅지도 뭔가 탄탄해지는 것같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걷는 다는 행위가 날로 개운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후 1시즘 9코스의 종점 화순해변에 도착해서 작은 슈퍼 앞에서 김밥과 빵을 먹으며 오늘은 오후시간에 뭔가 다른 것을 해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하루를 더 번듯한 기분이 들었답니다. 그간 아침에 눈을 뜨고 길을 나서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맥주 한캔을 들이키고 잠이들고를 반복했었거든요. 숙소주변을 산책하는 것은 상상할수도 없었지요. 그런데 오늘은 다 걷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다시 대평포구로 돌아가 대평마을을 둘러보았어요. 물고기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해서 그 근방 레드브라운이라는 찻집에 가서 시원한 커피한잔을 마셨더랬지요. 원래 커피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오랜만에 카페인을 섭취하니까 좋더라고요. 커피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포구를 바라보며, 찻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작은 여유, 그동안 문자를 거의 못보다가 책을 보니까 또 반갑고, '아 책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책을 보는 만족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답니다.
    
그렇게 제주에서 보낸 여섯번 째날은 올레 9코스와 더불어 하루를 더 번듯한 느낌으로 찻집으로 시간을 보냈던 일명 '원플러스 데이'였답니다. 나무님, 제주에서의 시간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시간을 붙잡아두거나 되돌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래도 내일은 오겠지요? 내일의 여정길을 기대하며 편지 마무리할게요. 내일은 세화의 집 어머니가 소개해준 올레 18코스를 걸을 예정입니다. 작년에 만들어진 18코스, 세화의 집 어머니가 칭찬에 칭찬을 덧하던 그 길이 기대됩니다.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시월 삼일 월요일
바람이 보내어요.
2011. 10. 6. 22:57
승희나무님에게.

나무님, 나무님은 지난 밤 잠은 잘 잤나요? 서울은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하던데 제주도도 기운은 떨어졌다고 뉴스에선 말하지만 나무님이 말한것 처럼 한 낮에는 땀에 옷이 흥건이 젖을 정도로 날이 더웠어요. 하지만 밤만 되면 공기는 금방 차가워지고 바람은 어찌나 무섭게 불던지 바람때문에 지난 밤엔 엄청나게 잠을 설쳤답니다. 덜컹거리는 창문에 창문이 깨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불안을 거듭하면서 양도 수백마리 세어보고 지난 며칠 걸었던 올레길을 차곡차곡 떠올려보며 스스로에게 자장가도 불러보며 잠을 청하고 청했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은 내가 잠에 빠지는 것을 쉬이 허락하지 않더라고요.

약간은 몽롱한 정신으로 슈퍼에 가서 길을 나선다고 인사드리러 가니 민박집 아주머니께서는 잘 잤냐고 여쭈셨어요. 바람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하니 제주에선 그 정도 바람은 기본이라고 쿨하게 응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전 그 바람이 어찌나 무섭던지...

