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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책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72건
2011. 11. 9. 00:46
얼마전 점심시간 낭미와 은행볼일을 보러 가는 길, 김종관 감독의 단편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낭미는 맛깔스럽게 그녀가 본 영화들을 묘사하였고 난 보지 못한 그의 영화들이 궁금해졌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의 영화들을 찾아 보았다. 그중 <폴라로이드 작동법>, <누구나 외로운 계절>, <메모리즈>가 좋았다. <누구나 외로운 계절>의 자막과 <메모리즈>의 자막은 감독의 생각이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그리고 <올가을의 트렌드>는 아주 잠깐 홍상수를 연상케했고(배경이 북촌이라서 그런건가?) 윤성호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나는 김종관보다는 윤성호가 쬐끔 더 좋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김종관감독의 단편 영화들을 다 보고 나의 영화<회춘>을 다시 보았다. 다시 보니 상당히 오글거렸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몇몇 장면은 좋다고 위안을 한다. 그리고 올 겨울에도 반드시 영화 한 편을 만들겠다고 다짐해본다.

김종관 감독의 다른 단편들이 보고 싶다면, 김종관 감독의 블로그로! http://blog.naver.com/monologue707
 

한국영상자료원에 대한 단상 - 메모리즈(2008)
연출 김종관  
출연 이석호 김아림  
촬영 김화영
녹음 정현수
음악 김태성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연출/촬영  김종관
시나리오    김종관
동시녹음    박준오
조명          하진수
색보정       조현주
배우          정유미
                이정민

2011. 10. 23. 00:10


매주 목요일마다 개봉영화 리스트가 업데이트 되면 '이 영화는 꼭 보고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한편씩있다. 그중 하나가 소지섭, 한효주 주연의 <오직 그대만>이었다. 소지섭과 한효주는 영화 개봉시기 텔레비전, 잡지 인터뷰 등에서 한결같이 "가슴찡한 멜로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괜시리 끌렸었다. '이 영화는 다른 욕심부리지 않고, 오로지 뭉근하게 멜로만을 담은 영화입니다, 멜로영화를 보고싶다면 <오직 그대만>을 보러 극장에 오십시요.'라고 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두번째 이유는 송일곤 감독의 영화이기때문이었다. 90년대 후반 단편영화 <간과 감자>, <소풍>으로 내게 각인되었던 사람, 그 이후 그의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되뇌었지만 제대로 본 영화가 한편이 없었다. 그리고 십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의 영화를 보게되었다. 그의 필모그래프를 보면서, 지금 현재 그간의 영화들과는 다른 <오직 그대만>을 그는 어떤 심정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해졌다. 최근 그의 인터뷰 글을 챙겨봐야겠다.
 
영화는 전직복싱선수였던 남자와 시력을 잃은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한문장이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말해준다. 이 이야기 외에 다른 이야기는 개입되지 않고 영화는 소지섭과 한효주 두 사람으로 가득 채워져 진행된다. 원래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울면 영화를 만든이들의 의도에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슬픈장면이 나와도 이 악물고 울지않는 편인데 이번엔 속수무책으로 한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져나와 버렸다. 세상이 보이지 않는 여자 정화는 전직 복서인 철민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철민을 바라보며 아저씨를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눈을 뜨면 아저씨를 알아볼 것이라고 말한다. 철민은 정화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목숨을 건 격투경기에 참가하고, 철민의 희생으로 정화는 눈을 뜨게된다. 하지만 철민은 사고로 그녀에게 갈 수 없게 된다. 시력을 찾은 정화는 2년 후 우연히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철민을 만나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철민과 정화가 함께 기르던 개 '딩가'는 철민을 알아보지만 정화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알고있다. 그녀 앞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후진' 철민은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그녀를 등지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울긴했어도 영화를 보면 운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2011년, <오직 그대만>이 빛나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작정하고 관객들을 울리는 멜로영화가 되겠다는 그 다짐때문이었다. 90년대 후반 한국영화는 멜로 영화의 판이었다. 내게 영화의 매력을 알려준 <접속>을 시작으로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약속>까지 '나 멜로영화다잉!'이라고 말하는 영화들이 줄지었고 특히 <접속>을 제외한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약속>은 '나 신파다잉!'이라고 말하며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를 두고 죽어야하는 운명을 가지고 관객들의 눈물, 콧물을 쏘옥 빼놓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조금은 다른 맥락으로 관객에게 접근하기는 하였다.) 그렇게 90년대 후반 멜로영화의 판이 이어지다가 한동안 '저는 눈물, 콧물 쏙 빼는 멜로영화입니다.'라고 말하는 영화는 드물었다. 십년이 훌쩍 지난 2011년 '나 멜로영화다잉!'이라고 말하는 <오직 그대만>이 반갑고 신선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아니 나는 눈물 쏙 빼는 멜로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그대만>이 빛나는 두번째 이유는 기존의 신파 멜로영화 공식과 달리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결말때문이었다. 영화 예고편을 보면서 소지섭은 한효주의 눈을 뜨게하기 위해 격하게 싸우고 맞다가 결국 죽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나의 예상과 달리 정화와 철민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그 장소에서 다시 재회한다. 정화는 "아저씨 나 다시 눈 뜨면 아저씨 얼굴만 보기로 했는데 왜 하루종일 내 얼굴만 보게 만들었어요."라고 말하며 투정부리면서도 그를 다시 만난 것에 벅차 그를 바라보고, 철민은 그녀 앞에 다시는 설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눈앞에 그녀가 서서 그의 이름을 부른 것에 벅차 그녀를 바라본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끝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준 송일곤 감독에게 고마왔다. 그와 그녀가 다시 만나 그간의 그리움을 토로하고, 그 시간을 함께 위로할 수 있는 '앞으로'가 그들 앞에 있다는 것이 나는 고마왔다.

주말 오후 도심 한복판 울 준비를 하고 온 사람들로 가득찬 극장은 팝콘 씹는 소리와 떵떵거리는 광고 속에 썩인 사람들의 속삭임과 사람들의 체온으로 후끈했다. 극장을 찾은 사람들 중 나와같은 마음으로 온 사람들이 꽤 있겠지? 그 생각을 하니 영화를 보는 동안 누군가들의 훌쩍임이 괜시리 위로가 되었다.

