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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3. 00:18

 

"<26년> 어때?"라고 친구에게 물었을 때 친구는 작은 실망을 표현했지만 꼭 봤으면 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일요일 아침 한파를 뚫고 극장으로 갔다. 영화가 김아중과 류승범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가 엎어지고, 이승환의 제작 투자 미담과 1만 5천명의 두레제작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기본적 정보만 가지고, 강풀 원작의 웹툰 <26년>을 보지않은 채 극장에 갔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영화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고 싶지않았다. 개봉시기를 굳이 대선 직전에 잡아 급하게 만들어 영화 완성도가 어떻고 저떻고 떠들고 싶지 않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봤던 중학생들은 욕을 하면서 잃어버린 핸드폰을 컴컴한 극장안에서 찾고 있었다. 5-6명의 친구들이 우르르 모여 일요일 아침, 이 영화를 보며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1980년 광주를 기억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당시 '화려한 휴가'를 지시했던 그 사람 또한 존재하는 지금 <26년>은 그들에게 어떤 영화 였을까? 궁금했다. 씨네21이 김혜리 기자는 <26년> 20자 평에 대해 '관객이 빈 곳을 채워가며 마음속에서 완성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그 말에 적극 공감한다. 그리고 '<26년>과 <남영동 1985>는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라는 정성일 평론가의 말에도 동의한다. <26년>은 비극을 보며 마음의 정화를 가지라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시간을 기억해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26년>을 보고, 웹툰 <26년>을 보았다. 웹툰을 연재하면서 강풀은 본인이 왜 이 웹툰을 쓰는지에 대한 변-그동안의 연재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을 하였고, 광주에 대해 정리했던 웹툰을 Daum에 부탁하여 다시 게재하기도 하였다. 그는 웹툰 <26년>을 통해 많은 이들이 광주를 기억하고, 당시의 광주를 몰랐던 이들에게 광주를 알리기 위해 '최대한 재미있게' 웹툰을 연재하려고 애를 썼다. 웹툰을 보면서 그의 그러한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영화 <26년>에서 또한 그런 애씀을 읽을 수 있었다. 영화 감독과 배우, 제작진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함께 한 1만 5천명의 보통(?) 사람들의 애씀의 흔적이 영화 마지막까지 보였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오늘 아침', 새벽의 기운이 어스러이 느껴지는 장면에서 광화문 대로를 지나는 검은 세단을 보면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제각각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아침이었다.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이정희의 활약에 누군가는 속 시원해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절대 그 사람이 당선되면 안되기에 반드시 투표장에 가야한다며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제발 내게 그 사람이 아닌 다른 그 사람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한 가지만 제발 알려달라는 사람들도 있다. 제각각 저마다의 상황에서 이번 대선을 바라보고 있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침 출근길, 정말 그 사람이 당선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선택해야만하는 것인가? 딱 일주일 전인 오늘, 그럴 수밖에 구도가 개탄스럽기도했다. 하지만 어찌보면 19일은 그닥 중요하지 않은 날일 수도 있다. 19일이 우리의 삶을 절대 바꿔놓지는 않을 것이다. 19일이 운명의 날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19일 이후와 이전의 우리 삶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신중하게 답하고 그 답에 대한 실천을 다짐하는 밤이 되야한다.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남영동 1985’와 ‘26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2032152405&code=990100


[올드독의 영화노트] <26년> <남영동1985> 작은 스위치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2093

 

[2030 콘서트] 정권교체 실패하면 이민가겠다는 지식인들게 홍명교 / 한예종 영상원 학생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www&artid=201212122143505&code=990100


 

후손들에게

브레히트

 

1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없는 이마는

무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웃는 사람은

끔찍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을 따름이다.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곧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한 침묵을 내포하므로

거의 범죄나 다름없으니,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저기 천천히 길을 건너가는 사람은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이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물론, 나는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나의 행운이 다하면, 나도 그만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셔라! 네가 그럴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느냐?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는 무엇이 현명한 것인지 씌어져 있다.

세상의 싸움에 기어들지 말고 덧없는 세월을

두려움없이 보내고

또한 폭력없이 지내고

악을 선으로 갚고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나는 나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2

굶주림이 휩쓸고 있던

혼돈의 시대에 나는 도시로 왔다.

폭동의 시대에 사람들 사이로 와서

그들과 함께 나는 분노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싸움터에서 밥을 먹고

살인자들 틈에 눕고

되는대로 사랑을 하고

참을성없이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시대에는 길들이 모두 늪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언어는 살륙자에게 나를 드러나게 하였다.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내가 없어야 더욱 편안하게 살았고, 그러기를 나도 바랬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힘은 너무 약했다. 목표는

아득히 떨어져 있었다.

비록 내가 도달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보였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3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오게 될 너희들은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생각해다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오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었지만

우리 스스로가 친절하지 못했단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정도까지 되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오.

(1934/3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