여튼 오늘은 7코스를 걸었어요. 7코스는 꼬옥 걷고 싶었고 동생도 그 길위에 함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회피하고 싶은 길이기도 하였어요. 올레길을 걸으면서 강정마을 그곳을 나는 어떻게 걸어야 할지, 그냥 한 번 스쳐지나갈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을 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강정에서의 그 풍경이 슬펐다는 나무님의 이야기도 떠오르고 길을 나서기가 여느 날과같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어요. 오늘은 처음으로 역방향으로 올레길을 걸었어요. 밤에 달이 뜨면 달빛이 가득차 흘러넘칠 것만 같은 작은 포구인 월평포구를 지나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집집마다 '생명평화강정'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깃발이 집집마다 펄럭이고 있는 강정마을이 나왔어요. 여느 곳에서 처럼 쉬이 카메라를 꺼내들을 수가 없었어요. 올레꾼도 아니고 그렇다고 활동가도 아닌 그 중간의 애매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되뇌이며 걸었어요. 강정포구에 들어서니 닭장차가 있었고 닭장차 안엔 전경들이 지친듯이 차안에 있었어요. 지난 밤 생명평화축제의 벅적거림이 지나가고 간듯이 마을은 조용하고 고요했어요. 방향을 알리는 올레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전경이 다가오더니 이 길로는 지나갈 수 없다며 길을 막아 섰어요. "아니, 버젓이 이렇게 가라고 표식이 되어 있는데 왜 갈 수 없는거죠?"라고 물어도 그들은 갈 수 없다며 길을 막고 있었어요. 마을과 마을로 이어진 길, 누구나가 드나들 수 있는 그 길을 이젠 갈 수 없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어요. 공사지는 높고도 높은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곳 펜스엔 "착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곳, 해군은 장벽을 만들고 평화는 길을 만든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고 또 한켠엔 "This wall cannot erase our memory"라고 쓰여 있었어요. 저항의 목소리, 연대의 흔적이 마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강정, 대추리가 떠올랐어요. 자본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것도 모자라 군사력으로 권력을 발휘하고 장악하려고 하는 미국 그리고 그에 대해 저항하고 할말을 하기보다는 그 땅에서 울고 웃으며 지내온 사람들을 가차없이 내 쫓는 정부. 평화를 짓밟고 구럼비를 울게하는 그 짓거리들이 과연 정당하고 옳은 것인가?라고 되물었을 때 분명 답은 보이는데 그들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뿐이었어요. 그렇게 숙연한 마음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저멀리 한무리의 사람들이 도로위에 서 있었어요. 경찰과 대치중인 것일까? 거리가 가까워지는 문정현 신부님과 다른 신부님 몇분께서 거리미사를 보고 있었어요. 조용히 그 미사에 동생과 함께 했어요. 올레길을 걷다  그 미사에 함께 참석한 올레꾼들도 꽤 있었어요. 평화를 위해, 정의를 위해, 진리를 위해 예수님이 걸었던 그 길을 그대로 걷고 있는 까맣게 그을린 문정현 신부님, 그 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분이 계셔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길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때론 씁쓸함을 느끼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저항하고 또 저항하고 싸우고 또 싸우는 것이 사람된 도리이겠지요. 그러다보면 분명 언젠가는 웃는 날이 오겠지요. '희망'을 품고 사는 운명을 가진 이가 바로 '사람'인가봐요. 오늘은 강정에 온 마음을 전해봅니다. '울지마 구럼비. 힘내요 강정!'


아아, 그런데 뉴스를 보니 오늘(10/6) 해군은 구럼비 시험발파를 강행했다고 하네요. '펑'하고 폭발하면서 수만년의 시간과 희노애락을 다 품었을 구럼비가 그렇게 허무하게 '펑' 사라지고 있다고 하네요. 가슴이 더욱 답답해질뿐입니다. 어찌해야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문정현 신부님에게 묵주 축성을 그 자리에서 부탁드렸었어요. 까맣고 뭉직한 손으로 손을 꼬옥 잡아주시며 묵주 축성을 하시고 신부님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세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오늘밤은 평화를 위해 강정을 위해, 구럼비를 위해, 그 땅위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겠어요.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시월 이일 일요일
바람이 보내어요.
  
2011. 10. 6. 21:09
승희나무님에게.

제주에서의 시간도 오늘로서 벌써 4일째에요. 시간이 어쩜 그리도 빨리 흘러가는지 절반의 시간이 훌쩍 흘렀어요. 오늘은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걸었어요. 6코스는 아쉬움의 길이었어요. 처음 여행계획을 짤 때 6코스를 넣은 것은 올레도 걷고 덩달아 길위에 있는 정방폭포도 천지연폭포도 둘러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선택을 했어요. 하지만 정방폭포도 천지연폭포도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고, 잘 알려진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치일것이라는 것이 뻔히 보여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는 '아 이곳이 정방폭포가 있고 천지연폭포가 있는 곳이구나.' 라고 위치만 확인하고 그 앞을 그냥 지나쳤어요.


길을 걷다보니 오늘은 길위의 풍경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날이었어요. 제지기 오름에서 몸의 열기를 식히고 있을 때 제주주민이 먼저 말을 건네며 서귀포매일시장에 가서 회한접시 먹으라고 권했고, 강태여할망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아주머니들과 거듭 만났고,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순심씨도 만났어요.

