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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에 해당되는 글 1건
2012. 7. 9. 01:13

1.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봤다. 2시 40분 영화를 보기 위해 2시에 극장에 도착했다. 매진이다. 예매를 하지 않은 나의 안일함에 화가 났다. 6시 35분 표를 예매하고 열기가 가득한 서울의 한복판을 다시 반복해서 걷는다. 종로에서 시네큐브까지 다시 시네큐브에서 종로까지. 오랜만에 들른 서점에서 아드리안느 리치의 책을 사려고 검색을 했다. 재고가 없다고 한다. 텅빈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당황한다. 침대위에 두고 온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난다. 서점에서 다 읽지 못한 부분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까 잠시 생각하지만 내 소유의 책이 아닌 것은 어쩐지 읽을 맛이 나지 않아 그만둔다. 그러다가 얼마전 씨네21에서 읽은 은희경씨 인터뷰 글이 생각나서 그녀의 소설 <태연한 인생>을 샀다. 대형서점 한켠의 계단식 의자에 앉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푸드코트의 짜장면 냄새가 집중을 방해한다. 주변 사람들의 대화소리도 신경쓰인다. 다시 종로에서 시네큐브까지 한여름 도심을 걷는다. 경희궁의 나무그늘 벤치에 앉아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공원의 노숙인들과 벤치 위를 종횡무진하는 개미들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책읽기에 나쁘지 않은 공간이다. 소설이야기는 잠시 뒤로 하고, 우디할배의 영화이야기를 간략하게 해본다. 영화시작 우디할배는 재즈음악과 함께 파리 곳곳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리고 비오는 날의 파리 풍경도 넉넉히 보여준다. 시작이 좋았다. 파리에 대한 우디 할배의 애정이 느껴졌다. 우디할배의 애정이 담긴 파리 풍경을 뒤로 하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인공 질은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타난 구형 푸조를 타고 1920년 대 과거로 찾아가 당시의 작가와 예술가들을 만나 흥분하고,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재미있는 상상력의 결합과 곳곳에 배치된 유머로 무난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영화의 막바지 질과 아드리아나의 대화는 상당히 교훈(?)적인 대화라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내가 다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재미있는 상상력에 뻔하디 뻔한 교훈을 덧한 우디할배에게 나는 속으로 말했다. "할배 촘 실망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타임슬립이라는 구조도 그리 기발하진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그저 영화의 시작-파리의 풍경과 특히 비오는 풍경-과 영화의 마지막- 내리는 비에 옷이 젖을까 개의치 않고 비가 내리는 파리 밤거리를 걷는 남녀의 모습-이 좋았다. 영화의 시작과 끝만 붙여놓은 그 이야기만으로도 <미드나잇 인 파리>는 충분히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2.

다시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으로 돌아와본다. 소설의 주 구조는 류와 요셉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요셉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 더 많이 등장한다. 그에 비해 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적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더욱 강렬한 인물은 류이다. 언젠가 은희경씨가 류의 이야기만으로 소설을 채워넣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고 고독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주 희미하게나마 이해하고 생각하게 된다.

 

 

3.

좌석 등받이와 함께 류의 몸이 뒤로 비슴듬히 졎혀졌다.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류는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요셉을 바라보았다. 감고 있던 눈을 뜨면서 요셉이 류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다정한 웃음은 류를 슬프게 만들었다. 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가는 세상의 끝은 S시가 아니었다. 열정이 끝나는 소실점이었다. 매혹은 지속되지 않으며 열정에는 일정한 분량이 있다. 그 한시성이 그들을 더욱 열렬하게 만든 것이었다. 류는 그들에게 주어진 매혹과 열정의 시간이 끝나버리는 날 자신이 혼자 비행기에 실려 돌아오리라는 걸 예감했다. 요셉과 다른 점은 그것이었다. 둘 다 뜨거웠지만 류는 요셉과 달리 자신을 속이지 못했다. 매혹이 사라진 이후의 사랑은 어머니 처럼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틀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류는 자기만의 부역보다는 상실을 택했다. 고통보다는 고독을 택한 것이다. 그것을 요셉에게 납득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조의를 표하듯 왼쪽 가슴 위에 올려놓았던 팔을 요셉에게로 뻗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는 류의 표정에는 슬픔과 갈망이 조용히 깃들어 있었다. 그 여름 S시를 혼자 떠나 올 때 류는 울었지만 요셉과의 관계에서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놓고 되돌아와버린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았다.

 

...

 

어머니는 비행기처럼 기류를 따라 자유롭게 흘러가라는 뜻으로 류의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페라 속 비극적인 여인의 이름을 따서 류에게 붙였다. 그 오페라에서 노래 부르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류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중

 

 

4.

그 외로움이라는 것은 내가 감당해햐하는 내 삶에 할당된 몫이었다. 그것이 내게 할당된 고독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어슴푸레 느낀다. 하지만 난 내 몫의 고독에 대해 왜 네가 채워주지못하냐며, 왜 넌 나를 외롭게 만드냐며 내가 감당해야할 고독의 날카로운 칼끝을 너를 향해 찔렀고 그것으로 너를 아프게 했다. 나는 나약했고 너는 비겁했다. 가끔 그 밤이 종종 생각난다.

(20120708)

 

 

5.

P랑 어느 낯선 소도시에 갔다. P는 그 낯선 소도시에서 2주일 동안 촬영을 한다고 했다. P의 일을 돕겠다며 나는 P와 함께 동행했다. P를 쫓아가면서 나는 그 소도시에 Q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간것이었다. 아마 Q가 그곳에 없었다면 나는 그곳을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P의 촬영지는 낯선 소도시의 오래된 피아노학원이었다. 피아노학원의 원장은 학원 한켠에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Q는 그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연을 가장하여 Q를 만나고 싶었다. 촬영을 끝내고 P와 피아노 학원 한 켠의 카페를 방문했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Q가 있다.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웃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Q의 모습을 보고, 웃는 그 낯을 보고 있으니 마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듯하였다. 하지만 현실의 인지는 언제나 찰나와 함께 온다. '딸랑딸랑' 카페문에 매달린 방울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작은 키와 작은 몸, 하얀 피부에 단아한 얼굴을 한 여자가 카페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녀는 카페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Q의 얼굴을 보고 환희 웃는다. 나는 단박에 Q와 그녀는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Q가 날보고 웃는 것과 그녈보고 웃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나는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가볍지않은데 가벼운 마음, 그래 허망한 마음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나는 P에게 조용히 말했다. "가자-" 카페에서 나선 낯선 소도시의 밤은 초록의 여운으로 서글프게 아름답다. P가 곁에 있다는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된다. P에게 말했다. "우리 맥주 한 잔 할래?" 하지만 P는 아직 촬영분이 더 남았다며 나의 제안을 간결하게 거절하고 카메라를 등에 얹고 등을 보인다. 낯선 소도시의 여름밤, 난 어디로 가야하지? 그저 초록의 키가 큰 가로수만을 올려다 본다. 낯선 소도시의 여름밤 홀로 길을 걷는다. 그리고 내게 속삭인다. '괜찮다. 괜찮아.' 나는 슬퍼하지않는다. 나는 울지않는다. 덤덤히 받아들인다. 어쩔수없는 현실이니까. 그 밤 어둠, 초록의 여운이 아름답다고 그저 생각할 뿐이다.

 

(20120706 폭우가 쏟아지던 새벽,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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