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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9. 21:22

고래씨에 관한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떠오른 이가 에드워드 호퍼였다. 왜 에드워드 호퍼가 떠올랐던 것일까? 고래씨와 나는 블로그를 통해 가까워졌다. 처음 드라마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접하고, 블로그에 그의 그림에 대한 짧은 글을 적었다. 그때 고래씨는 “에드워드 호퍼의 팬”이라고 댓글을 남겼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여인들을 보면 고래씨가 생각난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알고, 고독을 직면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여인들과 고래씨는 닮았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매력적이다. 그래서 인터뷰어가 되어 ‘외로움’을 아는 고래씨가 나의 첫 번째 인터뷰이가 되어주기를 부탁했다.


 

고래, 불가침의 청정구역을 만들다!
고래씨는 기타를 친다. 고래씨는 항상 책을 읽는다. 고래씨는 여행을 즐긴다. 고래씨는 자전거를 탄다. 한 때 고래씨의 작은 방에는 세 대의 자전거가 있었다. 고래씨는 서예를 배웠고, 전각을 한다. 고래씨는 사진을 찍는다. 요즘 고래씨는 MP3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독일어를 배운다. 고래씨는 취미가 많다. 고래씨의 별명은 ‘취미고래’다. 

 

 

@ 고래씨 블로그

 얼마전 고래씨의 새친구가 된 녀석

 요즘 고래씨는 음악 듣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홍대 공연장에서)

 

"취미가 백만 가지에요.(웃음) 내 삶을 설명하는 핵심 유지하는 키워드이기도 한데 취미생활을 하는 순간은 자본주의적 삶과 가장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에너지를 받아 낮 동안의 자본주의 삶을 견디는 것 같아요. 취미는 단지 취미가 아니라 내 삶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원천이죠."

 

다양한 취미생활을 섭렵하다보면 그 취미가 정말 좋아 ‘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 법도하다. 다양한 취미 중 '업'으로 삼고 싶은 무언가가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취미가 먹고 사는 일로 전환하면, 모든 것이 자본주의로 구성된 삶 속에서 나만의 ‘청정구역’을 잃게 되는 것이기에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아싸리 분리하며 살자!’라고 단단히 마음 고쳐먹는다고 한다. 이처럼 고래씨에게 취미는 단순히 흉내 내고 훑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아니라 나를 살게 하는 원천이다. 고래씨는 '청정구역'을 지키기 위해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확보하고, 어떤 것도 범접하지 못하게 마음의 애를 쓴다.

 

취미 이야기를 하다 고래씨에게 “요즘엔 무슨 책 읽어요?”라고 물었다. 고래씨는 퇴계 이황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고 답하였다. 고래씨의 독서 스펙트럼이 넓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퇴계 이황이라니 살짝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고래씨는 이황의 글이나 사상을 보면 경건하고 맑은 느낌이 들어 중세수도사를 만나는 것 같다고 하였다. 고래씨는 이황이 죽기 전에 머리맡에 있는 난을 가리키며 “저 난에 물을 주어라.”라는 마지막 유언을 접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찡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황의 사상엔 종교적인 것이 있어요. 종교는 초월적 가치를 향해 우리를 정화시켜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는데 있어 초월적인 삶을 전제하는 삶과 그렇지 않는 삶은 달라요. 초월적인 삶을 전제하는 삶이 우리 삶을 성찰하게 만들어요. 그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매몰되어 살게 될 것 같아요. 산 너머의 초월적 가치를 전제하고 그 가치에 비추어서 삶을 성찰해나가고 싶어요. 한국철학서를 읽다가 퇴계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어요. 내 삶을 해명하는 도구로 철학이 좋은 도구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키워드를 제공해줘요. 철학책을 읽다보면 나의 삶을 비춰가며 읽어요.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어떤 감정과 순간에 대해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주는 거죠. 그때 즐겁고 좋아요."

 

고래, 도시망명자를 선언하다!
고래씨는 대학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올라왔다. 경상북도 안동이 고향인 고래씨는 도시에 오면 여자가 담배 피는 것에 대해 엄청난 죄악인 마냥 바라보는 시선이 그곳보다는 드물 것이라는 기대로 도시, 서울을 택했다. 겨울날 서울로 망명한 고래씨는 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땅히 의지할 이도 없어 당시 추운 만주 벌판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하였다. 고래씨는 외대 앞에서 하숙하는 친구 방에서 같이 머물기도 하고, 친척 집에서도 살기도 하고 다양한 방과 룸메이트, 하우스메이트를 거치면서 지금은 소박한 풍경이 가득한 동네에서 ‘혼자’ 살고 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도시망명생활을 시작한 고래씨에게 망명자로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물었다. 고래씨는 누군가와 함께 살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것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 이것을 공식화하고 풀어야하는 것을 잘 못해서 속으로 끙끙 앓는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래씨는 혼자 사는 사람의 외로움에 대해 말했다.