세화의 집에서 따뜻하게 잠도 푸욱-자고 밥도 든든히 먹고 나서려고 하니 세화의 집 어머님께서 오늘 밤엔 어디서 자냐고 물으셨어요. 대평슈퍼민박에서 머문다고 하니 세화의 집 어머님, 아버님께서는 슈퍼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6코스를 걷는다고 하니 올레사무국 1층에 가면 순심씨가 있을 거라고 하였어요. 순심씨는 정말 그곳에 있었고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녀가 이 길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마음다해 맞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순심씨에게 "세화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길을 나섰어요. 이곳에 오면 순심어머님을 만날 수 있을거라고 했는데 정말 만나게 되었네요."라고 말하자 순심씨는 오늘 밤에도 세화의 집에서 머물면 우리 편에 안부를 전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말하며 아쉬워 했어요. 올레꾼인 내가 메신저가 되어 안부를 물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신났어요. 아는 분의 집에서 머물다가 온 이들이라면서 순심씨는 따숩게 맞이해주었어요.

소정방폭포를 지나 올레 사무국에서 세화의 집 어머님이 맹글어주신 주먹밥을 먹고 정방폭포를 지나 과일가게를 지나니 또 과일가게 아주머니 아저씨가 말을 건네내요. 처음엔 낯선이가 말을 건네 어색하고 빨리 이곳을 지나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과일가게 아주머니 아저씨는 올레꾼이면 여기저기 말도 붙이고 먹을 것도 얻어먹으면서 다녀야지 말하며 손에 귤이며 쵸콜릿을 찔러 넣어주셨어요. 길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짧지만 길을 매개로 소통한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길위엔 올레커뮤니티가 있더라고요. :)

쇠소깍에서 출발해 소정방 폭포를 지나고 올레사무국, 이중섭 미술관을 거쳐 서귀포매일시장구경을 하고 시공원에서의 복작거림을 겪고 종착지인 외돌개까지 걸었던 6코스는 사람이 있던 길이었고 동시에 아쉬움이 남아 다시 찾아오게 될 듯하여요. 외돌개에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정류장에서는 어제 길위에서 몇번 마주쳤던 청년을 또 만났고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또 보게되면 '인사해요.그' 그렇게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올레길에서도 만났었답니다. 올레는 '사람'인가봐요.

올레덕에 나무님과도 한발자국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시월 일일 토요일
바람이 보내어요.


+ 사진은 멀리서 내려다 본 천지연 폭포와 늦은 시간에 도착해 밤 배 불빛 속에 우뚝 선 외돌개에요.
2011. 10. 6. 18:25

승희나무님에게.

나무님 서울은 별일 없이 잘 있지요? 강태여 할망집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짐을 짊어지고 오늘은 세화의 집에 짐을 풀었어요. 나무님도 혹시 세화의 집에서 머물었나요? 통영의 할배와 사천의 할매가 어떤 이유로 제주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지금 두분은 올레길을 알리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세화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화의 집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느그들 밥 묵었나?"였어요. "아니요."라고 말하자 "속이 든든해야지 잘 걷제! 밥묵고 가그래이."라고 말씀하시며 뚝딱 한 상을 차려주셨어요. 이틀동안 집밥이 아닌 바깥 밥을 먹었던 터라 (할망집에서 먹은 밥은 할망이 시켜주셨던 식당밥이었어요.ㅠ) 집밥이 참으로 감격스러웠어요. 한술 뜨고 또 뜨는데 어찌나 행복하던지, 집밥의 힘을 느꼈어요.

