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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에 해당되는 글 41건
2012. 7. 31. 14:33

 

 

활동가 워크샵 때 윤소가 찍은 사진이다. 다들 무엇이 그리 즐거워 활짝! 웃고있는 것일까?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절로 즐거워진다. :)

2012. 7. 23. 22:05

+ 민우회 성평등복지팀에서는 요즘, '10년 뒤 한국여성의 행복을 상상하다.'라는 큰 주제로 노후, 건강, 시간에 대해 릴레이 수다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초 진행된 좌담회의 후기가 올라왔다. 한사람 한사람이 내뱉는 말들이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는다. 싱기루의 말처럼 나또한 이 연구의 결과가 그 어떤  드라마의 결말보다 더 궁금하다. 두고두고 담아두고 싶어서 후기를 블로그에 담아온다. 요즘 전희경님의 논문 <'젠더-나이체'와 여성의 나이>을 읽고 있는데 그녀의 논문과 성평등복지팀의 연구과제의 맥락 또한 맞닿아있다. 요즘엔 내가 여성주의를 만나고, 민우회를 알고, 이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릴레이

수다회

10/년/뒤

한/국/여/성/의

행/복/을/상/상/하/다

[성평등복지 의제발굴 프로젝트]

#1 "결혼은 답이 아닌 시대의 노후,

대안은 뭘까?"

   
■ 일   시 : 7월 9일 저녁
■ 키워드 : 노후
■ 암호명 : 대안
 

그리하여 모인 여섯명의 비혼여성들이 함께한
노후에 대한 수다리포트
 

노후 불안 3종 세트인 주거, 생계, 관계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가족 안에서 오히려 소외되는 노년의 풍경들에 대한 목격담들
적금 이야기로 시작해
자립가능한 경제시스템과 지속가능한 노동환경과
존엄한 노후에 대한 상상력과 새로운 관계의 윤리에 대한 이야기로
뭉게뭉게 피어나갔던 열띤 세시간에 대한 스케치.
그리고 참가자 신기루의 속깊은 후기를 전합니다.

 


 

2012년 7월 9일 저녁 7:30

시작은 우울했다...

 

 

 

거기다 진지하기까지

 

 

 

대안도 더듬어보고

 

 

 

그렇다. 사실 불안의 정체는...

 

 

 

우리, 잘 늙을 수 있을지도 몰라~

 

 


 

누구나 나이가 들어 노년을 맞이하겠지만,
 
막상 멋진 할머니가 되리라는 기대는 현재의 삶에 대한 핍진함 때문에 미뤄지기 마련이다.

노후를 주제로 집담회를 한다니, 게다가 비혼 여성들의 노후라니 그 얼마나 우울하겠는가.

 
언젠가 들은 보험 상품 설명, 자산관리, 연금과 관련되어 연상되는 '노후'는 나와는 먼 이야기이다.
 
현재의 소비를 미래의 소비와 대체할 수 있는 여유와 계획, 삶의 정상성이 유지되는 일상을 가진 사람만이 노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노후는 이미 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경제적 자원이 많은 계급이 전유한 언어로 느껴졌다. 그러므로 나는 노후가 없다.

 
언젠가 형부가 했던 말 “여자가 혼자 살려면 전문직이 되어야지, 전문직이 되는 길은...... ” 블라블라.

듣는 고통이 컸으나 그만큼 프로젝트화된 삶, 인간이 자원이 되는 인생 설계가

동시대의 ‘보편적’ 풍경이다.

여기서 노후는 삶의 총체적 성과지표로서 인간 각자에 대한 성적표이다.

소득 없이 오래 사는 것에 대한 공포, 이성애 가족 외에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빈곤함과 더불어

롤도 없고 지향도 없는 노후는 꺼림칙한 미래이다.

게다가 도시 할머니들이 머물 공간도 없이 종일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은

그 무기력함 자체가 풍기는 생명의 처연함 때문에 덩달아 비루하다.


이런 생각으로 걷던 중, 집담회가 시작되자 좌장이 여러분이 복지의 주체라고 했다.

오잉?

노후에 대한 시간, 언어, 공간, 자원에 대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그리고 지금까지 살았던, 목격했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앞둔 여자들의 이야기가

국가의 미래 기획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뜻 깊은 시간이었다.