+ 소지섭과 한효주는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두배우가 참 잘나고 이뻤고 두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정화가 사는 집과 철민이 살았던 집의 보증금만 빼도 수술비 3,000만원은 거뜬히 마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한강을 조망권으로 둔 집의 전세값은 꽤 될텐데 말이다.
+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정화가 직장 상사의 성희롱으로 사표를 쓰게된다. 사표를 쓰는 정화를 보면서 사표를 쓰게되는 이땅의 또다른 그녀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않았다.
+ 사표를 쓴 이후 정화가 다시 다른 일을 하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철민이 복싱(격투기)을 다시 시작하고 생수배달을 하는 것처럼, 정화도 또 다른 일을 하면서 철민과 알콩달콩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둘이 사랑에 빠지고 동거를 시작하면서 철민은 부양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고, 정화는 집에서 살림을 전담하는 전업주부로 그려지는 것같아 영 탐탁지않았다.    
+ 정화와 철민이 서로 키스하는 장면에서 빛이 너무 과했던 것, 나는 그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감독님 이 연출은 너무 과했지요?     

                                                                                                          - 송일곤 감독 씨네21인터뷰

2011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진한 사랑이야기
개막작 <오직 그대만> 연출한 송일곤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오직 그대만>은 전직 복서와 시각장애인 여성의 사랑이야기다. 캐릭터와 내용을 볼 것도 없이, 제목만으로도 통속과 상투 등의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직 그대만>을 연출한 이는 <마법사들> <거미숲> <깃> 등을 통해 아예 실험적이거나, 상업영화 안에서 자기만의 기묘한 세계를 담아왔던 송일곤 감독이다. 개막작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그에게 주로 ‘의외의 선택’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다.

-영화의 전당 야외상영관에서 공식 상영되는 첫 영화다.
=어제 스텝들과 함께 사운드 테스트를 하면서 봤는데 매우 놀랐다. 이 공간이 한국영화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될 것 같다. 이런 곳에서 우리 영화가 처음 상영된다는 게 기분이 묘하더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영광이었다.

-<오직 그대만>은 전작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성격이 다른 작품이다.
=일단 도시를 배경으로 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친한 장현성이라는 배우가 조그만 주차박스에서 한 남자가 주차 관리원을 하고 한 여자가 드라마를 보기 위해 매일매일 주차박스를 찾는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 이야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아이템이 좋았던 게 주차박스라는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데 주차박스에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또 하나의 출발은 찰리 채플린의 <시티라이트>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다. <오직 그대만>도 2011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위해 사랑을 바치고,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이야기가 됐으면 했다.

-이야기는 통속적이지만, 진부한 통속성을 벗어나려한 연출이 눈에 띄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그리고 연출을 하는 과정에서 주안점을 둔 건 무엇이었나.
=일단 시나리오는 매우 짧은 시간에 썼다. 초고를 1주일 만에 썼으니까. 그런데 말 한대로 너무나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하더라. 고심한 끝에 무엇보다 장철민과 하정화라는 두 캐릭터의 진심이 관객에게 잘 전달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직 그대만>이 배우 의존도가 높은 영화가 된 게 그 때문이다. 훌륭한 조연들이 있지만, 소지섭과 한효주는 이 영화 속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끌고 간다. 이들이 안 나오는 장면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그때그때 순간의 진실한 감정을 담아야했고, 그래서 그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가장 큰 중점을 두었다.

-<오직 그대만>은 사실상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 전에 만들던 작품의 성격 때문에라도 이러한 결말이 과연 맨 처음 의도였을지 궁금해지더라.
=마지막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도 시대에 맞게 변주되면서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런 이야기를 지금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감정으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앞부분의 모든 장면들이 마지막 컷을 위해 달려가도록 대본을 썼고, 촬영했다.

-주인공의 직업과 공간 등에 담겨있는 사회적인 여러 단상이 눈에 띄었다.
=나로서는 인물들만큼이나 지금의 도시가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철민이 생수를 배달하는 일이나, 정화가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설정은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미지들이 배우의 뒤에 배치되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하는 감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진짜 중요한 감정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시대 아닌가. 영화도 자극적인 영화만 나오고 있고,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모든 게 극한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해오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망각하고 있다. 온갖 욕망으로 점철된 도시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랑이란 감정도 먼 구세대의 소유물이 된 것 같다. 가장 보편적이고 단순한 감정의 이야기를 먼저 드러내고 싶었다. 이 영화의 감성이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유효할 수 있다고 본다.

-스스로 전작들과 비교하자면 <오직 그대만>은 어떤 의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내가 아직은 젊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일찍 시작했을 뿐이다. 그리고 처음 10년 정도는 내가 꿈꾸던 영화를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만들었다. 하지만 <오직 그대만>에도 내가 꿈꾸는 영화의 요소들은 모두 들어가 있다. 단지 스타일상의 변화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스타일이 꼭 그리 중요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무엇보다 장철민, 하정화란 캐릭터를 두 배우에게 이입시켜서 관객들에게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적인 스타일은 내용에 따라 어떻게든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내 영화들이 조그만 공방에서 빚어낸 도자기 같은 작품이었다면, <오직 그대만>은 더 무게 있고, 더 크고, 더 손이 많이 간 작품일 거다.


 


+ <오직 그대만> 사진들을 보다가 재미있는 한장 발견, 한효주는 뒷모습만 보이고 한효주를 향해 바라보는 대중들의 얼굴엔 다들 미소가 가득이다. 흐흐흐- 연예인을 보는 즐거움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므흣하다. 사진을 클릭해서 크게 한 번 보세요. ㅎ 한효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소지섭이겠지? ㅋ
2011. 8. 23. 10:02
뮤지컬 <빨래>를 다시, 보는 회원들이 있습니다. 수줍게 전화 걸어 빨래를 홍보하다가 "아 그거 봤는데?"라는 답변에 민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또 볼 수 있다던 그/녀들의 쏘쿨함 때문!

아 민우 사랑 따뜻해, 또 볼 수 있다니 화끈해!

