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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메르'에 해당되는 글 3건
2012. 8. 6. 23:04

 

 

 

4일의 휴가를 끝내고 출근을 했다. 도란도란 둘러 앉아 도시락을 열고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k가 물었다. "휴가 어땠어?" 제주의 동, 서, 남, 북 바다를 다 둘러보았고 식도락 여행을 하고 왔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4일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져 여름 휴가가 한 달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영화 <오루에 쪽으로>를 보았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바캉스가 한창이다. 영화제 포스터가 참 여름스럽다. 바캉스를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게 만든다. 시네바캉스에서 상영하는 상영작 리스트를 쭉 보고 <오루에 쪽으로>를 꼭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바캉스를 다녀오면 정작 몸이 지치고 힘들어 영화를 볼 기력이 없어질 것같다는 마음이 한켠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함께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던 친구에게 다음에 같이 영화데이트를 하자고 말하고 일요일 <오루에 쪽으로>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맞이한 일요일, 나의 바캉스 마지막 날 찜통같은 집에 머물고 있는 것이 더 괴로웠다. 그래서 극장으로 더위를 피하러 시네바캉스를 떠났다.

 

여름 휴가가 한 달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 영향력은 아마 영화때문일지도 모른다. 바캉스를 맞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휴가는 20여일이 넘었고, 족히 한 달이 되는 듯하였다. 조엘과 카린, 캐롤린은 양손에 무게가 상당히 나가보이는 트렁크를 손에 쥐고 휴가지로 여행을 떠난다. 배를 타고 도착한 해변가의 한적한 마을. 무거은 트렁크를 낑낑 들고서 사구를 올라서는 그 모습을 보며 휴가에 대한 그녀들의 절박함이 보였다. 영화는 기승전결이 있다기 보다는 휴가지에서 보낸 시간을 일기를 쓰듯 소소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을 보며 삶에 있어 휴가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해본다.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기꺼이 해안 사구를 올라갈만큼 절박하고,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일상의 공간을 벗어난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며, 시덥지 않은 장난에 배를 잡고 꺼억꺼억 웃기도 하는 것이 휴가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조엘과 카린, 캐롤린이 그녀들이 머무는 그 집을 청소하는 장면이었다.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한 달여 동안 머물 집에 또다른 질감의 일상을 풀기 위해 그 공간을 쓸고 닦는 일상적 행위를 보며, 휴가라는 것을 그저 '일탈'이라고만 생각해왔던 것에 대해 다른 결의 '일상'이라고 말하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조엘, 카린, 캐롤린의 셋의 조화에서 파트릭의 결합으로 넷으로 그리고 질베르트의 합류로 다섯으로 파트릭이 떠나 다시 넷으로, 질베르트와 카린의 관계가 무너지며 셋에서 결국 조엘과 캐롤린만 남는 흐름을 유난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담고 있었다. 셋에서 넷, 넷에서 다섯, 다섯에서 넷, 다시 넷에서 셋 그리고 둘. 하나 더하기 혹은 하나 빼기 라는 일상적이고 단조로운 수식을 통해 자크 로지에는 바캉스에서 겪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물결을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결국 그 잔잔함이 영화 마지막 조엘의 눈빛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조엘을 좋아하는 파트릭은 우연을 가장하여 조엘이 머무는 휴가지를 찾지만 조엘은 질베르트에게 마음을 둔다. 하지만 질베르트는 카린과 관계를 만들어 간다. 사람들은 종종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움에 기대어 관계의 경이로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특히 휴가지를 배경으로 한 한국 상업영화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자크로지에는 그것을 표현하되 그것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편안하게 관계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었다.

 

자크 로지에는 "바캉스를 왜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 "바캉스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자유의 순간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말에 절대 공감을 하며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자유의 순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바캉스에 대한 프랑스의 관대한 시간 개념이 부러웠다. 바캉스라는 개념이 단순히 시간과 물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되돌아 보고, 그 시간 속에서 의미를 축적하고, 일탈의 공간에서 다시 한 번 일상을 느끼며 진정으로 자유로운 순간이 무엇인지를 경험한 것을 영화화 한 <오루에 쪽으로>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얼마전 친구들과 함께 떠난 가평으로의 1박 2일의 바캉스가 <오루에 쪽으로>의 바캉스와 조금 닮은 것같다고 생각했다. 가평으로 여행을 함께 떠났던 그 친구들과 함께 <오루에 쪽으로>를 같이 보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가 <오루에 쪽으로>와 관련된 글을 썼다.

자크로지에와 바캉스의 영화들

http://cinematheque.tistory.com/

 

+ <오루에 쪽으로>(1973)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1986)이 떠올랐다. 두 영화는 닮아있었다. 여름 타자기 소리로 가득한 사무실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는 것과 휴가 기간동안의 일에 대해 날짜가 기록된 화면을 삽입하고 그 안에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하는 구조 또한 닮았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프랑스 영화라는 것도.

 

+ 프랑스 영화가 정말 좋다. 프랑스 말을 배우고 싶다. 프랑스에 가고 싶다.

 

+ 자크 로지에 감독의 다른 영화들이 궁금해졌고, <오루에 쪽으로>를 한 번 더 보고싶다. 원래는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한 번 더 볼 수 있을지를 확신할 수 없어(나머지 상영시간은 모두 평일 낮이다. ㅠ) 영화의 잔상이 내게서 사라지기 전에 기록한다. 한 번 더 음미하기 전에 이렇게 기록해버리면 좋은 영화가 그것으로 규정되어버리는 것이 싫은데 어쩔 수가 없다.

