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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 21:40

작년에 세화의 집에서 머물면서 올레3코스를 걸으려고 했다. 예정했던 날 비가 내려 결국 그 길은 걷지 못하고 5코스를 걸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있는 3코스, 김영갑 갤러리에 가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올레3코스는 중산간을 지나는 길이다.  숙소에서 길의 시작점까지 대략 2시간이 걸렸다.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마을 곳곳에 정차하고 사람을 태우고 내리다보니 시간이 꽤 걸린다. 제주 할망들이 버스를 타고 내린다. 제주 할망은 머릿수건을 많이들 맨다. 그 모습이 인상깊었다.

 

 

 

 

 

 

+ 가을이면 오름을 보랏빛으로 물들인다는 작은꽃들이 이녀석들인가보다. 겨울오름에 아직 가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온평포구에서 시작해서 김영갑갤러리까지 내내 중산간 마을을 지났다. 중간에 오름도 하나 있었다. 중산간 마을에서는 귤농사를 짓고 있었다. 곳곳이 귤밭이었다. 귤나무에는 노오란 귤이 가지를 축 늘어트릴 정도로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길을 걷다 귤 하나를 주워 먹었다. 나무에 매달린 귤대신 땅에 떨어진 귤 하나를 주워 먹었다. 길 위에서 먹는 귤맛은 보통때 먹는 귤맛과 달랐다. 맛있게 귤을 먹고 오름을 하나 넘었다. 물통처럼 움푹 패어 통오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가을이면 패랭이, 개쑥부쟁이, 꽃향유로 보랏빛으로 변한다고 한다. 오름을 오르면서 아직 가을의 여운을 부여잡고 있는 보라빛 작은 꽃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총20km가 넘는 3코스는 사람도 별로 없는 아주 조용한 길이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문득 내가 이렇게 길을 걷는 것이 옳은 행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이 공간은 일상의 공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일상의 공간에 타인이 '불쑥'들어온다면 그것이 과연 반가울까, 싶었다. 도시에서 온 이들이 지친 마음과 묵은 감정과 누더기가 된 슬픔을 싸들고 와서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가겠다고 한다면? 미움과 슬픔, 분노 등과 같이 가볍지 않은 감정들로 공기가 무겁게 채워진다면 그곳에 있는 이들은 과연 반가울까 싶었다. 타인인 우리는 무슨 자격으로 제주에 와서 그토록 무책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싶었다. 그래서 울다가도 눈물이 뚝 그쳐졌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명령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다달았다. 난 왜 이토록 이 공간에 오고 싶어했던 것일까? 그저 그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그는 끊임없이 그가 있는 곳으로 내게 손짓을 했다. 내 이름을 불렀다. 마침 갤러리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바람>展이 열리고 있었다. 그와 내가 통한 것일까. 그가 필름에서 찾은 바람이 곳곳에서 보였다. 그는 바람 또한 잡아 그의 사진 속에 담아두었다. 그의 사진과 글을 찬찬히 둘러보다 눈물이 나와 혼났다.

 

 

 

 

+ 김영갑 갤러리 뒷마당에 작은 무인카페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차 한잔 마시며 갤러리에서 느낀 감정의 여운을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김영갑 갤러리에도 보라빛 작은 꽃들로 뒷마당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가 항상 유토피아적 삶을 꿈꾸듯 제주인들은 수천년 동안 상상 속의 섬 이어도를 꿈꾸어 왔다. 제주를 지켜온 이 땅의 토박이들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상적 삶에 절약, 성실, 절제, 인내, 양보가 보태져야 함을 행동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다 하더라도 나(제주)다움을 지키지 못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제주인들처럼 먼저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이어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육신의 움직임이 둔해질수록 활동 반경이 좁아져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손의 움직임이 약해져 책장을 넘기거나 글을 쓸 수도 없다. 의자에 앉아 있기도 힘에 부친 날은 사람들과 만날 수도 없다. 혀가 꼬여서 어눌해진 발음 때문에 전화통화도 어렵다. 혼자 지내는 하루는 느리고, 지루하다. 일상은 단순하고, 탄력이 없다. 방안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다. 눈을 뜨면 천장과 벽만 보인다. 장애를 가진 내 육신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지평선과 수평선이 보인다. 중산간 외딴집에서의 하루는 길었다. 찾는 이 없이 혼자 지내는 하루는 지루하고 더디 흘렀다.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으면 심심하고 지루팼다. 불평불만으로 가득찼던 그 시절이 지금은 그립다. 온종일 침대에서 지내야 하는 지금은, 카메라를 메고 들녘을 쏘아 다니던 그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는다. 앞을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수직 절벽이고, 뒤를 뒤돌아본다고 흘러간 세월을 어찌할 것인가. 좌우를 살펴도 방법이 없다. 민간요법에 매달려 보았지만 나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하늘이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하늘의 영향을 받는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살지 못한다. 이젠 하늘만을 믿어야 한다.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시련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설레임으로 내일을 기다린다. 어제 하루가 고통스러웠듯, 오늘의 시련이 내일로 이어짐을 알기에 새날이 시작되어도 절망하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따뜻한 봄을 만날 수 있다. 추위가 강할수록 따사로움은 돋보인다. 풀과 나무가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나무는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 풍성한 열매를 기뻐하지도 우쭐대지도 않는다. 열매는 사람, 곤충, 새들의 몫이다. 아낌없이 모두 나누어주고, 나무는 다시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다.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음을 알았을 대, 주저 없이 자신을 자연에 내맡겼다.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나는 그렇게 하늘만을 믿고 나에게 허락된 하루를 감사하며 신명을 다해 오늘을 즐긴다. 온종일 깊은 생각에 잠겨 내 자신을 들여다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나만이 가진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가만히 나를 들여다볼 뿐 무엇을 보려고, 느끼려고,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들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보고 싶으면 보고, 느끼고 싶으면 느끼고, 개닫고 싶으면 깨달으면 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행을 할 수 있어 좋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이제는 흘러가는 대로 지켜볼 뿐이다. 나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동안 보고 느끼고, 깨달았던 것들을 통해 자연의 질서, 생명의 순환원리, 대자연의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편안하고 즐겁다. 두 눈으로 보았고, 두 귀로 들었고, 두 손으로 만져보고, 두 개의 콧구멍을 맡아 보고, 온몸으로 느껴보았기에 확신했던 것들이 진짜배기가 아니라 허드레한 것이었음을 알았다. 20년 동안 오름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도 모르면서 두 개, 세 개 욕심을 부렸다. 중산간 오름 모두를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하겠다는 주급함에 허둥대었다. 침대에 누워 지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같은 과오를 범했을 것이다.


