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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림'에 해당되는 글 1건
2013. 4. 7. 21:36

무언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틀동안 꾸역꾸역 계속 먹기만 했다. 비어 있는 위를 음식물로 채우면 내 안에 있는 공허감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음식물이 채워지는 만큼 공허함의 크기는 더 커진다. 위와 공허감이 마치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 모양같다. 어제는 혼란스러웠다. 사천에 있는 할아버지가 이번 주말을 넘기기 어려울 것같다는 의사의 판단에 부모님은 사천으로 먼저 내려가고 나도 곧 내려갈 채비를 했다. 집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모두 버리고, 며칠 집을 비울 것을 대비하여 화장실이며 곳곳을 청소했다. 옷가지 몇 벌과 속옷과 양말을 챙겼다. 청소 중에 갑자기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방학이 되면 항상 시골집에 머물렀다. 밭일, 논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아버지는 소주를 마셨고, 냉장고에 있는 찬으로 안주를 손수 만들었다. 여러 안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안주는 고기에 소금대신 설탕을 뿌린 설탕구이였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곁에서 나는 고기를 낼름 집어먹고 할아버지는 소주를 마셨다. 어쩜 그리도 맛있었는지 가끔 그 맛이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논농사를 그만두고 한때 잔디농사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잔디를 잘 가꿔 팔곤했다. 할아버지가 잔디를 갂으면 난 할아버지가 만든 갈퀴를 들고 잔디를 그러모았다. 막 깍인 풀냄새가 좋았다. 풀냄새 맡으며 잔디 위를 뒹굴면 온몸이 까끌거렸지만 구석구석 어느 한 곳도 빠짐없이 내 안에 빛이 드는 것 같아 풍족했다. 동네 고양이는 항상 할아버지 곁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아버지 머리맡 위에서 고양이가 잠들어 있기도 했다. 할아버지 곁에서 여유를 부리던 고양이들은 우리 삼남매가 오면 화들짝 놀라 한동안 다른 곳으로 피신을 가야 했다. 할아버지가 만든 집에서 그렇게 나는 나의 유년의 계절을 보냈다. 계절마다 난 그곳에서 추억을 만들었고, 계절이 바뀌어도 그곳에는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다. 많이 쇠약해진 할아버지, 지난 3월 할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는 내게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다 자란 손녀딸에게 용돈을 주었다. "할아버지 또 올게요."라는 말에 아무 대답이 없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제 죽음을 준비하자고. 하지만 그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집을 며칠 비울 것을 대비하여 집안에 쓰레기를 비우는 것이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일까. 함께 공유했던 기억을 더듬는 것이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내게 시간을 주었지만 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결국 무기력해진다. 다행이도 지난밤 할아버지의 의식은 돌아왔고, 가족들을 알아보고, 대화도 나눈다며 연락이 왔다. 마음을 놓아도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연된 것일뿐. 여전히도 조금씩 가까이 곁으로 다가온다. 낯선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매일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간다는 명제는 알겠지만 실체와의 만남은 두렵다.




마음 다독이려고 시작한 손바느질. 텀블러 주머니를 만들었다. 머리 속으로 항상 텀블러를 챙겨다녀야지 생각만했는데 텀블러 주머니도 생기고 했으니 진짜로 텀블러와 밀착된 생활을 해야겠다.

(20130407)


언니가 있는 마석모란공원에 다녀왔다. 5년만에 언니를 찾았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명절날 온 가족이 모인 것처럼 언니 묘지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졸업 이후 처음 뵙는 언니의 어머니. 어머니는 그때 모습 그대로이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우리들 먹으라며 올해도 홍어무침과 떡을 해오셨다. "희정이가 떠난지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도 나는 마음이 아프네. 그래도 희정이가 이제는 내 딸 희정이보다는 여러들의 언니로 있다는 것이 낯설지가 않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아릿했다. 언니의 아버지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시다. 언니의 조카는 이제 훌쩍 자라 분홍색 키티 운동화를 신고 이곳저곳을 뛰어 다닌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언니였지만 언닌 내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음다해 진짜마음으로 살아가자는 희정언니의 글들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다짐하곤 했다. 말 속에 마음을 담고 말과 행동이 같기를 바랬다. 언니 앞에서 한 말들은 꼭 지키려고 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십여년이 다 되어 간다. 그때의 나의 말들은 무력해졌고, 나는 언니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변하고 더이상 그때의 내가 아닌데 언니는 그때 모습 그대로이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언니 방 앞에 다정하게 피어있던 진달래가 올해는 아직 피지 않았다. 2016년 봄날은 언니가 떠난지 스무해가 되는 해라고 한다. 그때되면 아이들은 또 훌쩍 자라 있겠지. 그때되면 아이들은 이제 엄마들을 따라다니지 않겠다고 하겠지. 그때는 조금 더 즐겁고 환한 마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언니를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는 언니 방 앞 진달래가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었으면 한다. 

(20130406)


머금지 못했던 지난 밤. 결국 난 머금지 못했던 내 죄로 감정을 잃어버렸다. 발설하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무의미해졌다. 말은 너무나도 허망하다. 말했기때문에 나는 잃어버렸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20130405)


시인을 만났다. 시인을 만나 시란 시인의 몸을 통과해 만들어진 작은 열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인의 시집을 샀고 나도 내 온몸으로 쓰여진 시를 쓸 수 있기를 열망했다. 하지만 나의 시는 너무나도 천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들을 다시 부여잡고 읽고 또 쓰고 읽고 다시 쓰고를 반복할 것이다. 시인의 시집을 한 권씩 정성스럽게 읽기로 했다. 이윤림 시인의 시집을 처음부터 차근히 읽고 있다. 

(20130404)


실내정경화

이윤림


실내 정경화라는 그림의 장르가 있다고 한다

19세기 이래 서양 미술의 한 갈래로 자리잡았다는 그 양식

만약에 누가 나의 실내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겠다면

멋대가리 없는 커다란 인조가죽 소파는 치워버리겠다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기타는

먼지를 털어 벽에 기대어놓겠다

탁자보는 귀를 맞추어 단정히 하고

그 위에 즐겨 읽는 책을 몇 권 놓아두겠다

화분들에는 새로 물을 주겠다

배치를 새롭게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시든 잎사귀들을 똑똑 따주겠다

아아, 개운해

식물들은 소리를 지르리라

빈 벽에는 클레의 그림 한 점만 걸어놓겠다

통유리문에는 얇은 레이스 커튼을 쳐

해빛을 살짝 거르겠다

부시지 않는 빛 가운데서

실내의 모든 윤곽들이 모서리에서 힘을 빼리라

이렇게 실내를 연출한 후 마지막으로

난감한 이 동체- 물을 줄 수도

시든 이파리를 따줄 수도 없는

나를 내보낼 것이다

벽에 붙여둔 빈 의자 하나가

실내를 조용히 응시하는 것으로 족하다

화가여, 그려다오

내가 빠진 그 실내정경화 아름다워도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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