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 (326)
오늘의이야기 (195)
영화&책이야기 (72)
맛있는이야기 (30)
그림이야기 (21)
쉽게쓰여진시 (8)
치앙마이이야기 (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14. 6. 6. 22:56
<함께 가는 여성> 원고 준비를 하며 여러 글을 찾고 읽다가...
(20140607)

누구로 기억할 것인가, 누구와 기억할 것인가

시타 ●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1.
엄마가 오래 아프시다. “하나님, 나 20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라는 그의 기도는 늘어난 평균수명에 비추어 욕심이랄 수 없건만, 어려운 질병이 그의 몸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구체적인 증상으로 목격할 때면 인간의 삶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러나 엄마는 어느 저녁 심상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이르신다. “나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설거지 연습도 좀 하고, 그 좋아하는 옥수수 삶는 법도 익혀둬야지.” ‘나 죽은 다음’ 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저 마음은 어떤 것일까 헤아리다 보면, 나는 어쩔 줄 모르다가 이내 다른 생각을 해버린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끝까지 잘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실까. 무엇이 그를 고독하지 않게 해 주고 있을까.

2.
고정희 시인이 4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성운동가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삼십대가 된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내가 활동하고 있던 단체였던 언니네트워크가 2005년 제3회 ‘고정희 상(賞)’을 수상하면서다. 고정희 상? 고정희가 누구길래 ‘고정희 상’까지 있지? 했던 나는, 그가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이었고, <여성해방 출사표>(동광출판사, 1990)라는 시집을 비롯한 많은 시집을 발표했으며, <여성신문>의 초대 주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제서야, 이십 대에 어떤 페미니스트 선배에게 들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고정희 시인이 지리산 등반 중 실족하여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민족주의 시인으로서 추모하려는 남자 문인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문화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스트들이 그를 ‘페미니스트 시인’으로 불러내고 기억하기 위해 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별다른 감흥 없이 곧 잊었던 그 일화가 몇 년 만에 다시 떠오르면서, 나는 내가 변했음을 알았다. 무수한 시인들 중 한 명이었던 고정희 시인이, 갑자기 특별한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고정희를 특별한 시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3.
그리고 그 해, 2005년, 여성학과 동료들과 소식을 나누는 온라인 까페에서 “안드레아 드워킨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을 읽게 되었다. 안드레아 드워킨은 그 전까지 나에게 책이나 논문에서 등장하는 이름이었을 뿐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역시 너무나 생경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1946년 생 미국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가디언> 지에 실린 어느 페미니스트의 기고글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비방당한” 페미니스트.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라는 유명한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화된) 문구 외에는 드워킨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 드워킨의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58세의 죽음이 ‘너무 이르다’고 느끼는 나이가 된 나는,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생각했다. 한국에서 그 삶의 고단함에 대해 상상하는 삼십 대의 페미니스트가 있다는 것을, 드워킨의 영혼은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4.
2009년. 최명숙 선생님의 장례 소식을 들었다. ‘여성장’이라고 했다. 몇 벌 없던 검은 색 옷을 찾아 입고 추도식에 갔던 기억이 난다. 무슨무슨 단체 장, 무슨무슨 대표들이 그를 ‘명숙이’나 ‘명숙 언니’라고 부르며 추도사를 했다. 이십 대 후반에 몇 번 함께 회의를 했던 기억밖에 없었던 나는, 바람결에 그의 직함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지나가는 지인에게 그의 투병 소식을 들었고, 온라인에서 그의 추도식 소식을 들었다. 그 시간들 동안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프게 느껴졌다. 나는 또, 추도식에 가서야 그가 20년간 민우회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부터 나는, 단체에서 오래 일한 활동가들은 그가 누구이건 일단 존경받을 만 하다는 입장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그를 기억하는 페미니스트들이 9월마다 모인다는 소식을 들었다.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함께 기억하는 동안, 최명숙 선생님의 삶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겠지. 내가 그를 기억하는 만큼 그가 나에게 스며드는 것처럼. 나는 그를 ‘선배’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5.
‘선배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이십 대가 생각난다. 20대 중반, 페미니스트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에게는 욕할 선배들 뿐이었고, 나는 몇 년에 걸쳐 대상을 바꿔가며 많은 선배들을 비판했다. 나는 그들이 나의 선배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싶어 했고, 그것이 내가 했던 많은 비판들 뒤에 숨겨진 감정의 핵심이었다. 민족민주운동과 ‘따로 또 같이’를 선포했지만 여전히 감정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선배들을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하다고 욕했고, 반성폭력 운동보다 호주제 폐지에 매진하는 선배들을 결혼제도 안에 있는 ‘아줌마’들이라고 폄하했다. 그 때의 비판들이 다 무효하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그들의 삶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었다. 내가 물려받은 것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하지만 ‘선배가 없다’는 그 때의 고아심(孤兒心)은 한편으로 내가 선배를 찾거나 기억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노트북 모니터에 띄워 놓은 ‘여성주의 계보’라는 문구를 보며, 선배를 욕할 수 있다는 것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선배를 욕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인 이유는 물론, 일단 선배가 있어야 욕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배를 욕하면서, 선배를 넘어서려 애쓰면서, 은연중에 그의 후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선배를 욕하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는 사람들과 동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여성학자 정희진은 화가 이중섭이 나혜석과 비슷한 말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의 죽음은 나혜석처럼 ‘시대를 앞서간 자의 당연한 말로’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의 치열한 예술혼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대해 질문하면서, “나는 나혜석의 삶이 행복했다고 본다”고 썼다. 가부장제가 기록한 나혜석의 죽음에 나혜석의 삶을 되돌려준 정희진의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나의 어떤 불안이 구원받았다고 느꼈다. 여성주의 계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어 기억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적 존재로서의 한 여성을 ‘누구로’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여성을 ‘누구와 함께’ 기억할 것인가 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기억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여럿일 때, 그것은 이야기가 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그 기억과 현재의 자신을 연관시킬 때, 그것은 계보가 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면서 공동으로 다른 미래를 열고자 할 때, 그것은 역사가 된다. 우주의 먼지처럼 짧고 유한한 삶들이 얽히고 이어져 이루는 어떤 ‘의미’ ― 바로 여성주의의 역사 말이다.




