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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1코스'에 해당되는 글 1건
2011. 10. 6. 16:56

승희나무님에게.

둘째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민박집 할망은 참으로 부지런합니다. 새벽 6시 30분부터 할망의 움직움이 느껴집니다. 민박집에 머물고 있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누군가와 더불어 생활한다는 것이 아직은 불편합니다. 깍쟁이(?)이처럼 방에서 조용히 아침밥을 먹고 싶었는데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십여명이 넘는 사람이 북덕북덕 모여 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빨리 먹고 일어나야지 그 생각만했습니다. 가급적이면 먼저 말을 건내지 않고 질문에도 간결히 답했습니다. 아침을 그렇게 먹는둥마는둥하고 길에 섰습니다.

오늘은 올레 1코스를 걸었습니다. 시흥초등학교에서 광치기 해변까지 15.6Km의 거리. 나무님의 올레패스포트에도 1코스의 도장이 꾸욱 찍혀 있었지요? 나무님이 먼저 걸었던 그 길을 저도 오늘 걷습니다. 1코스를 다 걷고 들었던 생각은 '1코스는 올레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올레길은 이러합니다.'라고 말하는 예고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름도 있고, 마을 올레도 있고, 해안길도 있고 앞으로 만날 매력들을 조금씩 조금씩 모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을 헤깔려 할때즘 살뜰히 화살표는 방향을 알려주고, 저 멀리 살랑이는 올레 리본은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하는 듯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간세는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길을 만든 사람들이 주인이 아니라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서명숙씨를 비롯해 올레길을 함께 만든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길을 걷는 내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세심하게 길을 만든 사람들이 고마왔습니다. 제주도하면 예전에는 신혼여행지로 요즘엔 태교여행지로 휴양지의 이미지가 크기때문에 나와는 먼 거리가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돈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차도 있어야 둘러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올레길이 열리면서부터 가난한 이도,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이도, 여럿이 아닌 혼자서도 마음 먹으면 올 수 있는 과거보다는 문턱이 낮아진 공간이 되었다는 생각에 올레길을 연 사람들이 고마웠습니다. 

1코스를 걸으며 시간에 따라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성산일출봉을 보았습니다. 위풍당당한 카리스마가 돋보였던 일출봉의 정면과 달리 광치기 해변에서 본 일출봉의 뒷면은 달의 후면을 보는 것처럼 곳곳에 구멍이 뚫여있었고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말미오름, 알오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제주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저는 1코스의 끝 광치기 해변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밀물이 들때와 썰물일 때 그 모습이 다른 광치기 해변, 물이 쫘악 빠져나간 시간 넓게 펼쳐진 바위 평야와 광치기 해변의 해안 사구 해안사구 위의 해변 식물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바지를 입고 해안 사구 위를 걸었습니다. 길 양쪽으로는 해변식물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피부에 닿는 해변식물들의 감촉은 보들보들 하였습니다. 쓸린다는 느낌도 없이 동글동글하고 두꺼운 잎은 말그대로 보들보들 하였습니다. 바닷바람에 더 이상 모질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 둥글둥글함이 좋았습니다. 모진것들을 다 겪고 둥글둥글해진 것 같아 마음이 짜안하기도 하면서 부러웠습니다.



둘째날은 9시 30분에 출발해서 저녁 6시에 1코스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8시간 30분 동안의 도보, 말그대로 놀멍 쉬멍 걸으멍을 하였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내가 사무실이 아닌 이곳, 제주에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일, 현실이 바로 지금이에요.

내일은 조금더 자연이 되어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내일은 바람이 되야지. 바람이 되야지.

안녕히계세요.

이천십일년 구월 삼심실 목요일
바람이 보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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