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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책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72건
2011. 2. 18. 03:06
자야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있으면서 잠들지 못하고 컴퓨터를 켰다. 영화 <만추>를 보았다. 극장을 나오면서 B군과 영화에 관한 짧은 대화를 나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에 대해 잠시 생각 했다. 자고 일어나면 생각했던 것들이 다 잊어질까봐 몇자 끄적거린다.




남편을 살해하고 7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 애나는 엄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3일간 바깥세상에 머물게 된다. 정부의 남편으로 부터 쫓기고 있는 남자 훈은 미국에서 2년째 떠돌며 살고 있다. 애나의 전화벨이 울린다. 애나의 위치를 묻는 교도관의 전화다. 교도관은 애나에게 교도소로 돌아올 시간을 알린다. 훈의 전화벨이 울린다. 훈의 호스티스 동료는 훈의 위치를 묻고, 훈의 고객들은 훈에게 거래를 요구한다. 애나와 훈을 찾는 전화벨은 그/녀들의 위치를 틈틈이 묻지만 전화기 너머의 존재들은 그들의 진정한 존재가 궁금하지 않다. 단지 돌아올 시간을 고지하고, 조심할 것을 당부할 뿐이다. 존재하지만 타인들에게 의미로 '인지'되지 않는 유령같은 애나와 훈이 만났다.




애나에게 돈을 빌린 훈은 애나에게 자신의 시계를 주면서 돈 갚을 때까지 시계를 가지고 있으라고 한다. 시애틀로 향하는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하고 훈은 애나에게 질문한다. "몇시죠?" 시간을 묻는 대사는 "I need a time." 애나가 하고 싶은 말을 훈이 대신한다. "시간이 필요해요." 72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만을 소유하고 있는 애나와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쫓기는 훈에게 '시간'은 온전하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I need a time.")는 말이 절박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온전한 시간을 갖고 있지 않는 애나와 훈이 '시간'을 공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안개낀 시애틀, 안개가 낀 시애틀은 안개때문에 시간을 알 수 없다. 해가 어디즘에 떴는지, 해가 어디즘으로 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시간대에 만난 애나와 훈은 시애틀의 낡은 모텔로 간다. 하지만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그/녀들에게 시간을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모텔을 나와 오리버스를 타고, 범퍼카를 타고, 갑자기 '마켓'으로 향해 달려간다. 살아가면서 어쩌면 우연히라도 만날 수 없는 두 존재가 만나 그렇게 시간을 달린다. 무수한 사람들의 시간이 공유되는 '퍼블릭마켓'의 밤은 조용하다. 마켓에서 애나는 중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훈은 중국어라곤 '하오'(좋아)와 애나에게서 방금 배운 '화이'(좋지않아)라는 단 두마디만 안다. 하지만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한 애나와 훈은 소통하기 시작한다. 당사자인 애나와 훈은 소통을 직접적으로 바로 깨닫진 못하지만 관객들은 그/녀들의 소통을 먼저 보고 듣는다. 그러나 무수한 사람들의 시간이 공유되는 '퍼블릭 마켓'에 애나와 훈은 존재하고 있지만 마켓에서 유령체험을 하고 있던 타인들에게 애나와 훈은 존재하지 않는 '유령'으로 보일뿐이다. 애나와 훈은 관객들에겐 의미로 '인지'되고 있지만, 영화 속 타자들에겐 아직 '유령'으로 존재한다. 묻혀있던 애나의 표정이 드러나듯이, 영화 속 타자들에겐 아직 묻혀 있는 애나와 훈이 시간을 공유하면서 관객들에게 드러난다.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 애나와 훈은 시애틀의 거리를 걷는다. 훈에게 전화가 온다. 그의 고객 옥자이다. 훈은 낡은 모텔앞에서 애나에게 이곳에서 30분만 기다리라고 한다. 기다리지 않을 것을 안다고 말하면서 기다리라고 한다. 홀로 남겨진 애나는 시간을 공유하기 버거워했던 공간인 낡은 모텔에서 훈을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애나는 그 공간을 처음 찾았을 때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구겨져 있는 스탠드, 누군가의 주먹 혹은 머리로 인해 부서진 문을 애나는 바라본다. 시간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공간에 남긴, 시간을 공유한 흔적을 보며 애나는 그것이 자신에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훈의 시계를 낡은 모텔의 침대위에 두고 애나는 훈을 기다리기를 그만둔다. 