 
몇 해 전의 나에게 ‘비혼’은 부정의하거나 구태의연한 삶에 거리를 두는,

독립 의지를 표현하는 삶의 형태였고

내 노후는 ‘완전독립’ 즉 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고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는 강한 모습을 꿈꿨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길을 걷다가 발가락을 다치기도 하고

깻잎나물 무치는 법을 배우거나 집에서 물이 새는 것에 대비하는 등

생전 경험하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서로가 기대어 사는 존재임을 인정하자 다른 노후를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어린 시절 두 발로 걷지 못했듯이, 노후에 다시 걷지 못하게 된다.

그 때 나는 누구의 팔을 잡을 것인가?

수다회 중에는 386세대가 성장하면서 그들의 삶의 이슈가 진보적 정책이 되었다며

386세대가 노인이 되기를 기다리면 뭔가 달라질꺼라며 다 같이 웃었지만,

특정 세대에 기대어 변화를 바라기보다 회사에서 동네에서 집에서 지금 나의 관계망을 형성, 유지해야 하겠지.


누구도 혼자 늙지 않으며, 오롯한 자존이란 의존에 기반한 것이다.

경제적 자원 중심의 노후설계 ‘이야기’들에 기죽지 않고

내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아는지,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지,

마음의 힘이 있는지,

자연과 더불어 살았는지 등

‘다른’ 노후에 대한 담론이 필요하다.

 
돈이 최고이지만 특히 여성들의 삶 속에는 숨겨진, 아직도 인정받지 못한 자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경제적 자원은 개인이 투자한 만큼이 아니라

노후 시점의 그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만큼’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생산이나 노동, 기본 소득, 일상,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프로젝트의 결말이 드라마보다 재밌을 것 같다.


by 신기루

 
 * 릴레이 수다회는 8월까지 계속됩니다. 이어지는 후기들도 기대해 주세요.
   수다회의 자세한 내용은 성평등복지 의제 연구 과정에 반영되며
   연구 결과는 하반기에 예정된 토론회에서 공개됩니다.
 

2012. 6. 13. 01:40

내가 민우회 상근활동가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민우회 성평등복지팀에서 기획한 <나를 매혹시킨 여성학 강좌>는 절대 쉬이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하며 귀하게 강의를 듣는다.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 특유의 매력과 그녀들을 매혹시킨 여성학자의 만남은 절묘하다. 강의를 들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오늘 쥬디스 버틀러 강의를 진행 한 전혜은씨는 쥬디스 버틀러 이론을 자기것으로 소화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쥬디스 버틀러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웠다. 강의 마무리를 전혜은씨는 월 스트리트 점거 시위 때 쥬디스 버틀러의 소리통을 읊으며 마무리 했다. 유트브에 검색을 해보니 그 영상이 있다. "우리는 불가능을 요구합니다."

 

다음주 강연은 내가 애정하는 여성학자 전희경씨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 <노년>에 관한 강연을 한다. 다음주 강연이 마지막이다. 아, 그렇게 5주가 가는구나. 다음주 강연도 기대된다. 다음 강의는 또 어떤 '결'로 다가올까. 이 기회를 모두들 정말 놓치지마세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하여 물으면 젊은이들, 특히 젊은 처녀들은 자신의 인생을 제일 길게 잡아봐야 60세로 제한한다. "그 나이까지는 안 갈 거예요. 난 그 전에 죽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난 그 전에 자살하겠어요" 라고까지 한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는 절대로 늙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다."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그래서 요구가 뭐라는 거냐? 이 사람들 모두가 제기하는 요구란 게 뭐냐? 이렇게 묻는 사람들은 그 시위엔 아무런 요구도 없다고 말해서 당신들의 비판을 혼란스럽게 내버려두든가, 아니면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정의를 요구하는 건 불가능한 요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길, 불가능한 요구들은 실천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만약 희망이 불가능한 요구라면, 우리는 불가능을 요구합니다. 주거지와 음식, 고용에의 불가능한 요구들이라면, 우리는 불가능을 요구합니다. 만약 불황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 탐욕 좀 그만 부리고 부를 재분배하라는 요구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우리는 불가능을 요구합니다."