회원 여러분 혹시 표팔다 "나 그거 봤어~"라는 말에 우물쭈물 답변 못하고 뻘쭘하신 적 있다구요?그럼 우리 오매에게 물어보아요. 다시 빨래를 보는 이유?

Q. 뮤지컬 '빨래', 언제 처음, 총 몇 회 보았나?
오매 : 처음 본 건 빨래 2회차 공연 때 쯤인가 우연히 대학로에 공연보러 갔다가 파란 하늘에 하얀 빨래가 걸려있는 포스터가 인상적이었고 왠지 느낌이 팍! 와서 보게 됐다. 그 뒤로 6-7번 정도 본 것 같다.(와와 놀랍다)

대충 가볍고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Q. 왜 같은 공연을 그렇게 여러 번 보게 됐는지?
오매 :
 첫 공연 봤을 때 팜플렛을 보고 연출자인 추민주 감독의 스토리에 감동했다. 당시 누군지 잘 몰랐지만  뮤지컬을 좋아하게 된 어떤 여자(추 감독)가 자신의 졸업 작품으로, 너무 다른 세 여자가 힘든 얘길 하면서도 서로 위로하며 함께 안드로메다로 가는(?) 이야기를 스토리로 쓰고 작사와 작곡을 하여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정말 좋더라.

'아 이 감독은 졸업 작품을 만들면서도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의기투합해서 이런 작품을 계속 공연할 수 있는 제작사를 만들고 하는 게 멋있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게다가 구성도 너무 최루성이거나 신파적이지 않고, 교훈적이면서도 교훈적이지만은 않은, 상처나 고통을 얘기하면서도 대충 가볍게 다루지 않고 마냥 아름답게만 마무리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다보니 한 번 보게된 후 또 누군가 다른 사람과 또 한 번 같이 보게 되고, 그 다음엔 새로운 회차가 나왔을 때 '연출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어떤 노래가 새로 나올까'하는 궁금증으로 계속 보게된 것 같다.

일상의 노동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Q. 뮤지컬 '빨래', 추천 포인트는?
오매 : 누구든지 빨래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공감하게 되는 작품. 이 작품을 통해 희망을 갖게 되는 거 같달까? (이런 표현 정말 쓰고 싶지 않지만 ^^;) 자기가 빨래를 하지 않으면 입을 옷이 없는 사람들, 남편 옷을 빨아줘야 한다든가 아이 기저귀를 빨아야 한다든가.. 비오면 하기 힘들고 말리기도 어렵고, 혹은 반지하에 살면 잘 마르지도 않고..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어김없이 해야하는 그 일상의 노동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계속 살면서도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한 마디로 '빨래'가 단순히 그냥 '빨래'가 아니게 되는!

Q. 공연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오매 :  특별히 꼽아서 좋아하는 인물은 없지만.. 동대문에서 옷 장사하면서 세들어 사는 언니와 주인 할매의 관계가 좋은 듯. 그 언니가 매 번 월세를 못 내서 자기가 장사하는 옷이나 스카프 같은 걸 할매한테 갖다주고 하는데 그러면서 서로 없이 사는 사람들끼리 아웅다웅 알콩달콩하는 그 '케미'가 좋더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듯는 그런 관계의 느낌.

Q. 뮤지컬 작품이다보니 노래가 많이 나오는데, 가장 좋아하는 곡은?
오매 : 1부 쉬는 시간 직전에 주인공들이 욕지기가 나올만큼 힘든 순간 마을버스를 타고, 그때 마을버스에서 승객들과 다같이 노래부르는 장면이 있다. 비오는 날 산동네를 올라가는 마을버스 안에서 다들 오는 비를 그냥 맞아버리고 싶고, 그 비가 다 돈이었음 좋겠고 완전히 가라앉은 상태에서 건드리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상황에서 시작하는 노래인데 노래 뒷 부분에 하늘의 먹구름 사이로 빛 한 줄기가 새어나오면서 마무리 된다. 그 노래와 장면이 굉장히 위로가 되는 느낌이더라. 그 곡을 제일 좋아한다.

여자들의 감성과 유머와 연대로

Q. 마지막으로 민우회 후원공연 '빨래'를 보러오실 분들께 한 마디
오매 : 경제도 정치도 이렇게 팍팍하고, 빈곤문제, 청년문제, 이주문제 등 여러가지 사회적 사안들이 많은 시기에 여자들의 감성과 시선과 유머와 연대로 세상에 대해 이렇게 안아줄 수 있다는 작품이 있다는 게 참 자랑스럽다. 우리 자신을 위로하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여자들의 우정이 다른 사람에게도 유머와 따뜻한 웃음을 주고 그것으로 하루를 더 살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

 "아마 그 누구와 함께 봐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2011. 8. 23. 01:51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로는 허준, 대장금, 선덕여왕과 같은 대하드라마가 있었고, '나 드라마입니다.'라고 말하는 뻔하디 뻔한 드라마들과 막장드라마가 있었다. 그러고보면 마니아 층이 두터운 드라마들은 잘 보지 않았다. 내게 있어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라 환타지라는 인식이 명확했기에 난 머나먼 과거를 그리고 충분히 다음 장면이 예상가능하고 갈때까지 가는 드라마에 더 끌렸던 것이다. 

민우회 점심시간에 맛있는 찬거리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중 하나가 바로 '드라마'이다. 선덕여왕, 성균관 스캔들, 시크릿가든, 49일, 내마음이 들리니 등등 우리는 점심시간에 드라마 속 캐릭터에 대해 논하고 아쉬움을 말하고 장면을 재해석하면서 드라마를 단순히 보여지는 것을 뛰어넘어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활동가들 재각각의 해석과 시각은 별 흥미없던 드라마를 보게끔하는 힘을 발휘하였다. 몇몇 활동가들의 드라마를 보는 시각은 신선하고 재미있고 아, 이렇게 해석할 수 있고 이런 지점이 비판 지점이구나라고 생각하게끔 한다. 그래서 난 몇몇 민우회 활동가들이 드라마를 보고 글을 써주면 좋겠다고 혼자 상상한다. 그녀들이 글을 써준다면 이는 사회적으로도 분명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고,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더욱 증가시킬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활동가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나누는 맛난 드라마 이야기덕에 요즘에 챙겨보는 드라마가 생겼다. 바로 김선아 주연의 <여인의 향기> 지난 이틀 동안 1회부터 10회까지 보았으니 폭풍처럼 몰아봤다. 드라마 몰아보기가 익숙지 않은 내가 쉬이 놓지 못하고 계속 보게 된 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 주인공과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이라는 굵직한 스토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않는 레파토리이다. 일단은 뻔한 구성이 통속적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의 흥미를 끌었다. 그 통속적 뼈대 안에서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이 '네가 좋은데 어떡하지?'라는 감정을 때로는 달달하게 때로는 조마조마하게 주고받는 것을 적절한 음악과 영화같은 화면으로 세련되게 연출한 것이 내가 이 드라마를 챙겨보게 된 첫번째 힘이었다.   

