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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의 집'에 해당되는 글 4건
2012. 12. 2. 21:40

작년에 세화의 집에서 머물면서 올레3코스를 걸으려고 했다. 예정했던 날 비가 내려 결국 그 길은 걷지 못하고 5코스를 걸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있는 3코스, 김영갑 갤러리에 가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올레3코스는 중산간을 지나는 길이다.  숙소에서 길의 시작점까지 대략 2시간이 걸렸다.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마을 곳곳에 정차하고 사람을 태우고 내리다보니 시간이 꽤 걸린다. 제주 할망들이 버스를 타고 내린다. 제주 할망은 머릿수건을 많이들 맨다. 그 모습이 인상깊었다.

 

 

 

 

 

 

+ 가을이면 오름을 보랏빛으로 물들인다는 작은꽃들이 이녀석들인가보다. 겨울오름에 아직 가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온평포구에서 시작해서 김영갑갤러리까지 내내 중산간 마을을 지났다. 중간에 오름도 하나 있었다. 중산간 마을에서는 귤농사를 짓고 있었다. 곳곳이 귤밭이었다. 귤나무에는 노오란 귤이 가지를 축 늘어트릴 정도로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길을 걷다 귤 하나를 주워 먹었다. 나무에 매달린 귤대신 땅에 떨어진 귤 하나를 주워 먹었다. 길 위에서 먹는 귤맛은 보통때 먹는 귤맛과 달랐다. 맛있게 귤을 먹고 오름을 하나 넘었다. 물통처럼 움푹 패어 통오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가을이면 패랭이, 개쑥부쟁이, 꽃향유로 보랏빛으로 변한다고 한다. 오름을 오르면서 아직 가을의 여운을 부여잡고 있는 보라빛 작은 꽃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총20km가 넘는 3코스는 사람도 별로 없는 아주 조용한 길이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문득 내가 이렇게 길을 걷는 것이 옳은 행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이 공간은 일상의 공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일상의 공간에 타인이 '불쑥'들어온다면 그것이 과연 반가울까, 싶었다. 도시에서 온 이들이 지친 마음과 묵은 감정과 누더기가 된 슬픔을 싸들고 와서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가겠다고 한다면? 미움과 슬픔, 분노 등과 같이 가볍지 않은 감정들로 공기가 무겁게 채워진다면 그곳에 있는 이들은 과연 반가울까 싶었다. 타인인 우리는 무슨 자격으로 제주에 와서 그토록 무책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싶었다. 그래서 울다가도 눈물이 뚝 그쳐졌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명령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다달았다. 난 왜 이토록 이 공간에 오고 싶어했던 것일까? 그저 그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그는 끊임없이 그가 있는 곳으로 내게 손짓을 했다. 내 이름을 불렀다. 마침 갤러리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바람>展이 열리고 있었다. 그와 내가 통한 것일까. 그가 필름에서 찾은 바람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는 바람 또한 잡아 그의 사진 속에 담아두었다. 그의 사진과 글을 찬찬히 둘러보다 눈물이 나와 혼났다.

 

 

 

 

