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마다 개봉영화 리스트가 업데이트 되면 '이 영화는 꼭 보고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한편씩있다. 그중 하나가 소지섭, 한효주 주연의 <오직 그대만>이었다. 소지섭과 한효주는 영화 개봉시기 텔레비전, 잡지 인터뷰 등에서 한결같이 "가슴찡한 멜로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괜시리 끌렸었다. '이 영화는 다른 욕심부리지 않고, 오로지 뭉근하게 멜로만을 담은 영화입니다, 멜로영화를 보고싶다면 <오직 그대만>을 보러 극장에 오십시요.'라고 말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두번째 이유는 송일곤 감독의 영화이기때문이었다. 90년대 후반 단편영화 <간과 감자>, <소풍>으로 내게 각인되었던 사람, 그 이후 그의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되뇌었지만 제대로 본 영화가 한편이 없었다. 그리고 십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의 영화를 보게되었다. 그의 필모그래프를 보면서, 지금 현재 그간의 영화들과는 다른 <오직 그대만>을 그는 어떤 심정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해졌다. 최근 그의 인터뷰 글을 챙겨봐야겠다.
영화는 전직복싱선수였던 남자와 시력을 잃은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한문장이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말해준다. 이 이야기 외에 다른 이야기는 개입되지 않고 영화는 소지섭과 한효주 두 사람으로 가득 채워져 진행된다. 원래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울면 영화를 만든이들의 의도에 그대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슬픈장면이 나와도 이 악물고 울지않는 편인데 이번엔 속수무책으로 한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져나와 버렸다. 세상이 보이지 않는 여자 정화는 전직 복서인 철민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철민을 바라보며 아저씨를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눈을 뜨면 아저씨를 알아볼 것이라고 말한다. 철민은 정화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목숨을 건 격투경기에 참가하고, 철민의 희생으로 정화는 눈을 뜨게된다. 하지만 철민은 사고로 그녀에게 갈 수 없게 된다. 시력을 찾은 정화는 2년 후 우연히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철민을 만나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철민과 정화가 함께 기르던 개 '딩가'는 철민을 알아보지만 정화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알고있다. 그녀 앞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후진' 철민은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그녀를 등지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울긴했어도 영화를 보면 운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2011년, <오직 그대만>이 빛나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작정하고 관객들을 울리는 멜로영화가 되겠다는 그 다짐때문이었다. 90년대 후반 한국영화는 멜로 영화의 판이었다. 내게 영화의 매력을 알려준 <접속>을 시작으로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약속>까지 '나 멜로영화다잉!'이라고 말하는 영화들이 줄지었고 특히 <접속>을 제외한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약속>은 '나 신파다잉!'이라고 말하며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를 두고 죽어야하는 운명을 가지고 관객들의 눈물, 콧물을 쏘옥 빼놓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조금은 다른 맥락으로 관객에게 접근하기는 하였다.) 그렇게 90년대 후반 멜로영화의 판이 이어지다가 한동안 '저는 눈물, 콧물 쏙 빼는 멜로영화입니다.'라고 말하는 영화는 드물었다. 십년이 훌쩍 지난 2011년 '나 멜로영화다잉!'이라고 말하는 <오직 그대만>이 반갑고 신선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아니 나는 눈물 쏙 빼는 멜로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그대만>이 빛나는 두번째 이유는 기존의 신파 멜로영화 공식과 달리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결말때문이었다. 영화 예고편을 보면서 소지섭은 한효주의 눈을 뜨게하기 위해 격하게 싸우고 맞다가 결국 죽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나의 예상과 달리 정화와 철민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그 장소에서 다시 재회한다. 정화는 "아저씨 나 다시 눈 뜨면 아저씨 얼굴만 보기로 했는데 왜 하루종일 내 얼굴만 보게 만들었어요."라고 말하며 투정부리면서도 그를 다시 만난 것에 벅차 그를 바라보고, 철민은 그녀 앞에 다시는 설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눈앞에 그녀가 서서 그의 이름을 부른 것에 벅차 그녀를 바라본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끝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준 송일곤 감독에게 고마왔다. 그와 그녀가 다시 만나 그간의 그리움을 토로하고, 그 시간을 함께 위로할 수 있는 '앞으로'가 그들 앞에 있다는 것이 나는 고마왔다.
주말 오후 도심 한복판 울 준비를 하고 온 사람들로 가득찬 극장은 팝콘 씹는 소리와 떵떵거리는 광고 속에 썩인 사람들의 속삭임과 사람들의 체온으로 후끈했다. 극장을 찾은 사람들 중 나와같은 마음으로 온 사람들이 꽤 있겠지? 그 생각을 하니 영화를 보는 동안 누군가들의 훌쩍임이 괜시리 위로가 되었다.
+ 소지섭과 한효주는 적절한 캐스팅이었다. 두배우가 참 잘나고 이뻤고 두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정화가 사는 집과 철민이 살았던 집의 보증금만 빼도 수술비 3,000만원은 거뜬히 마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한강을 조망권으로 둔 집의 전세값은 꽤 될텐데 말이다.
+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정화가 직장 상사의 성희롱으로 사표를 쓰게된다. 사표를 쓰는 정화를 보면서 사표를 쓰게되는 이땅의 또다른 그녀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않았다.
+ 사표를 쓴 이후 정화가 다시 다른 일을 하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철민이 복싱(격투기)을 다시 시작하고 생수배달을 하는 것처럼, 정화도 또 다른 일을 하면서 철민과 알콩달콩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둘이 사랑에 빠지고 동거를 시작하면서 철민은 부양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을 벌고, 정화는 집에서 살림을 전담하는 전업주부로 그려지는 것같아 영 탐탁지않았다.
+ 정화와 철민이 서로 키스하는 장면에서 빛이 너무 과했던 것, 나는 그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감독님 이 연출은 너무 과했지요?
- 송일곤 감독 씨네21인터뷰 2011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진한 사랑이야기 개막작 <오직 그대만> 연출한 송일곤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오직 그대만>은 전직 복서와 시각장애인 여성의 사랑이야기다. 캐릭터와 내용을 볼 것도 없이, 제목만으로도 통속과 상투 등의 단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직 그대만>을 연출한 이는 <마법사들> <거미숲> <깃> 등을 통해 아예 실험적이거나, 상업영화 안에서 자기만의 기묘한 세계를 담아왔던 송일곤 감독이다. 개막작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그에게 주로 ‘의외의 선택’에 대한 질문들을 던졌다. -영화의 전당 야외상영관에서 공식 상영되는 첫 영화다. -<오직 그대만>은 전작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성격이 다른 작품이다. -이야기는 통속적이지만, 진부한 통속성을 벗어나려한 연출이 눈에 띄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그리고 연출을 하는 과정에서 주안점을 둔 건 무엇이었나. -<오직 그대만>은 사실상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 전에 만들던 작품의 성격 때문에라도 이러한 결말이 과연 맨 처음 의도였을지 궁금해지더라. -주인공의 직업과 공간 등에 담겨있는 사회적인 여러 단상이 눈에 띄었다. -스스로 전작들과 비교하자면 <오직 그대만>은 어떤 의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나. |
+ <오직 그대만> 사진들을 보다가 재미있는 한장 발견, 한효주는 뒷모습만 보이고 한효주를 향해 바라보는 대중들의 얼굴엔 다들 미소가 가득이다. 흐흐흐- 연예인을 보는 즐거움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므흣하다. 사진을 클릭해서 크게 한 번 보세요. ㅎ 한효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소지섭이겠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