그렇게 애나는 시간을 공유하는 과정을 포기하고 도망간다. 그러나 훈은 하얀 꽃바구니를 안고 애나 엄마의 장례식장을 찾는다. 애나 훈, 애나의 옛 연인인 왕칭과 그의 아내가 한 테이블에 앉는다. 훈은 뭔지 잘 모르지만 '퍼블릭 마켓'에서 경험한 애나와의 소통을 기반으로 왕칭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그 감정을 애나가 이어 받아 과거에 쏟아 내지 못한 묵은 감정을 왕칭에게 쏟아 낸다. 애나와 훈은 다시 시간을 공유한다.




하지만 애나의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애나는 교도소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훈과 작별인사를 한다. 바이바이 인사를 몇번을 거듭하고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애나곁에 훈이 다시 찾아온다. "안녕하세요. 저는 훈이라고 합니다." 애나와 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애나가 교도소로 돌아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나눈다. 처음 만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안개때문에 운행을 할 수 없는 버스는 휴게소에 잠시 멈춘다. "I need a time"이라고 말하며 시간을 간절히 원했던 휴게소에서, 이제 두 사람은 시간을 공유한 과정을 머리와 가슴에 안고 휴게소에 존재한다. 한계적 시간을 가지고 있었던 애나와 훈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시간을 확장시키고, 시간을 공유한 흔적을 '휴게소'라는 공간에 남기면서 함께 했던 시간을 그곳에 정지시킨다. 이제 그녀들의 시간은 공간에 머물면서 온전하게 된다. 어느 사람들처럼.

+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그리고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씨네21을 봤다. 씨네21 강병진 기자가 쓴 글을 보면서 놀랐다. 그가 포착한 장면과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 내가 포착한 장면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닮아있었기에. 강병진 기자는 <만추>를 보고 '소통의 기적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나는 <만추>를 '시간을 공유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라고 말했다.

+ 씨네21 강변진 기자의 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2001001&article_id=64888
(온라인 씨네21에 강병진 기자의 <만추>에 대한 긴 글과 김태용 감독의 인터뷰 글이 올라오면 그것도 함께 링크해야겠다.) 

    
2011. 2. 14. 00:12

롤라 몽테스(1955, 막스오퓔스)
아트시네마의 큰 스크린에 여백없이 영화가 가득 찼다. 그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영화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롤라몽테스>를 만든 프랑스의 영화제작사는 <롤라 몽테스>가 흥행에 실패하자 시간차 순으로 영화를 재편집했고, 2008년 프랑스는 <롤라 몽테스>를 막스오퓔스의 원작과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신분상승을 위해, 부의 획득을 위해, 귀족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한 롤라 몽테스는 결국 가출을 하고 구비구비 기구한 삶을 살다 그녀는 서커스의 구경거리가 된다. 영화 시작부터 등장하는 서커스 장면은 롤라몽테스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되었는지, 그녀의 일대기를 쇼로 보여 주고 그녀의 삶은 동전 몇프랑에 판매 된다. 그녀의 현재는 서커스라는 쇼로 구성되고 그녀의 과거는 서커스라는 공간에서 다시 재연되는 장면을 보며, 그녀는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롤라 몽테스 그녀는 진정 어디에 있나요? 공연이 끝나고 서커스 공연장의 관객들은 한줄로 서서 케이지에 갖힌 롤라에게 다가가 손을 잡는다. 손을 잡기 위해 일정정도의 비용을 치르고. 영화 속에서 그 장면이 슬펐다.  




