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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0. 00:12


2011년 겨울 영화 <카페 느와르>를 보고, 2013년 1월 <카페 느와르>를 다시 보았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198분이다. 상영시간이 꽤 긴 영화, 하지만 그 길이가 길게 느껴지지 않는 영화다. <카페 느와르>의 부제는 <세계소년소녀교양문학전집>이다. 영화의 부제가 원제보다 영화를 더 잘 설명해준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집중해서 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러닝타임 198분의 영화는 시작점부터 110분까지, 그리고 그 이후부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까지 두개의 다른 이야기가 하나의 제목으로 묶여있는 것과 같은 형식을 띄고 있다. 거칠게 나누면 두개의 이야기로 나눠질 수 있지만 조금 더 세분화하면 네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같다.


소녀가 화면 앞에 햄버거를 들고 등장한다. "하느님, 저를 보살펴주소서."라고 말하고 슬픈 얼굴로 햄버거를 우악스럽게 먹는다. 화면이 바뀐다. 서울의 이곳저곳이 영화 속에 담긴다. 허물어짐과 재건을 반복하는 서울의 풍경을 담으면서 '뒤엉켜버린' 서울을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뒤엉킴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순간이 덕수궁 앞에서 수문장을 해야하는 이들이 남산 서울타워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허물어지고 세워지는 끝없는 반복 속에서 근원이 무엇인지 알수없게되어버린 서울 풍경을 뒤로하고 신하균과 문정희가 등장한다. 영수(신하균)는 담임을 맡고 있는 정윤의 엄마 미연(문정희)을 사랑한다. 하지만 미연의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오자 미연은 서울천년타임캡슐이 묻혀 있는 장소에서 그만 만날 것을 선언한다. 영화 시작부터 110분까지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근거로 서술된다. 영수는 미연을 사랑하지만 영수와 미연은 만날 수 없는 운명에 갇혀있고, 또다른 미연2는 영수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미연2는 동물원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지만 기다리는 누군가는 오지 않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미연2에게 낯선 사내가 접근한다. 미연2와 낯선사내는 의미도, 의도도 알 수 없는 대화를 주고 받는다. 의미도 의도도 없는 대화이지만 '주제'는 존재한다. 어느덧 21세기가 왔고 우리는 쓸쓸하다. 그리고 다시 장면이 전환하여 영수는 카페에서 미연2를 기다린다. 낯선 여인이 낯선 사내처럼 느닷없이 영수에게 말을 건넨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체념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많은 지옥 중 체념이라는 지옥은 그나마 나은 지옥일 것이어요. 미연2와 영수는 길을 걷는다. 그리고 미연2는 말한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부가 되어 예정되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쓸쓸하잖아요. " 영수는 음악실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친다. 정윤이 다가와 곁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친다. 그러다 뽕짝버전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고, 정윤은 영수에게 말한다. "선생님, 살면서 선생님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여자 한명즘은 분명 존재할 것이에요. 그러니 선생님, 포기하지마세요. 노력해보세요." 영화를 보러가자던 미연2의 제안을 거절하고 영수는 미연을 만난다. 그리고 미연은 정윤과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 넓은 세상 천지에 당신의 마음의 소원을 총족시켜 줄만한 여자가 한 사람도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결단코 한번 찾아 보셔요. 틀림없이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당신이 요즈음 스스로 그러한 옹졸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보고 벌서부터 당신을 위해서나 우리들을 위해서 걱정을 하고 있답니다.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한 번 해보셔요! 여행을 하면 기분전환이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럴겁니다! 구해보셔요.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자를 발견하여 돌아오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다함께 참다운 우정의 큰 환희를 맛보도록 해요.


영수는 죽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한강 유람선에 몸을 싣고 아무렇지 않게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 상황을 목격하던 햄버거 먹던 소녀는 놀라고, 그 죽음을 보고 살기를 결정한다. 그리고 영수는 물속에서 종종 만나는듯한 물속의 벙어리 여인과 대화를 나눈다.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 벙어리 소녀의 대사는 자막으로 처리되고 그 대사 또한 문어체의 대사이다. 이처럼 영화 <카페 느와르>는 문학 작품 속 말들을 그대로 가져와 영화 속 인물들이 말하게끔 하였다. 문어체의 대사는 어색하게 들리지만 그것이 배우들의 입을 통해 다시 재생될 때는 고전 속 인물들이 되살아나 내 주변을 맴도는 듯한 효과를 발휘하였다. 마치 내가 고전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상상하고 나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영화가 고전 작품을 재현하는 독자가 되어 하나의 독창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것은 정성일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재현인 것이다.


이렇게 세계소년소녀교양문학전집의 1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끝이 난다. 그리고 2부가 시작된다. 영화의 타이틀이 뜨고 영화는 언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냐는듯 태연스럽게 또다른 시작을 알린다. 물속에서 걸어나온 영수는 종로 점쟁이의 작은 천막에서 점을 보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리라."는 말을 듣고 서점을 찾는다. 물속을 유영하듯 젖은 채로 서점가를 거닐던 영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책장에서 꺼냈다가 다시 다른 서가에서 <백야>를 꺼낸다. 두번째 이야기는 도스프도예스키의 <백야>를 원작을 기반으로 서술된다.  도스프도예스키의 <백야>는 읽지 않았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재현을 통해 접한 <백야>가 나의 첫번째 <백야>이다. 한 여인이 한 사내를 기다린다. 하지만 사내는 나타나지 않는다. 백야, 하얀밤의 시간. 여인은 하얀밤이 찾아오는 시간에 사내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여인은 우연히 영수를 만난다. 말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영수에게 여인은 마음을 연다. 영수 또한 그녀에게서 또다른 사랑을 느낀다. 영수는 미연이 말했던 것처럼 영수의 마음의 소원을 충족시켜줄만한 여자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여인을 연기한 배우는 정유미다. 그녀는 꽤 긴 시간동안 여인과 사내의 이야기를 문어체로 말한다. 배우 정유미가 텍스트를 읽는다. 소설<백야>를 읽는다. 그리고 배우 정유미가 음성으로 소설<백야>를 관객, 독자에게 전달한다. 텍스트가 눈앞에서 이미지화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이 영화는 구현하는 것이다. 정유미를 통해 구현되는 <백야>는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느낀다.


