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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 28. 01:50




가난한 활동가에게 당신의 삶의 낙은 무엇이요? 묻는다면 월요일아침 출근길 교통수단을 기다리며 지갑에서 단돈 천원을 꺼내고 주간지를 맞바꿀때, 매혹적 배우가 표지로 등장하는 영화잡지를 펼쳐드는 순간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주 필름2.0은 내가 지독히도 싫어하는 007시리즈가 표지를 장식하고 기획기사로 실렸지만 그래도 나를 유혹하는 페이지가 있었으니-"매혹적 장면 10개의 숨겨진 이야기"

영화의 역사는 곧 명장면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억은 영화의 제목을 망각할지언정 특정영화의 결정적인 장면은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보존해 놓는다. 그런 결정적 장면은 특출 난 이미지만큼이나 수많은 뒷이야기들을 남긴다.

이 기사에 모티브를 얻어 오늘은 "매혹적인 장면 1개의 숨겨진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얼마전 영화 멋진하루를 보았다. 영화 멋진하루의 미덕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일상의 공간이 프레임 속에 담긴 것일것이다. 요즘의 영화들(영화에 대해 이렇다 저랗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프레임속에 가꾸고 다듬어진 공간을 담는 것이 익숙하다면 멋진하루에 등장한 공간은 내가 오늘도 걷는 길이 바로 배경이 되어 등장한다.

영화 속,
희수와 병운이 서울의 익숙한 거리를 배회하다 한때 그들도 좋았던 시절 자주 다니던 음식점을 찾아간다. 하지만 가게는 문을 닫고 그들은 목적지 없이 그곳을 벗어난다.  허탈해하며 빠져나오던 골목. 그 골목길이 익숙다.


서울역사박물관, 내일신문사 뒷길에는 촘촘히 골목이 형성되어있다. 골목골목마다 길을 제외하고는 밥집으로 틈틈이 채워져있는 공간. 아침 그 골목길을 걷다보면 밥집대문에는 온갖가지 채소가 박스채로 쌓여있고, 지난 밤 밥냄새가 고스란히 베여 아침공기와 묘하게 섞여있는 곳이다. 그 골목을 병운과 희수가 나란히 걷더라.

맛있는 밥집이 있어 그 골목이 매력적이더라 말하는 것과 더불어 그 골목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결정적 장면이  있다. 얽히고 섥힌 골목길에서 미지의 낯선 곳으로 향하는 느낌이 드는 지점이 있다. 열림과 닫힘이 공존하는 시점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서대문역 3번출구로 나와 강북 삼성병원으로 향한다. 3번출구에서 직진, 그러다 등장하는 자그마한 언덕길. 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왼쪽으로 강북삼성병원이 오른쪽으로 몇개의 약국과 자그마한 가게가 있고 촘촘히 밥집이 들어앉아 있는 공간으로의 통로가 2-3개가 있을 것이다. 이 세 통로중 어느곳을 선택하여도 무방하다.

그렇게 골목을 헤매이다 보면 정성스레 커피를 드립해주는, 커피와 쟁이가 있고
깔끔하고 맛나는 밥집 봄샘이 있을 터이고
콩비지집, 돈까스집, 칼국수집, 삼계탕집 등등을 접할 것이다.

밥때 가면 봄샘에서 밥한끼를.

그렇게 밥냄새 진한 골목을 돌다 순간 걸음이 멈춰서는 공간이 바로 영화속에서 희수와 병운이 걷는 길이다. 경계가 지어져있고 닫힌 공간인 골목길을 걷다 어느 특정 지점에서 그 길이 열려있음을, 그 골목길 일직선으로 대로 너머 저곳에 정동길이 쭈욱 뻗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골목의 끝에서 정동'길'의 시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공간에 설때의 묘함. 그 묘함을 느끼기 위해 오늘 괜시리 그 골목안을 헤매이다(이젠 헤매이지 않는다. 어느 곳에 어떤 밥집이 박혀있는지도 안다.) 그 지점, 그 시점에 멈춰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영화가 보고 싶다. 그렇게 멋진하루는 불쑥 내 삶의 공간을 끄집어 내고 불쑥 지난날의 기억을 부른다. 희수가 병운과 찾은 이태원 어느 건물의 옥상. 희수는 한 장면을 목격한다. 그 장면을 목격하는 희수에게 아련함이 묻어난다. 먼곳을 향해 응시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희수에게 병운이 다가와 말은 건낸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 불쑥 어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때 또 한 번 묘하다.
나는.
아마도 희수도. 



2008.10.2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