+ 김영갑 갤러리 뒷마당에 작은 무인카페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차 한잔 마시며 갤러리에서 느낀 감정의 여운을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김영갑 갤러리에도 보라빛 작은 꽃들로 뒷마당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가 항상 유토피아적 삶을 꿈꾸듯 제주인들은 수천년 동안 상상 속의 섬 이어도를 꿈꾸어 왔다. 제주를 지켜온 이 땅의 토박이들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상적 삶에 절약, 성실, 절제, 인내, 양보가 보태져야 함을 행동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다 하더라도 나(제주)다움을 지키지 못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제주인들처럼 먼저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이어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육신의 움직임이 둔해질수록 활동 반경이 좁아져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손의 움직임이 약해져 책장을 넘기거나 글을 쓸 수도 없다. 의자에 앉아 있기도 힘에 부친 날은 사람들과 만날 수도 없다. 혀가 꼬여서 어눌해진 발음 때문에 전화통화도 어렵다. 혼자 지내는 하루는 느리고, 지루하다. 일상은 단순하고, 탄력이 없다. 방안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다. 눈을 뜨면 천장과 벽만 보인다. 장애를 가진 내 육신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지평선과 수평선이 보인다. 중산간 외딴집에서의 하루는 길었다. 찾는 이 없이 혼자 지내는 하루는 지루하고 더디 흘렀다.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으면 심심하고 지루팼다. 불평불만으로 가득찼던 그 시절이 지금은 그립다. 온종일 침대에서 지내야 하는 지금은, 카메라를 메고 들녘을 쏘아 다니던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는다. 앞을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수직 절벽이고, 뒤를 뒤돌아본다고 흘러간 세월을 어찌할 것인가. 좌우를 살펴도 방법이 없다. 민간요법에 매달려 보았지만 나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하늘이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하늘의 영향을 받는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살지 못한다. 이젠 하늘만을 믿어야 한다.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시련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설레임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어제 하루가 고통스러웠듯, 오늘의 시련이 내일로 이어짐을 알기에 새날이 시작되어도 절망하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따뜻한 봄을 만날 수 있다. 추위가 강할수록 따사로움은 돋보인다. 풀과 나무가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나무는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 풍성한 열매를 기뻐하지도 우쭐대지도 않는다. 열매는 사람, 곤충, 새들의 몫이다. 아낌없이 모두 나누어주고, 나무는 다시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음을 알았을 대, 주저 없이 자신을 자연에 내맡겼다.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나는 그렇게 하늘만을 믿고 나에게 허락된 하루를 감사하며 신명을 다해 오늘을 즐긴다. 온종일 깊은 생각에 잠겨 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만이 가진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나를 들여다볼 뿐 무엇을 보려고, 느끼려고,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들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보고 싶으면 보고, 느끼고 싶으면 느끼고, 개닫고 싶으면 깨달으면 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어 좋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이제는 흘러가는 대로 지켜볼 뿐이다. 나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동안 보고 느끼고, 깨달았던 것들을 통해 자연의 질서, 생명의 순환원리, 대자연의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편안하고 즐겁다. 두 눈으로 보았고, 두 귀로 들었고, 두 손으로 만져보고, 두 개의 콧구멍을 맡아 보고, 온몸으로 느껴보았기에 확신했던 것들이 진짜배기가 아니라 허드레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20년 동안 오름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도 모르면서 두 개, 세 개 욕심을 부렸다. 중산간 오름 모두를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하겠다는 주급함에 허둥대었다. 침대에 누워 지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같은 과오를 범했을 것이다.


 

김영갑 글 중에서

 

20년 동안 제주에서 지내면서 종일 오름을 바라보며 오름을 찍어왔던 그가, 오름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니 그 태도에 한없이 숙연해진다.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제주의 사람과 제주의 바람과 제주의 중산간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그의 치열함에 말을 잃게 된다. 갤러리 무인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셨다.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올레길 위에서 서른 걸음 걷다가 한모금 마시고, 또 서른 걸음 걷다 한모금 마셨다. 커피가 정말 맛있어서 그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져서 또 눈물이 날 것같았다.

 

 

 

 

 

갤러리까지의 거리는 총 12.1km였다. 앞으로 8km는 더 걸어야 했고, 시간은 3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 올레길을 다 걸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딱히 밥을 사먹을 곳이 없어 아침에 산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래도 배가 고파 귤을 몇 개 더 주워 먹기로 했다. 귤밭 초입에 떨어진 귤이 별로 없었다. 귤을 찾다가 초입에 몇 개의 귤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반가히 달려갔다. '하나 먹고 나중에 걷다 목 마르면 더 먹을 수 있게 두개 주워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처음 집어 든 귤은 말짱하니 이뻤다. 주변에 몇 개가 더 있어서 집어 들었더니 땅에 박혀 있는 부분이 모두 곪아 있었다. 결국 귤을 한개밖에 먹지 못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것이 아닌 것에 욕심부리지 않고, 열매가 맺기까지 물을 주고, 가꾸고, 보살핀 이의 노고를 쉽게 취하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귤밭이 내게 가르침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하나에 '감사히 먹겠습니다.' 말하고 달고 맛있게 먹었다.

