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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6. 13:28
잠을 설친 지난 밤을 나는 과연 보상받을 수 있을까?

매월 셋째주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민우회 세상만나기, 처음엔 사무실이 아닌 새로운 곳을 그것도 업무 시간에 자유롭게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였는데 막상 세상을 만나기 전날이 되니 누구를 만나야할지,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하였다. 그래, 일단은 수요집회에 가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몇몇을 떠올렸다. 그중 한사람이 '토요일 오후 다섯시'의 햇살을 닮은 에너지를 품고 나를 끌어 당겼다. 막막함과 설레임을 안고 그렇게 나는 밤잠을 설쳤다.






3월 10일 아침 창밖을 내다보니 온세상이 하얗다. 하이얀 눈이 인간이 그어 놓은 세상의 경계-차선, 횡단보도, 인도 등-를 말끔히 지워놓았다. 경계가 없으니 무언가 묘하다.



눈오는 수요일엔, 수요집회에 가요! 908차 수요집회 참관기






언제나 어김없이 매주 수요일 12시가 되면 일본대사관 앞에는 수요집회가 열린다. 102주년 세계여성의 날 기념 908차 수요집회, 이날 수요집회는 일본에서부터 시작된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일본 인구 1% 120만명 서명운동을 한국에서도 인구의 1%, 50만명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음을 핵심적으로 광고하였다. "50만명 쉬운 줄 알았는데 아직 참 많이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던 정대협 활동가분의 말, 카드명세서에 나의 소비를 확인하는 서명은 무수히 하면서도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50만명 서명' 왜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아직도 갈길이 멀다. 하지만 한결같이 18년동안 거리에 섰으니 우직하니 가다보면 우리가 웃는 날이 우리도 모르게 찾아 올거라 믿는다. 2010년 3월 23일 현재까지 5748명이 서명을 하였다. 혹여 아직 서명을 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온라인 서명을 받고 있으니 바로 그곳으로 고고!


서명하러가기!
이미지클릭!






매주 수요일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전쟁을 반대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간절히 바라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이날은 일본 교토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한 일본인 학생이 발언을 하였다. 한국인 친구에게 먼저 수요집회에 같이가자고 말했다던 그녀, 엄마가 한국분이라 무지 반가우면서도 일본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때문에 마냥 반가워 할 수 만은 없다고 말하던 그녀, 이러한 그녀의 부채감은 수줍지만 단단하게, '진심으로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하였다'고 그녀는 수요일 정오, 사람들 앞에서 마음을 말한다.



'토요일 오후 5시의 햇살'을 닮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그녀에게로!

수요집회를 마무리하고 광화문 대형 서점으로 갔다. 오후에 만날 사람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다.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을 하다 민우회가 맹근 '여자들의 유쾌한 질주'를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그런데 이것이 왠말인가! 서울 한복판 대형 서점에 '질주' 재고가 없다고 한다. 속상하다. 대안으로 완소 만화책, 리틀포레스트를 품에 안고 나는 파주로 향했다.

나를 그 먼 파주까지 오게끔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는 그녀를 나는 딱 한 번 만났다. 여성환경연대 총회에서 만난 '커필윤미', 페달이 두 사람이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내게 그녀를 소개하였고 파주에서 작은 커피집을 운영한다며 그녀는 내게 명함한장을 건냈었다.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동그란 눈에 이쁘게 웃던 얼굴을 떠올리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어, 거기 윤미님이 운영하는 커피집 아니에요?" "맞아요." "윤미님은 지금 안계세요." "요가수업때문에 서울나갔는데 오후 늦게나 들어올거에요." 망설였다. 파주까지 2시간, 저녁에 모임때문에 서울로 금새 돌아와야 하는데 갔다가 얼굴도 못보고 그냥 오는 건 아닐까? 불안했고, 망설여졌지만 일단 나섰다. "에라이-모르겠다."



여기에서 커필마셔요!

나는 유난히도 돌아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파주로 향하는 차창밖은 도심과 '준'농촌 풍경을 번갈아가며 내게 선물한다. 정말 딱 2시간이 걸렸고 자그마한 마을의 초입길에 자리잡고 있는 그녀의 커피집에 드디어 도착하였다. 딸랑딸랑-문을 밀고 들어서니 게으른 오후 햇빛 아래그녀가 책을 읽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다는 손님이 바람이었군요."