<카페 느와르> 2부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정유미의 독백 장면과 정유미의 독무 장면이다. 춤을 추고 싶다고 말하는 정유미는 카페의 중앙으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렇게 정유미의 독무 장면을 통해 배우 정유미에 대한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사랑이 여실히 드러났다. 친구는 배우 정유미를 보며 그녀는 '사랑받는 배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말에 걸맞게 배우 정유미는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독무 장면에서 마음껏 드러낸다. 


이처럼 <카페 느와르>는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사랑하는 것들'의 스크랩북이기도 하다.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사랑하는 고전작품들과 음악, 시(브레히트), 영화. 그는 그의 영화 속에 '그가 사랑하는 것들'이 빛을 잃지 않도록 고결하게 스크랩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존경하는 영화 감독들에 대한 경의를 그는 영화 속에 녹여내고 있었다. 허우 샤오시엔과 아핏차퐁위라세타쿤을 연상시키는 소품과 장면을 보며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마음을 보았다. 그리고 <올드보이>, <괴물> 등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에선 한국영화에 대한 그의 칭찬도 읽혔다. 또한 그는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영화 속에 스크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이들까지도 영화 속에 봉인하고 있었다. 영수가 서점을 유영하는 장면에서 많은 보조출연자들이 등장한다. 새벽 시간에 촬영된 그 장면의 보조출연자들은 정성일 영화평론가를 사랑하는 팬카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 '사랑'을 영화로 매듭짓고 있었다. 역시 무서운 사람이다. 


그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스크랩북 <카페 느와르>의 숨은 코드를 나는 극히 일부분만 알고 확인할 수 있을 뿐, 엄청난 지식과 교양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사유하는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심어 놓은 '날 것 그대로의 것들'과 상징을 모두 읽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누군가가 내곁에서 친절하게 각주를 달아 설명을 해주었으면 하고 소망했고, 동시에 소위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나도 섭렵하고 싶다고 욕망했다.


<백야>파트에서 영수는 미연이 아닌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 여인은 그의 환각 속에 만들어진 여인이다. 그녀는 병을 앓고 있는 시간 동안, 사경을 헤매이다 사경의 어디즘에서 만난 여인인 것이다. 다시 사랑하게 된 여인이 기다리던 사내에게 작은 새처럼 포로로 날아가자 영수는 결국 죽음을 맞는다. 나이든 노모만이 소리없이 울고, 언제나 그의 곁에서 맴돌던 남산타워가 그의 방 창밖에 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남산타워를 등장시킨다. 인물이 어디를 걸어도 보이고, 서울의 중심가에서 촬영된 영화의 공간은 남산타워 바운더리에 속해있다. 남산타워가 고개를 돌리면 어디에나 볼 수 있는 도심의 붉은 십자가를 닮았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은연중에 관객들에게 '종교'에 관하여 묻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초반 "하느님 저를 보살펴주소서."라고 말했던 소녀의 구원에 응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남산타워는 십자가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 이 영화가 두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네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원치않은 아이를 품은 소녀의 이야기, 미연과 영수의 이야기, 영수와 여인(정유미)의 이야기, 미연2와 은하(요조)의 이야기. 이 네개의 이야기는 분절되면서도 하나로 묶여있다. 원치않은 아이를 품은 소녀가 남산을 오른다. 친구가 묻는다. "이제 어떻게 할건데?" "낳아야지." "낳아선 어떻게 할건데?" "키워야지." "키워서는 어떻게 할건데." 


"살아야지."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최종적으로 이 말을 하고싶었던 것은 아닐까. 


"살아야지."


 체념도 아닌, 그렇다고 다부진 각오도 아닌, "살아야지"라는 한마디를 통해 그는 산다는 것에 대한 소박한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깊은 밤, 내부순환도로를 함께 달리는 미연2와 은하(요조)의 덜덜거리는 질주는 불안하지만 위로가 되었다.  


19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이 영화는 나의 머리를 끊임없이 자극했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아주 훌륭한 영화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카페 느와르>는 곁에 두고 기억해야할 영화로 나와 인연을 맺었다.


+ 다이알로그와 텍스트의 불일치. 소리의 존재와 이미지의 부재도 생각해보자.


+ 정성일씨의 영화에 대해 기록한다는 것이 왜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지만(부끄럽지. 뭘 모르겠지만이야!), 

다시 정정해서,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영화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부끄럽다. 하지만 기록해본다. 얼마전 영상자료원에서 2011년 화제작을 재상영했었다. 상영작 리스트 중 하나가 <카페 느와르>였다. 극장이 많이 멀었지만 좋은 상영관에서 공짜로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기뻤다. 영상자료원을 종종 찾아야겠다.


+ 쓰다가 만 글. 일주일만에 다시 썼다. 나는 이글을 매듭지은 것에 대해 스스로 칭찬한다. 잘했다! ㅎ

(2013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