 

"누구나에게 똑같이 30만큼의 어려움이 닥치면 가족이랑 같이 있을 때 느끼는 어려움의 체감은 25정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혼자 살면 그 30을 다 느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때로는 누군가가 내 곁에 배경처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 때도 있어요.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느낄 때 그 외로움과 쓸쓸함의 비를 다 맞아야 하는 거에요. 그럴 땐 시간에 기댈 수밖에 없더라고요. 애쓰지 않아요. 극복해야지 애쓰는 것은 의미가 없더라고요. 이 시간도 다 지나가겠거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견디는 수밖에 없는 거지요. 혼자 사는 사람은 외로움의 감정에 대해 더 깊이 밑으로 내려갔다온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보니 이런 경험이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타인이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감정이 뭔지 알 것 같고 공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 고래씨 블로그

여름날 가평 계곡에 발 담그고 신선놀음을 하며 고래씨가 찍은 사진

가을 산, 고래씨는 자연 안에 있으면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고래씨는 외로운 날에는 자연을 찾는다고 한다. 정말 우울했던 어느 날 고래씨는 소백산 한 자락 어딘가에 앉아 펑펑 울고 나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 걸까? 고래씨는 산을 종종 찾는다. 그리고 유독 소백산을 좋아한다. 고래씨가 외로움에 대해 말하자 고래씨에게 두려움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외로움과 두려움은 다른듯하지만 닮은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나는 겁대가리가 없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알 것 같은데 독립심이 강하고 앞 뒤 안 가리고 일을 저지른 편이라 두려움은 적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경제적 두려움은 있어요.” 고래씨는 나이 마흔이 되고 나니까 직장생활을 무탈하게 잘 할 수 있을까? 문득 사장이 그만 두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하지만 고래씨는 특유의 낙관으로 살다보면 또 어떻게 되겠지, 살아갈 방법이 생기겠지, 스스로를 믿으며 그때 되면 또 연대할 친구들도 생길 것이라며 허허 웃는다.

 

고래, 비혼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논하다.
독립을 준비하고 있는 내게 혼자 사는 사람의 일상이 궁금할 때가 많다. 32년 동안 원가족과 살아왔기에 원가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원가족을 떠났을 때 느껴지는 막연한 무서움이 있는 것이다. 혼자서 잘 살 수 있을까? 그 무서움 때문에 잠시 결혼을 상상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비혼으로 살기 위해서 당장이라도 ‘비혼공동체’라고 명명되는 커뮤니티를 찾아가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관계에 대한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고래씨는 삶의 방향을 선택했다. 고래씨는 비혼을 택했다. 고래씨는 여유로웠고, 당당했다. 고래씨와 비혼의 삶을 살기 위한 태도 몇 가지를 함께 논했다. 

 

"아플 때 서로 소문내자가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태도에요. 그 말의 의미는 연대이죠. 혼자 살던 누구와 동거하던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연대! 연대를 위한 동지를 만들어야 해요. 돌아보면 우리 곁에 동지는 많을 거예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는 사람들, 공감대를 가지는 사람들을 나이 들수록 더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여성단체 커뮤니티를 만나면서 관계의 바운더리가 더 확장되고,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옛날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눈에 안보였거든요. 숨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멀리 있지 않았더라고요. 바로 곁에 있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에 여성주의 매체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여자동지들이 그 안에는 많았는데 실제로는 곁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내 곁에 있었구나. 느끼면서 동지들은 충분히 규합하고도 남을 것 같았어요. 오히려 우리가 셀렉트 해야 하지 않을까요?(호탕하게 웃음)"

 

비혼의 삶을 위해서 ‘연대’가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고래씨는 ‘연애’에 관한 태도도 넌지시 말했다. 연애를 하되 그 연애 안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으면 삶이 한층 더 풍부해지겠지만 꼭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삶이 즐겁고 충만해야지 더 나은 관계가 가능할 것이라며 연애에 의연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올해 고래씨는 큰 사건을 하나 겪었다. 큰 사건을 겪고 나니까 집 살 생각, 차 살 생각을 딱 접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결정하니 다른 것으로 삶을 채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차 산 다음에, 집 평수를 조금씩 더 늘린 다음에, 이런 식으로 행복을 유예하기보다는 지금 즐기고 싶어요. 삶을 유지하기 위한 대비는 최소한으로 하고, 현재의 삶을 저당 잡히지 않고 살고 싶어요. 집포기 자동차포기하다보니까 즐겁게 놀 수 있는 거리가 많아요. 포기하니까 보이더라고요.”

 

 

@ 고래씨 블로그

도시망명자 고래씨의 공간, 고래씨의 공간은 고래씨를 닮았다. 정갈하고 여유롭다.

 

도시망명자 고래씨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씩 독일어 공부를 한다. 언젠가 아니 정확히 5년 뒤에 고래씨는 망명지를 서울에서 독일로 이동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홀로 독일 땅을 밟은, 지독한 외로움이 고스란히 베여 있는 전혜린의 수필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이 떠올랐다.  고래씨도 그녀처럼 다시 한 번 지독한 외로움의 시간을 통과하겠구나. 외로움을 안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끊임없이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고래씨가 그랬다.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들여다보면 ‘타인은 또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가 보인다고. 외로움이 내 스스로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였다고 인터뷰 말미에 고래씨는 말하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 또한 기꺼이 외로움의 비를 홀딱 맞을 용기를 얻는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진행한 앙코르<인터뷰>전문실습강좌를 들었습니다. 인터뷰어가 되어 인터뷰이를 선정하고 사람을 만났습니다. 첫 번째 저의 인터뷰이는 고래씨가 흔쾌히 수락해주었습니다. 알고지낸 이라 인터뷰가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그래도 고래씨와 함께 한 1시간 30분 가량의 시간은 두 개의 세계가 만나 끊임없이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오묘한 순간이었습니다. 긴장이 존재하고,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집중하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삼십대의 시간을 통과한, 통과하고 있는 도시 망명자들을 또 만나러 가고자 합니다. '인터뷰공간_약속다방'의 연재가 드문드문 비정기적으로 진행될 것 같지만 그래도 많은 지지와 관심부탁드립니다.

 

첫 번째 연재를 시작하며 2012년 12월 9일 바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