두번째 힘은 드라마 속 주인공 외에도 주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공있는 캐릭터와 연기에 있었다. 주인공의 가족이지만, 주인공의 친구이지만, 주인공의 동료이지만, 혹은 아주 잠깐 등장하지만, 대사가 얼마 없지만, 한 번 나오고 마는 단편적 인물들이지만 작은 배역 안에 그 인물의 역사와 시간을 추측하게끔하거나 그 인물을 궁금하게끔 작가는 인물들에게 캐릭터를 심어주고 숨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작은 배역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덧해서 그 작은 배역을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조합이 나는 좋았다. 특히 은석의 병원에서 일하는 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는 그 간호사와 연재가 탱고를 배우고 있는 수에뇨의 베로니카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던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워두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었다. 보통 비극적 결말이더라도 시청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극적으로 주인공을 살린다거나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시크릿가든이 대박이었지.-_-;)류의 판이 가득한 드라마 시장에서 6개월 뒤에 주인공이 죽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드라마를 끌어가는 방식은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끔 만들었다. 이 생이 영원할 것만 같다고 느끼는 우리에게 '이 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6개월 밖에 살지못한다는 판정을 받은 연재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죽기전에 꼭 해야하는 스무가지. 첫번째 연재의 리스트는 '하루에 한 번씩 엄마를 웃게 만들기'였다. 마냥 좋다, 사랑한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존재인 엄마, 하지만 더이상 내 곁에 없다는 것을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존재인 엄마를 먼저 떠나는 연재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동안만은 엄마를 하루에 한 번씩 웃게 만들자고 약속한다. 그 약속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혼자 남겨지는 아버지를 위해 리모콘 작동법을 꼼꼼히 적어내려가는 한석규의 모습도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또다른 연재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탱고배우기'였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하나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는 '언제 한번 그토록 배워보고 싶어하는 방송댄스를 배워보나?'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이 드라마의 세번째 매력은 기획의도에서도 뻔히 드러나는 것으로, 작정하고 노리는 것이기에 무게감 있으면서도 가볍고, 파급력이 클듯하면서도 그 파장은 미약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 할말이 생기는 것이다.

왜 연재는 버킷리스트(욕망)는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일까? 스스로를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연재는 1등석 비행기를 타고, 명품 옷을 입고, 오키나와라는 휴양지에서 끊임없이 소비한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망설이지 않고 먹고 입고 산다. 죽기전에 꼭 해야하는 것들이 돈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것들로 구성된다는 것이 뭔가 씁쓸했다. 한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해왔으니 적금도 넣고, 보험도 들고, 퇴직금도 있어서 그래도 연재는 남은 6개월 동안 충분히 소비하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 근근한 나는, 2년에 한번씩 메뚜기 처럼 직장을 옮겨다녀야 하는 그는 연재를 보며 씁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연재가 재벌2세가 아니라 무직의 어떤이와 사랑에 빠졌다면, '영화처럼 데이트해보기'라는 욕망은 또 어떻게 실현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왜 꼭 '영화처럼 데이트해보기'의 대명사로 돈 많은 재벌남이 가난한 거리의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그녀에게 온갖가지 옷을 입히고 사주는 영화, <귀여운 여인>이 되어야 하는가!

<여인의 향기> 홈페이지에 가면 기획의도로 이렇게 쓰여 있다. "주인공을 통해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올지도 모를 죽음, 혹은 30년 뒤 찾아올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좋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드라마." 연재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만약에 나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할지 잠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신선한 질문이고 시청자들에게 제각각 의미있게 다가갈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과감히 질문하지만 답하는 것은 너무나도 뻔하디 뻔해서 실망스러웠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하나 실행하면서 죽음을 맞이 하고 있는 연재에게 어느날 갑자기 사랑이 찾아 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연재는 그 사랑때문에 죽도록 살고 싶어지고,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그 사랑때문에 은석에게 살려달라며 눈물범벅을 보인다. 생을 마무리하기 위한 여러 과정들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연재는 '사랑'과 '연애'만이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아무리 다르게 해석하려고 해도 10회는 이렇게 읽을 수 밖에 없다.) 

10회를 보면서 생각을 했다. '사랑' '연애'가 아니고서는 드라마를 이끌어가기 힘든걸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사랑이 없으면 존재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선 해야할 것, 원망할 것, 미워할 것, 아껴야할 것, 사랑할 것 등 오만가지 감정들과 생각들로 그야말로 시간이 빠듯할텐데 10회의 연재는 오로지 강지욱만을 본다. 그것이 나는 안타까왔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그 안타까움을 달래본다. '그래, 한 회 정도는 그럴 수 있겠지...아직 드라마가 끝난것이 아니니. 여기에서 실망하는 것은 이르겠지. 아직 10회잖아. 6회나 더 남았으니.' 그리고 앞으로 전개 될 이야기는 제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모든 것을 다하다가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잠드는 것만으로만 채워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지금까지 직접 작가를 검색해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아주 드문데 <여인의 향기>를 보면서 작가 이름을 눈여겨 보고, 작가 이름을 검색해보고 그랬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인의 향기>는 내게는 조금 특별한 드라마이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노지설 작가가 드라마를 좀 더 잘 만들어 주었으면 바래보고 또 또 끝까지 이 드라마를 챙겨보겠다고 마음 먹는다. 

