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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쓰여진시'에 해당되는 글 8건
2012. 11. 11. 21:55

詩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 시의 제목과 같은, 아니 엄밀히 말하면 최승자 시인의 시 '기억의 집'과 같은 제목의 내 시 '기억의 집'을 그녀의 시와 나란히 세워보았다. 시가 말도 안되어 '비공개'로 설정했다. 그리고 다시 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어서 노트북에 쓰여 있는 시를 노트에 직접 옮겨 적어 보았다. 한 줄 한 줄 써내려갈수록 시가 지루하다. 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어서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시가 이리 튀고 저리 튄다. 오합지졸의 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어서 시를 다시 '공개' 설정으로 변경했다. 시를 세상에 내놓았다. 누군가가 읽고 객관적으로 말해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가 시를 세상에 내놓은 시간은 단 1日. 결국 내 시는 주관의 책장에 다시 꽂힐 것이다.

(20121111 00시 54분)

 

결국 단 1日도 못참고 시를 '비공개'로 설정변경한다.

(20121111 21시 54분)

 

 

詩란? 말해지지않는 세계를 담는 것이라고 그래서 매력을 느낀다고 지인이 말했다. 시집을 펼쳐들면 행과 행 사이에 시인의 심연이 흐른다. 말해지지 않는 무한의 세계가 흐르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시는 직설과 투정으로만 가득한 것같아 한 번 보고 다시 펼쳐보기가 힘들다.

(201111 22시 09분)

2012. 11. 10. 23:36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진은영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무익했다

그래서 너는 생각했다 무엇에도 무익하다는 말이

과일 속에 박힌 뼈처럼, 혹은 흰 별처럼

빛났기 때문에

 

그것은 달콤한 회오리를 몰고 온 복숭아 같구나

그것은 분홍으로 순간을 정지시키는 홍수처럼

단맛의 맹수처럼 이빨처럼

여자뿐 아니라 남자의 가슴에도 달린 것처럼

기묘하고 집요하고 당황스럽고 참 이상하구나

인유가 심한 시 같구나

 

그렇지만 너는 많이 달렸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농부가 가지에서 모두 떼어버리는 과일들처럼......

 

여기까지 시작되다가

이 시는 멈춰버렸구나

 

투명한 삼각자 모서리처럼 눈매가 날카로운

관료에게 제출해야 할 숫자의 논문을 쓰고

"아무도 스무살이 이토록 무의미하다는 걸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라고 써보낸 어린 친구에게 짧은 편지를 쓰고

나보다 잘 쓰면서

우연히 나를 만나면 선배님 시를 정말 좋아했어요,라고 대접해주는 예절 바른 작가들에게,

빈말이지만, 빈말로 하늘에 무지개 뜬다는 것은 성경에도 나와 있는 일이니까,

빈말이 아니더라도 '좋아해요'와 '좋아했어요'의 시제가 의미하는 바를 엄밀히 구분할 줄 아는

나는 고학력의 소유자니까,

여전히 고마워하면서, 여전히 서로 고마워들 하면서, 그동안 쓴 시들이 소풍날 깡통넥타와 같다는 거

어릴 적 소풍 가서 먹다 잊은 복숭아 깡통넥타를

나는 아마 열매 맺지 못할 복숭아나무 가지 사이에 끼워 놓았나보다, 바람이 불고 깡통 구멍이 녹슬어가고 파리인지 벌인지 모를 것이 한밤에도 붕붕거리고,

그것은 너와 나의 어린 시절이 작고 부드러운 입술을 대어보았던 곳, 그 진실한 가짜 맛

그러다가 나는 문득 시작해놓은 시가 있으며

 

어떤 이야기가,

어떤 인생이,

어떤 시작이

아름답게 시작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쓰러진 흰 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2012. 11. 10. 23:28

기억의 집

최승자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

 

도처에서 물과 바람이 새는

허공의 房에 누워, "내게 다오,

그 증오의 손길을, 복수의 꽃잎을"

노래하던 그 여자도 오래 전에

재가 되어 부스러져내렸다.

 

그리하여, 이것은 무엇인가.

내 운명인가, 나의 꿈인가,

운명이란 스스로 꾸는 꿈의 다른 이름인가.

 

기억의 집에는 늘 불안한 바람이 삐걱이고

기억의 집에는 늘 불요불급한

슬픔의 세간살이들이 넘치고,

 

살아 있음의 내 나날 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자세히 보면 고요히 흔들리는 벽,

더 자세히 보면 고요히 갈라지는 벽,

그 속에서 소리 없이 살고 있는 이들의 그림자,

혹은 긴 한숨 소리.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일찍이 나 그들 중의 하나였으며

지금도 하나이지만,

잠시 눈 감으면 다시 닫히는 벽,

다시 갇히는 사람들.

갇히는 것은 나이지만,

벽의 안쪽도 벽, 벽의 바깥도 벽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벽이 꾸는 꿈.

 

저무는 어디선가

굶주린 그리운 눈동자들이 피어나고

한평생의 꿈이 먼 별처럼

결빙해가는 창가에서

 

나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나라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

2012. 11. 5. 00:31

삼 십 세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희 손수건을 재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눅누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2012. 10. 30. 22:51

시인의 사랑

 

진은영

 

만일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를 위해 시를 써줄 텐데

 

너는 집에 도착할 텐데
그리하여 네가 발을 씻고
머리와 발가락으로 차가운 두 벽에 닿은 채 잠이 든다면
젖은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잠이 든다면
너의 꿈속으로 사랑에 불타는 중인 드넓은 성채를 보낼 텐데

 

오월의 사과나무꽃 핀 숲, 그 가지들의 겨드랑이를 흔드는 연한 바람을
초콜릿과 박하의 부드러운 망치와 우체통 기차와
처음 본 시골길을 줄 텐데
갓 뜯은 술병과 팔랑거리는 흰 날개와
몸의 영원한 피크닉을
그 모든 순간을, 모든 사물이 담긴 한 줄의 시를 써줄 텐데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일생이 흘러가는 시를 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얼마나!
너는 좋을 텐데
그녀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큰 빈집이 된 가슴을
혀 위로 검은 촛농이 떨어지는 밤을
밤의 민들레 홀씨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만 날아가는 시들을
네가 쓰지 않아도 좋을 텐데

2012. 9. 5. 23:54

외롭지 않기 위하여

최승자

 

외롭지 않기 위하여

밥을 많이 먹습니다

괴롭지 않기 위하여

술을 조금 마십니다

꿈꾸지 않기 위하여

수면제를 삼킵니다.

마지막으로 내 두뇌의

스위치를 끕니다

 

그러면 온밤내 시계 소리 만이

빈 방을 걸어다니죠

그러나 잘 들어 보세요

무심한 부재를 슬퍼하며

내 신발들이 쓰러져 웁니다 

2012. 8. 21. 00:35

올 여름의 인생 공부

최승자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서

나는 묘비처럼 외로웠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나의

습한 낮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똑똑 수돗물 새는 소리로

내 잠 속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서 흘러가지 않았다.

 

엘튼 죤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 갔음을 입증했고

돈 맥글린은 아예 뽕짝으로 나섰다.

송X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면 서XX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 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2012. 8. 15. 03:59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최승자
 
 
 겨울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 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오래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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