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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의 '바람'식단'에 해당되는 글 1건
2012. 5. 21. 00:24

 

 

 

[바람이의 '바람'식단-2]

 

 

연애가 끝났다. 2주가 지났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주중에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벅적거림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다. ‘아, 나의 연애가 끝났다.’라는 것을 출퇴근길 홀로 있을 때 잠시 실감한다. 2주 동안 틈틈이 술 마시는 자리를 빠지지 않고 찾아다녔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나의 신상을 보고 했다. “나 헤어졌어.”라는 말을 시작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화들짝 놀라는 이들도 있고, 라디오 뉴스를 듣는 듯 무덤덤한 이들도 있다. 반응이야 어떠한들 이별이라는 것을 직면하고 있는 내게 사람들은 마음을 전한다. 내 곁에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녀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마도 그녀들이 내 곁에 없다면…생각만 해도 서걱거린다.

 

여하튼 주중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주말엔 거의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 혼자뿐이다. 주말엔 산으로 들로 외출하는 엄마, 아빠. 주말강의를 나가는 동생1, 주말 학원에 다니는 동생2.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면 연애가 끝났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일요일 아침, 동물농장을 보다가 방치되어 뼈만 앙상히 남은 개들을 보고 울었다. 개들이 안스러워 울다가 나중에는 ‘내가 왜 울고 있나?’ 생각하며 텔레비전 속 개들과 상관없이 울었다. 동물농장을 다 보고 흐트러져 있는 집을 둘러본다. 나의 임여사는 어릴 때부터 ‘본인 부재중엔 집을 깔끔히 치워 놓아야 한다.’라는 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훈계와 짜증, 성질로 우리를 단련시켜왔다. 거기에 습관이 밴 우리는 임여사 귀가 전에 집을 반드시 치워 놓는다. 평온한 나의 시간을 위하여. 그 습관이 오늘도 발동한다. 소파 위 쿠션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마른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밀고,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분리수거 물품을 다시 한 번 분리하고…분리수거를 하다가 또 주책맞게 눈물이 흐른다. 오전 시간을 그렇게 가사노동을 하면서 보냈다. 몸을 움직이고 틈틈이 눈물을 흘리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일단은 깔끔하게 씻고 뭔가를 먹고 싶어서 샤워를 했다. 개운하다. 

 

‘뭘 먹으면 좋을까?’ 혼자 있으면 뭔가를 챙겨먹는다는 것이 상당히 귀찮아진다. 대충 있는 찬에 식은 밥을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게 된다. 오늘도 라면의 나쁜 맛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 부엌 싱크대에 떡하니 라면 3봉지가 놓여 있다. ‘저것을 그냥 끓여 먹을까?’ 생각하다 홀로 라면을 끓여 먹다 청승을 떨듯하여 라면 먹기는 포기한다. 꼬깜의 글을 보면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잘 챙겨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행위인지를 알았다. 나를 위해 시간을 들여 재료를 다듬고, 끓이고, 볶고, 음식이 다 되기까지 기다리는 그녀의 행위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음식을 한다는 것은 오바스럽게 표현하면 감동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래, 나를 위해 나도 뭔가를 만들어 먹어보자. 나를 위해 조리과정에 정성을 쏟고, 예쁘게 담아 먹자.”

 

 

 

 

그래서 연애가 끝난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일요일엔 조용한 임여사의 부엌에 들어가 열무국수를 만들었다. 다시마, 멸치, 북어, 양파를 넣고 국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면을 삶았고, 계란도 하나 삶았다.(계란삶기는 어렵다. 다 된줄 알고 탁 깼는데 노른자가 주르륵. 바로 후루룩 마셔버렸다.ㅠ) 다시 국물의 거품을 걷어내고, 면은 차가운 물에 행구고 채에 담아 물기를 뺀다. 차갑게 식힌 다시국물 네 국자에 열무김치 국물 두 국자를 섞어 열무국수 국물을 완성하고, 그릇에 국수를 놓고 국물을 붓고, 아삭한 열무김치를 올려놓으니 시원한 점심 한 끼가 된다.

 

 

 

 

두 번째 맞이하는 일요일 오늘, 임여사의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냉장고를 뒤적거리면서 무언가가 채워져 있는 임여사의 냉장고가 새삼스레 고마웠다. 오늘 점심은 브런치(?) 스타일로! 동생1이 쪄 놓은 단호박이 있다. 단호박에 치즈를 올려서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팽이버섯을 볶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계란후라이는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굽고 계란이 익는 동안 토마토를 깨끗이 씻어 자른다. 너른 접시에 음식들을 가지런히 담는다. 만족스러운 모양새다.

 

“잘 먹겠습니다.”

 

한 숟가락 뜨는 순간 항상 텔레비전에서는 <옥탑방 왕세자>를 한다. 유천이를 보며 내가 만든 무언가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고 삼키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래 이렇게 시간이 간다. 이렇게 나를 위해 매주 무언가를 하나씩 만들어 먹다보면 지금보다는 분명 나아질 것이다. 좋은 사람이었던 그 사람은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좋은 사람인 나도 역시 더 나은 사람을 만나 연애라는 것을 다시 할 것이다. 그런데 밥을 먹다, ‘언젠가 나는 또 관계의 종료를 반복해야겠지.’라고 생각하니 깝깝해진다. “에이 몰라! 너무 갔다! 일단 밥이나 먹자!”

 

바람(민우회 활동가)

 

+ 관계가 종료되었다는 것, 서로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혼자 밥을 먹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힘이 든다. 한동안의 기억이 내 안에 아직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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