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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에 해당되는 글 2건
2011. 3. 16. 01:02



이윤기 감독 영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여자, 정혜> <멋진 하루> 그의 전작들이 내게 전하는 뭉근한 여운들이 있었다. 조바심 내지 않고 인물들을 따라가는 힘을 이윤기 감독은 가지고 있었다. 감독의 전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힘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속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잔상'일뿐이라는 생각을, 극장을 나오면서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가 가장 안타깝게 느낀 부분은 배우들 이었다. 임수정과 현빈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지만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만약에'라고 먼저 가정하게 되었다. 만약에 두 주인공이 현빈과 임수정이 아니었더라면. 카메라는 묵묵히 영화 속 주인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임수정과 현빈의 연기덕에 스크린 속엔 헤어지기로 결심한 두 남녀의 감정이 스며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만약에'라는 가정을 하였다. 만약에 두 주인공이 그렇게 잘 사는 편이 아니었더라면. 반듯한 세간살이가 갖춰진 집은 그/녀들의 감정을 공감할 수 없게 하는 방해 요소로 작용하였다. '아니 저 두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돈을 벌길래 저 연령대에 저런 집을 소유하고, 파스타 면 삶는 냄비와 같은 익숙지 않은 세간살이를 갖추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태생적으로 잘 사는 집 애들 일 것이야. 자수성가해서 저렇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야.'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동동 떠다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결혼 5년 차 부부, 외국으로 출장가는 여자를 공항으로 데려다 주는 길, 갑자기 여자가 말한다. "나 자기랑 그만 살래." 그말을 들은 남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몇마디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남자는 화를 내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여자는 함께 살던 집을 나오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남자는 말없이 여자가 아끼던 그릇들을 정성스레 싸준다. 함께 살아온 시간에 비례하여 꼭 거창한 이별절차를 밟을 필요는 없겠지만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두 주인공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적이다. 누군가는 영화 속 장면이 차 안에서 여자가 이별을 통보한 후 며칠이 지난 시점이니 표현되지 않은 며칠의 시간 속에 두 남녀는 충분히 격정적 감정을 표출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두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감독은 갇힌 공간 속의 두 사람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속 두 남녀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윤기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위의 이유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이 무의미하기도 하지만, 나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두 사람을 보며 계속 왜, 왜, 왜!라고 묻게 된다. 이는 필연 영화를 보면서 아주 작은 마음의 요동도 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인듯하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보면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보고 <멋진 하루>를 다시 보았다. <멋진 하루>또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멋진 하루>가 보여주는 공간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공간은 어떻게 다를까? <멋진하루>가 보여주는 공간은 누구나 한번즘 스쳐 지나갔을 법한 열린 공간이다. 익숙한 서울 풍경, 익숙하기에 지나치고 갈법한 골목과 도로를 카메라는 상투적이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공간은 '누군가만의' 닫힌 공간이다. 서울의 외곽, 출판단지에 위치한 두 사람의 빌라 내부만을 영화는 담는다. 그리고 감독은 그 공간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고 조각조각 잘라 보여준다. 영화는 카메라 프레임이라는 갇힌 공간 속에 다시 벽과 가구로 공간을 나누고 그 안에 인물을 가둬둔다. 남자의 공간은 지하 1층 작업실이고, 2층은 남자와 여자의 공통 공간이고, 그 다음 층 서재는 여자의 공간이다. 두 남녀는 집이라는 하나의 전체 공간 안에 머물고 있지만 그들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뿐 두 사람이 동일한 공간에 그것도 동시에 함께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렇게 공간도 감정도 잘려진 그/녀들의 시간 속엔 계속 비가 내리고 영화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햇빛이 가득한 온전한 공간을 보여준다. 한때 남자가 여자에게 만들어 주었던 강아지 인형이 놓여 있는 지하 작업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밥을 먹거나 티비를 보며 킥킥 웃었을 거실, 함께 요리 책을 보며 머리를 맞대고 있었을 서재를 영화는 인물을 배제시키고 보여준다. 한번씩 갑자기 등장하는 '햇빛 가득한 온전한 공간'은 '우리도 한때는 서로가 전부이고, 애틋한 시간이 있었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공간을 잘게 나누어 그 안에 인물을 가둬두고, 온전한 공간에선 인물을 배제시킨 감독은 영화의 막바지에 두 사람을 부엌이라는 같은 공간에 둔다. 남자의 후라이팬을 여자가 이어 받고, 후라이팬을 내준 남자는 자연스럽게 양파를 썬다. 지인은 이 장면을 보고 관계의 권태를 느끼고 결국 이혼을 결정한 부부가 지난 날의 익숨함으로 손발을 맞춰 척척 요리하는 장면이 찡하다고 하였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장면에 대한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장면을 상상하니 나도 찡하였다. 하지만 영화를 직접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땐 '세팅된 욕망'만이 보여 지인이 전해준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나도 가끔 애인과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 나는 파스타 면을 전용으로 담아 두는 유리 용기에서 면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페트병 주둥이 부분을 잘라 파스타 봉지를 그 안에 그대로 담아 두고, 파스타면을 끓이는 전용 냄비에 면을 삶는 것이 아나라 노란색 양은 냄비에 면을 삶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면을 볶는 것이 아니라 국산 포도씨유에 면을 볶는다. 잘갖춰진 집에서 그럴듯한 세간살이를 두고 그 안에서 한 번즘 사랑을 나눠고픈 뭇 사람들의 '세팅된 욕망'을 영화는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즘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완벽하게 세팅된 공간에서 현실로 그려진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진짜같지 않을 것을 진짜라고 말하는 것같아서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가 집에 불쑥 들어온 어린 고양이를 보며 "괜찮아. 괜찮아질거야."라고 하는 말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P.S_아래 박스에 담긴 영화 리뷰는 민우회 소모임 '작심삼일'의 '수풀'이 쓴 글이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에 대한 '수풀'의 글이 좋아 담아 왔다.

