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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9. 03:00

1.

부산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김이설의 소설 <환영>을 읽었다. 햇볕에 빨래가 빠짝 마르는 순간 같은 때가 살면서 얼마나 될까. 너무 좁아 섹스를 하다 몸을 기이하게 구길 수 밖에 고시원에서 옥탑으로 이사갈 때, 옥탑에서 방 2개 딸린 반지하로 이사 갈 때 느꼈던 그 빠짝한 감정을 느끼는 날들이 얼마나 될까. 이런 날들이 나아진 날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아졌다고 믿고 싶은 환각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최선인지 최악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순간. 아니다. 판단하지 말자. 생이라는 것 버티면 못 버틸게 없는 게 생이고, 익숙해지면 못할 것이 없는 것이 생이다. 서영은 살고 있다. 죽지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니까 사는 것이다. 서영은 살고 있다. 그저 살고 있음을, 하루하루 증명하는 서영 곁에 아무 말 없이 우직하니 서 있고 싶었다. 

 

'어느 겨울이든 그러하겠지만, 지난 겨울은 유난히 더 춥고, 지난했다. 진작 봄인데, 아직도 겨울의 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어느 계절이 되어도, 지난 겨울을 아파할 것이다. 그것의 나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 소설 <환영> 작가의 말 中에서 

 

작가의 말에 있는 이 구절이 박힌다. 그리고 공감을 한다. 헌데 나는 도리를 지키고 사는 사람인지 생각해본다. 그러하지 못한 것같다. 내가 지켜야 할 도리를 너무 쉽게 변명이라는, 자기정당화라는 봉투에 담아 잘도 내다버린다. 나는 좋은 사람인지, 도리를 지키는 사람인지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한다. 말뿐인, 순간만 있는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일단은 삶에 충실해야하는데 그것이 어렵다. 너무도 어렵다.

 

2.

부산에서 3편의 영화를 봤다. <장군과 황새>라는 이탈리아 영화와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서>와 <온화한 일상>이라는 일본 영화 두 편을 봤다. <장군과 황새>를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 글이 떠올랐다. 배우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묻는 후배들에게 인터뷰이 이병헌은 '철들지마라'란 말을 한다고 했다. 이병헌과 실비오 솔디니 감독은 '철들지 않았다.'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었다. '철들지않고 산다는 것' 그것은 창작의 원천이고, 예술의 시작이라는 것을 느꼈다. 철들지 않음으로부터 오는 실비오 솔디니 감독의 말랑이는 상상력과 위트가 좋았다. 특히 황새 아우구스티나와 교감하는 소년의 그 감수성이 좋았다. 그러한 감수성을 살면서 잃지 않고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감사한 일일 것이다.

어쩌다보니 일본영화, 그리고 3.11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보게 되었다. <웃는 남자>를 보고 싶었는데 바로 코 앞에서 표가 매진되었다. 켄로치 감독의 영화를 볼까?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서>를 볼까? 고민하다 켄로치 감독의 영화는 어떻게든 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 제목이 매력적인 일본 영화를 택했다. 일본에서는 3.11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을 상당히 제작하고 있는 것같다. 지난 4월 여성영화제 때도 그렇고, 이번 부산 영화제에도 3.11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여러 편있었다.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서>를 보면서 여자 주인공이 해일로 뒤덮힌 마을의 잔재가 그대로인 해변가를 아무렇지 않게 일상의 행위를 반복하는, 조깅 장면이 인상깊었다. 공통의 경험, 생을 뒤흔드는 천재지변의 트라우마를 겪어도 생을 유지하기 위한 행위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 위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오는 순간이 덧해지기도 하고, 또 사랑하는 이를 죽인 이를 사랑하게 되는 쉬이 받아들 수 없는 순간이 덧해지기도 한다. 답을 구하는 과정도, 시간도 없이 그저 덧하고 덧하고, 직면하고 직면하는 것이라고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은 말하고 있었다. 특히 감독은 다쿠미와 시오리의 '사랑'에 집중한다. 벚꽃은 망설임이라고 말하던 겐지, 망설이고 망설이다 어느 순간의 타이밍에 만개하는 벚꽃은 다쿠미와 시오리의 관계를 은유한다. 극장을 나오면서 내가 느끼는 이 어정쩡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생각했다. 영화제 프로그램북에 쓰여있는 영화 소개에는 '3.11'의 단어와 '사랑'이라는 언어가 동시에 쓰여 있었고 '3.11'쪽에 분명 부등호가 향해 있다고 나는 이해했는데 정작 영화는 '사랑'에 확실한 부등호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뭔가 속은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정쩡하다고 느꼈다.