환상의 그대(2010, 우디앨런)
우디할배는 영화속에서 "때로는 환상이 신경안정제보다 더 낫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우디할배는 "신경안정제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씁쓸한데 영화를 보면서 킥킥 웃었다. 우디할배는 놀라운 할배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박찬욱)
말하려면 할말이 많은 영화인듯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단순히 '봤다'에 의미를 둘 수도 있는 영화인듯하다. 지금 이 순간은 개봉 후 5년만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봤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뭔가 자극적이었다. 문득 <박쥐>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왜일까?
2011. 1. 29. 02:18

2010년, 영화 '옥희의 영화'를 보고 아차산에 다녀왔다. 아차산 정상에서 올해가 끝나기 전 영화 한편을 만들 겠다고 다짐했다. 그날의 다짐이 그냥그냥 다짐으로만 머물지도 몰랐었을텐데, 2010년 12월 25일 나는 장비를 대여했고, 작업을 함께 할 친구들을 서울아트시네마 옥상에서 만났다. 바람이 매서웠다. 하지만 우리는 빠알갛게 추위에 손이 익어가면서도 꿋꿋이 촬영을 했다. 촬영을 마무리 하고 장비를 반납하고 감자탕과 소주를 마시며 영화를 만들었다는 기쁨에 모두들 즐거워했다. 결정적 장면을 깜빡하고 찍지 않기도 했고, 이래저래 많이 어설프기도 했지만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이었기에 애정이 특별했다. 그래서 서울아트시네마 홍보 UCC 공모전에 '회춘(回春)'을 출품했다. 바로 말하면 서울아트시네마 홍보 UCC공모전이 실질적으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끔 한 동력이었다. 내심 기대했다. 아트시네마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회춘(回春)'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아트시네마 스크린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만든 영화가 상영된다는 것, 생각만해도 설레였다. 하지만 탈락했다. 그래도 내가 직접 만든 작품이라 그런지 보고 또 봐도 좋다. 상상을 함께 실현한 사람들이 참 고맙다. 

ps. 영화 속 동재의 바람대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11년 겨울 에릭로메르의 '녹색광선'을 상영한다. '녹색광선'을 정말 필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상영시간표에 '녹색광선'이 있다는 것을 보고 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고마와요! 서울아트시네마.


2011. 1. 19. 00:13

2011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쥬이쌍스 시네마'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개막제에 다녀왔다. 작년부터 벼르고 벼렀던 영화제였기에, 개막작이 에릭로메르의 영화였기에 사무실 신입활동가 환영회를 마다하고 종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제 개봉도 개봉이지만 로메르도 로메르였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서울아트시테마 UCC공모전에 수상한 작품들이었다. 영화 개막식에 선정된 영상이 상영된다는 것이 나를  움직이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얼마나 잘 만들었길래, 어떻게 만들었길래 내 작품이 선정되지 않고 다른 작품들이 선정된것일까?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난 오늘 당선작들을 볼 수 없었다. 어떠한 이유인지 당선작이 상영되지 않았다. 아쉬웠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느끼는 '쥬이쌍스 시네마',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2011년 서울아트시네마의 활동 모토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즐거운 영화, 즐거운 공간, 즐거운 사람. 그런의미에서 이번영화제의 모토는 쥬이쌍스 시네마. 영화제 모토에 걸맞게 개막작은 에릭로메르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Quatre aventures de Reinette et Mirabelle / Four Adventures of Reinette and Mirabelle (1987)이었다.

에릭로메르의 영화를 보며 영화 속에서 느껴지는 그는, 자연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이다. 1986년 영화 '녹색광선'에서, 에릭로메르는 일몰직전, 찰나의 순간 반짝하는 녹색빛을 관찰하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1987년 영화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에서 에릭로메르는 블루타임을 이야기한다. 새벽이 오기 전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는 고요의 순간, 그 순간에 서서 레네트와 미라벨은 생명이 깨어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블루타임을 숨죽여 기다리는 레네트의 모습에 녹색광선을 숨죽여 기다리는 델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델핀의 소녀적 모습이 레네트일지도 모른다고. 두 여성은 자연의 변화와 그 찰나의 순간을 바라보고 집중하고 느끼는 법을 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맞이하든 맞이하지않든 눈물을 흘리는 법을 아는 것이다.