 

해변가 돌무지 길에 다다르니 4시가 넘었다. 6시가 되면 어둑어둑해질텐데. 발걸음을 재촉하고 싶었지만 돌무지 길은 걷기가 쉽지 않았다. 까딱하면 넘어질지모르는 그 돌무지 길을 걸으면서 수백, 수천, 수억, 영겁의 시간을 아무 말 없이 버티고 견뎌왔을 그 검은 돌 앞에서 오만을 부리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밟고 후다닥 재빠르게 그 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버리고 무한히 겸손해질 것을  되뇌이었다. 험난한 돌무지 길을 무탈히 통과하였다. 그리고 5시가 넘은 시간, 숲길이 나왔다. 해지기 직전이라 아무도 없는 숲 안에서 더더욱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숲을 믿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내 존재를 증명해주는 이는 오로지 이 숲뿐이다. 숲을 믿고 가자.'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를 신뢰하면서. 특히 인간은 자연을 경외하며. 그렇게 서로를 믿고, 보살피며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닷가 어느 무당집도 그런 흔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그 신뢰의 약속도 깨지고 말았다. 공포로 시작한 숲길에서 평온을 찾다 숲길을 벗어날 즈음 다시 두려움을 느꼈다.

 

 

 

 

여러모로 둘째날은 '자연'의 존재를 많이 생각한 날이었다. 그 존재는 분명 존재하는 것인데 너무나도 쉽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그 신뢰의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표선해비치해변에서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해변의 고운 모래에 잔물결에 발을 담갔다. 종일 담았두었던 공포와 외로움, 두려움, 피로가 조용하게 씻긴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3코스가 끝나는 표선해비치해변에서 우연히 작년에 머물렀던 세화의 집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날 기억하고 있었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인연이 되면 또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짧은 만남을 겪으며 만날 인연은 이렇게 만나는구나 싶었다. 왠지 세화의 집 어머니와는 곧 또 만날 것같은 예감이 든다.    

(20121130)

2012. 9. 3. 21:38

 

 

1. 숙대에서 거주하고 있는 냥이, 동생이 종종 학교에 가면 이 녀석을 만난다고 한다. 가끔 동영상도 찍어서 보여주는데 엄청 애교쟁이다. 이날은 토라졌는지 등만 보여주고 있다. 뒷태의 근육이 옹골차보인다.

 

 

2. 민트가 보내준 사진, 삼실 활동가 민트는 내가 냥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종종 여기저기에서 발견한 냥이 사진들을 핸드폰으로 보내준다. 이 사진의 제목은 네옹게이션이었다. ㅋ 냥이 어쩜 길쭉하게 저 자리에 앉아 태연히 바깥을 내다보고 있을까. 재밌다.

 

 

 

3. 위에 사진 두장도 민트가 보내준 냥이들. 컴퓨터 기술이 가미된 냥이 사진이다. 그래도 이쁘다.

 

 

4. 동물 농장에 나왔던 냥이, 그림보는 냥이다. 지금 이 녀석은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다. 정말 그림을 보고 있다. 이 냥이는 부산에 있는 작은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종종 온다고 한다. 정말 그림을 보는 걸까? 뒷모습은 정말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고 있는 포즈다.

 

 

5. 저 멀리 나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요? 나를 찾아보세요! 냥!

 

 

6. 인사동에 거주하는 냥이. 호랭이 새끼같이 생겼다.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인사동에 냥이 못보러간지 오래되었다. 인사동 '시천주' 근방엔 냥이가 가득!

 

 

7. 제주 '세화의 집'에서 거주하는 냥이. 엄청나게 깔끔을 부리던 녀석이었다. 이 사진에선 얼굴이 안보이지만  뒤에 한 마리가 더 있다. 둘이 진짜 똑같이 생겼다.

 

 

8. 홍대 카페 '다방'에서 보살펴주는 길냥이. 카페 '다방' 근방엔 물그릇과 밥그릇이 항시 나란히 놓여있다. 이녀석을 위한 물그릇과 밥그릇인가 보다. 맘좋은 사람들. :)

 

 

9. 마지막으로 홍대 카페 '여름 36.5도'의 냥이.(이 녀석은 합정 근방 여름 냥이가 아니라 커피프린스 옆에 있는 여름 냥이다.) 이 냥이는 엄청나게 귀엽고 매력적인 얼굴을 가졌지만 본성은 전혀 그렇지 않은 녀석. 이뻐서 한 번 쓰담했다가 심하게 물려 피철철 흘린 경험이 있다. 카페 벽에도 고양이가 무니까 조심하라는 경고문구도 있다. 그때 그걸 미처 보지못했지.ㅠ 소심해서 카페 주인장한테 뭐라고도 못하고 눈물 찔끔 머금고 음료도 다 남기고 바로 나왔었다. 그때 이후로 '여름 36.5도'로 발길이 안간다. 아직도 손등엔 그 흉터가. ㅠ 그래도 이쁘다. 미묘다.