+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8할은 힘은 드라마에 대한 애정과 남다른 시각을 가진 '너굴님'으로 부터! ㅋ 
2011. 6. 13. 21:47

요즘 블로그 업데이트가 참 뜸하다. 여름이 다가와서 그런지 모든 것들이 다 귀찮아지는 듯하다. 트위터도 로그인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의지를 가지고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은 만화책보기와 영화보기 정도. 그런데 이것들도 보는 것에 그 행위를 그치고 말고 있구나.

내가 좋아라하는 만화 리스트나 끄적거려볼까?

요시나가 후미
서양골동양과자점
플라워 오브 라이프
어제 뭐 먹었어? (0)
오후쿠
사랑해야하는 딸들 (0)

아사노 이니오
소라닌 (0)
이 멋진 세상 (0)
니지가하라 홀로그래프 (0)
잘자 뿡뿡

아베야로
심야식당 (0)

조주희
키친 (0)

이토준지
이토준지의 욘&무 (0)

키리코 나나난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포레스트 (0)

채민
그녀의 완벽한 하루

토요타 미노루
러브로마 (0)

한혜연
그녀들의 크리스마스
애총


리스트를 쫙 적어 놓기만 해도 뭔가 기분이 좋아진다. 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책장 하나는 만화책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아직 내가 알아야 할 만화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끝없겠지만 이 작품들을 만나서 얼마나 행운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요시나가 후미&아사노 이니오&이가라시 다이스케 이 세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머지 분들에게도 진정한 고마움을. 보물같은 만화를 알고 계시는 분들, 제게 퐉퐉 소개해주세요! +ㅗ+

+ 블로깅을 하니 뭔가 기운이 나는 것 같다! 하하-뭔가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분이다! 하하-

2011. 5. 25. 01:29


'신'이라는 존재는 무엇이고 나는 '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데비치>, 오랜만에 아주 강렬한 영화를 보았다. 오로지 주님만이 나의 사랑이고, 주님의 사랑을 끝없이 갈망하는 소녀 하데비치. 한 겨울에 부러 옷을 입지 않고, 먹지 않고, 수녀원에서 고행과 수행을 하며 금욕을 실천하는 하데비치. 하지만 그녀는 '자기애'에 대한 욕구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수녀원을 나갈 것을 권유받는다.

수녀원을 나와 프랑스 파리 한 복판, 고급 주택가에서 셀린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하데비치. '신'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도 변함이 없다. 하데비치는 우연히 이슬람 청년 나시르를 만나면서 '신'과 '자아'에 대한 사유를 끊임없이 공유하게 된다. 나시르와 이슬람에 가게 된 하데비치는 '신'과 함께 '신'안에서 끊임없이 투쟁을 할 것을 나시르와 나시르의 친구들 앞에서 맹세한다. 그리고 하데비치는 나시르와 함께 파리 한복판 지하철 테러를 감행한다. 영화는 테러에 대한 암시를 전혀 하지 않는다. 아니 나만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일까? 지하철을 타는 하데비치와 나시르를 잡은 카메라는 순간 개선문을 보여주고 몇초지나지 않고 '펑', 굉음과 함께 하얀 먼지 기둥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장면이기에 놀랐다. 그 이후 하데비치는 다시 수녀원으로 돌아가고,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신'에게 울음을 토하며 '신'의 존재를 묻고 또 묻는다. 결국 초원의 늪에 몸을 던지는 하데비치. '그녀가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죽음의 늪에 빠진 그녀를 '사람'이 구한다. 물속에 빠진 하데비치를 끌어올린 것은 사람중에서도 '죄인', 전직 수감자였다. 하데비치는 자신을 구원한 이를 있는 힘껏 끌어안고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신'이란 무엇인가? '신'과 '사람', '사람'과 '신'에 대해서.

+ <하데비치>를 보면서 정성일 감독의 영화 <까페 느와르>가 생각났다. 영화 첫 시작, 기도하는 자세로 햄버거를 먹으며 '신'을 이야기하던 소녀는 하데비치를 닮았다.

+ 그리고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생각났다. 당시 영화를 보고 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본다.
                                                                              - 2007년 6월 8일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보고 

영화가 시작된다. 닮은 패턴이다. 카메라는 길위를 달린다. 음악이 흐른다. 아 이 느낌_
영화가 끝났다. 노란 햇볕이 마른 강아지풀의 그림자를 만든다. 음악이 흐른다. 아 이 느낌_

징글징글한 이 느낌.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일주일 내내 언론이 떠들석한다. 월드스타, 칸의 여신. 뛰어난 연기로 국위를 선양한 배우 전도연. 가판대의 기사를 접한 거리의 노숙자도 미간 사이의 찡긋한 그녀의 귀여운 미소에 화답을 한다.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년 월드컵 이후 다시 한번 스멀스멀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이곳저곳을 뒤져보아도 "영화" 밀양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란 쉽지않다. 딱 두가지 이야기만 존재할 뿐. "고통스러운 영화이다. 칸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모든 이야기를 뒤로하고 나는 내게 묻는다.
"넌 어떻게 보았니?"

이창동감독의 전작. 박하사탕, 오아시스(초록물고기는 보지 않았기에 뭐라 말할 수가 없다.) 보는 내내 내게 씁쓸함을 안겨주었던 영화들. 인간의 순수성을 하나 둘 잃어가는 모습을 시간의 역구성을 통해 이야기했던 박하사탕을 보며 나는 나의 마흔다섯살을 두려워했다. 어쩌면 속물 소리를 들으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사로 잡았다.(여전히도 그 두려움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오아시스,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봐야한다는 개인적 사명을 띠고 영화 러닝타임 내내 영화를 쏘아보았기에 이 또한 괴로운 시간이었다. 이렇듯 그는 항상 그렇다. 가만히 나를 내버려두지않는다. 보통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현실이라는 징글함을 잊기위한 도피이다. 하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픽션은 오늘만이 존재하고, 이러한 그의 영화는 그를 찾은 관객을 처음부터 끝까지 괴롭힌다. 그런 그임에 알기에 각오하고 객석에 앉았다. 전도연 그녀의 수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평일의 극장.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이 많은 이들은 영화가 끝난 후 무슨 생각을 하며 하얀 스크린을 등지고 나왔을까.

