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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0. 23:28

기억의 집

최승자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

 

도처에서 물과 바람이 새는

허공의 房에 누워, "내게 다오,

그 증오의 손길을, 복수의 꽃잎을"

노래하던 그 여자도 오래 전에

재가 되어 부스러져내렸다.

 

그리하여, 이것은 무엇인가.

내 운명인가, 나의 꿈인가,

운명이란 스스로 꾸는 꿈의 다른 이름인가.

 

기억의 집에는 늘 불안한 바람이 삐걱이고

기억의 집에는 늘 불요불급한

슬픔의 세간살이들이 넘치고,

 

살아 있음의 내 나날 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자세히 보면 고요히 흔들리는 벽,

더 자세히 보면 고요히 갈라지는 벽,

그 속에서 소리 없이 살고 있는 이들의 그림자,

혹은 긴 한숨 소리.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일찍이 나 그들 중의 하나였으며

지금도 하나이지만,

잠시 눈 감으면 다시 닫히는 벽,

다시 갇히는 사람들.

갇히는 것은 나이지만,

벽의 안쪽도 벽, 벽의 바깥도 벽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벽이 꾸는 꿈.

 

저무는 어디선가

굶주린 그리운 눈동자들이 피어나고

한평생의 꿈이 먼 별처럼

결빙해가는 창가에서

 

나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나라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