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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23. 00:03


지난 금요일 다분히 목적성을 가지고 뮤지컬 <빨래>를 보았다. 영화는 잘 챙겨보는 편이지만 뮤지컬과 연극은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입장료가 비쌀뿐만 아니라 작은 소극장에서 배우들의 살아 있는 눈을 응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때문이다. 하지만 연극과 뮤지컬은 살아 있는 생동감을 가지고 있는 매체이긴 확실하다. 배우와 직접 눈을 마주치고 그/녀들의 숨결을 느끼는 행위, 오글거리면서도 짜릿하다. 오랜만에 보는 뮤지컬이라 설렜다.

뮤지컬 <빨래>는 나름의 이유로 제각각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온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나영과 서울에 온지 5년 된 이주노동자 솔롱고와 그/녀들 주변 사람들이 등장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틈틈이 유머로 대중을  극속으로 끌어들인다. (유머코드가 외모와 성을 이유로 한 것들로 종종 표현되기도 한다. -_-;) 공연 시간이 꽤 길었지만 극속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약간 지루해지려고 한다."라고 느끼는 시점에 극은 마무리 되었다. 뮤지컬 <빨래>에 대한 대략의 평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소극장을 나오는 순간, 현실의 씁쓸함에 우울해졌다.

연극을 보고, 알콜 기운에 트윗을 남겼다.

"닮은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위안이 되면서도, 삶의 양태에 있어 어쩔 수 없이 확연한 경계 속에서만 관계 맺고 살아 간다는 결말에 씁쓸함을 느꼈다. 다양한 대안을 찾고 싶다."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몸과 감정, 일상의 모든 면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 나영 또한 예외의 인물이 아니다. 나영은 강릉에서 올라와 서울살이 5년 째, 그동안 7번 이사를 했고, 8번 직장을 옮겨 다녔다. 삐뚫어진 이름표를 바로 잡아주겠다며 은근슬쩍 나영의 가슴을 만지는 사장에게 대놓고 뭐라 하지 못하고, 부당하게 해고 당한 선배를 대신해 한 마디 했다가 엉뚱한 지역으로 발령받고 막막해 하며 우는 나영은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노동자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 모습에 공감하면서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차별 받고 있는 나영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대안에 목말라 했다. 대안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뮤지컬 속 나영이 대신 그 대안을 이야기해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숨죽여 극을 따라 갔다. 하지만 결국엔 "당신은 나와 닮았어요."라는 대사로 시작해, 나영과 솔롱고가 함께 살기로 했다며 옥탑방 옥상에서 행복해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마지막 장면은 나를 씁쓸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작은 옥탑에서 상대의 체온을 느끼는 것은 순간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자본의 경쟁 속에서 한 사람이 느끼는 사회적 관계는 점점 더 고립될 것이고, 자본의 트랙에서 제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여전할 것이기에 나영과 솔롱고의 사랑은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착한 사람들의 슬픔일랑 빨래를 하듯 깨끗이 씻어 버리고 바람결에 툴툴 털어버리라는 메시지는 그래서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제 좌절했어도 오늘 다시 희망을 찾는 에튀튜드를 갖춰야 하는 것인가? 허허실실 웃을 뿐이다.

+ 뮤지컬 <빨래>에 대한 타인들의 리뷰를 읽으면서 '공감'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극 중 인물들에 대한 공감도는 제각각이겠지만 나도 그러했고 '그래도 내 삶은 나영과 솔롱고보다는 나은 삶이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타인의 빈곤과 나의 빈곤을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여성노동자의 70%이상이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띄고 있는데 비정규직 계급 안에서 '내가 더 낫다. 아니다'라고 빈곤을 세분화하는 그림을 누가 먼저 그리고 있는지 우리는 명확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다.  

+ 희정엄마 역의 최가인씨, 그녀의 연기가 눈에 쏙 들어오더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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