'손으로 못하는 것이 없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녀와의 만남이 무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다. 추운날 먼길 왔다며 그녀는 뜨거운 물 한잔에 말린 로즈마리 잎 하나를 띄워준다. 손을 녹히며 호호-불어가며 물을 마시는데 자그마한 로즈마리 잎 하나일 뿐인데 입안에 허브향으로 가득 찼다. 그녀에게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와 민우회 세상만나기를 설명하니 그녀가 동그란 눈으로 끄덕인다. 그녀의 커피집 부엌은 기존의 카페와는 달랐다. 집에서 쓰던 가스레인지와 냉장고가 있고, 카페에 흔히 있는 커피머쉰이 없다. "후라이팬에 소량의 커핑콩을 직접 볶고 드르륵-손으로 커피콩을 갈고 커피를 내리면, 기계가 만들어 내는 일률적인 맛이 아닌 찾아오는 사람이 원하는 다양한 커피맛을 만들 수 있어요." 커피를 내리는 동안 커피집을 쭉 둘러본다. 그녀의 커피집에는 직접 목수에게 부탁해서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고 손으로 만든 명함과 노끈을 묶어 뚝딱 만든 커피방향제, 굴러다니는 벽돌로 만든 책고정대 등 작은 공간은 손으로 만든 세상이 가득했다. 



'어떻게 커피집을 열게 되었어요?'

그녀를 만나기전 그녀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녀의 커피집 이름을 검색하니 많지는 않지만 몇개의 기사가 있다.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게 정장을 입고 북적한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던 그녀가 커피집을 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윤미님, 어떻게 커피집을 열게 된거에요?" 묻자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시골길을 한참을 걸어온 도보여행자에게 잠시나마 두 다리를 편히 쉴 수 있는 기쁨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올해로 세번째 봄을 맞이하는 그녀의 커피집은 인연을 만드는 공간, 자연을 느끼는 공간, 자원을 나누는 공간으로 슬슬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팥죽 만들어 먹을래요?'

질문하고 답하고 한참을 그녀 이야기를 들었고 이제는 그녀가 내게 질문을 한다. "그대는 어떻게 살아왔어요?" 민우회 이야기, 내 이야기를 하다보니 배가 슬슬 고파졌고, 그녀가 제안을 했다. "우리 팥죽 만들어 먹을래요?" 문턱이 낮은 그녀의 부엌으로 가더니 그녀는 작은 냉장고 문을 연다. 너무나도 간단한 냉장고. 우유가 담긴 유리병 몇개와 직접 만든 시럽과 치즈만이 냉장실의 전부이다. 냉동고에는 작은 얼음통에 얼음만 있을뿐. 냉장고 안이 너무 간결하다고 말하니 그녀는 딱 필요한 만큼만 냉장고에 채운다고 답한다. 냉장고에 무언가에 가득차면 에너지도 낭비되고, 필요한 것을 그때 그때 바로바로 만들어 먹다 보니 냉장고를 가득 채울일이 없다고 한다. 쌀가루 한주먹에 뜨거운 물을 붓고 새알 반죽을 만든다. 그녀가 팥을 끓이는 동안 나는 옆에서 동글동글 새알을 빚었다. '먹을만큼의 소량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의 좋은 점은 그것이 노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고 함께 뚝딱 우리는 팥죽 두 그릇을 만들었다. 팥이 내는 고유한 단맛과 계피향이 참 좋다. 커피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팥죽 한 숟가락을 크게 입에 담으며 참 잘 왔구나 생각을 하고 또 한다.



요가답게 산다는 것은-

커피집을 하면서 동시에 요가를 가르치는 그녀는 요가가 그녀의 삶을 많이 변화시켰다고 한다. 요가답게 살려고 많이 노력한다고 한다. "요가답게 산다는 것은 뭐에요?" "그대와 내가 이렇게 이어져 있듯이, 자연과 내가 이어져 있다고 생각을 하면 지금 존재하는 것, 존재 그대로를 아끼게 되더라구요. 그러면 설거지할때 자연스럽게 세제도 안쓰게 되고, 소비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과정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이 요가답게 사는것 같아요."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녀의 에너지가 나를 강력하게 이끌었듯이, 나를 또 그곳에 머물게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내게 소박한 즐거움, 공존의 즐거움을 알려준 그녀에게 '고마와요.' 조심스레 마음으로 말하고 파주의 작은 커피집을 나선다. 커필,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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