신을 생각한다.
사람을 생각한다.

인류는 언제부터 신의 존재를 믿었을까. 신이 사람을 만든 것일까. 사람이 신을 창조한 것일까. 마지막 장면_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신애의 거울을 들어주던 종찬을 보며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창동 그가 결국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사람"이었을까? 하지만 다시 반문을 한다. 마지막 장면이 그러할 뿐_종찬이 언제까지 신애곁에 머물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밀양(密陽)

"신은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곁에 존재해요. 저 작은 햇볕조각 하나에도 신은 의미를 부여한답니다." 아주 작은 틈사이로도 햇볕이 비집고 들어오듯이, 모든 것을 투영할 듯한 햇볕이 비밀스럽다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그 수식어에서 나는 내 존재의 가증스러움, 우리내 사람들의 알량한 양심을 본다.
모든 것이 쉽다. 죄를 짓는 것도..용서를 구하는 것도..회개도..신에게 세치 혀로 용서를 구하고 기도를 드리면 우리는 새로운 인간이 된다. 그리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잠들기 전 두 손을 모아 기도드리고 다음날 새 인생을 시작한다. "난 새롭게 태어났어요. 신은 저를 용서하였죠." 그렇게 외친다. 결과와 결과만이 존재할 뿐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죄를 씻기위한 고통의 과정은 깔끔하게 편집한채 "저는 신에게서 용서를 구하였어요" 말하며 오늘을 위선으로 똘똘뭉친 모범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의 면죄부, 아니 내가 내게 쥐어주는 면죄부를 꽉 쥐고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창동 그는 신과 인간의 관계맺음. 인간이 규정한 일방적 관계맺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기때문에 신애에게 그리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한 것일까?

습관이 되어버린 나의 기도. 습관이 되어버린 나의 반성. 자기위안...아무의미없는 반복에 회의를 느껴 잠시 기도를 멈춘다. 그리고 방황을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인가?" 언젠가는 나는 성찰이 결여된 나의 질주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신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반복_반복_반복_

하지만 여전히도 햇볕은 내리쬔다.
비밀스럽든, 그렇지아니하든...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fade out. 그리고 나의 한마디.
"아_이창동, 징글징글해."


+ 인류역사상 인간은 '신'을 말하지 않은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 '신'이 주님이 되었든, 예수가 되었든, 알라가 되었든, 부처가 되었든, 무엇무엇이 되었든. 그렇다면 '신'은 어떤 순간에 내게 의미가 되고, 존재로 작동하는 것일까.
2011. 3. 23. 00:03


지난 금요일 다분히 목적성을 가지고 뮤지컬 <빨래>를 보았다. 영화는 잘 챙겨보는 편이지만 뮤지컬과 연극은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입장료가 비쌀뿐만 아니라 작은 소극장에서 배우들의 살아 있는 눈을 응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때문이다. 하지만 연극과 뮤지컬은 살아 있는 생동감을 가지고 있는 매체이긴 확실하다. 배우와 직접 눈을 마주치고 그/녀들의 숨결을 느끼는 행위, 오글거리면서도 짜릿하다. 오랜만에 보는 뮤지컬이라 설렜다.

뮤지컬 <빨래>는 나름의 이유로 제각각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온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나영과 서울에 온지 5년 된 이주노동자 솔롱고와 그/녀들 주변 사람들이 등장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틈틈이 유머로 대중을  극속으로 끌어들인다. (유머코드가 외모와 성을 이유로 한 것들로 종종 표현되기도 한다. -_-;) 공연 시간이 꽤 길었지만 극속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약간 지루해지려고 한다."라고 느끼는 시점에 극은 마무리 되었다. 뮤지컬 <빨래>에 대한 대략의 평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소극장을 나오는 순간, 현실의 씁쓸함에 우울해졌다.

연극을 보고, 알콜 기운에 트윗을 남겼다.

"닮은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위안이 되면서도, 삶의 양태에 있어 어쩔 수 없이 확연한 경계 속에서만 관계 맺고 살아 간다는 결말에 씁쓸함을 느꼈다. 다양한 대안을 찾고 싶다."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몸과 감정, 일상의 모든 면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 나영 또한 예외의 인물이 아니다. 나영은 강릉에서 올라와 서울살이 5년 째, 그동안 7번 이사를 했고, 8번 직장을 옮겨 다녔다. 삐뚫어진 이름표를 바로 잡아주겠다며 은근슬쩍 나영의 가슴을 만지는 사장에게 대놓고 뭐라 하지 못하고, 부당하게 해고 당한 선배를 대신해 한 마디 했다가 엉뚱한 지역으로 발령받고 막막해 하며 우는 나영은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노동자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 모습에 공감하면서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차별 받고 있는 나영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대안에 목말라 했다. 대안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뮤지컬 속 나영이 대신 그 대안을 이야기해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숨죽여 극을 따라 갔다. 하지만 결국엔 "당신은 나와 닮았어요."라는 대사로 시작해, 나영과 솔롱고가 함께 살기로 했다며 옥탑방 옥상에서 행복해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마지막 장면은 나를 씁쓸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작은 옥탑에서 상대의 체온을 느끼는 것은 순간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자본의 경쟁 속에서 한 사람이 느끼는 사회적 관계는 점점 더 고립될 것이고, 자본의 트랙에서 제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여전할 것이기에 나영과 솔롱고의 사랑은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착한 사람들의 슬픔일랑 빨래를 하듯 깨끗이 씻어 버리고 바람결에 툴툴 털어버리라는 메시지는 그래서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제 좌절했어도 오늘 다시 희망을 찾는 에튀튜드를 갖춰야 하는 것인가? 허허실실 웃을 뿐이다.

+ 뮤지컬 <빨래>에 대한 타인들의 리뷰를 읽으면서 '공감'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극 중 인물들에 대한 공감도는 제각각이겠지만 나도 그러했고 '그래도 내 삶은 나영과 솔롱고보다는 나은 삶이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타인의 빈곤과 나의 빈곤을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여성노동자의 70%이상이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띄고 있는데 비정규직 계급 안에서 '내가 더 낫다. 아니다'라고 빈곤을 세분화하는 그림을 누가 먼저 그리고 있는지 우리는 명확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다.  

