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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유형'에 해당되는 글 1건
2013. 2. 18. 00:10

이소희 탐구생활 part 1. 


하루는 나에 대해 알기 위해 에니어그램 책을 보았다. 일전에 에니어그램 유형 검사를 하였을 때 나는 9번이었다. 오랜 시간 나를 알아온 친구는 내가 2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책을 펼쳤고 점검을 해보았다. 점검 결과 나는 2번 유형이기보다는 9번 유형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편이 쓰리고 괴로웠다. 알고 싶지 않았던 나를 확인하였고, 일종의 과제를 정리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종종 무기력했다. 그리고 포기가 빨랐다. 나의 의사나 선호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제쳐두고 타인의 계획, 선택, 원하던 것을 주로 따랐다. 관계의 범주에서 배제되는 것이 두려웠다. 고립되고 단절되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고립과 단절을 두려워하면서도 또 홀로 있는 시간을 언제나 동경했다. 항상 모순적 상황에 있었다. 동화를 원하지만 외떨어진 존재이고 싶어한다. 이런 모순적 심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나를 유형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유형 지도'를 통해 나라는 인간에 대해 알고 싶다. 정말 내가 원하는 상황은 뭘까? 요즘은 '독립적 존재'로서 나를 확인하고 싶다. '독립적 존재'라고 하면 정서적인 면에서, 관계적인면에서, 경제적인면에서 두루두루를 말하는 것이다. 책을 보다가 적극 동의되는 지점들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 자신의 순종적이고 무기력한 면에 대해 우울해 한다. 강한 불안과 욕구는 대개 변화 없고, 단조로운 감정에 덮여 버린다. 혹은 분노를 드러냄으로서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고 사회적인 고립의 감정을 악화시킨다.

 

: 고립되고 단절되는 것을 나는 두려워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래서 항상 난 스스로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나의 성향이나 색깔이 드러나면 그것으로 인해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어린 시절부터 있었다. 나를 잘 드러내지 않았기에 가까운 사람 가족이나 애인에게만 주로 내 존재를 드러낸다. 그래서 가족과 애인 앞에선 까불기도 많이 까불고, 하고 싶은 말도 하고(가족에게는 잘 하지 않았지. 주로 애인에게 모든 것들을 말했었다.), 감정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주로 '분노'를 애인에게 표출했다. 이제 와 생각을 해보면 이것이 상대를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서로 잘 지내고 있는) 첫 번째 X는 연애를 끝내던 당시 내 존재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너무나 우울했다. 그 우울한 감정을 그대로 X에게 전달했다. 어떤 여과도 없이. 두 번째 연애도 끝을 생각해보았다. 그때도 난 건강하지 못했다. 내 상태가 건강하지 못할 때 나는 돌파구를 내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나의 경향이 관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관계를 맺는 동안 서로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나의 의존 경향을 떨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심리적, 육체적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 상대방이 자신에게 융합되어 오기를 바란다. 상대방의 결점을 보지 않는다. 나의 삶보다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상대방이 자기정체성의 중심이 된다. 자신의 정체성이나 진정한 의미의 독립성을 개발하지 못한다.


: 이 구절들을 읽으면서 아팠다. 연애 관계 속에서 내가 보였기때문이다. 첫 번째 연애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 모든 것을 내가 아닌 그를 기준으로 결정하였고, 그의 무언가를 위해 나의 무언가를 희생하였다. 학교 다닐 때 내 과제는 못했도 그의 과제를 대신해줄 정도였으니. 정말 상대방이 자기정체성이 되어 버렸었다. 연애가 끝나고 너무나 허무했다. 3년이라는 연애기간 동안 내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두 번째 연애를 할 때 애를 썼다. 하지만 애를 쓰고자 하는 의지와 행위는 항상 비례하지 않는다. 두 번째 연애를 생각해보면 내가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둔 채 상대가 나에게 맞추기를 끊임없이 강요했다. 상대는 내가 원하는 바에 부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는데, 나는 대답만 할 뿐 노력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나에게 융합되기만을 바란 것이다. 모순이다. 상대에겐 끊임없이 요구하고 강요하지만, 나는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지 못하고, 상대에게 의존한다. 보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이런 존재에 대해 책에서는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있었다.




1) 나의 의사, 내가 선호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밝힌다.