 

+ 여튼 <녹색광선>과 함께 <오루에 쪽으로>도 나의 페이버릿 리스트에 합류했다.

2011. 1. 29. 02:18

2010년, 영화 '옥희의 영화'를 보고 아차산에 다녀왔다. 아차산 정상에서 올해가 끝나기 전 영화 한편을 만들 겠다고 다짐했다. 그날의 다짐이 그냥그냥 다짐으로만 머물지도 몰랐었을텐데, 2010년 12월 25일 나는 장비를 대여했고, 작업을 함께 할 친구들을 서울아트시네마 옥상에서 만났다. 바람이 매서웠다. 하지만 우리는 빠알갛게 추위에 손이 익어가면서도 꿋꿋이 촬영을 했다. 촬영을 마무리 하고 장비를 반납하고 감자탕과 소주를 마시며 영화를 만들었다는 기쁨에 모두들 즐거워했다. 결정적 장면을 깜빡하고 찍지 않기도 했고, 이래저래 많이 어설프기도 했지만 정성을 다해 만든 작품이었기에 애정이 특별했다. 그래서 서울아트시네마 홍보 UCC 공모전에 '회춘(回春)'을 출품했다. 바로 말하면 서울아트시네마 홍보 UCC공모전이 실질적으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끔 한 동력이었다. 내심 기대했다. 아트시네마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회춘(回春)'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아트시네마 스크린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만든 영화가 상영된다는 것, 생각만해도 설레였다. 하지만 탈락했다. 그래도 내가 직접 만든 작품이라 그런지 보고 또 봐도 좋다. 상상을 함께 실현한 사람들이 참 고맙다. 

ps. 영화 속 동재의 바람대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11년 겨울 에릭로메르의 '녹색광선'을 상영한다. '녹색광선'을 정말 필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상영시간표에 '녹색광선'이 있다는 것을 보고 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고마와요! 서울아트시네마.


2011. 1. 19. 00:13

2011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쥬이쌍스 시네마'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영화제 개막제에 다녀왔다. 작년부터 벼르고 벼렀던 영화제였기에, 개막작이 에릭로메르의 영화였기에 사무실 신입활동가 환영회를 마다하고 종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제 개봉도 개봉이지만 로메르도 로메르였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은 서울아트시테마 UCC공모전에 수상한 작품들이었다. 영화 개막식에 선정된 영상이 상영된다는 것이 나를  움직이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얼마나 잘 만들었길래, 어떻게 만들었길래 내 작품이 선정되지 않고 다른 작품들이 선정된것일까?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난 오늘 당선작들을 볼 수 없었다. 어떠한 이유인지 당선작이 상영되지 않았다. 아쉬웠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느끼는 '쥬이쌍스 시네마',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2011년 서울아트시네마의 활동 모토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즐거운 영화, 즐거운 공간, 즐거운 사람. 그런의미에서 이번영화제의 모토는 쥬이쌍스 시네마. 영화제 모토에 걸맞게 개막작은 에릭로메르의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Quatre aventures de Reinette et Mirabelle / Four Adventures of Reinette and Mirabelle (1987)이었다.

에릭로메르의 영화를 보며 영화 속에서 느껴지는 그는, 자연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이다. 1986년 영화 '녹색광선'에서, 에릭로메르는 일몰직전, 찰나의 순간 반짝하는 녹색빛을 관찰하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1987년 영화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에서 에릭로메르는 블루타임을 이야기한다. 새벽이 오기 전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는 고요의 순간, 그 순간에 서서 레네트와 미라벨은 생명이 깨어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블루타임을 숨죽여 기다리는 레네트의 모습에 녹색광선을 숨죽여 기다리는 델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델핀의 소녀적 모습이 레네트일지도 모른다고. 두 여성은 자연의 변화와 그 찰나의 순간을 바라보고 집중하고 느끼는 법을 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맞이하든 맞이하지않든 눈물을 흘리는 법을 아는 것이다.

에릭로메르의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사고를 나누는 법을 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이 생각하는 각자의 세계가 존재하고 그 세계를 언어로 주고 받으며, 사람들은 그들 각자의 세계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때로는 "저 사람이 왜 저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한다. 눈물을 쏟는 장면이 어의없고, 황당해서 영화를 보며 허허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 씁쓸함이 베어나오고 그 눈물에 공감이 되기도 하고 그 눈물에 연민을 느꼈다. 생각지도 않게 사고가 흘러가는 것이 당황스러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저 멀리 달려가는 사고를 언어가 따라잡지 못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의심하지 않고 내 뱉었던 사고에 대한 성찰의 의미로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이다. '운다.'는 것에 이유를 묻기보다는 울고 싶어서 우는 로메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나는 좋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을 했다. 내게 있어 시네마테크란? 시네마테크라는 내게 있어 열등감의 공간이다. 영화를 사랑하고 싶고, 영화를 좋아하고 싶은데 나보다 더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시네마테크에서 바로 확인하기때문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열등감의 에너지를 반드시 글로 전환하기로!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선 에릭로메르 회고전이 진행된다. 다시 한 번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을 보고, '녹색광선'을 필름으로 보고 두 영화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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