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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5. 23:32

날씨가 정말 덥다. 뉴스에서는 '최악의 더위'라고 말하고 있고, 에어컨 사용량을 줄이라는 아파트 관리소장의 안내 멘트가 웅웅 거리며 들린다. 정말 이렇게 더울 수 있는지, 너무 더워서 이 더위가 낯설 지경이다. 도저히 집에 머물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을 뛰쳐 나와 극장으로 찾아갔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가 보고 싶었다. 옴니버스 구성도 흥미롭고, <기담>의 감독이 만든 이야기도 있다고 하고, 배우 남보라가 어떻게 연기하는지도 궁금했고, 한국영화에서 좀비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질지 확인하고 싶었다. 헌데 함께 극장에 갈 사람이 없고(공포영화를 잘 보지만 그래도 혼자보기엔 촘 무섭다.), 그리고 적당한 시간에 상영을 하는 극장이 없어 못보고 있다가 더위를 핑계로 동생을 꼬셔 늦은밤 <무서운 이야기>를 봤다.

 

집주변엔 <무서운 이야기>를 상영하는 극장이 없어 신사동에 있는 브로드웨이 극장에 갔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판을 치는 요즘, 비멀티플렉스 극장인 브로드웨이 극장은 아주 작은 상영관을 여러 개 보유한 곳이었고 좌석 선택 시스템도 A4용지에 그려진 좌석을 내가 선택하면 매표원이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표를 발행하고 있었고, 화장실도 적당히 지저분했다. 시내 한복판에 이런 정겨운 시스템의 비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다는 것이 괜시리 반갑고 고마웠다. 그런데맨 뒤 좌석에 앉으면 물결모양의 천장때문에 화면 윗 부분이 툭 잘려 보였다. (-_-;) 그래도 내가 주말 더위를 피해 공포영화를 적절한 시간에 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 브로드웨이 극장이 있어 다행이었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잡혀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소녀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시작한다. 첫번째 이야기는 전래동화 <해와 달>의 구조를 가지고 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간의 환상이 빗어내는 공포와 현실의 인간이 실제로 겪는 공포를 엮어 만든 <해와 달>의 스토리가 닫히는 순간 '나쁘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인간의 환상이 빗어낸 공포의 존재였던 택배기사는 현실의 인간이 되어 자신을 고용하고 결국 해고하여 죽음의 벼랑으로 몰고 간 사업주의 아이에게 찾아가 복수를 감행한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감독의 욕심이 무엇인지 알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현실의 이야기를 '이용'한다는 것에 대해 "나쁘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인 집이 가장 무서운 공간이 되어 방과 방으로, 문과 문으로 이어지는 공포를 잡아낸 흐름이 좋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얼굴을 비친 노현희씨의 모습도 묘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집으로 돌아가는 학원버스 안에서 아이들과 해와 달 영어노래를 함께 부르며 대문앞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주며 "씨유 투마로우"라고 말하던 노현희씨의 맥거핀적 공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아이들과 빨간 입술과 빨간손톱의 노현희씨 공이 컸다.

 

두번째 이야기 <공포비행기>는 밀폐된 공간에서 악마와 같은 존재와 맞서 싸우는 승무원의 이야기인데 특별할 것없는 무난한 이야기였다. 어디론가 달아날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악마와 같은 존재와 함께 있을 때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죽기살기로 그와 맞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는 죽기살기로 맞서 싸우는 구조 안에 하나의 이야기를 더 접목시킨다. 살인마의 눈에는 체포되기 전 그가 살해 한 승무원의 환영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피칠갑을 하고 머리를 풀어헤치며 살인마를 쏘아보며 불쑥불쑥 등장하는 승무원 귀신은 한국 공포영화에는 귀신이 등장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번째 이야기는 <콩쥐, 팥쥐>이다. 이 에피소드를 보기 전 영화 <장화, 홍련>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자매의 등장과 옛이야기와 연관지어 만든 제목때문인듯하다. 고전적 느낌의 영화세트와 배우들의 의상 또한 두 영화를 연결하여 사고하도록 하였다. 외향은 그렇게 연결이 되는데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장화, 홍련>의 이야기가 잘 기억이 나지않아 연결하지 못한다. 여튼 <콩쥐, 팥쥐>로 돌아와 민 회장에게 시집을 가기 위해 공지와 박지는 매일 으르렁 거린다. 결국 언니 공지대신 민회장과 결혼하게 된 박지. 하지만 민 회장과의 결혼이 부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민 회장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음식으로 스스로가 활용된다는 것을 두 자매는 알게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 시점은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십여명의 민회장 아내들이 입었을 피 묻은 드레스가 보관 된 방의 장면은 동화 <푸른 수염>을 연상케했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잔혹'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지만 콘셉트만 가져왔을 뿐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이야기같다.

 

 

네번재 이야기 <앰뷸런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칭찬하고 있었다. 한국영화에서 좀비를 그려낸다는 것이 우선 흥미로웠다. 이야기에는 좀비에게 물렸는지 물리지 않았는지 확실치 않은 아이,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 좀비에게 물렸다고 확신하고 앰뷸란스에서 아이를 내보내려고 하는 의사, 아직 확실치 않으니 일단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가 백신을 맞히도록 하자는 간호사가 등장한다. 감독은 각각의 인물들의 입장이 부딪히는 시점을 포착하고 그 입장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압착하고 있었다. 감독은 이야기를 어디에 집중하고 풀어가야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에피소드들 보다 밀도있게 이야기를 풀어낸 <앰뷸런스>는 공포를 흉내내려고 하지 않은 미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좀비의 모습이 제대로 화면에 포착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저 요란스런 소리와 정신없는 팔동작, 멀리서 뛰어오는 모습만으로 그려진 좀비의 존재는 한국영화에서는 좀비를 어떻게 그릴것인가라는 나의 궁금증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했다.

 

영화는 살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소녀와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정체불명의 남자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왔던 정체불명의 남자가 "그럼 이제 내가 해줄까? 무서운 이야기?"라고 말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우리가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공포와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접하게 된 사건으로 파생된 공포를 적절하게 버무린 영화 <무서운 이야기>는 극장을 나온 관객들에게 귀신이 더 무섭냐, 사람이 더 무섭냐라는 이야기를 하게끔 만들었다. 

 

+ <인간극장>의 남보라가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도 나는 신기하다. 그녀의 동생들이 생각나서 그런지 배우 남보라가 잘됐으면 좋겠다. (^-^;) <콩쥐, 팥쥐>에는 전직 아나운서 임성민씨도 나온다. 내가 누군가의 연기를 운운할 수 있을까 싶긴하지만 그녀의 연기는 아직 많이 어색했다. 그러고 보니 임성민씨도 얼마전에 <인간극장>에 나왔다.

 

+ 옴니버스식 구성을 통해 다채로운 형식의 공포를 드러내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으나 너무 나열한 듯한 인상이 강해 108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살찌기 지루하고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