오늘은 계획대로라면 3코스를 걷는 날이에요. 어젯밤부터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에도 계속 비가 내려 길을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을 했어요. 그러고 있는 중 세화의 집 어머님과 아버님은 말을 맞춘듯이 "느그들 오늘 몇 코스 걷기로 했나?"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3코스라고 답했더니 3코스는 비가 오는 날이면 발이 푹푹 빠지고 쉽지 않을 것이라고 5코스를 걷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동생과 전 베테랑 두 분의 말을 듣기로 했어요. 예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길, 길은 남원포구에서부터 쇠소깍까지 14.7Km 그런데 그 길이 걷다보니 낯설지가 않더라고요. 어, 이길은 내가 걸었던 길인데. 2009년에 민우회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제주도로 캠프를 다녀왔었는데 그때 그/녀들과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고 있더라고요. 함께 이 길을 걸었던 그때 그/녀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고 보고싶고, 서울 올라가면 그녀들과 함께 했던 사진첩을 다시 열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올레 5코스는 추억을 다시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길이었어요. 그리고 5코스는 이야기가 있는 길이었어요. 나무님도 5코스를 걸으면서 이 길은 이야기가 풍성한 길이라고 느꼈겠지요? 해안길을 지나다가 나오는 동백나무 군락지, 17살에 시집온 현맹춘 할머니는 어렵게 마련한 황무지의 모진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의 동백 씨앗 한 섬을 따다가 심어 기름진 땅과 울창한 숲을 이루어 냈다는 길. 구월의 마지막 날 동백나무 군락지를 길으면서 평생을 땅을 가꾸고 일궈온 할머니의 '혼'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바람을 막아주는 많은 나무들 중 왜 붉은 동백나무였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어요. 왜 동백나무였을까요? 붉게 피우고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이 그대로 툭하고 떨어지는 붉은 동백이었을까요? 바람이 매서울 정도로 시린 겨울  나무에서 한 번, 길위에서 한 번, 두번 붉게 피는 꽃을 보며 할망은 처절한 '힘'을 느꼈을까요? 지금은 꽃이 없는 자리에서 동백 열매를 줍는 또 다른 할망을 보며 괜시리 제주의 여인들은 그 어느곳의 여인들보다 위대하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져봅니다.


나무님은 5코스 어디에서 발길을 멈추었나요? 전 공천포 근방에 주저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어요. 샘물이 솟아올라 산 속 계곡처럼 민물이 바다로 흘러 내려 두 물이 만나는 순간이 어쩜 그리도 신비로운지 계곡의 물소리와 바다의 파도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그 순간이 경이로왔다지. 그 이후로 올레길을 걸으면서 샘물이 솟는 곳엔 마을이 늘 형성되고 마을사람들은 물이 솟는 그 자리에 빨래터도 만들고 목욕탕도 만들어 여름날 더위를 피한다는 사실을 길을 걸으면서 보고 알게되었어요. :)


그리고 쇠소깍, 바닷물과 민물이 한데모여서 만들어진 공간 또한 절경이었어요. 구월의 마지막 날은 길 위에서 추억도 만나고, 다시 찾아뵙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도 만난 의외의 선물같은 길이었어요. 이 길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 나무님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그럼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구월 삼십일 금요일
바람이 보내어요.

ps. 세화의 집 어머님이 올레길 18코스를 추천했어요. 일곱번째 날은 그 길을 걸으려고요.
올레꾼들을 위한, 올레길을 찾는 여성들을 위한 세화의 집은 다시 한 번 찾아가서 길게 머물러 보려고요. 
2011. 10. 6. 15:11
승희나무님에게.

나무님, 바람이에요. 7박 8일 제주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나무에게 편지를 쓰는 지금 이곳은 내 방이에요. 제주로 떠나기 전 불안한 마음으로 가득했었는데 다녀온 지금은 다시 시작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제주를 떠나는 비행기에서는 이제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에 시무룩하니 우울하게 앉아만있었어요. 제주에게 잘 있으라고 인사도 못하고 그렇게 제주를 떠나왔어요.

제주를 떠나기 전에는 8일의 시간을 단순한 여행, 관광으로 두고 싶지 않았어요. 순례자의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그리고 동시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놀멍, 쉬멍, 걸으멍 그렇게 다녀오자고 생각을 했어요. 욕심이 과했지요? 고민과 생각의 시간과 함께 편히 쉬겠다는 마음을 동시에 먹었으니까요.

제주에 도착한 순간, 제주에서 머무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상당히 가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어요.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을 생산해야한다고...그 무게감에 짖눌린 나를 발견하고 제주시에서 종달리까지 달리는 버스안에서 계속해서 비우자 비워보자 마음을 다스리고 다스렸어요.

'압박을 떨치고 일단은 즐겨보자.'

그렇게 마음먹으니 조금씩 풍경이 들어오더라고요. 창밖엔 손 내밀면 닿을만한 곳에 바다가 있고, 작은 초등학교엔 아이들이 청기 백기를 들고 가을 운동회를 하고, 나무를 거리를 너울을 누군가의 머리결을 끊임없이 쓸어내리는 바람이 곳곳에 보이더라고 그 풍경을 보며 마음을 다시 한 번 다독였어요.