컴백홈!

(20140606)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왔다. 계단에는 망가진 전자 피아노가 새워져 있다. 옥상에는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화분 몇개와 장독대, 빨래걸이가 있다. 이사를 하다가 장독이 깨졌나보다. 뻘건 고추장을 토하며 속을 벌린 장독이 연립주택 입구에 널부러져 있다. 그 위로 쓰레기가 쌓인다. 낡은 옷장과 책장이 버려져 있다.


 옆집 대문에 붙여져 있는 치킨집, 마트 광고지를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의 고요함이 싫었다. 사람이 드는구나. 빈집에 온기가 채워지겠구나.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하다. 곳곳에 쌓여있는 짐들을 보며 짜증이 올랐다. '왜 짐들을 공동의 공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쌓아두는 것인가.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해두는가?' 결혼하지 않은 서른 넘은 여자가 살고, 노인이 홀로 살고, 이북사투리를 쓰는 중년부부가 사는 연립주택에 또 가난한 사람이 들었다. 널부러져 있는 짐과 쓰레기들이 "가난하기때문에 품위는 몰라도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 신경질이 난다.

(20140606)





아이들이 자란다. 작고 연약하지만 온 힘을 다하더니 결국 딱 하나씩의 열매를 맺었다. 다시 한번 또 온 에너지를 열매를 향해 끌어 옮긴다. 열매가 점점 또 자란다.

(2014064)


2013. 12. 23. 23:12

철도민영화 반대! 민주노총·철도노조 폭력 탄압을 규탄한다!

‘안녕’하기 위한 ‘안녕’치 못한 우리의 연대는 더욱더 단단해질 것이다!