 

2011년 10월 월스트리트 점거시위에서의 쥬디스 버틀러 연설

2012. 6. 11. 20:22

 

 

차차차 회원실천릴레이 캠페인 웹자보를 만들다가 머릿속에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라는 노래가 계속 떠올랐다. 가사도 멜로디도 설운도의 목소리도 명곡이다. 앗싸 좋다!

 

 

2012. 6. 4. 23:24

 

[바람이의 '바람'식단-3]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운영되는 희망식당 ‘하루’가 상도동 1호점에 이어 상수동 2호점을 5월에 오픈하였다. 나은의 제안으로 점심시간 사무실 동무들과 함께 상수동 희망식당 ‘하루’에 다녀왔다. 희망식당 2호점을 다녀온 사람들이 트윗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서 익숙한 풍경에 ‘여기가 내가 아는 그곳이 맞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공간은 분명 내가 아는 그곳이 맞는데 이름이 다르다. 그땐 분명 ‘한식당 달고나’였는데 지금은 ‘모던한식당 춘삼월’이라고 한다. 꺄우뚱하면서 직접 와보니 내가 알던 그곳이 맞았고, 식당의 이름이 바뀌었다. 공간의 이름이 바뀌어 있으니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간은 끊임없이 재의미화 되는 것이라고 슴슴하니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_-;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정오가 조금 넘어 도착한 6월의 첫 번째 월요일 희망식당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30여분 정도 기다려야한다는 말에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식당 안에는 익숙한 얼굴의 인열씨가 앉아있다. 하이얀 들꽃을 닮은 인열씨를 만나니 괜히 기분이 좋다. 대기표를 받고 여름바람이 살랑이는 벤치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린다. 30여분 넘게 기다렸다가 식당 테이블에 앉는다. 오늘 희망식당 ‘하루’는 근처에 있는 ‘오요리’와 함께 상을 차리고 있었다. ‘오요리’는 이주여성과 청년으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매주 월요일 쉬는 ‘오요리’의 사람들이 희망식당 ‘하루’에 모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요리’가 함께 상을 차리는 날이기에 오늘의 메뉴는 이름도 낯선 나시고랭, 냉짬뽕, 마파두부덮밥이었다. 낯선 이름의 요리 나시고랭을 주문하고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 먹을 것을 기다린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한참을 또 기다렸지만 그 기다림이 즐거웠다. 함께 간 동무는 마파두부덮밥을 주문했다. 마파두부덮밥의 두부는 두부장사하는 꽃맘언니가 후원한 두부라고 생각하니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학교 다닐 때 함께 활동했던 씩씩한 꽃맘언니가 두부장사와 연을 맺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언니의 삶을 전해 듣는다. 보들보들 꼬소한 두부 맛에 언니의 꽃 마음이 느껴진다.

 

  

 

 

 

@희망식당 '하루' 입장을 기다리면서, 희망식당 안에서 찰칵 with 눈사람이랑 용가리랑 나은이랑♡

 

 

밥을 맛있게 먹고 식당을 나오면서 춘삼월의 주인장이 궁금해졌다. 춘삼월의 주인장은 어떤 사람이기에 식당운영을 하루 접고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것일까? 춘삼월이라는 ‘공간’이 있기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주방에서 요리를 할 수 있고, 그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여 상을 차리고, 멀리 제주도․강원도 등지에서 제철 식재료를 후원하고, 오천원에 푸짐한 한 끼 식사를 한 사람들은 밥심에 하루를 다시 다짐하고…‘공간’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수많은 상상력과 다양한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공간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아무것도 없는 빈 곳, 空間이라고 나온다. ‘공간’을 통해 사람은 성장하고, ‘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창조성을 깨우고,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그렇게 ‘공간’엔 의미가 담긴다. 무언가를 채워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공간은, 空間인가 보다. 이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절로 만들어 가는 ‘공간’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참말 훌륭한 일인 것이다. 희망식당 ‘하루’가 열리는 ‘춘삼월’처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마구 박수를 쳐주고 싶다. ‘공간’을 공유하는 이를 떠오르니 생각나는 한 사람이 또 있다. 가평의 펭. 자신의 ‘공간’을 게스트하우스 ‘꾸다’로 운영하는 펭은 홀로 여행하는 여성들이 마음 편히 머물고 갈 수 있는,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잠시 ‘쉼’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고 있다. 펭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꾸다’ 또한 의미를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의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함께 채워가고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쾌적하게 잠 자라고 면시트를 기증하는 이들이 있고, 함께 읽고 나누자고 책과 만화책을 보내는 이들도 있고, 쓰지 않는 자전거를 기꺼이 선물하는 이들도 있다. 의미를 만들고, 사람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 ‘꾸다’에서 머물었던 5월의 하루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침대 머리맡 스탠드를 켜고 일기를 썼던 그 순간,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마냥 행복했었다.