 자체발광의 현빈과 임수정이 나오는 것 만으로도 스크린이 흐뭇했던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신도림 CGV에서 같이 보았지요. 개봉 당일 이었던지라 사람이 꽤 붐볐습니다. 현빈이 나왔던 "만추"를 꽤 만족하며 봤던터라 이번 영화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다른 작삼 멤버들도 그랬던것 같구요. <여자, 정혜>, <멋진 하루>를 만든 감독의 전작들처럼 영화는 뭐랄까~ 대중성과는 조금 거리는 있었어요. 영화관의 관객들 중엔 보다가 나가는 관객도 있었고 따땃하니 나른해져서 잠을 청하는 관객도 있었어요.

5년차 부부가 이혼을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보내는 하루에 대한 영화였는데 고통스러울 정도의 침묵과 권태가 영화 내내 흐릅니다. 그 고통스러움 자체가 둘 사이의 불편함 그 자체를 표현한거겠죠. 하지만 권태로움에 이혼하는 부부가 암 말없이 손발 척척 맞춰가며 마지막 요리를 하는 장면은 맘이 좀 찡하더군요.

어쩌면 현빈과 임수정은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상대방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 제목도 (나는) 사랑한다 (너는) 사랑하지 않는다..인건 아닐지...엇갈린 두 사람의 마음이 영화에선 나오지 않는 마지막 밤을 통해 확인되었으면 참 좋겠네요.

2011. 2. 18. 03:06
자야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있으면서 잠들지 못하고 컴퓨터를 켰다. 영화 <만추>를 보았다. 극장을 나오면서 B군과 영화에 관한 짧은 대화를 나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에 대해 잠시 생각 했다. 자고 일어나면 생각했던 것들이 다 잊어질까봐 몇자 끄적거린다.




남편을 살해하고 7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 애나는 엄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3일간 바깥세상에 머물게 된다. 정부의 남편으로 부터 쫓기고 있는 남자 훈은 미국에서 2년째 떠돌며 살고 있다. 애나의 전화벨이 울린다. 애나의 위치를 묻는 교도관의 전화다. 교도관은 애나에게 교도소로 돌아올 시간을 알린다. 훈의 전화벨이 울린다. 훈의 호스티스 동료는 훈의 위치를 묻고, 훈의 고객들은 훈에게 거래를 요구한다. 애나와 훈을 찾는 전화벨은 그/녀들의 위치를 틈틈이 묻지만 전화기 너머의 존재들은 그들의 진정한 존재가 궁금하지 않다. 단지 돌아올 시간을 고지하고, 조심할 것을 당부할 뿐이다. 존재하지만 타인들에게 의미로 '인지'되지 않는 유령같은 애나와 훈이 만났다.