 

12월 22일 일요일 오전 검은 제복을 입은 이들이 민주노총 건물에 빽빽하게 들어선 풍경을 우리는 보았다. 철도노조 간부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 체포조 600명이 민주노총 건물에 투입되고, 서울 한 복판 민주노총 건물을 47개 중대 총 4,000여명의 경찰이 에워쌌다. 경찰은 문을 부수고, 최루액을 난사하였다. 경찰이 노동조합 사무실을 침탈하고 연행을 강행하는 그 시각, 박근혜 정부 국토교통부 장관은 ‘철도노조가 근로조건과 상관없는’ 파업을 행하고 있다며 ‘철도 경쟁도입이라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며 독점에 의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파업은 어떠한 명분과 실리도 없는 불법파업’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에 묻고 싶다. 노동자는 ‘근로조건’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는가? 노동자가 ‘근로조건’ 외에 다른 무언가를 말하면 그것은 불법인가? 수서 KTX 주식회사 설립에 대해 박근혜 정부와 철도공사는 자회사 설립일 뿐 이는 민영화가 아니라고 말한다.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 박근혜 정부와 철도공사는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노조 조합원 8,500명을 직위해제하고, 200명을 고소하고, 30여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급기야 오늘 노동조합 간부를 체포하겠다면서 수천 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1995년 설립 이후 18년 동안 민주노총은 수많은 노동·공안 사건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민주노총 본부에 경찰 공권력이 투입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 경찰은 “민주노총이 명동성당과 같은 성역이 아니지 않냐? 철도노조의 파업은 불법이므로 영장을 집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무력 진압을 펼쳤다. 이렇게 다시 한 번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근로조건’ 외에도 나의 삶을 어떻게 구성하며 살지 고민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함께 말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행동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안녕’한 우리의 내일을 위해 서로의 ‘안녕’을 묻고 답하고, ‘안녕’하기 위해 직접 행동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철도 민영화를 막기 위해 파업을 결의하고,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며 촛불을 밝힌 우리들은 당연한 삶의 ‘정치’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당연한 삶의 ‘정치’에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무력으로 노조건물을 침탈하고 연행하는 박근혜 정부는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행위를 일삼는 것인가? 정당하지 않은 이들이 정당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 가장 먼저 손에 드는 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 시간을 겪으면서 보았다. 2008년의 광화문을, 2009년의 용산을, 2013년의 밀양을 우리는 기억한다. 기억하는 우리는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는 우리는 말한다. 철도민영화를 반대한다! 민주노총·철도노조 폭력 탄압을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철도노조 지도부를 연행하고 탄압한다고 하여 이 싸움이 단순히 끝나지 않을 것을! ‘안녕’하기 위한 ‘안녕’치 못한 우리의 연대는 더욱더 단단해질 것이다! 우리는 철도 민영화를 끝까지 함께 막을 것이다!

 

2013년 12월 22일

한국여성민우회




<로렌스 애니웨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변호인> <페어웰, 마이퀸> <영 앤 뷰티풀> <글로리아> 그리고 1월의 기다리는 영화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1221)


영화 보고싶다. 극장에 안(못)간지 참 오래되었다. 극장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의 두근거림을 느끼고 싶다. 영화를 본 이후 생각하고 느낀 것을 기록하고 싶다. 극장에 가고 싶다. 연말 쉬는 날에 극장에 틈틈이 찾아가야겠다. 이번 주말에는 보고싶은 영화들 목록 뽑아봐야지.

(20131219)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괜시리 마음이 안정된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빴다. 바쁜 마음에 쫓겨 동료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 다음부터 기분이 별로였다. 동료에게 미안했고, 빨리 사과를 하지 않으면 종일 괴로울 것 같았다. 타이밍이 맞지않아 바로 사과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이 들 때 마다 핸드폰을 열어 이 사진을 보았다. 퇴근 직전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였다. 고맙게도 동료는 사과를 받아주었다. 하아- 그제서야 웃을 수 있었다. 나의 과오로 인한 불안을 사진 한장이 작게나마 달래주었다. 한동안 이 사진이 핸드폰 바탕화면에, 컴퓨터 바탕화면에 부적처럼 머물것 같다.