 

 

 

 

 

@게스트 하우스 '꾸다'에서 머물면서_'꾸다'의 거실 풍경과 스탠드가 있는 2층 침대. 2층 침대의 스탠드는 센스 작렬!

 

 

우리 사무실 동무 중 한 동무는 자신이 집을 비우면 다른 동무에게 기꺼이 집을 내어준다. 그 모습이 처음엔 낯설고 신기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훌륭하다. 연애를 하던 시절 ‘공간’이 필요했다. 돈을 주고 몇 시간 머물다 가는 담배냄새가 배인 ‘공간’ 보다는 그곳에 사는 이의 취향이 깃든, 집 냄새가 나는 안정적인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었다. 공간을 찾아 헤매던 그때의 나를 생각해보면 ‘공간’이 불안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공간을 내어 주는 나의 동무가 참말 멋진 것이다. 여하튼 나는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무한한 경배를 보낸다.

 

 

그리고 나의 ‘공간’을 갖고 싶다. 나의 취향과 냄새가 깃든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다. ‘공간’에 대한 작은 상상 하나를 한다. 내게 작은 ‘공간’이 허락된다면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 식당 제목은 ‘내 멋대로 식당’, 제철 식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초간단 한 그릇을 내어 놓는 ‘공간’. ‘내 멋대로 식당’의 주식재료는 양배추, 버섯, 두부, 파프리카, 오이, 굴소스 등. 기본 식재료를 통해 작은 변주를 만들어 내는 ‘내 멋대로 식당’은 주인장이 먹고 싶은 것이 주 메뉴가 될 것이고, 하루 최대 일곱 그릇까지만 내 놓을 것이다. 나중에 독립하면 ‘내 멋대로 식당’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내 멋대로 식당’은 일주일에 한 번 손님이 있을 때 오픈하고 ‘내 멋대로 식당’의 밥값은 샴푸, 비누, 휴지와 같은 생필품과 맥주정도가 될 듯하다.

 

 

 

 

+ '내 멋대로 식당'에서 주로 내 놓을 법한 음식들 버섯굴소스 덮밥과 두부를 곁들인 양배추 샐러드

 

바람(민우회 활동가)

아마 이번 일상다반사가 마지막 연재인 걸로 알고 있다. 재미있었던 글쓰기였다. 촘 아쉽구마잉!

2012. 5. 23. 01:05

 

 

 

 

[여성주의 고전읽기 '나를 매혹시킨 여성학자' 1강_Adrienne Rich] 여성, 혁명, 존재의 시학

by 권김현영

 

 

 

분노와 여성적 힘에 대한 자각, 오르페우스의 사신*

 

나는 빛과 어둠이 줄무늬처럼 드리워진 아케이드 아래를 걷는다

나는 확고한 권력을 가진 최초의 여성이다

이 권력은 내가 본 적 없는 권위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나는 검은색 롤스로이스에 죽은 시인, 오르페우스를 태우고

황혼과 가시밭길을 지나는 최초의 여성이다

나는 충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나를 온전히 지켜줄 어떤 임무를 맡은, 표범의 정기를 지닌 여성

지옥의 천사들과 접촉한 여성

그러한 힘을 휘둘러서는 안될 때 그녀는 자신의 힘의 충만함을 느낀다

여기 거리 아래의 화염의 아수라장 사이에서 명료한 정신으로 맹세하는 그녀

그녀의 죽은 시인 오르페우스는 거울의 다른 쪽에서 부는 바람에 대항하여 뒤로 걷는 법을 배운다

 

