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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트러블'에 해당되는 글 1건
2012. 5. 13. 11:06

[바람이의 '바람' 식단]


*4월 30일 민우트러블에 실은 글을 가져다 이곳에 다시 담다. 

 

 

결정적 계기는 없었다. 어느 날 문득 ‘고기를 안 먹고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다짐이 딱 일 년 전 요맘때 봄이었다. 당시 고기를 한 번 먹지 말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준비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도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당시의 일기장을 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몸이 고기를 힘들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양상추를 과자처럼 아삭아삭 싶어 먹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고기를 안 먹으면 주거의 독립은 불가능하더라도 식단의 독립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당시 마음을 먹고 실천한 것이 고기 없는 월요일, 되돌아보면 고기 없는 월요일은 잘 지켜 온 것 같다.

 

하지만 틈틈이 고기가 땡기는 날에는 치킨에 맥주를 먹었고, 김밥에 들어 있는 햄은 고기가 아니다 생각하고 먹었고, 카레에 들어 있는 고기는 골라내기 어렵다며 그냥 먹었고, 고기 국물은 고기 건더기가 없으니 먹어도 된다 하고 틈틈이 고기를 섭취하였다. 그러니 일 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은 단순히 큰 고기 덩어리를 씹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도 처음엔 내 먹을 거리를 일요일에 장 봐다가 직접 다듬고 손질해서 식단의 독립을 꽤하려고 했지만 턱없이 비싼 야채 가격에, (한 번은 샐러리를 사려고 슈퍼에 갔는데 샐러리 한 다발에 6,000원 정도 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놨다 망설이다가 결국 2개에 1,400원 하는 오이를 샀다.) 항상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귀차니즘에, 슈퍼에서 파는 연두부랑 한 번 구입하면 통째로 채칼로 썰어 놓은 양배추를 챙겨오는 것이 다였다.

 

원칙도 없고, 애씀도 없는 고기 안 먹기 캠페인 올해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고기의 맛만큼이나 들에 나는 초록 것들의 맛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봄 미나리의 아삭함과 향긋한 향, 단호박의 달달하고 담백한 맛, 양상추의 싱그러움, 상추/배추의 친근한 맛, 양파의 은근히 단 맛, 눈을 호사롭게 하는 파프리카, 달달 볶아 먹으면 맛있는 애호박 등. 줄줄이 그 맛을 생각하면 즐겁지 않은 것이 없다.

 

봄이면 초록의 맛들이 더욱 풍요로워 지는 것 같다. 봄이 오면 영애씨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초록의 들판을 가르키며 “소희야 저게저게 온천지 다 먹을 거데이!”“라고 말한다. 어제는 영애씨가 가평에 있는 친구 집에 다녀왔다. 늦은 밤 집에 들어와 내려놓은 박스 안에는 쑥, 돌미나리, 돈나물, 쪽파, 취나물, 달래, 방아, 두릅이 담겨 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묻자, 가평 산 천지를 돌아 댕기면서 햇빛을 등에 얹고 직접 캐온 나물들이라고 한다. 두릅은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을 생각하니 입안에 초록의 기운이 쏴아 하고 퍼지고, 돈나물은 아삭아삭 씹는 맛이 재미지고, 달래는 된장찌개에 넣어 자글자글 끓여 먹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먹거리를 지천 어디에서든지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리고 산천 무수한 초록의 것들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영애씨의 지혜가 부러웠다. 모처럼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 아침, 영애씨가 마루에 신문을 깔고 친구의 텃밭에서 뽑아 온 쪽파를 다듬는다. 그리고 영애씨가 말한다 “소희야 이거 혼자 따듬을란께 머리에서 쥐가 날라칸다. 이거 언제 다 따듬노.” 귀찮았다. 모른 척 하고 싶었다. 헌데 영애씨 머리에 쥐가 난다니 마주 앉아서 흙이 묻어 있는 쪽파를 다듬는다.(사진 속 쪽파의 양은 일부분일 뿐 프레임 밖 쪽파들은 엄청났다.ㅠ)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랜만의 대화다. 이야기의 주제는 열 개 중 여섯 개가 결혼을 요구하는 압박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나머지 네 개의 이야기는 봄날의 쪽파를 다듬었던 순간을 곱게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었다. 삼십대의 딸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의 삼십대는 어땠어?” 영애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애씨와 함께 다듬은 쪽파는 한 가득 파김치가 되어 상위에 놓여 있다. 맛이 아주 좋다.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지고 가서 동무들이랑 맛나게 먹을 생각하니 또 좋다. 에헤라디야! 봄이구나! 에헤라디야! 풀떼기가 좋구나!
 
 바람(민우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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