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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0. 14:17
급작스럽게 바다에 다녀왔다. "바다 보러 갈래?" 짧은 문자가 언니에게서 왔다.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갈까?" "이왕 바다 보러 가는 건데 동해로 갈까?" "새벽같이 출발하면 당일치기로 부담없이 다녀 올 수 있을 것 같아!" 새벽같이는 아니지만 9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12시경에 속초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동해바다. 3년만에 찾아오는 동해바다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공간이었는데 마음먹으니 또 쉬이 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터미널에서 걸어서 10여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속초해수욕장이 있었다. 눈앞에 바다가 보인다. 파도소리가 들린다. 바다내음이 난다. 아, 바다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시종일관 변하는 풍경에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하며, 서울과 달리 뒤늦게 찾아온 봄의 기운에 조심스레 설레여했다. 이렇게 계절이 공간을 따라 시간차이를 두고 찾아온다면 봄이 머무는 지역을 따라따라 가다보면 내곁에 봄을 길게 둘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했다. 창밖의 눈부신 풍경을 볼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래서 모든 풍경을 더 열심히 눈에 담고 싶었다.

사람들은 왜 먹먹하고 답답하고 슬픔이 마음 속에서 배어 나올 때 바다를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왜 그런 것일까? 속초해수욕장에서 동명항까지 걷고 또 걸었다. 봄바다를 찾은 사람들이 꽤 많다. 아바이마을에 잠시 머물러 점심을 먹고 다시 동명항까지 걸었다. 매일 술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언니는 밥을 다 먹고 나서 먹은 것을 다시 다 비워냈다. 몸이 무언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나마 술은 붉은피가 한 순간에 끌어 안으니 비워낼 수도 없는, 언니의 몸은 술만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아-이 시간이 어여 빨리 지나가는 것만이 약일까? 동명항 근처 바위 섬에서 불어오는 깊은 바다가 뱉어내는 차가운 숨에 언니도 나도 잠시 멍해졌다.


몸이 술만을 찾을 땐 술을 먹어야지. 항구부근에서 회를 떠서 소주 3병을 사고 다시 속초해수욕장 모래사장 위에 술판을 벌였다. 소주한잔을 넘기고, 모래가 자글 자글 씹이는 회 한 점 입에 넣고 다시 멍해진다. 그리고 소주 한잔을 넘기고. 언니는 그곳에서 그를 보냈고 난 그곳에서 그녀를 보냈다. 그리고 또 소주 한잔을 넘기고 또 소주 한잔을 넘기고 파도가 뭍에 다다를 때마다 한잔씩 내 몸에 술을 담았다. 술이 달큰하게 오르니 한낮의 태양도, 봄날의 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부끄럽지 않다. 그냥 그시공간엔 술을 퍼마시며 누군가를 보내는 우리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고속버스는 7시 50분인데 괜시리 이곳을 떠나기가 싫었다. 순식간에 소주 3병을 비우고 부랴부랴 터미널로 달려가 버스표를 내일표로 바꾼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내려 앉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술을 마신다. 하얀 거품을 안고 달려오는 파도를 꿀꺽 삼키듯 이번엔 맥주를 쉼없이 삼키고 또 삼킨다. 그러며 마음으로 읊조렸다. "잘가요. 잘가요. 그대. 안녕." 밤이 깊어 간다. 파도 소리에 우리의 밤이 깊어 간다. 아, 바다다. 바다에 왔다.

다음날 아침, 굳이 일출을 꼭 봐야 한다며 난방이 안되는 낡은 숙소에서 눈을 부비며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이런 우리를 내내 아무말없이 곁에서 바라보고 타독였던 h언니가 정말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장면이 지금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h언니는 나와 g언니를 깨워 바다로 데리고 나간다. 바다 위 하늘에 붉은 띠가 보인다. "어, 해뜬거 아니야?" "해떴나봐." "우와! 해가 이렇게 빨리 뜨다니." 걸음을 바닷가로 재촉했다. 그리고 붉은 띠를 정면으로 어제 술을 퍼먹었던 그 자리에 숨죽이고 앉아 우리는 한 곳을 응시했다.

살아오면서 일출의 광경을 처음 보았다. 숨 죽여 지평선을 응시하고 있는 순간 지평선 너머로 푸른빛과 붉은빛을 띤 태양의 머리가 쏙 솟아오르더니 점점 원형의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의 흐름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내가 태양을 눈부셔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새벽의 시간이 신기했다. 넋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태양은 그 시간을 길게 허락하지 않았다. 순간이었고, 그 몇 분의 시간이 지나니 태양을 더이상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속초바다를 떠날 시간, 바다는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하늘은 물론이고 바다도 눈이부셔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시간에 우리는 바다를 뒤로 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풀이를 한 사람들처럼, 마음에 답답함과 슬픔과 응어리를 한꺼번에 내려 놓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바다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쩍 그 공간을 떠났다. 짧은 순간이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다가 떠나갔다. 1박 2일의 시간, "언니야, 이 시간도 다 지나갈거야. 괜찮아질거야." 그리고 1박 2일의 시간동안 말없이 우리 곁에 있어 주었던 언니, "언니, 고마와요. 우리 또 시간과 마음이 절묘하게 결합하는 순간 어디론가 훌쩍 떠나요." 마지막으로 "이젠 정말로 안녕, 잘가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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