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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9. 02:27

 

 

산다는 것이 참 찌글스럽다. 오늘 하루는 진창같은 하루였다. 자책도 하고, 울기도 하고, 정신차려야 겠다, 다짐도 하고 여튼 롤러코스터를 몇 번이나 오르고 내리고 했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다른 나라에서>를 봤다.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가는 길 적절히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려서 좋았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한참 서서 멍하니 비내리는 장면을 봤다.

 

한참 비나리는 장면을 보고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극장 안 좌석에 앉는다. 영화 시작 전 10여분을 앞둔 시간. 나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그 순간이 좋다. 어떤 장면들이 내 앞에서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늘 설렌다.

 

영화 엔딩이 끝나는 순간, '역시 홍상수다.'라고 생각을 했다. 홍상수 감독의 초기작은 본 것이 거의 없다. 그의 영화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이다. <밤과 낮>,  <잘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다른 나라에서>를 봤다. 오늘 본 <다른 나라에서>를 제외하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섰던 기억은 있는데 솔직히 영화의 장면들과 이야기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감정들을 일괄적으로 표현하자면 좋았다는 것. 별로인 영화들도 있었던 같긴 하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홍상수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하하하>를 보고 시를 쓰기 시작했고, <옥희의 영화>를 보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를 보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대가 컸다. 나의 저질스러운 기억력때문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라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다른 나라에서>"라고 무식하게 답할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 아름답다.'라고 연신감탄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왜 아름다운 영화인가?

<다른 나라에서>는 크게 세개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등장한다. 세개의 에피소드 중 첫번째 에피소드가 끝나는 순간 영화가 너무나 아름답고 슬퍼서 혼이 났다.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안느와 안전요원은 등대가 어디에 있는지 서로 물으며 대화를 나누게 되고, 안전요원의 텐트 안에서 또 대화를 나눈다. 안전요원은 뷰티풀네임을 가진 안느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기 전 안느는 안전요원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안전요원은 그 편지를 읽지 못한다. 그 장면이 어찌나 슬프고 아름다운지. 홍상수 감독은 첫번째 에피소드를 통해 '불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안전요원은 안느에게 뷰티풀이라고 말하지만 뷰티풀의 b를 p로 잘못보고 그 언어를 읽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면 그 이후의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안느와 안전요원은 거기에서 그냥 끝을 맺는다. 그 장면을 보면서 동일한 언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행간에 함축된 의미를 읽지 못해, 혹은 같은 단어와 문장을 보고 들어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함으로서 겪게 되는 불통의 비극을 우리는 반복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홍상수 감독은 그 불통의 비극을 너무나도 위트있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비극은 극대화되었다.

 

꿈과 상상, 현실의 변주_그 무경계함을 말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다 보면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현실인지 꿈인지를 모르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이것이 영화 속 주인공의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시간이 있었다. 영화평론가 남다은씨는 홍상수 감독에게 '꿈'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홍상수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현실이라는 강박을 벗어나는 순간이 매력적이다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강박을 벗어나는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그는 답했다. 그 말에 '아, 그래서 홍감독 영화를 만드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아,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본다.'라고 생각했다. 진창같았던 하루 <다른 나라에서>를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현실의 강박을 벗어날 수 있었다. 권해효씨를 보며, 유준상의 "아윌프로텍트유"를 들으며 극장에서 내내 큭큭 거렸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현실의 강박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영화의 엔딩이 끝나고 극장의 불이 켜지면서 찌글스러웠던 오늘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강박을 벗어날 수 있었다. 홍상수 감독은 현실의 강박을 벗어나는 순간 중 하나로 술을 마시고 취했을 때도 언급하였다. 그래서일까? 그의 영화엔 술을 마시고 취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두번째 에피소드의 문성근씨 또한 그랬다. 그는 만취하여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상당히 귀엽게 질투를 했다. 문의 연기는 징그러울 정도로 리얼해서 영화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문이 무서웠다. 그리고 그는 현재의 그의 행보와 무관하게 연기하는 순간 스스로를 자유롭게 던져버리고 있었다. 대단하다.