Dream I'm the Death of Orpheus 1968

 

 


여자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어떤 의미인가*

 

"모성의 제도 하에서 모든 어머니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이 아이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죄의식을 느낀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계획대로 완벽한 딸을 만들도록 되어 있었다. 이 완벽한 딸은 만족스럽게 조숙했지만, 틱 증세와 욱하는 성질, 22세에 관절염을 앓아 영원히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녀는 마침내 아버지의 빅토리아 시대적인 가족주의와 매력, 잔인한 통제력에 저항하고, 이혼한 대학원생과 결혼하고, 테니슨의 유창한 부드러움이 결핍되어 있는 현대적이고 모호하며 비판적인 시를 쓰는가 하면, 심지어 임신을 했다.('') 어미니의 생각으로는 (그녀의 딸이) 무언가 끔찍하게 잘못되었던 것이다.('') 나는 모든 어머니들이 느끼는 죄의식을 상상할 수 있다. 왜내하면 나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of Women Born 1976

 

아드리엔 리치는 어머니-딸 관계에 대해, 딸이 어머니에 대해서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쓴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어린 시절의 자신이 느꼈던 분노는 다시 어머니로서의 자신이 가진 죄의식으로 돌아오고, 그 죄의식은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위한 분노로 변형된다. 어머니처럼 살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불안, 어머니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와 세상을 위한 아이를 키우라는 압력...리치는 여성운동의 초기에 모성의 신화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비록 옳은 것이었다고 해도, 그리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딸들은 언제나 바로 어머니로부터 아마존이 되라는 격려를 받기를 원했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를 원했던 딸들의 소망이 얼마나 간절했다고 해도, 어머니들은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딸들의 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고백한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계획대로 적절히 만족스러운 딸을 만들도록 되어 있었다. 적절히 만족스러운 위치를 가진 조신한 딸은 20세가 되더니 그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매일 술과 늦은 귀가를 일삼는다. 급기야는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며 가난을 자처한다. 서른을 훌쩍 넘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딸이 골드미스라도 되어 있으면 위안을 삼으려만 그렇지도 않다. 급기야 그 딸은 결혼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한다. 어머니의 생각으로는 (그녀의 딸이) 무언가 끔찍하게 잘못되었던 것이다. 나는 모든 어머니들이 느끼는 죄의식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왜 죄의식으로 가야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지 않다. 끔찍하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그녀의 딸로 인해 그녀는 그녀의 가슴을 부여 잡고 운다. 어머니들은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딸들의 편에 있다. 그래서 그 딸도 운다. 

 

아드리엔 리치의 글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펑펑 울고 싶은 감정을 간신히 추스렸다.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

 

"여성을 남성의 성적 영향력의 범위 안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 계획된 수단들의 범위, 그리고 그 정교함을 들여다보면, 페미니스트들이 다루어야 하는 주제가 단순히 젠더불평등이나 남성 지배문화 혹은 동성애에 대한 금기가 아니라, 남성의 육체적, 경제적, 감정적인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성들에게 이성애를 강제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은 불가피해진다."

Compulsory Heterosexuality and Lesian Existence 1980

 

리치가 주장하는 레즈비언 연속체/연속선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여성이 다른 여성들과 성기적 성경험을 해봤거나 의식적으로 욕망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여성들 개개인의 삶을 통틀어서 그리고 역사를 통틀어서 존재하는 다양한 범위의 여성정체화된 경험들이 모두 포함"한다. 그녀는 단지 성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이고 감정적으로 남성들의 특권이 유지되어왔던 강제적 이성애제도에서 여성들간의 우정, 동지애가 에로틱한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정의되었는데, 레즈비언 존재라는 개념을 더 깊고 넓게 하므로써 여성들간의 관계에 대한 탈이성애적 보기/쓰기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일 우리가 모든 여성들이 엄마젖을 빠는 유아에서부터 여성들에게 의해 보살펴지며 죽어가는 90세의 여성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레즈비언 연속체 위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자신을 레즈비언을 정체화하건 아니건 간에 자신을 이 연속선에 들어왔다 나왔다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Compulsory Heterosexuality and Lesian Existence 1980