에릭로메르의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사고를 나누는 법을 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이 생각하는 각자의 세계가 존재하고 그 세계를 언어로 주고 받으며, 사람들은 그들 각자의 세계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때로는 "저 사람이 왜 저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한다. 눈물을 쏟는 장면이 어의없고, 황당해서 영화를 보며 허허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 씁쓸함이 베어나오고 그 눈물에 공감이 되기도 하고 그 눈물에 연민을 느꼈다. 생각지도 않게 사고가 흘러가는 것이 당황스러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저 멀리 달려가는 사고를 언어가 따라잡지 못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의심하지 않고 내 뱉었던 사고에 대한 성찰의 의미로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이다. '운다.'는 것에 이유를 묻기보다는 울고 싶어서 우는 로메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나는 좋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을 했다. 내게 있어 시네마테크란? 시네마테크라는 내게 있어 열등감의 공간이다. 영화를 사랑하고 싶고, 영화를 좋아하고 싶은데 나보다 더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시네마테크에서 바로 확인하기때문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열등감의 에너지를 반드시 글로 전환하기로!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선 에릭로메르 회고전이 진행된다. 다시 한 번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을 보고, '녹색광선'을 필름으로 보고 두 영화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2010. 12. 14. 00:46

2007년 은하해방전선을 인디스페이스에서 보고 오랜만에 윤성호 감독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극장에서 만난 그의 두번째 영화 도약선생은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지원작품이다. 처음 이 프로필을 보았을 때, 음-영화에 대해 어떻게 판단을 해야할지 몰랐다. 과거 윤성호 감독이 만든 '두근두근 시사인'이 떠올랐기에 이 작품도 그 작품과 비슷한 그 어디즘에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애시당초 공무원이 지원한 작품이라는 것을 깔고 가면서 그 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눈치보지 않고(?) 나름 마음껏 펼쳐나갔다는 것을 극장을 나오면서 느꼈다. 영화는 룸메이트이자 사랑하는 연인인 우정과 멀어진 원식이 우정을 잊지 못하고 우정에게 장대높이뛰기로 늠름한 모습을 보이겠다고 마음먹으며 시작한다. 원식은 영록을 만나 장대높이뛰기를 하기 위한 다양한 트레이닝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영록의 제자 재영과 원식의 두근두근한 순간을 영화는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68분의 호흡이 길지 않지만 조금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반짝이는 순간이 등장하는 영화이기에 그 지루함도 충분히 견딜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이는 순간 1.
영록의 이미지 트레이닝 중 하나 인 '시 수업'에서 각자 시를 쓰던 원식과 재영, 재영이 살짝 원식의 뺨을 쓰다듬으며 '언니는 참 이뻐요.'라고 말하던(이렇게 말했는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이 망할 기억력.) 그 장면이 좋았다.

반짝이는 순간 2.
장대높이뛰기를 하기 위해 영록은 원식과 재영에게 힘을 모아 폴짝 뛰어오르기를 주문하고 동시에 공중에 잠시 머물기를 요구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해? 하지만 영화는 촬영과 편집의 기술을 통해 그러한 순간을 만들고 그 순간을 관객이 믿게 만든다. 공중에서 멈춘 상태에서 서로 말을 주고 받던 재영과 원식, 재영이 아주 빠르게 공중 상태에서 뭐라뭐라 말할 때 뭔말인지는 모르지만 나 또한 조마조마 했고 "언니가 궁금해요."라는 재영의 한 마디가 각인되었다. 아마 원식도 재영의 그 한 마디가 각인되었겠지?

반짝이는 순간 3.
장대높이뛰기 연습 중의 하나로 '훌쩍 뛰어올랐다는 것'을 가정하고 떨어지는 순간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훈련장면이 있었다. 몸을 스폰지 풀에 맡기도 그대로 누이는 장면, 재영이 먼저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스폰지 풀에 몸을 누인다. 그리고 원식도 스폰지 풀로 풍덩. 풍덩 빠진 재영과 원식이 장난치는 장면은 두 주인공이 서로의 감정에 대해 확실히 확인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그 순간을 원식과 재영은 회상하겠지, 그녀들에겐 그 순간이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되겠지라는 생각에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두 여배우가 어찌나 이쁘던지, :)

그외에도 우정과 원식이 옥탑에서 고추나무에 배추에 물을 주는 장면, '놀이공원은 지뢰밭'이라는 음성 타이틀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는 우정과 원식의 씬도 마음에 들었다. 