<온화한 일상>은 인터넷 예매를 성공한 영화다. 예매가 시작되고 한참 후에 예매를 했는데 다행히도 표가 있었다. 3.11 지진 이후 사람들이 가지는 공포와 불안함, 그 공포와 불안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드러내는 사람과 그 공포와 불안함을 애써 보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지진 이후 사에코는 딸 키요미가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방사능측정기를 가지고 키요미의 유치원을 찾아간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사에코가 불안을 조장한다며 그녀를 집단적으로 무시하고 매도한다. 지진 이후의 불안함과 관계의 일방적 폭력을 견디다 못한 사에코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사에코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유카코 역시 걱정과 불안으로 마스크 상자를 들고 무작정 집근처 어린이 집으로 찾아가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요청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지진이 일어난 이후 마트엔 밥한끼 지을 수 있는 생수 한통조차 남아있지 않다. 지진지역에서 피난 온 이들에게 방사능을 몰고 왔다며 피난민의 차에 '돌아가라'라는 종이를 사람들은 붙인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무정함. 두렵지만 두렵다고 말하지 않는, 그러나 슬픔과 두려움이 결집되어 있는 사람들의 눈. 영화는 집단적으로 겪는 엄청난 사건에 있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온화한 일상>의 필름엔 당시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온화한 일상>은 온화하지 못한 일상의 역설적 표현이다. 그리고 <온화한 일상>은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회피, 침묵에 대한 직설적 표현이다. 우치나노부테로 감독은 언제 또 이 공포의 순간이 또 닥쳐올지 모르지만, 여전히 두렵지만 그 순간이 왔을 때 있는 힘껏 "두렵다."라고 말하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면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있을 것이라고. 그 손을 잡고 그 다음을 생각해보자고.  

 

3.

부산국제영화제를 몇 번 다니면서 '달맞이 고개'라는 곳을 처음 알았다. 미포항 근처에 있는 달맞이 고개. 달맞이 고개에 있는 해월정을 향해 걷다보면 광안대교와 해운대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뷰포인트를 만날 수 있다. 광안대교는 광안리 해변에 가야지만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해운대에서도 광안대교를 볼 수 있었다. 밤에 바라보는 광안대교는 예뻤다. 달맞이 고개는 이름 그대로 고개를 오르면 오를 수록 달에 점점 더 가까워져 정말 달을 마중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달맞이 고개에서는 바라보는 풍경은 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과는 다른 묘미를 전했다. 순간 제주에 온줄 알았다. 섬에서 바다를 보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넓고 푸른 바다와 끝없는 수평선을 볼 수 있다. 왜 몰랐을까. 걸으면서 "좋다. 좋다." 계속 말했다. 그런데 그 길을 걷다보면 부산 해운대는 역시 부자 동네라는 것을 확실히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좋은데 뭔가 기분이 찜찜했다.  

 

4.

2008년, 2010년, 2011년 그리고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2008년에 본 영화들 중에는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이 기억난다. 2010년에는 지아장커 감독의 <상해전기>를 비롯해 총 4편의 영화를 봤다. 2011년에도 분명 부산에 다녀왔는데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 당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뭘 봤었지? ㅠ 정말 기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진짜 뭘 봤지? 영화를 본 것이 맞았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