 

리치는 레즈비언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혹은 남성혐오에 의한 차선의 선택 정도로 치부하는 기존의 정의에 반대하며, 매우 탈정치적으로 들리는 성적인 "선호(preference)"라는 말은 강제적 이성애를 제도적으로 실천하게 만드는 수많은 문화적 압력들을 부인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여성에게 강요된 특정한 삶의 방식을 따르는데 거부한 여성들을 레즈비언 연속선으로 사고하게 되면 우리는 여성의 역사에 유구한 저항의 전통을 재발견할 수 있게 되며 이는 결혼제도와 모성역할에 대한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들을 고무하고 격력할 수 있는 여성들의 자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녀의 글을 보며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직면하면서, 동시에 위안을 얻는다.

언제까지 두려워하고만 있을 것인가?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

하지만 이 위치에서 위안을 얻으려 한다...

 

건널 수 있는 강을 건널 수 없는 강이라고 말한다.

건너온 강을 건너지 않은 강이라고 말한다.

2012. 5. 21. 00:24

 

 

 

[바람이의 '바람'식단-2]

 

 

연애가 끝났다. 2주가 지났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주중에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벅적거림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다. ‘아, 나의 연애가 끝났다.’라는 것을 출퇴근길 홀로 있을 때 잠시 실감한다. 2주 동안 틈틈이 술 마시는 자리를 빠지지 않고 찾아다녔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나의 신상을 보고 했다. “나 헤어졌어.”라는 말을 시작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화들짝 놀라는 이들도 있고, 라디오 뉴스를 듣는 듯 무덤덤한 이들도 있다. 반응이야 어떠한들 이별이라는 것을 직면하고 있는 내게 사람들은 마음을 전한다. 내 곁에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마도 그녀들이 내 곁에 없다면…생각만 해도 서걱거린다.

 

여하튼 주중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주말엔 거의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 혼자뿐이다. 주말엔 산으로 들로 외출하는 엄마, 아빠. 주말강의를 나가는 동생1, 주말 학원에 다니는 동생2.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면 연애가 끝났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일요일 아침, 동물농장을 보다가 방치되어 뼈만 앙상히 남은 개들을 보고 울었다. 개들이 안스러워 울다가 나중에는 ‘내가 왜 울고 있나?’ 생각하며 텔레비전 속 개들과 상관없이 울었다. 동물농장을 다 보고 흐트러져 있는 집을 둘러본다. 나의 임여사는 어릴 때부터 ‘본인 부재중엔 집을 깔끔히 치워 놓아야 한다.’라는 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훈계와 짜증, 성질로 우리를 단련시켜왔다. 거기에 습관이 밴 우리는 임여사 귀가 전에 집을 반드시 치워 놓는다. 평온한 나의 시간을 위하여. 그 습관이 오늘도 발동한다. 소파 위 쿠션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마른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밀고,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분리수거 물품을 다시 한 번 분리하고…분리수거를 하다가 또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 오전 시간을 그렇게 가사노동을 하면서 보냈다. 몸을 움직이고 틈틈이 눈물을 흘리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일단은 깔끔하게 씻고 뭔가를 먹고 싶어서 샤워를 했다. 개운하다. 

 

‘뭘 먹으면 좋을까?’ 혼자 있으면 뭔가를 챙겨먹는다는 것이 상당히 귀찮아진다. 대충 있는 찬에 식은 밥을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게 된다. 오늘도 라면의 나쁜 맛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 부엌 싱크대에 떡하니 라면 3봉지가 놓여 있다. ‘저것을 그냥 끓여 먹을까?’ 생각하다 홀로 라면을 끓여 먹다 청승을 떨듯하여 라면 먹기는 포기한다. 꼬깜의 글을 보면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잘 챙겨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행위인지를 알았다. 나를 위해 시간을 들여 재료를 다듬고, 끓이고, 볶고, 음식이 다 되기까지 기다리는 그녀의 행위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음식을 한다는 것은 오바스럽게 표현하면 감동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래, 나를 위해 나도 뭔가를 만들어 먹어보자. 나를 위해 조리과정에 정성을 쏟고, 예쁘게 담아 먹자.”