(20131217)

2013. 12. 15. 01:16

오랜만에 성당에 다녀왔다. 성당에 앉아있으니 명상을 할 수 있는 틈이 주어졌다. 성체를 받고서 자리에 앉아 기도를 했다. 조용히 앉아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성당에 오니 생겼다. 기도를 하면서 자주 성당을 찾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미사 시간을 빌어서라도 내게 집중할 수 있기를. 성당이라는 공간은 영적으로 뭉클함을 불러일으키는 신기함이 있다. 기도를 하면서 눈물이 찔끔 흘렀다.

(20131215)



연말이 되면 신기하게 고기가 엄청 많이 땡긴다. 작년 연말을 기점으로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 후 틈틈이 고기를 먹고있지만 좋은 고기를 먹은 적은 별로 없다. 지난 가을 본가에 갔을 때 아부지가 사준 수원갈비 빼고는. 아, 질이 좋은 고기를 맘껏 먹고 싶은 겨울밤이다. 오랜만에 녹두장군의 식도락 블로그에 갔더니 성산동왕갈비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고기가 참 맛있어 보였다. 성북동에 있는 누룽지 닭백숙도 생각나는 밤이다. 연희동 오향만두 집도 가보고 싶다. 아, 몸보신이 필요한 연말이 왔다.

(20131214)



직접 말하지 않고 상대에게 부러 무거운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아주 못된짓이다. 오늘 나는 이런 일을 벌이고 말았다. "이소희 아주 못되먹었다." 반성해!

(20131211)

 


대선 후보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철도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녀의 공약은 말그대로 말뿐인 '빈' 약속이었습니다. 수서발 KTX를 민영화하겠다고 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점차적으로 기존의 철도 운영자를 철도공사에서 독립된 민간 운영자로 변경하겠다고 합니다.

비효율적인 현 시스템을 민간자본에 맡겨 효율을 높이겠다고 합니다. 민간자본에 운영을 맡긴다면 과연 효율성이 담보되는 것일까요?

수서발 KTX가 무엇이기에 철도노동자들은 파업을 강행하며 반대하는 것일까요? 네트워크로 연결된 철도는 적자 노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흑자 노선의 수익을 교차적으로 보조하고 있습니다. 수서발 KTX가 민영화된다면 이러한 상생의 조건들은 불가해집니다. 수서발 KTX 민영화는 앞으로 모든 철도가 도미노처럼 민영화가 되는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오늘 10일 철도공사는 기습적으로 임시 이사회를 개최하여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을 결정했습니다. 이사회 구성원의 구성요건과 의결 내용 모두 법을 벗어난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철도공사는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며 파업에 참여한 철도노동자 4,356명을 직위해제하였습니다.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의 권리마저 '불법화'하며, 현정부의 탈법적 행위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박근혜정부의 모습입니다. 

철도민영화는 단순히 '철도' 민영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철도 민영화를 시작으로 의료/가스/전기/연금의 민영화 역시 시작될 것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철도파업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철도민영화를 반대합니다! 

 철도노조 파업 지지를 위한 시민실천을 우리 함께 만들어 갑시다!

1) 철도 파업의 정당성을 알려 주세요.
-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철도 민영화의 문제점과 파업의 정당성을 알려 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범대위 블로그 http://www.nosalektx.com/ 를 참고하세요)
- 블로그,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SNS에 파업지지 메시지를 올려 주세요.
(철도노조 트위터 @krwu7788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krwu7788
- 철도 파업을 둘러싼 각종 인터넷 기사에 진실을 알리는 댓글을 남겨 주세요.
- 철도노조 홈페이지 http://krwu.nodong.net/ 열린광장에 파업지지글을 남겨 주세요.


