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 (326)
오늘의이야기 (195)
영화&책이야기 (72)
맛있는이야기 (30)
그림이야기 (21)
쉽게쓰여진시 (8)
치앙마이이야기 (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따뜻한 밥한끼의 권리'에 해당되는 글 1건
2010. 10. 16. 23:26
오랜만에 알콜을 많이 섭취하였다. 오래동안 함께 활동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그 사람의 말에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람에게 마음의 괴로움을 준 것 같아 나 또한 힘들지만 그 사람과 함께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다. 이제는 기다리자. 마음 정갈하게 하고 진심을 품고서 기다리자. 다음날 아침, 눈을 떴다. 몸이 많이 피곤하다. 다른 날과 달리 알콜을 많이 섭취한 지난밤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청소노동자 노래자랑 '장미빛인생' 몇주전부터 이날은 꼬옥 참석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숙취때문에 잠시 갈등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이불 속에 뭉개고 있으면 소중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이런 날이 또 쉬이 오지는 않겠지? 최대한 이불 속에서 버팅기다가 버스를 탔다. 토요일 오후 햇살이 따뜻하다. 버스가 종로를 달린다. 보신각 앞에는 돌봄노동자 대회가 진행중이다. 버스가 그 시공간을 지나칠 때 목을 쭈욱 빼고서, 달리는 버스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한참을 창밖을 내다본다.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무대 위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안나가 사회를 보고 있다. 무대에서 사회를 보는 안나의 모습이 오랜만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총 12명의 청소노동자 분들이 무대에 올라와 그녀들 나름의 18번을 노래한다. 참가자 소개를 하자마자 무대에 후딱 올라와 반주가 나오면 모든 에너지를 목소리에 싣고서 열창을 한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면 쌩하니 무대 아래로 도망간다.

안나가 도망가는 그녀들을 붙잡고서 질문을 한다. "아이고, 도망가지 말고 잠깐 얘기하고 가세요! 청소일을 하면서 힘들거나 줄거울 때가 있으면 얘기 좀 해주세요!" 멋지게 한자락을 뽑아낸 그녀가 대답한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하니 마음 먹고 잠을 못자요. 그래도 아침에 동료들이 반겨주면 그렇게 좋아요!" 노동의 즐거움은 이렇게 소박한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또다른 그녀가 노래자랑 무대 위에서 "아침밥을 주지 않던 학교가 노조를 만들고 투쟁을 하니까 이제 아침밥을 줍니다. 나는 살아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오후의 햇살이 풍족하게 담긴 서울역 광장에는 개나리빛 드레스를 입고, 진달래빛 바지를 입고, 연두빛 손수건을 목에 두른 청소노동자의 노래 소리가 울려퍼졌고, 노래가락에 흥이난 다른 청소노동자는 어깨를 실룩거렸고, 광장을 지나던 행인들은 걸음을 멈춰 그곳에 머물렀다.
 
자본의 힘이 점점 세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점점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청소노동자도 어느순간부터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 되어 있었다. 이른 새벽에 출근해서, 고된 노동을 하고, 물품보관실에서 화장실에서 차가운 밥을 먹고, 학생들이 없는 빈강의실에서, 계단아래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청소노동자는 유령이 되어 있었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것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 않게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서울역 광장에서 있었던 청소농자의 노래자랑 장미빛 인생은 참으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보이고, 자신의 노동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서울역 광장에는 어느새 공감의 기운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노동이 보이면 우리는 서로의 위치를 공감하게 되고, 공감은 변화를 꿈꾸게 하고,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연대를 통해 존재를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따뜻한 밥한끼의 권리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청소노동자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땅의 청소노동자를 열렬히 응원한다! 청소노동자의 장미빛 인생 브라보! 브라보! 브라보!



다음주 화요일(10/19)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는 식당노동자의 권리찾기 캠페인이 정동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된다! "한그릇의 밥에 고마움을 얹어요, 식당노동자에게 존중을!" 캠페인에도 존재의 확장을 꿈꾸는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여러분- 함께해요! :)

 

prev"" #1 next