윤성호 감독의 영화는 재미있다. 보고 있으면 배실배실 웃음이 나오고 실없는 대사와 발랄한 이야기는 영화보는 내내 즐겁다. 그런데 윤성호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현재는 있는데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미래를 상상하거나 그린다는 것은 오지랖이지만 '윤성호 감독의 몇 년 후 영화'를 잠시 상상해보지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는 현재를 살고, 지금이 중요한 감독인 듯 하다. 하지만 약간의 변화를 나는 그에게 바란다. 암, 그렇겠지 그도 오늘 분명 지금 현재를 '과도기'라 말했으니. 여튼 도약선생, 재밌다. 배우들도 참 좋다. 박희본도 좋고, 오늘 처음 본 원식 역의 나수윤도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성호 감독 영화에 틈틈이 나오는 이우정은 매력적이다!     

ps. 영화 속 장면을 함께 포스팅하고 싶었는데 온라인상에 공개된 사진들은 모두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장면들이다. 조금 아쉽다. ㅠ
2010. 11. 30. 17:22




영화 평론가 정성일의 첫번째 작품인 카페느와르 포스터가 나왔다는 것을 그의 트위터를 통해 알게되었다. 정성일 평론가를 마음에 품고 있는 B군은 이 영화 촬영 당시 엑스트라로 출연했었다. 부산에서 카페느와르를 보고 B군은 그 영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덩달아 나도 궁금해졌던 영화 카페느와르, 12월 30일에 개봉한다. 그리고 영화포스터가 나왔다. 포스터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싶어 포스팅을 한다.

첫번째 포스터 속 사진은 마치 홍상수 영화 포스터를 닮았다. 흑백사진에 정유미가 등장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첫번째 포스터 속 두번째 사진은 음-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전면 거울을 향해 바라보고 무표정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 영화 속 한 장면인 것 같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정으로 전면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일까? 실제의 내가 거울에 비친 나를 응시하고, 거울 속 내가 다시 실제의 나를 응시하고, 내가 나를 응시하는 순간을 스스로 카메라에 포착한다는 행위의 설정이 재미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포스터에 감도는 붉고 푸른 기운이 뭔가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 더 담백하게 포스터에 영화 속 장면이 담겼더라면 좋았을 텐데...

네이놈에 기록되어 있는 카페느와르 소개글을 잠시 가져온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취하면서,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깔아놓으면서, 다양한 한국 영화를 영화 속에 인용하는 작품.' 영화는 허우샤우시엔 감독의 빨간 풍선도 일정정도 인용하고 있는 것일까? 두가지 버전의 포스터에 모두 빨간 풍선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빨간 풍선은 어떤 의미로 등장하는 걸까? 카페느와르 포스터를 보면서 허우샤우시엔 감독의 영화 빨간 풍선이  떠올랐다. 카페느와르 포스터는 빨간 풍선에 대한 오마주인 것일까?

여튼 12월 30일 정성일 감독의 영화 카페느와르가 개봉한다. 3시간이 넘는 영화 카페느와르, 궁금하다. 기대된다.

2010. 11. 25. 14:22


68년에 트뤼포,고다르가 만든 '시네마테크를 구하라'는 홍보영상이나 바르다의 '시네마테크의 계단'을 보셨나요?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서울아트시네마의 홍보영상을 출품해 주세요~
(twitter.com/CinemathequeSAC)
2010. 10. 30. 23:24


홍상수 감독 '옥희의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아차산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홍상수 감독은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공간을 카메라에 담고 그 공간에 인물을 얹히고 그 인물들에게 말을 하게 함으로써 공간과 인물 그리고 말의 묘한 조화를 훌륭하게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해변의 여인'과 신두리,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제주도, '하하하'와 통영, '옥희의 영화'와 아차산, 그의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 나도모르게 "그곳에 한 번 가봐야 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10월의 마지막자락 그래서 나는 아차산을 다녀왔다.

'옥희의 영화'의 네번째 영화 '옥희의 영화'의 촬영지 아차산, 영화 속 그녀처럼 운동화에 점퍼 차림으로 물병 하나 손에 들고 산에 오른다. 나이든 남자와 옥희, 젊은 남자와 옥희가 차를 주차한 주차장을 바라보며 한마디 한다. "산에 오면서 차가지고 오는 사람, 잘 이해가 안되요." 그 주차장을 바라보며 영화 장면을 다시 한 번 그려본다.