 

 

 

 

그래서 연애가 끝난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일요일엔 조용한 임여사의 부엌에 들어가 열무국수를 만들었다. 다시마, 멸치, 북어, 양파를 넣고 국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면을 삶았고, 계란도 하나 삶았다.(계란삶기는 어렵다. 다 된줄 알고 탁 깼는데 노른자가 주르륵. 바로 후루룩 마셔버렸다.ㅠ) 다시 국물의 거품을 걷어내고, 면은 차가운 물에 행구고 채에 담아 물기를 뺀다. 차갑게 식힌 다시국물 네 국자에 열무김치 국물 두 국자를 섞어 열무국수 국물을 완성하고, 그릇에 국수를 놓고 국물을 붓고, 아삭한 열무김치를 올려놓으니 시원한 점심 한 끼가 된다.

 

 

 

 

두 번째 맞이하는 일요일 오늘, 임여사의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냉장고를 뒤적거리면서 무언가가 채워져 있는 임여사의 냉장고가 새삼스레 고마웠다. 오늘 점심은 브런치(?) 스타일로! 동생1이 쪄 놓은 단호박이 있다. 단호박에 치즈를 올려서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팽이버섯을 볶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계란후라이는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굽고 계란이 익는 동안 토마토를 깨끗이 씻어 자른다. 너른 접시에 음식들을 가지런히 담는다. 만족스러운 모양새다.

 

“잘 먹겠습니다.”

 

한 숟가락 뜨는 순간 항상 텔레비전에서는 <옥탑방 왕세자>를 한다. 유천이를 보며 내가 만든 무언가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고 삼키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래 이렇게 시간이 간다. 이렇게 나를 위해 매주 무언가를 하나씩 만들어 먹다보면 지금보다는 분명 나아질 것이다. 좋은 사람이었던 그 사람은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좋은 사람인 나도 역시 더 나은 사람을 만나 연애라는 것을 다시 할 것이다. 그런데 밥을 먹다, ‘언젠가 나는 또 관계의 종료를 반복해야겠지.’라고 생각하니 깝깝해진다. “에이 몰라! 너무 갔다! 일단 밥이나 먹자!”

 

바람(민우회 활동가)

 

+ 관계가 종료되었다는 것, 서로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혼자 밥을 먹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힘이 든다. 한동안의 기억이 내 안에 아직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슬프다.

2012. 5. 16. 18:35

 

 

 

 

식당노동자의 새로운 이름을 제안드려요.

식당노동자에게 존중을!

존중의 의미를 담아 '차림사님' 함께 불러봐요!

 

차림사 호칭 확산 활동에 배우 권해효씨가 흔쾌히 승락해주었다. 스튜디오에서 권해효씨와 함께 촬영했던 날, 스튜디오 관계자분들, 메이크업 담당자와 다함께 한컷!

 

권해효씨는 이목구비가 뚜렸했고 '배우는 배우다!' 라는 느낌을 퐉퐉 전해 주었다. 잘생겼다. 목소리도 좋다. 낭만적이다. ㅎ

 

권해효가 권해요! 차림사님, 함께 불러봐요. :)

 

2012. 5. 13. 11:06

[바람이의 '바람' 식단]


*4월 30일 민우트러블에 실은 글을 가져다 이곳에 다시 담다. 

 

 

결정적 계기는 없었다. 어느 날 문득 ‘고기를 안 먹고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다짐이 딱 일 년 전 요맘때 봄이었다. 당시 고기를 한 번 먹지 말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도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당시의 일기장을 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몸이 고기를 힘들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양상추를 과자처럼 아삭아삭 싶어 먹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고기를 안 먹으면 주거의 독립은 불가능하더라도 식단의 독립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당시 마음을 먹고 실천한 것이 고기 없는 월요일, 되돌아보면 고기 없는 월요일은 잘 지켜 온 것 같다.

