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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6. 22:57
승희나무님에게.

나무님, 나무님은 지난 밤 잠은 잘 잤나요? 서울은 기온이 뚝 떨어졌다고 하던데 제주도도 기운은 떨어졌다고 뉴스에선 말하지만 나무님이 말한것 처럼 한 낮에는 땀에 옷이 흥건이 젖을 정도로 날이 더웠어요. 하지만 밤만 되면 공기는 금방 차가워지고 바람은 어찌나 무섭게 불던지 바람때문에 지난 밤엔 엄청나게 잠을 설쳤답니다. 덜컹거리는 창문에 창문이 깨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불안을 거듭하면서 양도 수백마리 세어보고 지난 며칠 걸었던 올레길을 차곡차곡 떠올려보며 스스로에게 자장가도 불러보며 잠을 청하고 청했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은 내가 잠에 빠지는 것을 쉬이 허락하지 않더라고요.

약간은 몽롱한 정신으로 슈퍼에 가서 길을 나선다고 인사드리러 가니 민박집 아주머니께서는 잘 잤냐고 여쭈셨어요. 바람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하니 제주에선 그 정도 바람은 기본이라고 쿨하게 응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전 그 바람이 어찌나 무섭던지...

여튼 오늘은 7코스를 걸었어요. 7코스는 꼬옥 걷고 싶었고 동생도 그 길위에 함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회피하고 싶은 길이기도 하였어요. 올레길을 걸으면서 강정마을 그곳을 나는 어떻게 걸어야 할지, 그냥 한 번 스쳐지나갈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을 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강정에서의 그 풍경이 슬펐다는 나무님의 이야기도 떠오르고 길을 나서기가 여느 날과같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어요. 오늘은 처음으로 역방향으로 올레길을 걸었어요. 밤에 달이 뜨면 달빛이 가득차 흘러넘칠 것만 같은 작은 포구인 월평포구를 지나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집집마다 '생명평화강정'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깃발이 집집마다 펄럭이고 있는 강정마을이 나왔어요. 여느 곳에서 처럼 쉬이 카메라를 꺼내들을 수가 없었어요. 올레꾼도 아니고 그렇다고 활동가도 아닌 그 중간의 애매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되뇌이며 걸었어요. 강정포구에 들어서니 닭장차가 있었고 닭장차 안엔 전경들이 지친듯이 차안에 있었어요. 지난 밤 생명평화축제의 벅적거림이 지나가고 간듯이 마을은 조용하고 고요했어요. 방향을 알리는 올레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전경이 다가오더니 이 길로는 지나갈 수 없다며 길을 막아 섰어요. "아니, 버젓이 이렇게 가라고 표식이 되어 있는데 왜 갈 수 없는거죠?"라고 물어도 그들은 갈 수 없다며 길을 막고 있었어요. 마을과 마을로 이어진 길, 누구나가 드나들 수 있는 그 길을 이젠 갈 수 없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어요. 공사지는 높고도 높은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곳 펜스엔 "착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곳, 해군은 장벽을 만들고 평화는 길을 만든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고 또 한켠엔 "This wall cannot erase our memory"라고 쓰여 있었어요. 저항의 목소리, 연대의 흔적이 마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강정, 대추리가 떠올랐어요. 자본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것도 모자라 군사력으로 권력을 발휘하고 장악하려고 하는 미국 그리고 그에 대해 저항하고 할말을 하기보다는 그 땅에서 울고 웃으며 지내온 사람들을 가차없이 내 쫓는 정부. 평화를 짓밟고 구럼비를 울게하는 그 짓거리들이 과연 정당하고 옳은 것인가?라고 되물었을 때 분명 답은 보이는데 그들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뿐이었어요. 그렇게 숙연한 마음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저멀리 한무리의 사람들이 도로위에 서 있었어요. 경찰과 대치중인 것일까? 거리가 가까워지는 문정현 신부님과 다른 신부님 몇분께서 거리미사를 보고 있었어요. 조용히 그 미사에 동생과 함께 했어요. 올레길을 걷다  그 미사에 함께 참석한 올레꾼들도 꽤 있었어요. 평화를 위해, 정의를 위해, 진리를 위해 예수님이 걸었던 그 길을 그대로 걷고 있는 까맣게 그을린 문정현 신부님, 그 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분이 계셔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길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때론 씁쓸함을 느끼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저항하고 또 저항하고 싸우고 또 싸우는 것이 사람된 도리이겠지요. 그러다보면 분명 언젠가는 웃는 날이 오겠지요. '희망'을 품고 사는 운명을 가진 이가 바로 '사람'인가봐요. 오늘은 강정에 온 마음을 전해봅니다. '울지마 구럼비. 힘내요 강정!'


아아, 그런데 뉴스를 보니 오늘(10/6) 해군은 구럼비 시험발파를 강행했다고 하네요. '펑'하고 폭발하면서 수만년의 시간과 희노애락을 다 품었을 구럼비가 그렇게 허무하게 '펑' 사라지고 있다고 하네요. 가슴이 더욱 답답해질뿐입니다. 어찌해야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문정현 신부님에게 묵주 축성을 그 자리에서 부탁드렸었어요. 까맣고 뭉직한 손으로 손을 꼬옥 잡아주시며 묵주 축성을 하시고 신부님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세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오늘밤은 평화를 위해 강정을 위해, 구럼비를 위해, 그 땅위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겠어요.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시월 이일 일요일
바람이 보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