그리고 산 입구에 있는 사슴동상도 한 번 바라본다.  나이든 남자와 옥희는 사슴을 보고 한마디씩 했고, 젊은 남자와 옥희는 사슴을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나는, "이 사슴 쇠로 만든걸까요? 아님 종이? 밤에는 조명도 들어오나봐요." 그리고 별 생각하지 않고 걷는다. 어느 위치에서 카메라를 잡았을까? 비오는날 옥희와 옥희의 친구가 우산을 들고 함께 걷던 길이 이 길일까? 생각을 하며 내가 돌아온 길을 다시 되돌아 본다.



얼마 안가니 나이든 남자와 옥희가 올려다 봤을 법한 잘생긴 소나무가 보이고, 젊은 남자와 옥희가 키스를 한 바위 언덕이 보인다. "아니 이 사람들 여기까지 밖에 안 오고 돌아간거야. 나이든 남자는 정말 '나이'때문에 산행을 시작한지 30여분도 안된 시점에서 내려가자고 한 것일까?" 영화 속 시간 개념과 현실 시간 개념을 따져 묻다가 굳이 뭐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을 하며 잘생긴 소나무에 집착을 한다. "잘생긴 소나무라면 어떤 소나무일까?" '하하하'에서 성옥(문소리)이 문화재 해설을 하던 통영 제승당에 있는 소나무 정도되야지 잘 생긴 소나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통영 제승당의 소나무처럼 붉은 표피에 쭉쭉 뻗은 소나무는 아차산 바위언덕자락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이든 남자의 소박함에 괜시리 마음이 짠해진다. 

주차장, 아차산 입구, 잘생긴 소나무, 바위언덕 그리고 화장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경은 30분이라는 현실 시간 개념안에서 모두 등장한다. 세인물이 모두 다녀갔던 화장실은 공사 중인 듯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영화에 얽힌 걸음을 그만두고, 영화 속 시간을 탈피하여 나의 시간 속 아차산 길을 오른다. 높지 않지만 능선을 따라 걸으면 꽤 장시간 걸을 수 있을 듯한 산, 서울의 동서남북이 한 눈에 다 들여다 보이는 산, 한강과 가까이 있는 아차산은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총 1시간 30분 정도 걸었을까? 운동화에 점퍼 그리고 청바지, 간단한 차림이어 장시간 걷진 못했다. 아니 의상의 핑계라기보다는 그 이상 걸을 의지가 없었다. 탁트인 풍경을 눈앞에 두고 생각을 했다. "나도 영화 만들고 싶다." 한강이 시원하게 보이는 산 어디즘에 앉아 그에게 제안을 했다. "졸업하기 전에 영화 한 편 같이 만들어 보는 것 어때요?" 연애가 끝나고 상대에게 계속해서 질척거리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가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다. 영화 생각을 해야겠다. 아차산 휴게소에서 잔치국수 두그릇에 막걸리 한병을 시켜 먹고 살짝 알딸딸한 기운에 산을 내려온다.

땡스, 옥희의 영화! 땡스 홍상수! 
2010. 10. 13. 01:03
772호 씨네21의 표지모델은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이었다. 나비텍타이에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김동호 위원장 특유의 미소가 표지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리고 함께 담겨 있던 문구, 땡큐! 미스터 킴_부산영화제를 떠나는 김동호 위원장의 15년.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결같이 기억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동호 위원장은 그런 사람이었나보다. 술과 함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산의 밤을 채운 사람 김동호. 진정성을 가진 사람 김동호. 그런 그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과 공들인 이별이 이번 영화제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번 부산영화제의 트레일러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시작 전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번 트레일러 필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찡, 마음이 짠해졌다.


2008년 야외에서 야외 상영을 하던 당시 갑자기 영화가 멈췄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상영사고가 발생했을 때 김동호 위원장은 영화제 모든 스텝들을 상영장으로 데리고 와서 관객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었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서 나는 영화제 자체를, 영화제를 찾아온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6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새벽 2시가 넘어 도착한 해운대에서 먹은 뻘건 떡볶이와 끝이 살짝 마른 오뎅은 꿀 맛같았다. 비가 내려서 더 떡볶이와 오뎅이 맛났었나 보다.

+ 그랜드 호텔 뒤편 미나미 오뎅의 오뎅 국물은 짭쪼롬하니 1년에 한 번 정도 먹는 쏘주를 쭉쭉 들이키게 했다.