 

하지만 틈틈이 고기가 땡기는 날에는 치킨에 맥주를 먹었고, 김밥에 들어 있는 햄은 고기가 아니다 생각하고 먹었고, 카레에 들어 있는 고기는 골라내기 어렵다며 그냥 먹었고, 고기 국물은 고기 건더기가 없으니 먹어도 된다 하고 틈틈이 고기를 섭취하였다. 그러니 일 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은 단순히 큰 고기 덩어리를 씹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도 처음엔 내 먹을 거리를 일요일에 장 봐다가 직접 다듬고 손질해서 식단의 독립을 꽤하려고 했지만 턱없이 비싼 야채 가격에, (한 번은 샐러리를 사려고 슈퍼에 갔는데 샐러리 한 다발에 6,000원 정도 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놨다 망설이다가 결국 2개에 1,400원 하는 오이를 샀다.) 항상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귀차니즘에, 슈퍼에서 파는 연두부랑 한 번 구입하면 통째로 채칼로 썰어 놓은 양배추를 챙겨오는 것이 다였다.

 

원칙도 없고, 애씀도 없는 고기 안 먹기 캠페인 올해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고기의 맛만큼이나 들에 나는 초록 것들의 맛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봄 미나리의 아삭함과 향긋한 향, 단호박의 달달하고 담백한 맛, 양상추의 싱그러움, 상추/배추의 친근한 맛, 양파의 은근히 단 맛, 눈을 호사롭게 하는 파프리카, 달달 볶아 먹으면 맛있는 애호박 등. 줄줄이 그 맛을 생각하면 즐겁지 않은 것이 없다.

 

봄이면 초록의 맛들이 더욱 풍요로워 지는 것 같다. 봄이 오면 영애씨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초록의 들판을 가르키며 “소희야 저게저게 온천지 다 먹을 거데이!”“라고 말한다. 어제는 영애씨가 가평에 있는 친구 집에 다녀왔다. 늦은 밤 집에 들어와 내려놓은 박스 안에는 쑥, 돌미나리, 돈나물, 쪽파, 취나물, 달래, 방아, 두릅이 담겨 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묻자, 가평 산 천지를 돌아 댕기면서 햇빛을 등에 얹고 직접 캐온 나물들이라고 한다. 두릅은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을 생각하니 입안에 초록의 기운이 쏴아 하고 퍼지고, 돈나물은 아삭아삭 씹는 맛이 재미지고, 달래는 된장찌개에 넣어 자글자글 끓여 먹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먹거리를 지천 어디에서든지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리고 산천 무수한 초록의 것들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영애씨의 지혜가 부러웠다. 모처럼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 아침, 영애씨가 마루에 신문을 깔고 친구의 텃밭에서 뽑아 온 쪽파를 다듬는다. 그리고 영애씨가 말한다 “소희야 이거 혼자 따듬을란께 머리에서 쥐가 날라칸다. 이거 언제 다 따듬노.” 귀찮았다. 모른 척 하고 싶었다. 헌데 영애씨 머리에 쥐가 난다니 마주 앉아서 흙이 묻어 있는 쪽파를 다듬는다.(사진 속 쪽파의 양은 일부분일 뿐 프레임 밖 쪽파들은 엄청났다.ㅠ)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랜만의 대화다. 이야기의 주제는 열 개 중 여섯 개가 결혼을 요구하는 압박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나머지 네 개의 이야기는 봄날의 쪽파를 다듬었던 순간을 곱게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었다. 삼십대의 딸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의 삼십대는 어땠어?” 영애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애씨와 함께 다듬은 쪽파는 한 가득 파김치가 되어 상위에 놓여 있다. 맛이 아주 좋다.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지고 가서 동무들이랑 맛나게 먹을 생각하니 또 좋다. 에헤라디야! 봄이구나! 에헤라디야! 풀떼기가 좋구나!
 
 바람(민우회 활동가)

2012. 4. 30. 13:29

 

 

올해도 민우회에서 여성주의 고전읽기 강좌를 오픈한다. 작년 강좌는 강좌 듣게 다며 교재도 사놓고 그랬는데 결국 침만 줄줄 흘리고 강좌 하나 밖에 못들었는데, 올해는 반드시 기필코 전 강좌 '올출'해보려고 한다.

 

웹자보를 보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강의 기획도, 강좌 홍보물도 정말 멋지다. 민우회 짱! 쵝오!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