 

김영갑 글 중에서

 

20년 동안 제주에서 지내면서 종일 오름을 바라보며 오름을 찍어왔던 그가, 오름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니 그 태도에 한없이 숙연해진다.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제주의 사람과 제주의 바람과 제주의 중산간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그의 치열함에 말을 잃게 된다. 갤러리 무인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셨다.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올레길 위에서 서른 걸음 걷다가 한모금 마시고, 또 서른 걸음 걷다 한모금 마셨다. 커피가 정말 맛있어서 그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져서 또 눈물이 날 것같았다.

 

 

 

 

 

갤러리까지의 거리는 총 12.1km였다. 앞으로 8km는 더 걸어야 했고, 시간은 3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 올레길을 다 걸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딱히 밥을 사먹을 곳이 없어 아침에 산 빵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래도 배가 고파 귤을 몇 개 더 주워 먹기로 했다. 귤밭 초입에 떨어진 귤이 별로 없었다. 귤을 찾다가 초입에 몇 개의 귤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반가히 달려갔다. '하나 먹고 나중에 걷다 목 마르면 더 먹을 수 있게 두개 주워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처음 집어 든 귤은 말짱하니 이뻤다. 주변에 몇 개가 더 있어서 집어 들었더니 땅에 박혀 있는 부분이 모두 곪아 있었다. 결국 귤을 한개밖에 먹지 못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것이 아닌 것에 욕심부리지 않고, 열매가 맺기까지 물을 주고, 가꾸고, 보살핀 이의 노고를 쉽게 취하려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귤밭이 내게 가르침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하나에 '감사히 먹겠습니다.' 말하고 달고 맛있게 먹었다.

 

해변가 돌무지 길에 다다르니 4시가 넘었다. 6시가 되면 어둑어둑해질텐데. 발걸음을 재촉하고 싶었지만 돌무지 길은 걷기가 쉽지 않았다. 까딱하면 넘어질지모르는 그 돌무지 길을 걸으면서 수백, 수천, 수억, 영겁의 시간을 아무 말 없이 버티고 견뎌왔을 그 검은 돌 앞에서 오만을 부리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밟고 후다닥 재빠르게 그 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버리고 무한히 겸손해질 것을  되뇌이었다. 험난한 돌무지 길을 무탈히 통과하였다. 그리고 5시가 넘은 시간, 숲길이 나왔다. 해지기 직전이라 아무도 없는 숲 안에서 더더욱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숲을 믿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내 존재를 증명해주는 이는 오로지 이 숲뿐이다. 숲을 믿고 가자.'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를 신뢰하면서. 특히 인간은 자연을 경외하며. 그렇게 서로를 믿고, 보살피며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닷가 어느 무당집도 그런 흔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그 신뢰의 약속도 깨지고 말았다. 공포로 시작한 숲길에서 평온을 찾다 숲길을 벗어날 즈음 다시 두려움을 느꼈다.

 

 

 

 

여러모로 둘째날은 '자연'의 존재를 많이 생각한 날이었다. 그 존재는 분명 존재하는 것인데 너무나도 쉽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그 신뢰의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표선해비치해변에서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해변의 고운 모래에 잔물결에 발을 담갔다. 종일 담았두었던 공포와 외로움, 두려움, 피로가 조용하게 씻긴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3코스가 끝나는 표선해비치해변에서 우연히 작년에 머물렀던 세화의 집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날 기억하고 있었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인연이 되면 또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짧은 만남을 겪으며 만날 인연은 이렇게 만나는구나 싶었다. 왠지 세화의 집 어머니와는 곧 또 만날 것같은 예감이 든다.    

(2012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