No라고 말하고 싶을 때, Yes라고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쳐 두고 남들의 계획, 선택, 원하는 것을 했던 때를 기억해보자. 이때 나의 느낌은 어떠했는가? 불만은 없었나? 왜 포기를 했나?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 제주도 사건을 기억해야한다. 나는 당시 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나는 분명 계획이 있었다. 셋째날 나는 올레 10코스를 걷는 것이 계획이었다. 하지만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언니의 제안에 뜬금없이 12코스를 걸었고 나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걷는 내내 후회했다. 왜 나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는 그 언니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 앞으로 알고 지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순간 좋은 사람이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잠깐 보고 말 사람인데 그들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각인해야 한다. 선택의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 나는 내 삶을 사는 사람이다.


: 연애할 때도 나는 그랬다. 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종로에서 전 애인이 종로에서 일할 때 였다. 주로 종로에서 만났다. 일이 끝나고 내가 종로로 갔다.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았다면 약속 장소가 종로가 아닌 다른 곳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몰랐다. 그래서 종로로 갔다. 종로로 가면서 불만을 가졌다. 종로가 싫지 않았지만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대안은 없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거기에서 오는 불만은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왜곡되었다. 그래서 상대를 공격했다. 그것은 나도 상대도 스트레스가 되었다.


: 고민 중 하나가 '나의 관계들은 왜 피상적일 수 밖에 없는가?'이다. 내가 원하는 바, 내가 욕망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관계 또한 피상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정의를 내리다보면 내가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인지, 내가 어떤 사람들과 궁합이 잘 맞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보면 관계에 있어서도 깊이가 생길 것이다.


2)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그렇기때문에 내가 먼저 말하자! "나는 가치가 있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겸손함을 알아보고 자신에게 와줄 것을 희망한다. 그러나 기회는 나를 스쳐가고 사람들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흥미롭게 하는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번주에 할 일은 무엇인가? 올해에 할 일은 무엇인가?




▷ 나는 이상하게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 세계를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다른 곳을 이상화한다. 이것은 민우회 활동을 나의 일상과 끊임없이 분리하려고 하는 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는 민우회 활동에 집중하지만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주말에는 활동의 셔터를 내리려고 한다. 책에서는 이런 경향성에 대해 9번 유형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게으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 깊이 영향받고 싶어하지 않는 영적인 게으름이다. 영적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이것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틈틈이 쓴 시들이 모여 100편이 되면 시집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영화를 토대로 우리의 오늘을 해석하는 글을 쓰고 싶다.


▷ 영적 게으름의 연장선에서 스스로나 다른 사람, 혹은 세상과 관계를 맺는데 에너지를 투여하지 않는다. 우선은 다른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나와의 관계에 있어 에너지를 쏟아보자. 


▷ 자의식의 상실과 무감각함 : 자신이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산만하고 부산하지만 그 행위들은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중요한 문제를 처리하는 일은 미루고 있다.


: 컴퓨터를 하는 나를 보면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다. 트위터와 타인들의 블로그 방문 등등 그 안에서 나는 무언가를 생산하기 보다는 시간을 소비하고만 있을 뿐이다.


▷ 내면의 은신처로 들어가기 : 내면의 은신처 안에 머물지 않고 진짜 세상에 더 다가까이 다가갈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 관계 속에서 상대를 이상화하기 : 상대를 이상화하는 9번은 강하고 공격적인 사람에게 끌린다. 아무래도 나는 8번 유형의 사람들을 이상화하고, 3번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3번 유형의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그 유형을 열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열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질투도 결합되어 있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대를 이상화할 때 그 사람의 어떤 자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이런 자질이 당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본질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래 내가 이상화하는 사람들의 기질을 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3번 유형의 사람이 내 활동의 가이드가 될 수 있도록 해보자. 3번 유형의 그녀와 같이 활동하면서 그녀의 장점들을 옆에서 많이 보고 배우자. 그녀가 나의 진정한 가이드 일 수 있다. 그녀는 나의 긍정적인 자질들을 더 많이 찾아 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녀를 통해 나는 나의 내면을 자극할 수 있다. 


▷ 공식에 의해 살기, 삶의 철학에 의해 살기 : 9번 유형의 사람들은 공식, 삶의 철학에 갇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공식과 삶의 철학(명언)은 노력을 요구하지 않고, 수동적 삶의 태도를 합리화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한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삶의 철학은 '진심으로 살자.'였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명제만 있을 뿐, 이것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제대로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눈에 집중하는 것만이 '진심'의 전부가 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떻게가 중요하다.