+ 희정엄마 역의 최가인씨, 그녀의 연기가 눈에 쏙 들어오더라. 좋았다.

2011. 3. 22. 00:53

서울아트시네마 홍보 UCC 공모전에서 1등을 한 정금형씨의 <서울 아트시네마의 옥상>, 아트시네마의 매력을 콕집어 표현한 작품이다. 아트시네마의 옥상은 훌륭한 공간이다. 질투와 함께 속으로 말한다. "좋다." 

2011. 3. 16. 01:02



이윤기 감독 영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여자, 정혜> <멋진 하루> 그의 전작들이 내게 전하는 뭉근한 여운들이 있었다. 조바심 내지 않고 인물들을 따라가는 힘을 이윤기 감독은 가지고 있었다. 감독의 전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힘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속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잔상'일뿐이라는 생각을, 극장을 나오면서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가 가장 안타깝게 느낀 부분은 배우들 이었다. 임수정과 현빈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지만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만약에'라고 먼저 가정하게 되었다. 만약에 두 주인공이 현빈과 임수정이 아니었더라면. 카메라는 묵묵히 영화 속 주인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임수정과 현빈의 연기덕에 스크린 속엔 헤어지기로 결심한 두 남녀의 감정이 스며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만약에'라는 가정을 하였다. 만약에 두 주인공이 그렇게 잘 사는 편이 아니었더라면. 반듯한 세간살이가 갖춰진 집은 그/녀들의 감정을 공감할 수 없게 하는 방해 요소로 작용하였다. '아니 저 두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돈을 벌길래 저 연령대에 저런 집을 소유하고, 파스타 면 삶는 냄비와 같은 익숙지 않은 세간살이를 갖추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태생적으로 잘 사는 집 애들 일 것이야. 자수성가해서 저렇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야.'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동동 떠다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결혼 5년 차 부부, 외국으로 출장가는 여자를 공항으로 데려다 주는 길, 갑자기 여자가 말한다. "나 자기랑 그만 살래." 그말을 들은 남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몇마디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남자는 화를 내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여자는 함께 살던 집을 나오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남자는 말없이 여자가 아끼던 그릇들을 정성스레 싸준다. 함께 살아온 시간에 비례하여 꼭 거창한 이별절차를 밟을 필요는 없겠지만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두 주인공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적이다. 누군가는 영화 속 장면이 차 안에서 여자가 이별을 통보한 후 며칠이 지난 시점이니 표현되지 않은 며칠의 시간 속에 두 남녀는 충분히 격정적 감정을 표출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두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감독은 갇힌 공간 속의 두 사람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속 두 남녀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윤기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위의 이유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이 무의미하기도 하지만, 나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두 사람을 보며 계속 왜, 왜, 왜!라고 묻게 된다. 이는 필연 영화를 보면서 아주 작은 마음의 요동도 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인듯하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보면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보고 <멋진 하루>를 다시 보았다. <멋진 하루>또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멋진 하루>가 보여주는 공간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공간은 어떻게 다를까? <멋진하루>가 보여주는 공간은 누구나 한번즘 스쳐 지나갔을 법한 열린 공간이다. 익숙한 서울 풍경, 익숙하기에 지나치고 갈법한 골목과 도로를 카메라는 상투적이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공간은 '누군가만의' 닫힌 공간이다. 서울의 외곽, 출판단지에 위치한 두 사람의 빌라 내부만을 영화는 담는다. 그리고 감독은 그 공간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고 조각조각 잘라 보여준다. 영화는 카메라 프레임이라는 갇힌 공간 속에 다시 벽과 가구로 공간을 나누고 그 안에 인물을 가둬둔다. 남자의 공간은 지하 1층 작업실이고, 2층은 남자와 여자의 공통 공간이고, 그 다음 층 서재는 여자의 공간이다. 두 남녀는 집이라는 하나의 전체 공간 안에 머물고 있지만 그들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뿐 두 사람이 동일한 공간에 그것도 동시에 함께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렇게 공간도 감정도 잘려진 그/녀들의 시간 속엔 계속 비가 내리고 영화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햇빛이 가득한 온전한 공간을 보여준다. 한때 남자가 여자에게 만들어 주었던 강아지 인형이 놓여 있는 지하 작업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밥을 먹거나 티비를 보며 킥킥 웃었을 거실, 함께 요리 책을 보며 머리를 맞대고 있었을 서재를 영화는 인물을 배제시키고 보여준다. 한번씩 갑자기 등장하는 '햇빛 가득한 온전한 공간'은 '우리도 한때는 서로가 전부이고, 애틋한 시간이 있었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공간을 잘게 나누어 그 안에 인물을 가둬두고, 온전한 공간에선 인물을 배제시킨 감독은 영화의 막바지에 두 사람을 부엌이라는 같은 공간에 둔다. 남자의 후라이팬을 여자가 이어 받고, 후라이팬을 내준 남자는 자연스럽게 양파를 썬다. 지인은 이 장면을 보고 관계의 권태를 느끼고 결국 이혼을 결정한 부부가 지난 날의 익숨함으로 손발을 맞춰 척척 요리하는 장면이 찡하다고 하였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장면에 대한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장면을 상상하니 나도 찡하였다. 하지만 영화를 직접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땐 '세팅된 욕망'만이 보여 지인이 전해준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나도 가끔 애인과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 나는 파스타 면을 전용으로 담아 두는 유리 용기에서 면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페트병 주둥이 부분을 잘라 파스타 봉지를 그 안에 그대로 담아 두고, 파스타면을 끓이는 전용 냄비에 면을 삶는 것이 아나라 노란색 양은 냄비에 면을 삶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면을 볶는 것이 아니라 국산 포도씨유에 면을 볶는다. 잘갖춰진 집에서 그럴듯한 세간살이를 두고 그 안에서 한 번즘 사랑을 나눠고픈 뭇 사람들의 '세팅된 욕망'을 영화는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즘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완벽하게 세팅된 공간에서 현실로 그려진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진짜같지 않을 것을 진짜라고 말하는 것같아서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가 집에 불쑥 들어온 어린 고양이를 보며 "괜찮아. 괜찮아질거야."라고 하는 말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P.S_아래 박스에 담긴 영화 리뷰는 민우회 소모임 '작심삼일'의 '수풀'이 쓴 글이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 대한 '수풀'의 글이 좋아 담아 왔다.

