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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23. 01:51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로는 허준, 대장금, 선덕여왕과 같은 대하드라마가 있었고, '나 드라마입니다.'라고 말하는 뻔하디 뻔한 드라마들과 막장드라마가 있었다. 그러고보면 마니아 층이 두터운 드라마들은 잘 보지 않았다. 내게 있어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라 환타지라는 인식이 명확했기에 난 머나먼 과거를 그리고 충분히 다음 장면이 예상가능하고 갈때까지 가는 드라마에 더 끌렸던 것이다. 

민우회 점심시간에 맛있는 찬거리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중 하나가 바로 '드라마'이다. 선덕여왕, 성균관 스캔들, 시크릿가든, 49일, 내마음이 들리니 등등 우리는 점심시간에 드라마 속 캐릭터에 대해 논하고 아쉬움을 말하고 장면을 재해석하면서 드라마를 단순히 보여지는 것을 뛰어넘어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활동가들 재각각의 해석과 시각은 별 흥미없던 드라마를 보게끔하는 힘을 발휘하였다. 몇몇 활동가들의 드라마를 보는 시각은 신선하고 재미있고 아, 이렇게 해석할 수 있고 이런 지점이 비판 지점이구나라고 생각하게끔 한다. 그래서 난 몇몇 민우회 활동가들이 드라마를 보고 글을 써주면 좋겠다고 혼자 상상한다. 그녀들이 글을 써준다면 이는 사회적으로도 분명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이고,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더욱 증가시킬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활동가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나누는 맛난 드라마 이야기덕에 요즘에 챙겨보는 드라마가 생겼다. 바로 김선아 주연의 <여인의 향기> 지난 이틀 동안 1회부터 10회까지 보았으니 폭풍처럼 몰아봤다. 드라마 몰아보기가 익숙지 않은 내가 쉬이 놓지 못하고 계속 보게 된 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 주인공과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이라는 굵직한 스토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않는 레파토리이다. 일단은 뻔한 구성이 통속적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의 흥미를 끌었다. 그 통속적 뼈대 안에서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이 '네가 좋은데 어떡하지?'라는 감정을 때로는 달달하게 때로는 조마조마하게 주고받는 것을 적절한 음악과 영화같은 화면으로 세련되게 연출한 것이 내가 이 드라마를 챙겨보게 된 첫번째 힘이었다.   

두번째 힘은 드라마 속 주인공 외에도 주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공있는 캐릭터와 연기에 있었다. 주인공의 가족이지만, 주인공의 친구이지만, 주인공의 동료이지만, 혹은 아주 잠깐 등장하지만, 대사가 얼마 없지만, 한 번 나오고 마는 단편적 인물들이지만 작은 배역 안에 그 인물의 역사와 시간을 추측하게끔하거나 그 인물을 궁금하게끔 작가는 인물들에게 캐릭터를 심어주고 숨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작은 배역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덧해서 그 작은 배역을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조합이 나는 좋았다. 특히 은석의 병원에서 일하는 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는 그 간호사와 연재가 탱고를 배우고 있는 수에뇨의 베로니카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던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워두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었다. 보통 비극적 결말이더라도 시청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극적으로 주인공을 살린다거나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시크릿가든이 대박이었지.-_-;)류의 판이 가득한 드라마 시장에서 6개월 뒤에 주인공이 죽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드라마를 끌어가는 방식은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끔 만들었다. 이 생이 영원할 것만 같다고 느끼는 우리에게 '이 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6개월 밖에 살지못한다는 판정을 받은 연재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죽기전에 꼭 해야하는 스무가지. 첫번째 연재의 리스트는 '하루에 한 번씩 엄마를 웃게 만들기'였다. 마냥 좋다, 사랑한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존재인 엄마, 하지만 더이상 내 곁에 없다는 것을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존재인 엄마를 먼저 떠나는 연재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동안만은 엄마를 하루에 한 번씩 웃게 만들자고 약속한다. 그 약속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혼자 남겨지는 아버지를 위해 리모콘 작동법을 꼼꼼히 적어내려가는 한석규의 모습도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또다른 연재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탱고배우기'였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하나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는 '언제 한번 그토록 배워보고 싶어하는 방송댄스를 배워보나?'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이 드라마의 세번째 매력은 기획의도에서도 뻔히 드러나는 것으로, 작정하고 노리는 것이기에 무게감 있으면서도 가볍고, 파급력이 클듯하면서도 그 파장은 미약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 할말이 생기는 것이다.