애나에게 돈을 빌린 훈은 애나에게 자신의 시계를 주면서 돈 갚을 때까지 시계를 가지고 있으라고 한다. 시애틀로 향하는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하고 훈은 애나에게 질문한다. "몇시죠?" 시간을 묻는 대사는 "I need a time." 애나가 하고 싶은 말을 훈이 대신한다. "시간이 필요해요." 72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만을 소유하고 있는 애나와 시간을 가지고 있지만 쫓기는 훈에게 '시간'은 온전하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I need a time.")는 말이 절박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온전한 시간을 갖고 있지 않는 애나와 훈이 '시간'을 공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안개낀 시애틀, 안개가 낀 시애틀은 안개때문에 시간을 알 수 없다. 해가 어디즘에 떴는지, 해가 어디즘으로 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시간대에 만난 애나와 훈은 시애틀의 낡은 모텔로 간다. 하지만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그/녀들에게 시간을 공유하기란 쉽지 않다. 모텔을 나와 오리버스를 타고, 범퍼카를 타고, 갑자기 '마켓'으로 향해 달려간다. 살아가면서 어쩌면 우연히라도 만날 수 없는 두 존재가 만나 그렇게 시간을 달린다. 무수한 사람들의 시간이 공유되는 '퍼블릭마켓'의 밤은 조용하다. 마켓에서 애나는 중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훈은 중국어라곤 '하오'(좋아)와 애나에게서 방금 배운 '화이'(좋지않아)라는 단 두마디만 안다. 하지만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한 애나와 훈은 소통하기 시작한다. 당사자인 애나와 훈은 소통을 직접적으로 바로 깨닫진 못하지만 관객들은 그/녀들의 소통을 먼저 보고 듣는다. 그러나 무수한 사람들의 시간이 공유되는 '퍼블릭 마켓'에 애나와 훈은 존재하고 있지만 마켓에서 유령체험을 하고 있던 타인들에게 애나와 훈은 존재하지 않는 '유령'으로 보일뿐이다. 애나와 훈은 관객들에겐 의미로 '인지'되고 있지만, 영화 속 타자들에겐 아직 '유령'으로 존재한다. 묻혀있던 애나의 표정이 드러나듯이, 영화 속 타자들에겐 아직 묻혀 있는 애나와 훈이 시간을 공유하면서 관객들에게 드러난다.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 애나와 훈은 시애틀의 거리를 걷는다. 훈에게 전화가 온다. 그의 고객 옥자이다. 훈은 낡은 모텔앞에서 애나에게 이곳에서 30분만 기다리라고 한다. 기다리지 않을 것을 안다고 말하면서 기다리라고 한다. 홀로 남겨진 애나는 시간을 공유하기 버거워했던 공간인 낡은 모텔에서 훈을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애나는 그 공간을 처음 찾았을 때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구겨져 있는 스탠드, 누군가의 주먹 혹은 머리로 인해 부서진 문을 애나는 바라본다. 시간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공간에 남긴, 시간을 공유한 흔적을 보며 애나는 그것이 자신에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훈의 시계를 낡은 모텔의 침대위에 두고 애나는 훈을 기다리기를 그만둔다. 

그렇게 애나는 시간을 공유하는 과정을 포기하고 도망간다. 그러나 훈은 하얀 꽃바구니를 안고 애나 엄마의 장례식장을 찾는다. 애나 훈, 애나의 옛 연인인 왕칭과 그의 아내가 한 테이블에 앉는다. 훈은 뭔지 잘 모르지만 '퍼블릭 마켓'에서 경험한 애나와의 소통을 기반으로 왕칭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그 감정을 애나가 이어 받아 과거에 쏟아 내지 못한 묵은 감정을 왕칭에게 쏟아 낸다. 애나와 훈은 다시 시간을 공유한다.




하지만 애나의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애나는 교도소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훈과 작별인사를 한다. 바이바이 인사를 몇번을 거듭하고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애나곁에 훈이 다시 찾아온다. "안녕하세요. 저는 훈이라고 합니다." 애나와 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애나가 교도소로 돌아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나눈다. 처음 만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안개때문에 운행을 할 수 없는 버스는 휴게소에 잠시 멈춘다. "I need a time"이라고 말하며 시간을 간절히 원했던 휴게소에서, 이제 두 사람은 시간을 공유한 과정을 머리와 가슴에 안고 휴게소에 존재한다. 한계적 시간을 가지고 있었던 애나와 훈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시간을 확장시키고, 시간을 공유한 흔적을 '휴게소'라는 공간에 남기면서 함께 했던 시간을 그곳에 정지시킨다. 이제 그녀들의 시간은 공간에 머물면서 온전하게 된다. 어느 사람들처럼.

+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그리고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씨네21을 봤다. 씨네21 강병진 기자가 쓴 글을 보면서 놀랐다. 그가 포착한 장면과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이 내가 포착한 장면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닮아있었기에. 강병진 기자는 <만추>를 보고 '소통의 기적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나는 <만추>를 '시간을 공유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영화라고 말했다.

+ 씨네21 강변진 기자의 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2001001&article_id=64888
(온라인 씨네21에 강병진 기자의 <만추>에 대한 긴 글과 김태용 감독의 인터뷰 글이 올라오면 그것도 함께 링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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