 자체발광의 현빈과 임수정이 나오는 것 만으로도 스크린이 흐뭇했던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신도림 CGV에서 같이 보았지요. 개봉 당일 이었던지라 사람이 꽤 붐볐습니다. 현빈이 나왔던 "만추"를 꽤 만족하며 봤던터라 이번 영화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다른 작삼 멤버들도 그랬던것 같구요. <여자, 정혜>, <멋진 하루>를 만든 감독의 전작들처럼 영화는 뭐랄까~ 대중성과는 조금 거리는 있었어요. 영화관의 관객들 중엔 보다가 나가는 관객도 있었고 따땃하니 나른해져서 잠을 청하는 관객도 있었어요.

5년차 부부가 이혼을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보내는 하루에 대한 영화였는데 고통스러울 정도의 침묵과 권태가 영화 내내 흐릅니다. 그 고통스러움 자체가 둘 사이의 불편함 그 자체를 표현한거겠죠. 하지만 권태로움에 이혼하는 부부가 암 말없이 손발 척척 맞춰가며 마지막 요리를 하는 장면은 맘이 좀 찡하더군요.

어쩌면 현빈과 임수정은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상대방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 제목도 (나는) 사랑한다 (너는) 사랑하지 않는다..인건 아닐지...엇갈린 두 사람의 마음이 영화에선 나오지 않는 마지막 밤을 통해 확인되었으면 참 좋겠네요.

2011. 2. 19. 23:30


<혜화, 동>을 봤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나 뱅글뱅글 돌다가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았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곰곰히 생각했다. 여자 주인공의 하얀 얼굴과 빨간 목도리가 인상적이었다. 열여덟살 혜화와 스물세살의 혜화는 시간이 흐른 흔적이 보이지 않아 어색했다. 혜화의 동물 병원 원장 배우 '박혁권'씨가 왠지 모르게 반갑고 친근하다. 엑스트라로 나오는 '나현'이 형의 껌씹는 장면때문에 잠시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감독은 왜 엔딩크레딧에 브로컬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를 넣었을까? 뭔가 영화랑 어울리지 않는다. 감독이 개인적으로 이노래를 좋아하는 건가? 등등 단편적인 생각들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그동안 영화를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고, 왜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밤이었다.

언론에서도 주변사람들이 <혜화, 동>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2011년 독립영화계 기대작이다, <혜화, 동> 꼭 봐라.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도 막연히 <혜화, 동>을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처음 영화의 제목을 보고 마로니에 근방, 혜화역 근방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나의 '상상'은 말그대로 상상이었을 뿐. <혜화, 동>의 혜화는 '지역명 혜화'가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동은 뭐지?

살아가면서 정체를 뒤흔들만큼의 경험을 하면 사람들은 그 기억을 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 경험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되고, 결국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망각의 자물쇠가 풀리는 것은 한 순간이다. 특정한 계기를 통해서 꽁꽁 봉인해두었던 기억은 와르르 쏟아져 나와 존재를 다시 뒤흔들고 만다. 아마 혜화도 그랬을 것이다. 열여덟살, 한수를 사랑했고 두 사람 사이엔 아이가 생겼다. 그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혜화는 학교를 그만둔다. 하지만 한수는 갑자기 사라졌고, 혜화는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혜화는 그 기억을 잊기 위해 그 날 이후부터 손톱을 자르고 잘려진 손톱을 까만색 필름통에 봉인한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혜화의 마음 어딘가에 봉인된 기억은, 혜화도 모르게 혜화의 몸에게 지시를 한다. 혜화의 집에는 버려진 개들이 많다. 혜화는 버려진 개들에게 개사료를 먹이지 않고, 참치와 치킨같은 '사람이 먹는 것'을 준다. 버려진 개들을 돌보는 행위가 바로 그 기억의 지시인 것이다. 혜화의 엄마도 그러했다. 남편이 쉰이 넘어 바깥에서 여자아이를 낳아왔다. 그 여자아이를 혜화 엄마는 자신이 낳은 딸처럼 키웠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나이든 혜화의 엄마는 남편이 바깥에서 여자아이를 데리고 온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하며 말한다. 봉인한 기억, 망각한 기억이라고 믿어왔는데 '완전히' 봉인하고 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한수가 5년만에 자신들의 아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가지고 혜화를 찾아 온다. 혜화는 아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부정하지만 아이의 얼굴이 궁금해지고, 시간을 되돌려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아이를 유괴할까 생각하고 실행하려하지만 그만둔다. 봉인된 기억이 해제되는 순간부터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무모한 짓을 하는 혜화의 감정을 영화배우 유다인은 그녀의 얼굴에 그대로 담았다. 그녀의 얼굴이 인상 깊었다.

<은하해방전선> 이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른 독립영화는 <혜화, 동>이 오랜만인 것같다. <혜화, 동>이라는 독립영화를 만난 것이 반갑다. 살아있는 캐릭터 혜화와 한수, 그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한 유다인과 유연석, 하고 싶은 말을 에피소드와 공간, 소품들 속에 잘 녹여낸 연출. <혜화, 동>은 마치 분류와 정리를 깔끔히 하는 어느 작가의 정돈된 책장같은 느낌의 영화이다. 그래서 민용근 감독은 이 영화를 세상에 내놓고 스스로의 한계를 보지 않았을까? 민용근 감독은 아마도 <혜화, 동>에 대한 칭찬이 조금은 부담스러워 하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여튼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배우 유다인의 다음 작품도.  

+ 배우 유다인씨의 표정과 눈이 좋았다. 덩달아 <혜화, 동>의 혜화 목소리가 좋았다. 영화를 보기 전 시놉시스를 읽으며 혜화에 대한 캐릭터를 나름 그려 보았다. 혜화의 목소리는 왠지 가련하고 건조할 것이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청춘드라마에 나올 법한 혜화의 튀는 목소리가 처음엔 살짝 어색했지만 그 목소리가 열여덟 살의 혜화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서 혜화 목소리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