▷ 우유부단함이 있기때문에 삶에 완전히 뛰어들기 위해서는 다른 유형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아침잠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직면해야 하는 일을 가급적 최대한 늦게 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타인이 이런 상황에 대해 한마디하면, 움직일 것을 강요하면 강한 반감을 가진다. 타인이 떠미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누군가가 개입하고 한마디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면 '알아서' 상황을 직면하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것을 미루려고 한다. 자의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아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을 싫어하니 대책없는 캐릭터다. 아이구야. ㅠ


▷ 9번 유형의 사람들은 숨겨져 있는 많은 분노를 가지고 있다. 9번이 자신 안의 분노를 제대로 인식하면 내면의 나태함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중요한 말 인 것 같은데 내 안의 분노를 어떻게 봐야할지, 내 안의 분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 나의 에너지를 스스로가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 보고, 분노의 느낌을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도록 한다. 내가 나의 에너지를 억압했던 방법을 생각해보면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타인이 좋아하면 난 그것을 쉽게 놓아버렸다. 그것은 먹는 것에서부터, 사람, 꿈 등 대부분이 그러했다. 내 생의 중요한 것들을 타인이 똑같이 좋아하면 악을 쓰고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포기했다. 난 왜 그리도 쉽게 '포기'했을까? 갈등이 싫었고, 경쟁의 구도가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아이스크림을 동생들과 같이 먹어도 많이 먹기 위해 빨리 먹어야 하는 것이 피로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여로모로 신경쓰는 것이 흥미 없었다. 그래서 갈등과 경쟁의 구도가 내게 오면 나는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보다는 '포기'를 택했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자연스레 바뀌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의 선택지에서 배제된,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중 하나가 '계란'과 '치즈' 에피소드가 있다. 내 동생들은 '계란'과 '치즈'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계란'과 '치즈'를 먹지 않았다. 싫어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 한동안은 거의 이십대 중반까지 나는 이것들을 잘 먹지 않았다. 쫄면에 들어간 계란을, 떡볶이에 들어간 삶은 달걀을 난 대부분 양보했었다. 나는 내가 이것들을 싫어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들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계란'과 '치즈'는 상당히 맛있다. 요즘에는 '계란'과 '치즈'를 잘 먹는다. 

포기하면서 잃게된 것 중 하나가 그림이다. 똑같이 그림을 좋아했던 동생과 나. 동생이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그림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a를 좋아했기에 a를 좋아하면서도 억지로 좋아하는 마음을 접은 적도 있다. 되돌아보니 참 바보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잃지않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들어야 한다. 


▷ 9번이 6번으로 향해가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오랫동안 감춰놓은 불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감정의 분출은 일시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가져오지만 그 혜택이 오래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9번은 자신의 불행의 뿌리를 보려하지 않는다. 이들이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려고 하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반항적이게 된다. 9번이 화를 분출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그를 알고 있던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한다. 


: 지난 연애가 계속 떠오른다. 미안한 감정이 올라온다. 미안하다. 건강하지 못한 나의 상태를, 나의 근본적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상대에게 그 불안의 감정을 다 토로해버렸으니.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관계가 끝났다. 앞으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한다면 나는 나의 문제를 제대로 보고 파악해야한다. 엉뚱한 방식으로 감정을 분출하지 않을 수 있도록...




▷ 건강한 3번 유형으로부터 조언을 들어라.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라.

▷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인식하는 법을 배워라.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라.

▷ 분노를 느낄 때 상대방에게 이야기해도 괜찮다. 분노가 어떻게 느껴지는가? 몸의 어떤 부분에서 강하게 느껴지는가? 분노를 하나의 감각으로 여기고 그 분노에 익숙해지면 그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 평균적인 9번은 대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좋은 면을 보지만, 건강한 9번은 자신의 내면에서도 좋은 면을 발견한다.

▷ 나는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 가급적 약속을 줄이고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자. 내 존재에 대해 에너지를 투여할 수 있도록 하자. 활동과 관련된 공부도 틈틈이 꼼꼼히 해보자. '자기개발'에 거부감을 가지지 말자. 일단은 내 존재에 대한 에너지를 쏟는 방법 중 하나로 아티스트웨이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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