+ 술을 먹고 다음날 힘들어 하는 B군에게 여명808을 선물했다. 숙취에 힘들어 하는 B군이 안스러운 마음에 그리고 여명808의 간증을 바로 확인해보고픈 마음에 B군에게 여명808을 선물했다. ^-^;

+ 속 씨원한 대구탕은 정말 속 씨원했다.

+ 해운대의 수많은 호텔과 모텔 사이에 '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작은 여관촌이 있었다. 삼성장과 현대장 그 거물(?) '장'들 속에 꿋꿋하게 자리잡고 있는 '신신장'이 나는 참 좋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오래된 욕조와 타일이 있는 화장실이 나오고, 이불엔 담배빵이 있지만 커다란 창으로 아침이면 햇살이 따스이 들어오고 락스냄새 대신 비누냄새가 나는 수건이 있어서 좋았다. 고마왔어요! 신신장!


+ 새벽에 도착하고 낮시간 동안에는 영화보러 쫓아다니느라 밤바다만 보다가 4일째 되는 날 비로소야 푸른빛의 바다를 볼 수 있었다.


+ 마지막 사진은 무언가 술주정뱅이(?) 같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누워있던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2010. 10. 13. 00:40
부산영화제가 올해로 15번째를 맞았다고 한다. 오랜시간동안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부산영화제가 괜시리 자랑스러웠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나중에 꼭 부산에 가야지!"라고 마음먹곤 했었고, 가난한 시절(지금도 가난하지만)엔 부천극제판타스틱영화제를 다녀오며 대리만족했었다.  08년에 이어 올해 다행히도 다시 방문하게 된 부산, 반가왔다! 안녕! 부산. :)




올해는 총 5편의 영화를 봤다. 첫번째 영화는 바람이 나를 데려다 주리라(Let the Wind Carry Me) 대만의 거장 촬영감독 리핀빙의 카메라를 관찰하는 다큐멘터리였다. 허우 샤오시엔과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온 리핀빙 촬영감독의 카메라를 또 다른 카메라가 관찰한다는 설정이 매우 흥미로왔다. 하지만 영화는 스크린 밖의 풍경을, 리핀빙 촬영감독의 철학을 면밀하게 담아내지 못했다. '열정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소중한 존재는 가족이다.'라는 지나치게 강렬한 메시지가 마치 계몽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했다.  




두번째 영화는 여름이 없었던 해(Year Whiout a Summer) 말레이사아를 대표하는 여성감독 탄추무이의 신작. 여성감독의 영화라는 말에 기대가 상당히 컸다.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클까? 힘이 지나치게 들어간 예술영화는 힘들다. 영화 속 밀림 풍경과 영화 속 설화(인어이야기)는 아핏차퐁위라세타쿤 엉클분미를 연상케 했다. 두 영화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름이 없었던 해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까? 그래도 여름이 없었던 해 덕분에 엉클분미를 다시 봐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게 된다. 




세번째 영화는 지아장커 감독의 상해전기(I wish I Knew) 극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극영화적 연출이 존재하는 다큐멘터리라고 불러도 될까? 이번 영화를 보면서 지아장커 감독의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상하이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모인 상하이. 상하이를 보면서 괜시리 통영이 떠올랐다. 




네번째 영화는 플랑드르의 아기 예수(Little Baby Jesus of Flandr). 대단한 씨네필들의 활약은 영화 예매 행위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어찌나 모두들 재빠른지, 보고싶은 영화를 예매하지 못하고 선택하게 된 영화가 플랑드르의 아기예수였다. 영화 정보가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 선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중의 하나가 영화제목이다. 그런데 플랑드르의 아기예수는 제목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래서 솔직히 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크기의 스크린에 담긴 동유럽의 겨울 풍경 그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이번 영화를 보며 깨달았다. 예수의 탄생 그리고 신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 악마의 유혹에 현혹되는 사람.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나는 이 영화를 서술한다. 그래도 될까?




다섯번째 영화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장률 감독의 두만강(Dooman River)이었다. 영화를 보고 감독이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현실을 징그러울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감독이 무서웠다. 아니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어쩌면 그는 극적인 연출 즉 영화적 서술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보면서 지금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이야기만은 제발 영화속에 등장하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영화는 한 여성의 성폭력피해와 그로 인한 임신을 영화속에 등장시켰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