  

 

10. 마지막으로 멍멍이! 여주 '한국노총 수련원 매점'에서 잠시 머물다가 이제는 장성하여 다른 곳으로 가버린 노총이! '한국노총 수련원 매점'에서 기르던 녀석이라 이름이 노총이었다. 이번 8월 회원캠프 때 이녀석을 한 번 더 볼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결국 못봤다. 아고, 귀여워라! 눈이 너무 순하다.

 

+ 딴짓거리 그만하고 글쓰자! 글쓰자! -_-;

2011. 10. 6. 21:09
승희나무님에게.

제주에서의 시간도 오늘로서 벌써 4일째에요. 시간이 어쩜 그리도 빨리 흘러가는지 절반의 시간이 훌쩍 흘렀어요. 오늘은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걸었어요. 6코스는 아쉬움의 길이었어요. 처음 여행계획을 짤 때 6코스를 넣은 것은 올레도 걷고 덩달아 길위에 있는 정방폭포도 천지연폭포도 둘러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선택을 했어요. 하지만 정방폭포도 천지연폭포도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고, 잘 알려진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치일것이라는 것이 뻔히 보여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는 '아 이곳이 정방폭포가 있고 천지연폭포가 있는 곳이구나.' 라고 위치만 확인하고 그 앞을 그냥 지나쳤어요.


길을 걷다보니 오늘은 길위의 풍경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날이었어요. 제지기 오름에서 몸의 열기를 식히고 있을 때 제주주민이 먼저 말을 건네며 서귀포매일시장에 가서 회한접시 먹으라고 권했고, 강태여할망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아주머니들과 거듭 만났고,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순심씨도 만났어요.

세화의 집에서 따뜻하게 잠도 푸욱-자고 밥도 든든히 먹고 나서려고 하니 세화의 집 어머님께서 오늘 밤엔 어디서 자냐고 물으셨어요. 대평슈퍼민박에서 머문다고 하니 세화의 집 어머님, 아버님께서는 슈퍼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6코스를 걷는다고 하니 올레사무국 1층에 가면 순심씨가 있을 거라고 하였어요. 순심씨는 정말 그곳에 있었고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의 목소리에서 그녀가 이 길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마음다해 맞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순심씨에게 "세화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길을 나섰어요. 이곳에 오면 순심어머님을 만날 수 있을거라고 했는데 정말 만나게 되었네요."라고 말하자 순심씨는 오늘 밤에도 세화의 집에서 머물면 우리 편에 안부를 전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말하며 아쉬워 했어요. 올레꾼인 내가 메신저가 되어 안부를 물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신났어요. 아는 분의 집에서 머물다가 온 이들이라면서 순심씨는 따숩게 맞이해주었어요.

소정방폭포를 지나 올레 사무국에서 세화의 집 어머님이 맹글어주신 주먹밥을 먹고 정방폭포를 지나 과일가게를 지나니 또 과일가게 아주머니 아저씨가 말을 건네내요. 처음엔 낯선이가 말을 건네 어색하고 빨리 이곳을 지나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과일가게 아주머니 아저씨는 올레꾼이면 여기저기 말도 붙이고 먹을 것도 얻어먹으면서 다녀야지 말하며 손에 귤이며 쵸콜릿을 찔러 넣어주셨어요. 길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짧지만 길을 매개로 소통한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길위엔 올레커뮤니티가 있더라고요. :)

쇠소깍에서 출발해 소정방 폭포를 지나고 올레사무국, 이중섭 미술관을 거쳐 서귀포매일시장구경을 하고 시공원에서의 복작거림을 겪고 종착지인 외돌개까지 걸었던 6코스는 사람이 있던 길이었고 동시에 아쉬움이 남아 다시 찾아오게 될 듯하여요. 외돌개에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정류장에서는 어제 길위에서 몇번 마주쳤던 청년을 또 만났고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또 보게되면 '인사해요.그' 그렇게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올레길에서도 만났었답니다. 올레는 '사람'인가봐요.

올레덕에 나무님과도 한발자국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시월 일일 토요일
바람이 보내어요.


+ 사진은 멀리서 내려다 본 천지연 폭포와 늦은 시간에 도착해 밤 배 불빛 속에 우뚝 선 외돌개에요.
2011. 10. 6. 18:25

승희나무님에게.