왜 연재는 버킷리스트(욕망)는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일까? 스스로를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연재는 1등석 비행기를 타고, 명품 옷을 입고, 오키나와라는 휴양지에서 끊임없이 소비한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망설이지 않고 먹고 입고 산다. 죽기전에 꼭 해야하는 것들이 돈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것들로 구성된다는 것이 뭔가 씁쓸했다. 한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해왔으니 적금도 넣고, 보험도 들고, 퇴직금도 있어서 그래도 연재는 남은 6개월 동안 충분히 소비하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 근근한 나는, 2년에 한번씩 메뚜기 처럼 직장을 옮겨다녀야 하는 그는 연재를 보며 씁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연재가 재벌2세가 아니라 무직의 어떤이와 사랑에 빠졌다면, '영화처럼 데이트해보기'라는 욕망은 또 어떻게 실현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왜 꼭 '영화처럼 데이트해보기'의 대명사로 돈 많은 재벌남이 가난한 거리의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그녀에게 온갖가지 옷을 입히고 사주는 영화, <귀여운 여인>이 되어야 하는가!

<여인의 향기> 홈페이지에 가면 기획의도로 이렇게 쓰여 있다. "주인공을 통해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올지도 모를 죽음, 혹은 30년 뒤 찾아올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좋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드라마." 연재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만약에 나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할지 잠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신선한 질문이고 시청자들에게 제각각 의미있게 다가갈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과감히 질문하지만 답하는 것은 너무나도 뻔하디 뻔해서 실망스러웠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하나 실행하면서 죽음을 맞이 하고 있는 연재에게 어느날 갑자기 사랑이 찾아 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연재는 그 사랑때문에 죽도록 살고 싶어지고,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그 사랑때문에 은석에게 살려달라며 눈물범벅을 보인다. 생을 마무리하기 위한 여러 과정들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연재는 '사랑'과 '연애'만이 유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아무리 다르게 해석하려고 해도 10회는 이렇게 읽을 수 밖에 없다.) 

10회를 보면서 생각을 했다. '사랑' '연애'가 아니고서는 드라마를 이끌어가기 힘든걸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사랑이 없으면 존재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선 해야할 것, 원망할 것, 미워할 것, 아껴야할 것, 사랑할 것 등 오만가지 감정들과 생각들로 그야말로 시간이 빠듯할텐데 10회의 연재는 오로지 강지욱만을 본다. 그것이 나는 안타까왔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그 안타까움을 달래본다. '그래, 한 회 정도는 그럴 수 있겠지...아직 드라마가 끝난것이 아니니. 여기에서 실망하는 것은 이르겠지. 아직 10회잖아. 6회나 더 남았으니.' 그리고 앞으로 전개 될 이야기는 제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모든 것을 다하다가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잠드는 것만으로만 채워지지 않기를 바래본다. 

지금까지 직접 작가를 검색해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아주 드문데 <여인의 향기>를 보면서 작가 이름을 눈여겨 보고, 작가 이름을 검색해보고 그랬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인의 향기>는 내게는 조금 특별한 드라마이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노지설 작가가 드라마를 좀 더 잘 만들어 주었으면 바래보고 또 또 끝까지 이 드라마를 챙겨보겠다고 마음 먹는다. 

+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8할은 힘은 드라마에 대한 애정과 남다른 시각을 가진 '너굴님'으로 부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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