2) “힘내라! 철도 파업” 목소리를 모아 주세요.
- 주변 사람들도 Daum 아고라 청원 ‘철도 파업 응원’에 참가하도록 해주세요.
- 파업이 시작되면 전국 각지에서 열릴 예정인 집회, 촛불문화제에 참가하여 철도파업을 함께 지키고 응원해 주세요.
- “철도파업 지지합니다”, “철도민영화 중단해 주세요”라는 문구로 인증샷 사진 또는 동영상 찍어서 받는 사람을 #5055로 해서 문자보내기


□ 인증샷 활용
① 메시지란 앞에 '#철도민영화반대'라고 적고 그 뒤에 간단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다.
② 촬영한 인증샷이나 동영상을 첨부한다.
③ 수신번호에 #5505를 적는다. 전송
- 주변 사람들로부터 응원의 메시지를 모아 철도노동자들에게 보내 주세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21 나길7 철도회관 5층 전국철도노동조합, 140-780)

3) “철도파업 지지 국민광고” 후원금을 모금합니다.
철도파업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작은 목소리를 하나 하나 모아서 신문, 방송에 철도파업 지지광고를 게시하고자 합니다. 광고는 후원자들의 명의를 넣어서 철도파업을 지지/연대하는 내용으로 합니다.
(후원계좌 : 하나은행 780-910008-00704 전국철도노동조합)





민우회에서 올 해 두번째 책을 출간했다. 후마니타스 출판사와 함께 책작업을 했고 제목은 <뚱뚱해서 죄송합니까?>이다. 이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내 안의 경험에서 쓰여진 글은 타인의 마음을 충분히 더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고, 그러면서 내안에서만 갇혀있었을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생생하게 기록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작업인것이가를 알게되었다. 책을 만들어온 과정을 곁에서 고스란히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이 나온 날 활동가들이 모두 책을 펼치고 기뻐라했다. :)


+ [한겨레] '외모지상주의' 반대한다면, 남의 살을 품평하지말자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14505.html

(20131209)



지난 주말에 여성주의 의료생협 살림 송년회에 다녀왔다. 은평지역주민이 참석하는 송년회는 각잡힌 민우회 송년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뛰어다니고, 참석하는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넸다. 말그대로 동네잔치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동네잔치같은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요즘에는 세련되고 완벽한 것에 대한 신물을 느끼는 것 같다. 세련되고 완벽해질수록 여유와 공백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을 하든지간에 결과물에 대한 완성도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과정을 만들어가는지를 중요하게 깨달아야한다는 것을 살림 송년회에서 확인했다. 이날 한켠에서는 송년회를 하고, 다른 한켠에서 2014년 살림 제1기 대의원 선거 개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은평갈현지역 대의원으로 출마했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차근히 배워가야하는 위치이지만 조합원들의 투표로 선출된지라 작은 책임감이 들었고 지역활동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은평에 이사오길 참 잘했다. 

(20131207)


살림 송년회는 <참 잘했어요> 칭찬콘셉트로 진행되었다. 조합원 모두에게, 살림 활동가에게 한 해 참 잘했다고 사회자들은 틈틈이 칭찬했다. 그중 송년회 한켠에 참 잘했어요 상자를 마련해두고 올해 내가 잘한 일을 메모장에 적어 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칭찬상자에서 뽑은 메모를 사회자가 뽑고 읽은 후 조합원들이 기증한 물품을 선물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칭찬의 내용은 주로 '1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한 것', '살림 근처로 이사온 것' '소모임 활동을 열심히 한 것' 등으로 주로 척도가 가능한 칭찬들이었는데 이러한 칭찬들 중 유독 귀에 확 꽂히는 칭찬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자라온 것"이라는 내용의 칭찬이었다. '우와, 뭔가 척도가 불가능해. 이것은 스스로만이 알 수 있어. 철학적인 사유다.'라며 혼자 흠짓 놀라하고 있었다. 누구일까 궁금해지던 찰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조용히 일어나 말없이 선물을 받아갔다. 띠용! 아, 지금까지 자라온 것이 참 잘한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칭찬한 그 아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201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