나무님 서울은 별일 없이 잘 있지요? 강태여 할망집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짐을 짊어지고 오늘은 세화의 집에 짐을 풀었어요. 나무님도 혹시 세화의 집에서 머물었나요? 통영의 할배와 사천의 할매가 어떤 이유로 제주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지금 두분은 올레길을 알리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세화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화의 집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느그들 밥 묵었나?"였어요. "아니요."라고 말하자 "속이 든든해야지 잘 걷제! 밥묵고 가그래이."라고 말씀하시며 뚝딱 한 상을 차려주셨어요. 이틀동안 집밥이 아닌 바깥 밥을 먹었던 터라 (할망집에서 먹은 밥은 할망이 시켜주셨던 식당밥이었어요.ㅠ) 집밥이 참으로 감격스러웠어요. 한술 뜨고 또 뜨는데 어찌나 행복하던지, 집밥의 힘을 느꼈어요.

오늘은 계획대로라면 3코스를 걷는 날이에요. 어젯밤부터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에도 계속 비가 내려 길을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을 했어요. 그러고 있는 중 세화의 집 어머님과 아버님은 말을 맞춘듯이 "느그들 오늘 몇 코스 걷기로 했나?"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3코스라고 답했더니 3코스는 비가 오는 날이면 발이 푹푹 빠지고 쉽지 않을 것이라고 5코스를 걷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동생과 전 베테랑 두 분의 말을 듣기로 했어요. 예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길, 길은 남원포구에서부터 쇠소깍까지 14.7Km 그런데 그 길이 걷다보니 낯설지가 않더라고요. 어, 이길은 내가 걸었던 길인데. 2009년에 민우회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제주도로 캠프를 다녀왔었는데 그때 그/녀들과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고 있더라고요. 함께 이 길을 걸었던 그때 그/녀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고 보고싶고, 서울 올라가면 그녀들과 함께 했던 사진첩을 다시 열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올레 5코스는 추억을 다시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길이었어요. 그리고 5코스는 이야기가 있는 길이었어요. 나무님도 5코스를 걸으면서 이 길은 이야기가 풍성한 길이라고 느꼈겠지요? 해안길을 지나다가 나오는 동백나무 군락지, 17살에 시집온 현맹춘 할머니는 어렵게 마련한 황무지의 모진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의 동백 씨앗 한 섬을 따다가 심어 기름진 땅과 울창한 숲을 이루어 냈다는 길. 구월의 마지막 날 동백나무 군락지를 길으면서 평생을 땅을 가꾸고 일궈온 할머니의 '혼'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바람을 막아주는 많은 나무들 중 왜 붉은 동백나무였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어요. 왜 동백나무였을까요? 붉게 피우고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이 그대로 툭하고 떨어지는 붉은 동백이었을까요? 바람이 매서울 정도로 시린 겨울  나무에서 한 번, 길위에서 한 번, 두번 붉게 피는 꽃을 보며 할망은 처절한 '힘'을 느꼈을까요? 지금은 꽃이 없는 자리에서 동백 열매를 줍는 또 다른 할망을 보며 괜시리 제주의 여인들은 그 어느곳의 여인들보다 위대하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져봅니다.


나무님은 5코스 어디에서 발길을 멈추었나요? 전 공천포 근방에 주저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어요. 샘물이 솟아올라 산 속 계곡처럼 민물이 바다로 흘러 내려 두 물이 만나는 순간이 어쩜 그리도 신비로운지 계곡의 물소리와 바다의 파도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그 순간이 경이로왔다지. 그 이후로 올레길을 걸으면서 샘물이 솟는 곳엔 마을이 늘 형성되고 마을사람들은 물이 솟는 그 자리에 빨래터도 만들고 목욕탕도 만들어 여름날 더위를 피한다는 사실을 길을 걸으면서 보고 알게되었어요. :)


그리고 쇠소깍, 바닷물과 민물이 한데모여서 만들어진 공간 또한 절경이었어요. 구월의 마지막 날은 길 위에서 추억도 만나고, 다시 찾아뵙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도 만난 의외의 선물같은 길이었어요. 이 길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 나무님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그럼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구월 삼십일 금요일
바람이 보내어요.

ps. 세화의 집 어머님이 올레길 18코스를 추천했어요. 일곱번째 날은 그 길을 걸으려고요.
올레꾼들을 위한, 올레길을 찾는 여성들을 위한 세화의 집은 다시 한 번 찾아가서 길게 머물러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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