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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옌시(진연희)'에 해당되는 글 1건
2012. 8. 28. 23:00

 

 

태풍때문에 민우회 사무실은 재량휴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재택근무를 했다. 정말 하기 싫어서 끝까지 미루고 미루던 보고서를 발송하고 나니 오후 5시 30분이었다. '퇴근 시간이군. 이제 퇴근을 해야겠군.' 생각하고, 집 앞 극장 상영작 리스트를 훑어 보았다. 보고싶은 영화는 딱히 없었고, 그 중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요즘 내가 꽂혀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연결하여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눈에 들어오는 드라마가 없는 요즘 사무실 활동가들 사이에 화제가 되는 드라마 한 편이 있었다. 드라마 주인공은 "슈스케의 서인국과 에이핑크의 정은지이고, 그들의 사투리 연기가 그렇게 괜찮고, 드라마 속 소품들과 이야기가 그렇게 공감될 수 없다."라는 말이 점심시간에 오갔고, 꼭 이 드라마를 봐야한다며 주변에서 적극 추천하였다. 그래서 어느 주말 컴퓨터 다운로드 속도가 상당히 느림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1화부터 8화까지 드라마를 다운 받고 반나절 내내 이 드라마를 봤다. 횟수가 거듭되면서, 다음편을 계속 클릭하면서 '짠함'에 눈가가 촉촉해지곤 했다. 소녀 시원과 소년 윤제가 살았던 당시의 1997년, 그들은 18살이었고 당시 나는 17살이었다. 시원과 윤제 그리고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었고, 그렇기때문에 드라마 속 배경과 소품, 에피소드들은 그때를 살았던 우리의 기억과 추억을 오롯이 자극하고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눈가가 촉촉해지곤 했다. 당시엔 정말 교실에선 H.O.T팬과 젝스키스팬으로 나뉘어진 패걸이가 있었고, H.O.T와 젝스키스 춤을 수학여행 장기자랑 시간에 그대로 따라 추며 서로를 견제했고, 워크맨엔 90년대 가요들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메이커 청바지를 입고 수학여행을 가고 싶어서 엄마에게 그 청바지를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고(드라마에서는 프랑스 브랜드의 청바지였으나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NIX청바지가 최고의 청바지였다.), 꼬맹이 시절 극장에서 봤던 우뢰매, 영구시리즈가 아닌 '진짜 영화를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접속>을 봤다. 계속 엇갈리는 두 주인공을 보며 안타까워했고, 영화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노래 a Lover's Concerto를 들으며 가슴 설레여 했다. <접속>을 시작으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를 직접 보았고, 신예감독 장윤현과 허진호 덕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처럼 내가 고스란히 겪고 지난 시간들이 사진첩을 펼치는 것처럼 드라마에서 한 회, 한 회 펼쳐지고 있었다. 신경쓰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무심히 화면 한구석에 등장하느 소품들도 나의 추억들을 현재로 소환하는데 한 몫하고 있었다. 전람회의 마지막 앨범 <졸업> 카세트 테이프와 영화 잡지 키노와 스크린, 하드보드지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연예인 사진을 붙여 만든 수제 필통 등이 추억을 돋게했다. (전람회의 <졸업> CD를 그때 좋아했던 친구에게 졸업식 날 주려고 샀지만 결국 전하지 못했었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또한 1990년대가 배경이다. 대만 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왕조현의 브로마이드가 방에 걸려 있었고, 소년들은 미국의 NBA 농구에 꽂혀있었고, 야구에 열광했던 당시의 그 혹은 그녀가 영화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오버랩 된 동시대를 함께 통과한 이들에게 1990년대를 추억한다는 것은 더욱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서른의 시간 위에 놓여 있는 이들은 '1990년대, 우리는 그땐 그랬지.'라고 말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과거의 그 시간을 곱씹고 그리워하며 가끔은 눈물을 찔끔 흘리는 것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7>을 재미있게 보고 있으면서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며 킥킥 거리며 극장을 나오면서도 뭔가 찜찜함이 올라왔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건축학개론>을 올 봄에 보고, '70-80년대가 배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90년대도 영화의 '주'배경으로 등장하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시대가 매체에 등장한다는 것이 반가웠다. <건축학개론>은 그렇게 '90년대의 재현'이라는 흐름의 물꼬를 텄고, 이를 시작으로 90년대가 '주'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다양한 장르를 통해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다. 특정 시기를 추억하는 사이클이 너무 빨라지고 있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2012년을 기점으로 불과 20년, 15년 전의 이야기가 이제는 추억해야 하는 먼 과거가 되었나 싶기도 하고, 나의 '청춘'들을 소환하기에 아직 나는 '청춘'인 것 같은데 나의 '청춘'을 이렇게 빨리 추억한다면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이 시점은 뭐라 정의해야하고, '청춘'이라는 것의 경계는 무엇이고, '청춘'이라는 것이 너무 빨리 '소비되는 무엇'이 되어 버린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소비하는 과거이기 전에 아직 그때의 그 시간은 현재와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끔은 현재라고 착각하며 현재라고 명명하기도 하는데 매체에서는 이미 '아~지나가버린 옛날이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사이클은 20년 전에서, 15년 전으로, 다시 10년 전으로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속도를 보면 '분명 이 사이클은 5년 혹은 10년 주기가 아니라 그보다 더 빨라질 수 있겠구나.'라고 염려도 되었다. 지난 시간을 곱게 혹은 아프게 또는 슬프게 감정을 천천히 되새김질하며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간을 트렌드에 맞춰 빨리빨리 '소비하는 무엇'으로 인식하여 그 시절을 맞이하는 것만 같아 불안하였다. 그래서 <응답하라 1997>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며 나는 찜찜함을 느꼈다.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 대해 짧게 평을 하자면 대만의 청춘영화는 건강하고 풋풋하다. 또 그 건강함과 풋풋함의 8할은 배우의 힘! 하지만 성실하기만 한 건강한 풋풋함은 영화를 심심하게 만든다.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감독 구파도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성실하고 기교가 없는 영화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대체로 동감하며 너무나도 성실한 캐릭터는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특히 션자이의 캐릭터는 지나치리만 만큼 성실했다. 션자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 격투기 대회를 개최하고, 참가한 커징턴에게 다칠 것 뻔히 알면서 그런 짓을 왜하냐며 마구 화를 내는 션자이의 바른 생활에 화들짝 놀랐다. 엄훠!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두 번째로 본 대만영화이다. 첫 번째 영화는 <청설>이었다. 두 영화다 청춘영화였고 두 영화다 배우 첸옌시가 나오는 영화였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첸옌시는 정말 이쁘고, 엄청난 동안이다. 어쩜!

 

+ '그땐 그랬지.' 과거를 곱씹다보면 말하게 되는 공통의 경험으로 감독은 수업하는 여자선생을 보며 교실에서 자위를 하는 커징텅과 쉬보춘의 에피소드를 "소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즘 이런 경험 있었지."라고 말하며 코믹하게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나는 절대 웃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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