시흥초등학교 근방, 강태여 할망 집에 짐을 풀고 우도에 다녀왔어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곳이라서 나도 한번즘은 가봐야지 생각을 했었거든요. 하지만 우도는 '관광지' 색깔이 물씬 풍기는 섬이었고 곳곳엔 강호동의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고, 유행가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스쿠터와 바이크 골프장 카트가 섬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더라고요. 우도를 빠져나오는 배 안에서 '여는 관광지와 별다를 바 없는 섬이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 번 다녀오고선 여느 관광지와 별다를 바 없는 섬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어요. 내가 '별다를 바 없다.'라고 말하는 것 또한 관광객이 관광객의 시선으로 관광지를 평가하는 것이기때문에. 이는 내가 기대하는 관광지의 기대에 못미친다는 의미이기에. '별다를 바 없는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우도는 생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고, 잊지못할 기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고, 파도소리 풀벌레 소리 들꽃하나 돌담 하나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 마음에 담아가려는 공간이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공간일 수도 있는 무수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겠지요?

숙소에 돌아와 우도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또 보았어요. 우도는 내게 어떤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우도의 '물빛'을 잊지 못할 듯해요. 첫째날 우도는 내게 '물빛'의 공간이었어요.

 

2011년 가을엔 우도의 '물빛'을 보고 느꼈으니 또다른 어느 시간에는 우도가 품고 있는 다른 이야기를 보물찾기하듯 알아가고 싶어요. 그런 시간이 곧 내게 올 수 있기를 바래보며 우도에서 보낸 첫째날의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구월 이십팔일 수요일
바람이 보내어요.

ps. 실제로 편지를 쓴 날은 여행을 다 마무리하고 돌아온 시월 육일 목요일이에요.
나무님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시 그때 그 시간에 나를 내려 놓게 되네요.
2010. 5. 31. 23:20


나는 그 섬에 있었네,
보라빛 갯무가 한창인 그 섬에 나는 있었네,
노란빛 유채가 한창인 그 섬에 나는 있었네.




모슬포항에서 파도를 굽이굽이 넘어
나는 섬에서 섬으로 넘어가네.
두려움과 공포를 모두 다 잡아먹고 거칠게 꿈틀거리는 파도 위에서
나는,
1년 365일 바다 위에 있을 그녀를 생각하네.

섬은 한가운데 녹빛 물결을 품고
섬은 사방에 청빛 물결에 둘러싸여 있네.

바람의 소리 가득한 그 섬,
바람이 청빛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을
끊임없이 빗어내리는 그 섬.

제주의 작은 섬 가파도에서
나는
너무너무 행복해서 까무라쳐도 괜찮겠다고 생각을 하네.





낯선이의 트럭에 몸을 싣고 바다를 끼고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네.
핑크빛 봄점퍼의 꼬깜도 씩씩한 나랑도 제주의 바람에 즐거워 절로 실웃음을 짓네.






나는 거칠게 부는 제주 바람이 사랑스러웠고,
얼굴에 함박 웃음을 내내 안고 있던 길동무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웠고,
내가 힘내어 지낼 수 있는 에너지를 나는 그 섬에서 끊임없이 만들었네. 





소중한 동무들과 걷고 또 걸으니 저멀리
산방산이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네.

마라도 선착장에서
초장 듬뿍 찍어 쌉싸름한 멍게를 한입 물고,
그 쌉싸르함이 다 가시기전
한라산 빽소주 한 잔,
봄나들이에 빨갛고 노오란 등산 복을 갖춰입고
뽕짝에 취해 온몸을 씬나게 흔들던 아지매들과  

더덕 향기 은은히 뿜어내던 송악산과
꿈결처럼 푸른 바다위에 떠 있던 노오란 잠수함과
"어떻게, 어떻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어
모든 풍경을 욕심내어 다 꾸역꾸역 담아내었던. 






그렇게 나는 그 섬에 있었네.
모슬포에서 가파도,
가파도에서 모슬포,
모슬포에서 송악산,
송악산에서 산방산,
산방산에서 화순해수욕장까지
사월의 스무세번째번날
그렇게 나는 그 섬에 있었네.

2010.04.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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