 

요즘엔 꿈을 상당히 많이 꾼다. 꿈 속에선 다양한 이들이 등장하고 내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나의 꿈 이야기를 스승님에게 말했더니 스승님은 꿈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 어쩌면 타인이 아니라 모두 나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승님도 하루는 꿈 속에 5명의 사람이 등장했는데 그 5명의 사람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봤더니 꿈 속의 각기 다른 등장인물이 결국엔 다 자기였던 것같다라고 했다. 현실과 꿈은 경계를 가지고 있는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경계가 없는 것이다. 현실을 경험하는 이도 나인 것이고, 꿈을 꾸는 주체도 나이기때문에 현실과 꿈을 경험하는 이의 입장에서는 꿈이든 현실이든 하나의 경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이것이 현실이다, 혹은 꿈이다라고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이러한 무경계함을 진작에 알고 있었고 그는 꿈과 현실의 무경계함을 적극적으로 다양한 변주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었다. 두번째 에피소드가 특히 현실과 꿈의 무경계함을 열심히 표현하고 있었다.

 

홍상수 감독은 현실과 꿈의 무경계함을 말하는 동시에 생의 다양한 변주를 그의 영화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었다. 진실이라는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인간의 기억은 사실에 근거하여 존재한다기 보다는 믿고 싶은 것, 기억하고 싶은 것, 인상 깊었던 것 등 제각각 주관적 기억력에 기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수한 인간들이 비슷한 어쩌면 동일한 경험들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렇기에 첫번째 에피소드 해변가의 소주병은 한국사람이 버린 것있을 수도 있고, 안느가 버린 것일 수도 있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안느가 쟁여두었던 우산은 어쩌면 세번째 에피소드의 안느가 숨겨 둔 것일 수도 있고. 모항의 좋은 풍경을 안내해주겠다던 첫번째부터 세번째 에피소드의 원주는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고. 첫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세번째 에피소드까지 모항해변에서 수영을 하던 안전요원의 시간은 분절된 시간일 수도 있고 연속된 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별개의 시간이면서도 뭉개진 시간일 수 있는 것이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세번째 에피소드 모두가  한사람의 경험일 수도 있고 수많은 인간군상의 동시다발적 경험일 수도 있는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철학을 논하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첫번째 두번째 에피소드에 비해 상당히 튄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올 김용옥이 등장하는 것도 낯설었고, 안느와 스님(김용옥), 박숙(윤여정)의 대화장면도 뜬금없었다. 하지만 그 장면은 달리 표현하면 명쾌하고 시원했다. 살아가면서 생각없이(?) 마구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우리는, 누군가가 뜬금없어한다거나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제대로 묻지 못하며 살아간다. 묻는이도 그러하지만 답하는 이도 그러하다. 나의 답변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이렇게 답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강박에 갇혀 침묵하는 경우도 왕왕한 것이다. 하지만 안느와 스님은 그런 강박에 벗어나 묻고 싶은 것을 묻고 답하고 싶은대로 답한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옳고 그런지를 떠나 그 과정속에서 제 나름의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의 영화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었다.

 

나도 홍상수 감독에게 강박을 벗어난 자유로운 질문을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하고 싶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하지만 굳이 그에게 묻지않고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하고픈대로 행하였다. 그 행함이 나를 더욱 자유롭게 만든다.

 

첫번째 에피소드의 '책임'에 관한 안느, 금희(문소리), 종수(권해효)의 대화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감독의 하고픈 말을 읽을 수 있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감독은 말하지 않는다. 그 대화를 보고 듣는 관객이 그저 판단할 뿐. 홍상수 감독은 그의 영화를 통해 관객 각자가 각자의 진리를 판단할 수 있도록 여지를 제시하고 있었다.

 

결론은 좋은 영화를 보고 진창같은 현실을 어느 정도 위로할 수 있었고, 이번 영화를 보고 장면없는 영화 시나리오를 하나 생각했고-제목은 <관객과의 대화>-홍상수 감독을 더욱 애정하게 되었고, 그와 친해지고 싶다 생각하며 그와 술 한 잔 걸치는 날을 상상하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나는 모항에 갈 것이다.

 

+ 홍상수 감독은 GV를 시작하면서 관객들에게 한가지 당부를 했다. 본인은 영화를 본 후 영화에 대해 그저 느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를 그는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굳이 질문을 짜내어 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고 영화를 본 느낌을 말해주면 좋겠다고 관객들에게 부탁했다. 직관과 느낌으로 생을 살아가는 홍상수 감독의 면모를 그 짧은 말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직관과 느낌으로 훌륭한 영화를 만든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